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 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 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시 해석 (문태준 시인) 이 시에서 시인은 허공에 혹은 담장에 맞닥뜨린 가지의 엉킨 두 마음을 읽어 낸다. 사람에게도 그렇듯이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감행의 신명이 공존할 것이다. 다만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는 혼연일체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그것을 범박하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랑의 배후로써 우리는 금단과 망설임과 삶의 궁기窮氣를 넘어선다. 사랑 아니라면 어떻게 한낱 가지에 불과한 우리가 이 세상의 허공을, 허공의 단단한 담을, 허공의 낙차 큰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