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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중등 의무교육은 권리이다
세상 초등학문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우리 나라에 법으로 정해져있는 초등 의무교육을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는 누가 지도자의 자격을 갖추었는지 검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쉬운 이해를 위해 어린 아이의 발달과정을 생각해보겠다. 우리가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예의범절이 무엇인지, 좋은 행동은 무엇이고 나쁜 행동은 무엇인지, 나쁜 말, 고운말, 표정부터 태도까지 일일이 모두 가르쳐야하고 희노애락의 모든 과정을 삶을 통해 오랜시간 한 사람을 키워낸다. 그야말고 엄청난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성도 한명을 성장시키기 위해 이러한 고된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린 아이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크게 3단계를 거친다. 어린이, 청소년, 성인이다. 어린이 때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1부터 10가지 모두 가르쳐야한다. 청소년기에는 스스로 판단을 시작하면서 다른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며 자신의 가치관을 세워가기 시작한다. 성인이 되면 스스로 판단하고 생산활동을 하며 가정을 책임지게 된다. 우린 이 세단계중에 가장 중요한 어린이 단계를 살펴보자.
우리 나라는 초중등 교육을 의무교육으로써 법으로 재정했다. 이유는 사회에서 기술과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다. 만약 학교에 진학이 어렵다면 검정고시를 통해서라도 능력을 갖추게 한다. 만약 이러한 의무교육이 없다면 능력이나 자격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상당히 모호해질 것이다. 특히 대기업이나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높은 수준의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하다면 더더욱 교육은 중요해진다. 초중등 의무교육은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부모가 아동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기본권리를 빼앗은 아동 학대로 아동보호법에 의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처럼 초등교육은 기본적인 능력과 자격을 갖춘 성인이 되기 위한 너무나도 중요하고 기본적인 의무이자 권리이다.
이렇게 중요한 초중등 의무교육을 어둠은 모를까? 당연히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경우 어둠이 선택한 방법은 전교조를 통해 아이들에게 사상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 사상을 심어주고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반기독교 정신을 심는다. 또한 진화론을 통해 창조론을 부정하게 만든다. 그래서 수많은 부모들이 고통당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이 한 것은 열심히 학교를 보내고 가르친 것 뿐인데 심지어 교회도 빠지게 하고 공부를 시켰는데 돌아온 것은 좌파 자녀들이 되어 교회를 떠난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 중요하고 기본적인 초등교육이 천박한 초등교육이 되어 자녀들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처럼 초등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떤 사상을 넣어 가르치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성경도 마찬가지다. 율법은 초등교육으로서 때가되면 예슈아를 통해 믿음을 만나게 한다. 그러나 너무 중요한 율법을 전교조같은 사람이 가르치면 이상한 교리가 되어 율법보다 사람의 전통을 지키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예슈아 시대의 문제였다. 토라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가르치냐의 문제였다. 반면 이방 교인들은 율법이 없이 믿음을 먼저 만난다. 그러나 율법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초등교육을 거절하고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운 지혜로운 교사를 통해 율법을 제대로 배워 하나님을 알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믿음의 장성한 성도가 되야할 것이다.
# 갈라디아서 4: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 율법 아래 있도록 창조하신 하나님
어느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없다. 우리도 인생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믿음도 성장하는 중이다. 어렸을 때는 하나님을 믿기도 전에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는다. 그리고 말씀은 어린 신앙을 지켜주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 또한 말씀중에 말씀은 언약궤 안에 들어있는 율법이다. 모든 말씀중에 유일하게 율법만이 온 땅에서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 있을 수 있고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곳이다. 즉 여호와의 모든 명령이며 인간과의 영원한 언약이다. 어린 신앙일 때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지만 말씀의 울타리 안에서 살고 가르침을 받는 것은 굉장히 큰 은혜이다. 이것을 통해 아이는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옳고 그름을 배우고 성경적 가치관을 세운다. 그리고 후에 믿음을 만나면 마침내 진정한 신앙인으로서 거듭나게 된다. 그러면 지금까지 배운 모든 말씀이 생각나고 깨달아지면서 예배는 더욱 경건해지고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 이처럼 율법이 청지기가 되고 개인 교사가 되어 어린 아이를 지키고 교훈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하나님의 지혜로운 모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둠은 백지와 같은 어린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율법에 전통과 철학을 섞어 가르치기 시작한다. 율법을 없앨 수 없다면 왜곡해서라도 사람을 망하게 하길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는 어린 신앙일 때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으로 옳고 그름을 왜곡시켜 죄를 짓게 만들고 급기야 천박한 초등학문을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4:4,5)
그러나 언제까지나 사람을 율법 아래 두는 것은 하나님의 태초 계획이 아니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고 진정한 믿음이 생겼을 때는 더 이상 율법아래에서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율법을 보호하고 지키는 아들의 삶을 살게하는 것이 태초 계획이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자이고 자유자의 삶인 것이다. 즉 율법 아래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의도로 계획된 어린 신앙의 모습이고 율법의 보호와 지도를 받는 시기이지만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 전통으로 왜곡되면서 율법 아래의 삶이 죄에 종이 되고 사람의 종이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율법 아래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어린 신앙에서 천박한 초등학문을 따르는 어린신앙에 이르기까지 왜곡된 정도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골2:20,23)
3 율법으로 죄만 깨달으면 되는가
어떤 사람은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용도이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바울이 말한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법으로 의로워진다는 로마서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만약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진다면 믿음을 만날 필요가 없고 예슈아께서 죽으실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율법 아래에 있는 어린 신앙으로도 유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율법 아래에서도 분명 율법의 행위가 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모든 사람을 어린 신앙일때 율법 아래에 두시고 죄가 무엇인지 가르치신다. 그리고 모두가 죄를 범한다. 그러나 마침내 믿음을 만났을 때 예슈아의 피가 율법 아래에서 지은 모든 죄를 속량하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며 거룩함에 이르게 한다. 이 거룩함의 법도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의 법이다(롬3:20-27). 행위와 믿음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믿음의 법을 비교하여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믿음이 없이 율법의 행위만 있었다면 믿음을 만났을 때는 믿음으로 법도(율법)를 준행하기 때문이다. 즉 믿음이 없을 때는 죽은 행실이지만 믿음이 있을 때는 살아있는 행실이 된다. 예슈아께서는 아버지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고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는 율법을 성취하기 위해 생명을 드리셨다. 이것이 믿음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의 삶이다.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대속죄물로 드려야하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위해 죽으셨고 여호와께서 초실절을 이루시기 위해 다시 살리셨다(히5:7).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9:14)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5:7)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3:20,27)
하지만 이 로마서 3장 말씀이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용도이고 지키지 말라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율법의 행위만 있는 어린 신앙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을 통해 아들이 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의로움이 율법의 행위에서 온 것이 아니라 믿음의 법에서 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 말씀은 어린 신앙에서 믿음을 만나는 단계를 설명하고 동시에 왜 예슈아의 죽으심이 필요한지를 말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믿음의 법으로 의롭게 되기 때문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이나 동일한 조건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는 것이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의 법'이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율법과 상관없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믿음으로 지키는 율법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믿음으로 율법을 파기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굳게 세운다고 말하는 것이다(롬3:31).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3:29-31)
4 유대인 어린 신앙과 이방인 어린 신앙
율법 아래에 있다는 것은 어린 신앙을 말한다. 어린 신앙은 두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번째는 유대인 어린아이이다. 유대인은 어렸을 때부터 율법을 배우고 지키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생기기 전까지는 어린 신앙이다. 그래서 회당에서 말씀을 배우고 율법의 행위도 있지만 율법의 깊은 의미는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안다고 하기도 어렵고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율법을 폐하는 사람의 가르침이 섞여 있어도 잘 분별하지 못하고 쉽게 사람의 종이 되거나 교리의 종이 된다.
또 다른 형태는 이방인 어린아이이다.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배우다가 후에 믿음을 만난다면 반대로 이방인은 율법이 없는 상태에서 믿음을 먼저 만난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고 성숙한 신앙인은 더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의로운 말씀을 경험하지 못해 선악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아직 어린 신앙이기 때문이다(히5:13,14). 그래서 이방인은 믿음을 만난 후에 선악을 분별할 수 있도록 율법 아래에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살아있는 믿음이 될 수 있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을 배웠다고 증언하고 있다(행15:19-21). 이와 같이 유대인은 죽은 행실이 믿음을 만나 살아있는 행실이 된다면 이방인은 죽은 믿음이 율법을 만나 살아있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즉 믿음은 순종으로 온전해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동일하다. 바로 믿음의 법이다. 즉 율법을 믿음으로 지키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 믿음의 법이다(로10:6-8). 예슈아께서 율법을 이루기 위해 생명을 드리신 믿음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하게 요구되는 장성한 믿음이다. 바울이 말하는 장성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도, 교사,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등의 성령의 5가지 직임들을 통해 여호와를 알고 예슈아의 믿음을 알아 온갖 사람의 교훈(교리)에 속지않고 흔들리지 않는 분별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엡4:13-1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4:13-15)
# 갈라디아서 4: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5 율법 아래 있는 자 VS 듣는 자
바울은 율법 아래에 있지 말고 들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두 아들을 비교하고 있지만 사실은 두 언약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 즉 땅에 속한 자로서 돌에 새긴 율법을 의미하며 또 하나는 하늘 예루살렘 즉 하늘에 속한 자로서 마음판에 새긴 율법을 의미한다. 동일한 율법이지만 마음판에 새긴 율법은 성령을 통해 지키게 하시는 새 언약을 말한다(겔36:26,27).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어린 신앙은 아직 믿음을 만나지 못했거나 율법(판단의 법도)을 모르기 때문에 죽은 행실 또는 죽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상태를 말한다(히6:1). 하지만 율법을 듣는 자는 말씀하고 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기 때문에 율법을 준행하고 살아있는 행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상태를 말한다. 이와 같이 율법아래 있는 자나 듣는 자는 살아있는 행실이냐 죽은 행실이냐 또는 살아있는 믿음이냐 죽은 믿음이냐로 구분하기 때문에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불법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요일3:8).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히6:1)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일3:6,8)
진정한 믿음은 순종을 동반한다. 그것이 살아있는 믿음이고 살아있는 행실이다(약2:21,22).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나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율법을 산다면 성숙한 믿음으로 사는 것이지만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 율법을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있다고 말할 수 없다(요일3: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아 율법을 통해 선악을 분별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더욱 아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고 율법이 없어 망한다고 경고하고 있다(호4:6). 지식에 이르기까지 새로워지면 마침내 한새사람으로서 하나될 수 있다(골3:10). 이방인의 마음으로는 진정한 유대인과 하나될 수 없고 내면적 유대인이 될 수 없다(로2:28,29).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36:26,27)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4:6)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사53:11)
# 갈4: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6 아브라함의 자녀는 이삭뿐이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자녀가 오직 이삭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자녀가 다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아브라함의 자녀이고 약속의 씨다”(롬9:7,8) 즉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유업을 얻을 만한 자녀가 되지 못했다. 즉 하늘의 축복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했고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유업과 상관이 없기 때문에 약속도 소망도 없는 이방인이 된 것이다. 쉽게 말해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이방인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유업은 유대인으로 태어나든 이방인으로 태어나든 믿음의 법으로 율법을 듣는 자가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어 상속을 받게된다. 바울은 이런 사람을 내면적 유대인이라고 말하고 있다(롬2:28,29). 왜냐하면 유대인은 약속도 소망도 하나님도 있는 자를 말하기 때문이다(엡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2:12,19)
# 갈4: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7 땅의 예루살렘 종 하갈 VS 하늘 예루살렘 자유자 사라
땅의 예루살렘에 속한 자는 종된 하갈을 의미하며 율법 아래있는 자를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이스마엘과 같은 사람이다. 이런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종과 같아서 유업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하늘 예루살렘에 속한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자유자로서 유업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땅의 예루살렘과 하늘 예루살렘을 통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하늘과 땅의 예루살라임은 모두 율법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두 언약이기 때문이다. 다만 신분이 다르다. 땅에 속한 자는 종이고 하늘에 속한 자는 자유자이다. 율법 아래에 있다고 해서 율법에 종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종이 되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에 종이 되었음을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잘 모르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가르침을 따를 수 밖에 없다. 누구의 가르침을 따르느냐가 누구의 종이냐를 결정짓는다. 율법 아래있다는 것은 세상 초등학문 아래있는 것을 말하며 세상 초등학문은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 철학, 교리등으로 율법을 왜곡하기 때문에 천박한 초등학문이 될 수 있음을 앞에서 설명했다. 그러므로 땅의 예루살렘에 속했다는 것은 어린 신앙으로서 율법 아래있는 것이고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나 사물, 어떤 것을 따르고 섬기는 상태이다(갈4:8). 즉 우상 숭배를 함으로 육체를 따르고 죄에 종된 상태를 말한다. 반면 하늘 예루살렘에 속한 자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이삭처럼 자유자를 말한다. 다시 말해 다른 교리의 종도 아니며, 죄의 종은 더더욱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 종된, 의의 종을 말한다. 이를 통해 바울은 우리에게 육체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하늘)에 속한 자가 되라고 말하는 것이다. 육체에 속한 자는 죄의 종이 되어 유업을 얻을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율법은 있었으나 하갈의 아들이어서 유업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죄의 종이었기 때문에 얻지 못한 것이다. 아브라함과 같이 여호와의 말에 순종하고 그분의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키는 믿음이 약속대로 유업을 얻게 한다(창26:4,5).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여기서도 말고 진리와 영으로 예배하는 진정한 믿음이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영의 하나님이시다(요4:24). 예슈아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예배는 바로 하늘 예루살렘을 두고 하신 말이다. 진정한 자유자의 아들들은 마음판에 율법을 새기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자들이다. 의의 종으로서 진정한 자유자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4:21-2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창26:4,5)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갈라디아서 #레올람토라 #미라클조 #히브리적관점 #율법 #천박한초등학문 #갈4
첫댓글
아멘~!
레20:26 나 여호와가 거룩하니 너희도 내게 거룩해야 한다. 너희가 내 것이 되도록 민족들로부터 너희를 구별했다.
아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