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3일 묵상본문 : 야고보서 2장 1절 - 13절 - 교만함으로 심판의 자리가 아닌 복음으로 생명과 소망을 누리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새로운 날을 허락하시고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육신의 삶을 허락하신 것은 육신의 만족이 아닌 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임을 고백합니다.
복음을 누리고 전하는 사명을 잊지 않게 하시고 그 일을 감당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죄와 허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 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주의 보좌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생명의 풍요함을 주시는 주를 경험케 하시고 주님 오실 날을 기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주의 지체들의 삶이 만물 위의 주님과 교제하는 삶이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여 주시고 주 안에서 평안을 얻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본문 해설
야고보는 성도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면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그래서 만일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왔을 때 그들을 대하는 태도를 예로 든다.
먼저 회당에 들어온 부자에게는 좋은 자리에 앉게 하고 가난한 자에게는 자신의 발등상(발을 올려놓는 발판)에 앉으라는 것은 차별하여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임을 제시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셨음을 선포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며 괄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임을 지적하고 오히려 부자는 채무관계에 얽힌 성도들을 억압하고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임을 이야기한다.
또한 부자들은 성도들이 아름답게 여기는 이름(그리스도)을 비방하는 자들임을 이야기한다.
여기서의 부자들은 단순히 부요한 사람을 말하지 않고 불신자로써 교회에 대한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참석하지만 자신의 이득과 관련된 상황에서는 교회를 대적하려는 자들임을 의미한다.
이에 야고보 사도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도가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의 몸과 같이 하라고 하신 말씀을 잘 지키면 문제가 없지만 사람을 차별하면 율법적으로도 죄를 짓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율법을 지키다가도 하나라도 죄를 범하면 범법자가 되는 것을 제시한다.
그래서 율법 중에 간음하지 말라는 것과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 가운데 간음을 하지 않았어도 살인을 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됨을 이야기한다.
이는 다른 계명을 잘 지켰다고 해도 가난한 자를 멸시하는 것도 죄를 범하는 것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자로 서야 함을 제시했던 것이다.
야고보는 자유의 율법(복음)을 따라 심판 받을 자처럼 말과 행동할 것을 권면하면서 긍휼을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음과 긍휼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함을 제시한다.
이는 복음으로 사는 자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지 않고 긍휼과 사랑을 베푸신 주의 은혜를 따라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차별하지 않음으로 심판에서 벗어난 자가 됨을 의미한다.
나의 묵상
야고보 사도는 당시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차별 대우의 모습을 지적하면서 가난한 자를 멸시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임을 선포한다.
이는 하나님의 복음에 역행하는 태도이며 말씀을 거역하는 것으로써 성도가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태도임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할 이유는 성도가 하나님의 복음을 경험한 자들이기 때문임을 말한다.
성도가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지게 된 것은 그들의 의로움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고 죄인을 위해 자기를 대속물로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로 된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어야 할 자들이었음을 의미하며 자랑할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자들임을 선포한다.
또한 자신의 재물로 성도가 된 것도 아니며 그리스도는 세상의 가난한 자들을 들어 부요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 복음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신 분이심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셨고 세리와 죄인이 회개하여 돌아오면 그들을 친구처럼 대하셨던 분이기에 교회에서 가난한 자를 멸시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임을 말한다.
결국 복음에 합당한 삶은 가난한 자를 멸시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지체로 여겨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에도 야고보 사도가 지적하는 것처럼 교회가 부요한 자들을 대우하고 가난한 자들을 홀대하는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을 발견한다.
교회에서 종종 이야기 되는 것 중에 하나는 교회의 장로는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교회의 직분자가 될 사람은 그에 따른 부요함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가 복음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중심이 되면서 나타난 전형적인 타락의 모습임을 발견하게 된다.
교회가 복음을 통해 생명을 누리고 주를 향한 소망을 더욱 견고히 하는 일에는 무관심하고 외형적으로 자랑하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태도가 가져온 결과인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며 사람이 가진 재물이 아닌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속죄를 드러내는데 집중해야 함을 선포했다.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1:16~21)
오늘날 성도들도 교회를 바라볼 때 겉으로 보이는 건물의 외형과 재정 상태를 척도로 한다.
그래서 좋은 건물을 세우고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자신의 신앙이 잘 세워진 것처럼 여기며 교회가 물질적으로 풍성하면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고 여긴다.
그러나 무리한 건축으로 인해 교회가 매각 되는 경우는 허다하며 큰 세력을 가진 교회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투기의 대상이 되어 사람들로부터 지탄받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회는 복음을 잘 드러내는지 그렇지 않은지로 평가되어야 하며 복음은 재산의 유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과 그것을 누리는 영생의 풍성함에 의해 평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도의 마음에 복음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고 살아가는지를 살펴야 하며 복음을 통해 생명을 누리고 그것을 전하며 사는 지를 척도로 여겨야 함을 다시 한 번 고백하게 하신다.
주일마다 성도들이 묵상한 것을 나누는 일을 지속하면서 느끼는 것은 묵상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묵상을 나누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지속할 때 하나님이 성도들의 삶을 바르게 세워 주시며 성도들도 그 은혜를 나누려고 할 때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과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묵상을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려는 태도가 귀한 것이며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죄에 물들지 않게 하여 조금씩 죄의 습관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힘이 된다.
오늘도 그 몸부림의 과정을 통해 다시 주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로 서고 주의 은혜를 전하는 자로 살게 하시는 손길에 주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교회 지체들도 이 과정에 함께 동참하고 주의 성도로 하루를 살아가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성도라고 할지라도 세상의 가치로 살아가면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자기의 의를 과시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철저히 복음으로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모든 사람은 교만함으로 살게 됨을 고백합니다.
심판의 자리에 서지 않고 교만의 자리에 서지 않는 방법은 오직 주의 복음으로 살기 위해 힘쓰는 모습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복 있는 자가 죄인과 악인과 교만한 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주의 복음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임을 함께 고백합니다.
그 복된 자리에 동참하게 하시고 그 복된 자리로 사람들을 초청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베푸신 잔치 자리에 주님이 주신 의복, 복음의 의복을 입게 하시며 잔치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죄와 허물을 고백하며 주님 앞에 정결함을 얻는 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고 주 안에서 생명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죄와 허물로 살아가는 인생이지만 긍휼히 여기셔서 은혜의 자리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를 다른 사람도 누리도록 돕는 자 되게 하시고 사람의 외모가 아는 마음의 중심을 보고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힘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