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말씀의 생명력
다니 1,1-20; 루카 21,1-4 /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2023.11.27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낸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에서는 올해 제39회 성서 주간(2023년 11월 26일-12월 2일) 담화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담화 내용을 중심으로 오늘 미사의 독서와 복음에 관한 묵상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1. 성서 주간 담화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보건 위기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와 같이, 이 세상과 인류 공동체가 지금 겪는 취약함은 하느님의 조화로운 창조 세계의 파괴로 말미암은 결과에서 시작되었습니다(창세 3장 참조). 그리고 이 취약함은 실존의 모든 수준에서 조화를 깨뜨리고 궁극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과 무질서의 힘에 인류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종속되는 “허무의 지배 아래”(로마 8,20) 있는 상태입니다. 이는 세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더욱더 심각해지는 생태 위기에서 드러나는 ‘창조 세계’의 취약성입니다. 둘째, 코로나 19 대유행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류 공동체’의 취약성입니다. 셋째, 성직주의, 예식주의 및 ‘미성년자와 취약한 성인들에 대한 성 학대 사건’ 등에서 드러난 죄와 연약함 때문에, 그리고 이기적인 지배와 통제를 추구하기 때문에 혼란을 겪는 ‘교회’의 취약성입니다.
그러나 이렇듯 삼중으로 드러난 취약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말씀이야말로 우리 생명의 원천이요 성령의 선물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살아 있고 힘이 있어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뜻한 바를 반드시 이루어 그 사명을 완수하시기 때문입니다(이사 55,11; 요한 4장; 1코린 14,1; 히브 4,12-13 참조). 따라서 하느님 말씀을 담고 있는 성경은 사람을 거룩한 생명과 이어 주는 생명의 통로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과 인류 공동체의 보편적이고 뿌리 깊은 취약함으로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로마 8,22) 있지만, 몸소 ‘탄식’하시며 우리 대신 간구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지 않습니까?(로마 8,26 참조). 오히려 우리는 그 ‘탄식’ 안에서 희망을 간직하는 은총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말씀께서 주시는 생명의 선물로써 우리는 허무의 지배 아래에서도 희망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로마 8,20 참조). 이 희망 안에서, 우리의 취약함에 대한 ‘탄식’은 새로운 창조의 새벽을 염원하는 희망찬 안도의 ‘한숨’으로 바뀔 것입니다.
2. 말씀에서 지혜를 얻고 나눔으로 복음을 선포하라
또한 오늘 미사의 독서 말씀에서, 다니엘은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앞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면 그분의 지혜가 주어질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생명과 만물을 지어 내신 창조주이시므로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지혜도 당신의 말씀으로 나누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말씀이 지닌 힘은 현실을 창조합니다. 다니엘이 지혜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의 꿈까지도 알아 맞추고 게다가 해몽까지 할 수 있었던 능력 역시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재물과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가르치시고자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하느님 없이 돈을 섬기며 살아가는 부자 청년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빠져나가기보다 더 어렵지만, 하느님의 뜻과 힘에 따라 살아가는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전 재산도 아낌없이 바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차지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넉근히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요, 가난한 과부는 교회의 모델입니다(암브로시우스). 흔히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에 따라 살아가기보다는 자신의 뜻을 더 앞세우고자 하며, 돈을 쓰는 지혜보다는 버는 지혜에 목을 매달다시피 노력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과부의 모범은 교회보다 세상의 부자에게 또 교구와 본당의 재정을 운영하는 성직자들보다 일반 신자들에게 적용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교부 암브로시우스의 말대로,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모델로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 사람들이나 다른 이들에게 적용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에게 적용해야 하는 말씀의 윤리입니다. 다니엘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먼저 자기 자신이 살고자 애를 썼고,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도록”(다니 1,6) 조심하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세상사에 대한 이해력과 모든 문학과 지혜에 능통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다니 1,17).
이렇듯 성서가 가르치는 지혜는 역설적입니다. 교회가 하느님 말씀에 귀를 막고 돈에 인색한 부자를 닮기보다는 하느님 말씀에 귀기울이며 나눔에 관대한 가난한 과부를 닮기를 바라셨던 예수님의 뜻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교회가 다니엘처럼 하느님 말씀에서 나오는 지혜를 선포하기를 바라시며, 또한 돈에 관해 천박한 풍조가 만연한 세상에 대하여 관대한 나눔으로 복음을 선포하기를 바라십니다. 그에 대한 명쾌한 정답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귀띰해 주고 가셨습니다. 바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 가난한 이들의 교회, 가난한 교회’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느님 말씀이 우리 삶의 참된 이유가 되고, 풍성한 희망이 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선물이 되어 교회 활동 전체를 이끄시고 영감을 불어넣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주님의 말씀」, 73항 참조). 또한 ‘생명의 선물로써 희망을 간직하게 하시는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우리 모두 날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말씀 안에서 기도하도록 노력합시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