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기는 해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지피지기 백전불태'가 '백전불패'로 바뀐 것처럼 '온고지신'도 좀 더 쉬운 한자로 바뀐 게 아닐까 싶네요.
오페라 얘기는 그러니까, 애초에 오페라는 그리스 비극을 살리자는 의도에서 출발했으나 스타 시스템에 영합하는 등의 폐단이 나타났고, 바그너는 그것을 비판했던 것이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으면 되지 오페라라는 장르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마이어베어 얘기는, 으음, 저도 정확한 출처가 기억 안 나네요. 쿨럭..;; 하여간, 말씀하신 <음악에 있어서의 유대성>이라는 글("음악 속의 유대성" 정도가 어법에 맞습니다. '있어서의' 같은 말은 일본어의 흔적이라 좋지 않아요. ^^)이 바그너의 인종적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멘델스존과 마이어베어 등을 끌어내리려는 목적에서 쓴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마이어베어가 바그너의 출세길을 막는다는 말이 마이어베어가 악의적으로 바그너를 방해했다는 말이 아니라, 마이어베어가 그보다 앞서 성공한 음악가이기 때문에 그의 위치 자체가 바그너의 성공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이죠. 바그너의 됨됨이를 생각할 때 실제로 바그너가 그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고요. 인종주의 얘기 좀 더 하자면, 당시 바그너 주변에 유대인 친구가 많았다고 하죠. <파르지팔>을 초연한 지휘자도 유대인이었고요.
탄호이저 얘기는 왜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탄호이저>의 개작은 바그너가 성공을 위해서 현실적인 요구와 타협하기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례가 되겠군요. (뭐 결과적으로는 바그너의 후기 음악 양식을 적용한 측면이 더 강했지만요.) <마이스터징어>에서도 마찬가지로 반대 세력과 부동층(?)을 설득하려면 베르디 등의 기법을 일부 수용할 필요도 있었지 않았을까 싶네요.
김문환 선생님의 글은 229쪽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좀 더 인용해 볼까요?
"바그너가 「오페라와 드라마」에서 극, 즉 드라마는 표현의 목적이고, 음악은 표현의 매체라고 한 것도 이와 연관된다. 이러한 도발적 진술은 음악극에서 대본은 기본요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지 전체 내용이 아니라는 바그너의 기본전제로부터 이해되지 않으면 음악이 대본에 종속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으로만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극은 단순한 대본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그너는 음악만이 오래된 기원들을 회상할 만한 힘을 가졌고, 따라서 그것은 현대의 평범한 사회에서 왜곡되고 또한 거의 인지하기 힘든 원초적인 인간성의 회복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