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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에 대한 다산의 해석
글쓴이 박석무 / 등록일 2026-09-07
다산 정약용은 실학자요 개혁 사상가요 시인이지만 조선 후기 최고의 경학자(經學者)였습니다. 그가 남긴 240여 권에 이르는 경학에 관한 저서만 보더라도 동양 전체에서도 으뜸으로 꼽을 경학자였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논어」를 주해하여 「논어고금주」 40권을 저술했고, 「맹자」 또한 「맹자요의」 9권으로 새롭게 해석한 저서를 남겼습니다. 「대학」·「중용」 등 사서(四書) 이외에 「육경」에 대한 정밀한 주석을 남겨 중세를 대표하던 주자학 일변도의 조선 경학을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당대의 대학자 대산 김매순은 “유림대업이 그보다 더 클 수가 없다”라는 극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다산의 「중용자잠(中庸自箴)」이라는 경학 연구서를 읽어 봅니다. 중용에 대한 다산의 탁월한 견해가 책에 가득 차 있지만, 조선 후기 성리학자들의 논쟁거리로 현실 생활과는 참으로 무관했던 ‘인물성동이론’을 비판한 대목을 읽어 봅니다. 본디 「중용」의 ‘유천하지성절(唯天下至誠節)’에 “지극한 정성이라야 능히 그 성(性)을 다하나니 능히 그 성(性)을 다하면 인지성(人之性)을 다할 수 있고, 인지성을 다할 수 있으면 물(物)의 성도 다할 수가 있다.(能盡其性 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 能盡物之性)”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다산은 명확히 해석합니다. “그 성품을 다한다 함은 제 몸을 닦아 지극한 선에 이름이요, 사람의 성품을 다한다 함은 남을 다스려 지극한 선에 이름이요, 사물의 성품을 다할 수 있다 함은 초목이나 새와 짐승의 성품을 다할 수 있다 함이다.”라고 해석하고는, 제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림이란 「대학」의 명덕(明德), 신민(新民)과 같은 의미요, 물성을 다한다 함은 「요전(堯典)」의 치산치수에 해당하는 일상생활의 이야기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산은 말합니다. 지성(至誠)이면 수기, 치인, 모든 일 세 가지가 제대로 해결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이 세 가지를 지성으로 해결하는 일은, 일마다 모두 지진(至眞), 지실(至實)하고 실천하고 이행하고 만지고 접촉할 수 있어, 과장이나 허탄함이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명확한 논리에서 벗어나 ‘물지성(物之性)’이라는 한마디에서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라는 논쟁이 갈라져 나와, 광막하고 허활(虛闊)하여 머리를 넣을 곳도 손을 댈 곳도 알지 못하게 만들고 말았다는 탄식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입두(入頭)도, 하수(下手)도 할 수 없도록 경을 해석하다 보니, 세상은 썩고 부패하여 반드시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성리학에 대한 비판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행위와 실천이 배제된 관념 논의의 성리학은 경전의 잘못된 해석에서 연유되었으니, 다산은 생을 걸고 경전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사서육경의 본뜻을 찾는 일, 공맹의 본원유교를 되살리는 일, 성리학으로 오염되고 잘못 해석된 경전의 뜻을 바로잡으려고 240여 권의 경학 관계 저술을 남겼습니다. 특히 사서(四書)에서 인(仁), 덕(德), 성(性)의 본뜻을 찾아내기 위해 「십삼경(十三經)」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여 ‘이경증경(以經證經)’의 방법, 경전의 글 속에서 경을 증거하여 경의 오해를 바로잡았습니다. 참으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경을 새롭게 해석하여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는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실상을 과장하고 왜곡하며 허황한 논리를 동원하다가 끝내 학설 논쟁이 당파 싸움으로 변질되고 만 성리학의 잘못을 그렇게도 비판했습니다. 지금도 무시할 다산의 주장이 아닙니다. 지극히 진실하고 실천하고 이행하고 손에 잡히는 학문 연구가 절실한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박석무 드림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