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옳은가?
역대하 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찬송가 197장(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오늘 아침에는 유다 왕국의 선지자 예후가 자기 나라 왕 여호사밧이 북 이스라엘 왕 아합 왕을 도와서 길르앗 라못의 탈환을 위하여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다 죽다 살아왔을 때 여호사밧 왕에게 책망하면서 한 말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선지자는 왕을 맞이하여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이 말씀을 한 까닭은 이러합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이 자기의 큰 아들 여호람의 아내로 북쪽 나라 아합 왕의 딸 아달랴를 맞이하여서 북 왕국 왕 아합과 사돈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두 나라 간에는 형제간의 전쟁이 그치게 되었지만, 이로 인하여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문제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요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쪽 나라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왕이었습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심지어 이스라엘에 이방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열심히 섬기면서 하나님의 종들을 잡아 죽이고 바알 선지자들을 직접 길러서 북 이스라엘 온 땅을 순식간에 영적으로 오염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이방 나라 아람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국경 지대를 유린하고 요단강 동쪽 땅 길르앗 라못 성읍까지 점령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아합 왕은 왜 그렇게 아람나라에게 침략을 당하는지 깨닫지 못하고 영적인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야 하는데, 오직 힘으로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고 술수를 부렸습니다. 남쪽 나라 여호사밧 왕을 초대하여 대접하다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함께 싸워서 그 땅을 되찾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결국 돕게 되어 그 전쟁에 나갔다가 거의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온 것입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 간신히 전쟁터에서 돌아온 왕에게 예후 선지자가 나타나서 위로는커녕 이러한 책망과 미래에 대한 불길한 경고의 말씀까지 내던진 것입니다.
선지자가 했던 말의 요지는 악한 자를 돕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행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번에 전쟁에 아합 왕과 함께 나갔다가 아합 왕은 죽었지만 여호사밧 왕도 거의 죽을 뻔했다가 간신히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길르앗 라못 전쟁터에서 전쟁할 때에 아람의 장군들은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을 아합 왕인 줄 잘못 알고서 한꺼번에 몰려들어 죽이려 들었습니다. 그 때에 여호사밧 왕은 몰려드는 적장들을 보고 너무나 절박하니까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하나님을 향하여 큰 소리를 부르짖었습니다. 역대하 18:31 말씀에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를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위급할 때에는 이런 저런 말을 할 겨를도 없습니다. 차 사고가 나려고 할 때에는 조리 있게 기도할 수조차 없습니다. 아기가 당장 베란다를 넘어가려고 올라타서 곧 떨어지려고 할 때에는 기도할 겨를도 없습니다. 그럴 때는 큰 소리로 “주여.”하고 벽력같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차가 구를 때에 차속에서 “주여”를 벽력같이 외치면서도 도와주심을 청하고 아이가 떨어지려 할 때에는 바람같이 달려가며 “주여”라고 외치기만 할 따름입니다. 그러할 때에 지극히 짧지만 큰 소리로 외칠 때 하나님도 번개처럼 그 소리를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곧 천사를 통하여 붙잡으시고 보호해주시고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늘 평소에 기도를 많이 쌓아두고, 늘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가 쌓인 경우에는 위급할 때에 여호사밧 왕처럼 다만 큰 소리로, “하나님” 혹은 “주여”라고만 절박하고 간절하게 외친다면, 그 기도가 놀라운 응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 죽다시피 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간신히 죽음을 피하고 돌아왔지만, 선지자는 여호사밧 왕에게 아합 왕을 도와주고 함께 전쟁까지 치른 일에 대하여 책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악한 자를 돕는 것이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44)고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미워하고 하나님 백성들을 박해하는 자를 도와 그 악한 일에 동참하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며, 개인적인 원수의 경우는 용서하고 보복을 위하여 저주하지 말고 축복의 기도를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악한 일을 행하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와 깊은 연대감을 가지고 함께 멍에를 매고 같은 사업을 하거나 함께 동맹을 맺는 일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 왕은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매우 화를 내게 만드는 우상 숭배자 아합 왕과 여호와의 종들을 잡아 죽이는 악독한 그 아내 이세벨과 사돈을 맺고 그 집 딸을 자기 며느리로 맞아들이고, 때마다 일마다 자주 만나고 긴밀한 친교를 나누었고, 전쟁이 일어나니까 자기 백성까지 동원하여 그들을 돕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그 전쟁은 패전으로 끝나고 말았고 자기도 죽을 뻔했고 자기 부하 장병들도 상당수가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선지자의 말 그대로 된 것입니다. 악한 자를 돕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심히 어리석고 부당한 일이었기에 여호와의 진노가 임한 것입니다.
이 선지자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여호사밧은 돌아와서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며 율법을 가르치며 재판을 공정하게 하려고 몸부림을 쳐서 나라가 굳건히 섰습니다. 그래서 모압 암몬, 마온 사람들의 연합군인 대 병력이 유다를 쳐들어올 때에 여호사밧과 백성들이 간절히 기도하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어 적군을 완전히 궤멸시키는 대 승리를 거두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또 한번의 위기가 여호사밧의 말년에 찾아옵니다. 그것은 아합 왕이 죽고 난 후에 북 이스라엘에 아하시야라는 그 아들이 왕을 이어받아서 여호사밧 왕에게 또 다른 제안을 했을 때 그것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것은 함께 배를 만들어서 멀리 다시스로 보내어 큰 무역을 하자고 한 것입니다. 여호사밧 왕이 그 말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경고를 다시 잊은 것입니다. 그러자 다시 엘리에셀이라는 선지자가 여호사밧 왕에게 찾아와서 예언하였습니다.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므로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대하 20:37)
그 예언한 후에 그 배들이 부서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서야 정신을 차린 여호사밧 왕은 아합 왕의 아들 아하시야가 거듭 자기 종들을 보내어 함께 배에 가게 하자고 청하였으나 거절하였습니다. 이렇듯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악한 자와 교제하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와 동업하며 함께 대사를 도모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손해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가 우리 북쪽의 나라 북한이나 저 중국과 깊은 연대를 맺으려고 하는 것은 반드시 손해가 나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손해가 나라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 집권자들이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며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데, 그들과 깊은 우애를 가지며 그들과 함께 사업을 벌이고 신뢰 관계를 깊게 가지고 동맹 관계까지 가지려고 한다면, 여호사밧 왕 때에 전쟁에서 패하든지 배가 깨지든지 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국가 간에 외교 관계는 존속하되, 그 악한 정권,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권과 깊은 연대를 맺으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왕과 나라에 일어난 일과 같은 시련이 닥칠 것입니다.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을 미워하던 아합 왕가의 딸 아달랴를 맞아들인 까닭에 여호사밧이 죽고 그 큰 아들 여호람이 왕위에 올랐을 때에 여호람이 그 아내 아달랴의 사주를 받아 자기 동생들을 다 죽이는 참극을 벌였고, 후에 여호람의 아들이 죽게 되자, 이번에는 아달랴가 또 다시 모든 다윗의 혈통을 가진 왕자들을 다 잡아 죽이고 자기가 왕위에 앉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의 잘못된 결정이 그가 죽은 후에 다윗 왕가와 자기 왕국에 엄청난 피해를 불러 일으켰던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깁시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우리들은 할 수 있거든 모든 이들과 화목해야 하지만, 악한 자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멍에를 매지는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고 기도하지만, 함께 깊은 연대감을 갖지 마는 것이 우리 자신이 해를 받지 않고 계속하여 주의 선한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기억하고 모든 이를 사랑하되 악의 힘을 항상 조심하고 분별력을 가지고 자신을 잘 지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