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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0 WED 大韓佛敎 曹溪宗 雉岳山 龜龍寺(구룡사)
■ 인생은
아무도 대신 아파 주지 못하고 누구도 대신 죽어 줄 수가 없는것입니다.
인생의 진리는 오직 살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로지 건강하세요.
■ 龜龍寺(구룡사)-원주 치악산
시대 : 고대/삼국
건립시기 : 668년
성격 : 사찰
유형 : 유적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1029
분야 : 종교·철학/불교
요약 :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치악산(雉岳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
☯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 역사적 변천
668년(문무왕 8) 의상(義湘)이 창건하였으며,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하고 있다.
원래 지금의 절터 일대는 깊은 소(沼)로서, 거기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의상이 절을 지으려 하자, 용들은 이를 막기 위해서 뇌성벽력과 함께 비를 내려 산을 물로 채웠다.
이에 의상이 부적(符籍) 한 장을 그려 연못에 넣자 갑자기 연못 물이 말라버리고, 그 중 용 한 마리는 눈이 멀었으며, 나머지 여덟 마리는 구룡사 앞산을 여덟 조각으로 갈라놓고 도망쳤다.
의상은 절을 창건한 뒤 이러한 연유를 기념하기 위해서 절 이름을 구룡사(九龍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창건 이후 도선(道詵)·무학(無學)·휴정(休靜) 등의 고승들이 머물면서 영서지방 수찰(首刹)의 지위를 지켜왔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부터 사세가 기울어지자 어떤 노인이 나타나 이르기를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쇠약해졌으니 그 혈을 끊으라.”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거북바위 등에 구멍을 뚫어 혈을 끊었지만 계속 사세는 쇠퇴하였으므로, 거북바위의 혈을 다시 잇는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구룡사로 불러 그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에서는 1706년(숙종 32) 중수되었다.
근래에서는 1966년 종영(宗泳)이 보광루를 해체 복원하였으며, 1968년에는 심검당과 요사를, 1971년에는 삼성각을, 1975년에는 대웅전을 보수 단청하였다.
☛ 내용
이 절의 당우로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보광루(普光樓)·삼성각(三聖閣)·심검당(尋劍堂)·설선당(說禪堂)·적묵당(寂默堂)·천왕문(天王門)·종루(鍾樓)·일주문(一柱門)·국사단(局司壇) 등이 있다.
이 중 동향한 대웅전은 조선 초기 개축된 건물로서,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예스런 무게가 다소 감소되었으나, 내부의 닫집은 당시의 조각술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귀한 것이며, 못 하나 쓰지 않고 지은 건물이기 때문에 비록 낡았지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보광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이층 누각이며, 이층 마루에 깔린 멍석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것이라고 전한다.
현재 입구에는 조선시대에 세운 황장금표(黃膓禁標)가 있는데, 이것은 치악산 일대의 송림에 대한 무단벌채를 금하는 방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표지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 『전통사찰총서』 11(사찰문화연구원, 1992)
・ 『명산고찰(名山古刹)따라』(이고운·박설산, 우진관광문화사, 1982)
・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문화재관리국, 1977)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 無畏(무외) 無碍(무애)
밝은 대낮에 달이 뜨고 어두운 밤 해가 있더라.
본디 우주는 낮과 밤이 없었거늘
사람 사람마다 금을 긋고 담장 쌓아 칸을 만들어 제 마음대로 해놓더라.
무애,
무애,
無碍.
해가 중천에 떴더라.
밤에 뜨는 달도 낮에 떠 있더라.
본디 무엇이 낮에 있고 무엇이 밤에 있는 것이 어디 있었으랴
내가 그것을 보았을 뿐일 진데.
사람들이 괜스레 해가 떴다 달이 떴다 하더라.
무외,
무외,
無畏.
20041212(陰1101) SUN
德不孤
☀ ‘無碍, 無畏’의 主敵은 ‘三災八難 憂患疾病’
■ 龜龍寺(구룡사)-원주 치악산
위치 :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구룡사로 500
문화재 지정 : [원주구룡사보광루]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5호(2004.01.17 지정)
신라 문무왕 6년(66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대웅전 자리에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여 구룡사(九龍寺)라 하였으나, 조선 중기에 거북바위 설화와 관련하여 현재의 명칭인 구룡사(龜龍寺)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치악산구룡사사적』에 따르면 신라말의 고승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는 강희45년 글자가 새겨진 와당이 출토되어 숙종 32년(1706)에 구룡사가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앞 좌우에는 서상원과 보광루, 적묵당, 심검당의 승사가 있으며 이밖에도 원통문, 국사단, 사천왕문, 범종각, 응진전 등이 있다. 절 입구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부도군이 있고, 또 구룡사의 전설을 말해주는 거북바위와 폭포아래에 용소가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 만든 황장금표가 있는데 이것은 치악산 일대의 송림에 대한 무단벌채를 금하는 표식이다.
* 구룡사 이름 속 숨어있는 전설 *
의상과 아홉용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원래 대웅전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다.
그 곳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의상은 치악산을 향해 가던 중 사방을 살펴보니 동쪽으로는 주봉인 비로봉이 솟아 있고, 다시 천지봉의 낙맥이 앞을 가로질은 데다가 계곡의 경치 또한 아름다워 이곳은 절을 세울만한 곳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시합을 했다.
용들이 먼저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뇌성벽력이 치고 산들이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용들이 흐뭇해하며 주변을 살피니, 의상은 비로봉과 천지봉에 줄을 걸어 배를 매놓고 그 안에서 자고 있었다.
다음은 의상이 움직였다.
부적을 한 장 그려 연못에 넣었다.
그러자 연못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용들이 뜨거워 날뛰었다.
그때 놀란 용 여덟 마리가 절 앞산을 여덟조각 내면서 동해로 도망치고, 한 마리는 눈이 멀어 함께 도망가지 못하고 못에 머물렀다.
그래서 절 이름도 구룡사(九龍寺)라 했고 한다.
세월이 흘러 절이 퇴락하게 되었고,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나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약해졌으니 그 혈을 끊으라 했다.
그대로 했더니 절이 더 힘들어졌고 폐사가 되려 했다.
이번에는 한 도승이 나타나 훈수를 했다.
거북의 혈맥을 끊어서 절이 쇠락해졌으니 다시 그 혈맥을 이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 이름을 구룡사(龜龍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 雉岳山(치악산)
강원도 원주시, 횡성군에 있는 높이 1,288m의 산이다.
1973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4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산 서쪽은 남한강의 지류 중에서도 섬강 유역인 반면, 산 동쪽은 주천강 유역이다. 신림면 황둔마을 부근에는 자연휴양림이 있다.
등산로는 소초의 구룡사 방면 사다리병창/세렴계곡 코스, 황골에서 올라가는 코스, 신림의 성남리를 통해 시작하는 능선 종주 코스 등으로 나뉜다.
구룡사, 상원사 등의 절과 영원산성, 해미산성 등의 유적지가 있다.
그중 동쪽 횡성군 강림면에는 태종대라는 절벽이 있는데, 조선 태종(이방원)이 왕이 되기 전 고려의 신하였던 원천석을 만나려 기다렸으나 고려에 대한 충절을 표방한 원천석은 만나 주지 않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5번 국도와 중앙고속도로가 치악산을 정면으로 뚫고 지나간다.
그래서 도로가 있는 구간만 국립공원에서 제척(제외)하였다.
치악산은 본디 적악산(赤岳山)이었다.
단풍이 들면 산 전체가 붉게 변한다 하여 적악산이라 한 것이다.
그러다가 뱀에게 잡아먹히려던 꿩을 구해 준 나그네가 위험에 처하자 그 꿩이 자신을 구한 은혜를 갚아 목숨을 건졌다는 은혜 갚은 꿩 전설에 따라 치악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아주 옛날 한 젊은이가 적악산의 고개를 넘어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길에 구렁이에 잡아먹힐 위기에 빠진 꿩을 만났다.
이 젊은이는 화살을 쏘아 구렁이를 명중시켜 꿩을 구했다.
젊은이는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자 묵을 곳을 찾던 중 산 속에 기와집 한 채를 발견했다.
젊은이는 소복의 젊은 여인에게서 밥을 얻어먹고 깊은 잠에 빠졌는데, 어느 순간 구렁이가 젊은이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구렁이는 "오늘 내 남편을 당신이 화살로 죽였다.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당신을 이곳으로 유인하였으니, 당신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단 새벽에 빈 절에 있는 종이 세 번 울리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첩첩산중 새벽에 종을 칠 리 없었던 터라 젊은이는 포기하고 죽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뜻밖에 새벽에 종소리가 세 번 울렸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구렁이와 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젊은이는 이상히 여겨 종각으로 가 보니, 종 밑에서 꿩 세 마리가 머리가 깨진 채 죽어 있었다.
매우 감동한 젊은이는 꿩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 준 다음 그 길로 과거를 포기하고 날짐승이지만 목숨으로 보은한 꿩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그 자리에 절을 짓고 거기서 살았다.
그 절이 바로 적악산 상원사다.
이 전설에서 유래하여 적악산의 적이 꿩 치(雉)로 바뀌어 치악산이 되었다고 한다. 치악산 상원사는 현재 신림면에 있다.
■ 人生(인생)
人生事(인생사) 先後(선후) 緩急(완급) 輕重(경중)이 있습니다.
우리네 人生(인생)은 아무도 대신 살아 주거나 누구도 대신 아파 주거나 죽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가고 싶을 때 갈 수가 없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을 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奇跡(기적)은 아무에게나 어디서나 함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꿈과 희망을 먹고 자랐지만 성인이 되면 計劃(계획)과 實踐(실천) 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 잘 생각하고 判斷(판단)해서 몸 가는 대로 行動(행동) 하고 實踐(실천)하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될 것입니다.
다만, 嚴重(엄중)한 現實(현실)앞에 우선순위를 어디에 어떻게 둘 것인가에 愼重(신중)을 기해서 責任(책임)과 義務(의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人生事(인생사) 刹那(찰나)와 彈指(탄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最善(최선)입니까?
인생의 眞理(진리)는 오직 살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로지 건강하세요.
가족의 健康(건강)과 가정의 幸福(행복)을 축원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19991212(陰1105) SUN
德不孤
■ 因緣[인연]
내 곁을 떠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리워해야 할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나의 眞心[진심]은 전혀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20180512(음0327) SAT
德不孤
■ 오늘 하루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잘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눈을 뜨는 매 순간마다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 내 생명을 잘 붙들고 있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버지 어머니가 무척이나 보고 싶다.
엄마가 해 주시는 집 밥이 먹고 싶다.
부모님이 날 낳아 길러주신 고향이 그립다.
20181212 WED
德不孤
■ 기적
있는 대로 보고 보이는 대로 주어지는 대로 살자.
기적(奇跡)은 아무 때나 일어나지 않고 누구에게나 함부로 주어지지도 않는다.
20190101 TUE
德不孤
■ 부모님의 사랑
森羅萬象(삼라만상) 중에 영원한 것은 무엇일까.
金銀寶貨, 日月星?
생물은 탄생 하자말자 滅(멸)을 향해 출발하고
만물은 변하고 소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는지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말을 제외 하고는 모두가 변하고 마는 것이다.
찰라와 彈指,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
變化無常
無變自性
부모님의 사랑은 어떠할까?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은 그 무엇에 비 할 바가 아니다.
끝없이 무한 반복되는 그 아름답고 무량한 사랑을
이제 와서야 조금은 알 것 같으니
그 이름 나의 부모님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191109(음1013) SAT
德不孤
■ 오늘
나는,
오늘 내게 주어진 가장 중요하고 제일 값진 일을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생존하기 위해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야 하는 원초적인 본능의 실천부터?
삶이란,
어디든지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가고 싶을 때 갈 수가 없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을 때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인생사 生老病死 喜怒哀樂,
그 중에 喜喜樂樂(희희낙락)만 쏙 뽑아서 살다 갈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의 진리는 오직 살아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로지 건강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알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숨 쉬고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하여 나의 믿음에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20191220 FRI
德不孤
■ CAMERA : SONY DSC-HX80(Compact camera/똑따기 사진기) & SAMSUNG SM-A102N(휴대용 전화기)
■ 20211020 WED 大韓佛敎 曹溪宗 雉岳山 龜龍寺(구룡사)
■ 國際(世界) 佛敎旗 와 WFB
國際(世界)佛敎旗(국제 불교기)는 불교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국제 불교기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파랑, 노랑, 빨강, 흰색, 주황색으로 되어 있으며, 가장 오른쪽 열에는 5개색을 위에서 아래로 차례로 줄무늬로 되어 있다.
색은 각각 의미가 담겨있다.
불교기는 1950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세계 불교도 우의회(世界 佛敎徒 友誼會)'에서 만국공동의 불교기로 정식 승인되었으며, 현재 세계 불교국가의 불교단체에서 사용하고 있다.
원래 불교기는 1882년 영국인 불교도이면서 미국 국적을 가진 올코트(Colonel Henry Stell Olcott)대위가 창안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성도(成道)시에 성체에서 육종의 색광이 방출되는 것을 근거하여 일면육색기(一面六色旗) 를 설계하였다고 한다.
불교기의 5색의 가로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타내고 5색(청.황.적.백.주)의 세로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영원 불멸하다는 뜻을 상징 한다.
불교기에 사용한 색깔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청색 :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부처님의 법을 구하며 살아가는 힘을 의미하므로 정근과 지혜를 뜻한다.
- 황색 : 찬란한 부처님 몸의 빛과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을 의미하며 금강의 지혜를 뜻한다.
- 적색 : 대자대비한 법을 닦아 항상 쉬지 않고 수행에 힘쓰는 자비와 정진을 뜻한다.
- 백색 : 깨끗한 마음으로 온갖 악업과 번뇌를 없앤 청정의 지혜를 의미한다.
- 주황 : 수치스러움과 그릇된 길로의 꾀임에 잘 견디어 내는 인욕의 지혜를 뜻한다.
■ 세계불교도우의회(WFB: World Fellowship of Buddhists)
세계불교도우의회(WFB: World Fellowship of Buddhists)는 가장 크고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 불교 단체이다.
1950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27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설되었다.
본부는 태국에 있으며, 역대 회장은 모두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서 배출되는 등 상좌부불교(테라와다불교)가 가장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고 있지만, 모든 종파가 WFB에서 활동중이다.
미국,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와 유럽의 여러 나라 등 35개국에 지부가 설립되어 있다.
대한민국에는 1963년에 지부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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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도우의회의 역대 회장
현재 회장은 태국의 en:Phan Wannamethee이다.
1950년 - 1958년 : Dr. G.P. Malalasekera, 스리랑카
1958년 - 1961년 : Hon. U. Chan Htoon, 미얀마
1963년 - 1984년 : H.S.H. Princess Poon Pismai Diskul, 태국
1985년 - 1998년 : Prof. Sanya Dharmasakti, 태국
1999년 - 현재 : H.E. Phan Wannamethee, 태국
■ 국제 불교기(Flag of Buddhism-國際 佛敎旗)
■ 보물 제279호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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