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공에 가득한 빛이 산과 들에서 봄 빛깔을 끌어올리고 있다. 일주일 사이에 눈앞의 풍광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었다. 겨울에는 빛도 언다. 빛은 오직 무채색의 스펙트럼만으로 존재를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겨울에는 빛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백의 빛깔인 눈에 감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3주간 철지난 설백의 오지 산행을 뒤로 하고 녹양방초 우거진 유채색 컬러TV의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 남도로 길을 나선다. 홍진에 뭇힌 분내... 산수구경 하자스라. 고3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가사 상춘곡의 흥을 따라서.
그간 여러 차례 남도 봄나들이 넘버원 후보였던 숙원사업 청산도를 간다. 지도를 받아들고 산행계획을 들으며 요즘 유행하는 영화 대사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이런 오지는 없었다, 이것은 유람인가 산행인가.’ 상춘과 산행이 고루 갖추어진 그야말로 천상의 조합이다. 오전 6:30 청산도행 승선 오후 2:30 완도행 승선이라 실제 청산도에 머무는 시간이 7시간이 채 못된다. 산행부담도 거의 없으니 마음 편히 즐기기만 하면 되는 산행이다. 대박이다. 새벽부터 몰려온 상춘객으로 슬로 씨티 청산도는 슬로하지는 않은 느낌이었지만 예상만치 붐비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포구 닿자마자 콧속으로 확 밀려오는 바다 비릿내로 섬에 왔다는 실감이 들면서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승선하면서 여명을 본다.

승선주로 입을 가시며. 악수님이 사람들이 왜 배에서 자리잡고 누워있는지 못마땅한듯 배위에서 왜 배를 맞대냐고 하신다. 표현이 절묘해서 소백님은 오늘 하루 최고의 표현으로 꼽으시며 좋아하신다.

메대장님 스트레칭.

소녀들 소풍 나온 듯

말띠들 LG 전기전자 제품 찬양중

형님들도 여우로운 표정


서편제 촬영지와 반대로 길을 향하면서 인파도 사라진다. 한적한 아스팔트를 걷다보니 마음도 여유 있고 대화도 즐겁다. 무불이 저녁시간에 방에서 조금 꾸물거렸더니 와이프가 밥상을 싹 치우고 알아서 해결하라는 바람에 분개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산은 남자는 두가지만, 돈과 잠자리, 잘하면 집에서 대우받는다는 어드바이스. 이에 해피는 첫 애 이후 각방으로 쓴다면서 대우 보다는 편한게 최고란다. 향상은 아예 와이프와 자매사이로 지내면서 밥은 자기가 만들어서 먹으니 대우받을 걱정이 없다며 각자 해결책을 공유한다.

입도주. 자매사이로 사는 향상의 언니가 부친 새우전을 안주삼아. 형님 누님들이 향상집 언니 솜씨가 좋다고 칭찬해주신다.

산과 마을에는 아직 동백이 한창이다. 빛깔이 연한 것부터 오리지날까지.



동백열매는 처음 보았다.

사계형님. 사진을 찍어보면 배경을 제일 잘 받는 분인 것같다. 배경이 멋있으면 사진도 잘 나오는. 그래서 사계형님이 잘 지내는 것도 순전히 배경인 형수님 덕분인듯.


산행시간은 3시간이다. 지리에서 출발하여 대봉산에 오른후 부흥리로 하산. 원래는 코스를 더 길게 계획했지만 너덜과 덤불 가시가 함께 있는 길을 헤치고 오르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얼굴을 비롯해서 팔다리 온몸에 가시 긁힌 자국으로 그득했다. 능선에서 등로를 찾은후에는 걷기가 수월했지만 비등로로 하산할 경우 조금이라도 난관을 만나게 되면 하산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등로를 따라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등로에서 만난 제비꽃 현호색


앞이 잘 안보일정도의 덤불과 가시. 솔잎이 가지와 덤불에 걸려 빼빽한 느낌을 더한다.

부흥리 밀밭.


대봉산 정상에서.


진달래와 다도해 섬들

돌담을 따라 하산한다.


돌담안에 무덤을 두는 것이 제주느낌인데 뭔가 제주하고는 다르다. 묘의 때가 마른 풀잎으로 빽빽하다.

청산도 봄 빛깔. 아직 청보리는 이르다. 대신 밀밭이 청색으로, 유채가 노랑으로 벚과 복사가 하양과 분홍으로 청산도를 덮고 있다. 산에는 신록과 산벚이 물오르는중이다.







여유롭게 유채밭에서 사진도 찍으며

동네 할머니와 정겹게 사진 한컷. 치아를 잘 못 건드려서 고생하신다면서 구경 잘 하라고 하신다.

선편제 촬영장 가는 길 강아지들도 보면서.

서편제 세트장의 수선화.

서편제 재연 공연.

7080밴드. 멀리서 이들이 연주하는 호텔캘리포니아가 아지랑이처럼 아련히 들여온다.



수담 vs 해피, 마늘 vs 양파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수담님과 해피의 밀당 접전이었다. 결과적으로 해피 완패. 입산전 양파밭을 지날 때 해피가 수담님께 밭에 심은게 무엇인지 묻는다. 수담님은 마늘이라 답하지만 모두들 양파라고 정정해주면서 양파가 수담님의 사과꽃 버전2.0가 되버렸다. 이후 마늘 밭을 지날 때면 해피가 집요하게 수담님께 양파 아니냐고 질문을 던진다. 등로에서도 수담님이 개척한 길을 따른 해피는 다른 팀과 달리 가시덤불밭을 헤매었다. 해피의 일방적인 공세가 이어졌으나 고리(코뚜레) 걸기 내기에서 노련한 수담님에게 해피가 여지없이 무너진다.
주의!! 아래의 사진은 실제가 아니고 향상이 사진을 보면서 제멋대로 소설을 쓴 것이니 믿지 마시기를^^
몇번 고리를 던져서 잘 안들어가는 모습을 보인후 지갑을 열어 내기를 제안하는 수담님

해피가 자신있게 응하며 기세 좋게 던지고 있다.

약간 자신없는 듯이 보이면서 조심스레 고리를 던지는 수담님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며 내기를 붙이는 오지팀

점점 정제되고 안정된 폼으로 변해가는 수담님. 반면 시간이 지나면서 집중력을 잃어가는 해피.

결과. 1만원에서 2만원 베팅을 더하고 마지막 3만원으로 판을 키운후 수담님은 고리걸기 성공. 해피는 고스란히 회비 6만원을 수담님께 헌사.
여기까지 소설이고요 ㅎㅎ 진실은 건전하게 내기를 해서 수담님이 해피로부터 6만원을 얻었지만 해피의 회비까지 모두 헌납하신 훈훈한 미담이었다. 이렇게 유쾌하게 청산도 산행을 마무리 했다. 내려온 길과 마찬가지로 돌아가는 길도 멀었다. 완도로부터 죽전역까지 5시간. 베트남에서 이코노미타고 집에 돌아온 느낌이다. 길었지만 봄 빛을 만끽한 청산도 나들이었다.
물타기와 밑밥신공
청산도 유람을 잘 마치고 돌아와보니 집에 있는 언니가 하루종일 집안일로 녹초가 되어있었다. 순간 위기감에 기지를 발휘해서 큰녀석을 불러 왜 엄마 집안일 도와드리지 않았느냐고 호통을 친다. 다음주에 아빠 또 산에 갈텐데 절대 이런 일없게 해라. 내일 아빠하는거 보고 본받아! 물타기로 책임을 덜면서 다음주에 오지간다는 의향을 무의식중에 전달한다. 그리고 내일 집안일에 힘쓰는 밑밥 신공까지. 언니가 술수에 넘어가는건지 알면서 눈감아주는건지... 하여간 일요일 날 아침과 점심 차리고 집안과 화장실 청소까지 겔리선의 노예처럼 힘써 일한다. 아 놔 정말 이렇게까지... 그건 그렇고 언니가 이 카페글을 보면 큰일인데...
밑밥 스파게티와 관자구이 점심

첫댓글 이정도의 정성과 노력 ..간절함의 오지산행은
가믐을 해갈하는 심정으로..ㅎ,ㅎ
멋집니다!
늘 행복하소서!
너무 잔머리를 돌려서 쑥쓰럽습니다.
청산도와 호텔 캘리포니아, 수담과 해피, 호통과 밑밥. 묘한 대비와 부조화 속에세 화음과 여유를 찾아낸 균형잡힌 달관이 좋습니다. 누구라도 청산도 가고 싶게 만드는 글이에요.
꿈보다 해몽이 좋습니다.
던지기 내기에서 해피가 수담님에게 복수혈전의 기회만 엽보고 있다는 애기가 들리던데 ㅋㅋ~ 맛과 멋이 깁은 슬로산행 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해피는 상대가 되지 않을듯 싶습니다 ㅎㅎ
짝짝짝짝. 산행기 잼있게 읽었습니다.
어깨는 수술 잘 되고? 한동안 오지에서 못보겠네.
왜 이리 재밌는거여 !
나중에는 소설가로 등단할 듯 !!
향상님의 스토리엔 결론을 만들어 나가는 부분이 훨씬 흥미진진해요
아들애를 엮으면서 자연스레 다음 산행까지 확보하는 기술이 점점 향상되는데요!!^^
ㅎㅎ 사시미가 아니고 찌기다시로 승부하는 산행기입니다.
여행도 즐거웠습니다만
뒷얘기가 재미있네요
산행기가 천의무봉 이네요
형님께서 항상 즐거운 소재를 주셔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