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치[松峙] m 경기 포천
산줄기 : 한북천주단맥
들머리 : 화현면 명덕리 웨스턴밸리
위 치 경기 포천군 화현면 명덕리/군내면 상성북리
높 이 m
# 참고 산행기[사네드레]
반월성 손짓하는 옛 시장길인... 포천 솔치
솔치고개가 멀리 보이는 명덕리 명덕교 앞. 일행이 걸어갈 골짜기 하늘에는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실선을 그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아마도 고갯마루에는 벌써 비가 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눈 짐작으로 보아 나즈막한 것이 단숨에 넘어갈 야트막한 고개. 명덕교를 지나면서 이제 무인지경으로 펼쳐질 이 솔치로 오르는 옛 골짜기는 한때 화현, 일동, 가평 등지에서 포천으로 갈때 지나가던 길이다. 그러니 솔치는 포천을 가려면 꼭 넘어야 했던 것이다.
고갯마루에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 '솔치'란 이름이 붙었다는 곳. 솔치 너머는 군내면이다. 본디 조선시대에 포천현아가 있던 곳으로 현내면이라 불렸다가 1905년 군청이 이전된 후 군청이 있던 곳이라 하여 군내면으로 개칭되었다.
현의 중심지였던 까닭에 포천향교를 비롯해 현감사적비,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된 반월성지 등 유적지가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반월성지는 포천주재기자인 정태영씨가 옛 포천현의 구석구석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훌륭한 조망지로 솔치 산행 전에 꼭 올라보길 적극 권유한 곳이다.
그의 추천대로 청성산(289m) 정수리에 자리한 반월성지에 올랐더니 멀리로는 운악산은 물론 한북정맥의 봉우리가 조망되고 가까이로는 옛장터인 상성북리의 동면말을 비롯해 포천읍과 군내면이 한눈에 들어오니 동서남북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천혜의 요충지임을 절로 깨닫게 된다.
물론 위협적인 운악산을 등지고 상성북2리의 나즈막한 뒷산에 몸을 틀고 앉은 솔치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내눈에는 마치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옛 시절을 하염없이 그리워하고 있는 듯 보였다.
10여 개의 도요지가 있던 명덕리 입구
솔치 옛길을 안내해줄 이수영씨(??세)와 명덕리 주민 강웅구씨(46세), 취재진을 위해 지원 나온 포천산악회의 장선화씨(39세)와 차운지씨(39세), 태백 김부래기자 등은 명덕교 앞에서 합류해 가는 옛길 여행에 나섰다.
부친의 뒤를 이어 운악산성에 관심이 많아 발굴에 참여해온 이수영씨는 유물유적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그는 명덕교를 들어서자마자 근처의 도요지를 보고 가자며 논둑길을 타고 넘어 깨어진 사기조각이 흩어진 묵밭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본디 이 근처에는 10여 군데에 도요지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강웅구씨는 솔치께를 가리키며 능선 께에서 흙을 실어오곤 했다고 알려준다.
한창 들여다보고 있는 사기조각 위로 이미 굵어질 대로 굵어진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새 사위를 어둠으로 몰아 넣을 듯 위협적으로 몰려온 먹구름이 하늘 위를 잔뜩 덮어 버렸다.
우중 산행쯤은 즐길 정도로 이미 산행에 이력이 난 장선화 차윤지씨 두 사람은 방수 재킷을 든든히 차려 입었고 강웅구씨와 이수영씨는 마을 주민답게 우산을 펴들고 마실 나온 사람들 차림이다. 도요지에서 돌아나와 계곡을 건너 한구비 돌아서니 완연한 숲길이다.
이내 사정없이 내려치는 빗방울이 일행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을 때 기다렸다는 듯 벌꿀단지 앞에 세워진 간이 천막 한 채가 눈에 띈다. 모두들 옳거니 저것이다 하는 눈치인데 놀다 가는 핑계감치고 제법 괜찮은 장소가 나타난 셈이다. 일행들의 배낭에서는 점심때가 아직 멀었는데도 불구하고 온갖 먹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기왕 쉬는 감에 아예 점심까지 먹고 가지요." 일행 중 누군가 던진 말에 제동을 걸 리 만무하다.
평상복이나 다름없는 차림으로 옛길 산행에 따라나선 강웅구씨는 그대로가 그 옛날 포천현의 시장 보러 가는 차림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강씨는 어릴 적 이 골짜기에서 뛰어놀며 자란 토박이다.
"이 골짜기에서 6.25때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하는데 어릴 적 나무하러 왔다가 해골을 보곤 종종 놀라곤 했다"며 또 그는 "이 고개 너머에서 우시장이 열려 소를 끌고 넘던 길" 이라며 소를 팔아 주머니가 두둑한 길손들이 고개를 넘어오며 도적의 습격을 받아 돈을 빼앗기는 불상사도 종종 일어나곤 했다는 옛길의 내력을 들려주는 것이다.
강씨가 말한 우시장이 열린 곳은 지금의 상성북2리의 동면말이란 마을이다. 소도 넘어갈 정도라면 솔치 옛길은 제법 부드러운 길일 테이다.
소도 넘던 포천 시장 가던 길
천막 아래서 간간이 소주잔도 오가며 옛날 얘기에 빠져있는 사이 빗줄기는 가랑비마냥 얌전해져 있었다. 마치 일행들이 오손도손 나누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듯.
천막에서 나오자마자 길은 계곡을 건너간다. 숲이 무성하게 우거졌지만 아늑한 오솔길이었다. 초여름비를 맞아 물기를 흠뻑 머금은 초록 물결이 길 좌우로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나무를 땔감으로 쓰던 과거, 우거진 이 숲길이 훤히 뚫린 신작로였던 시절이 있었다. 5분 여 동안 숲길을 따라갔을까 옛길은 물이 없어 자갈 바닥이 드러난 계곡으로 껑충 나선다. 본디 숲으로 이어지던 옛길이 거기서 끊겨버린 것이다.
이수영씨와 강웅구씨 얘기에 따르면 둑을 만드는 공사를 하는 바람에 건천이 돼버린 것이다. 끊어진 옛길을 잇기 위해 계곡 한가운데 무성히 자라난 갈대 숲을 지나 백여미터 건천을 따라가다가 다시 왼쪽 숲길로 든다. 오솔길은 언제 끊겼냐는 듯 이어지고 있었다. 무성한 숲길을 따라가던 강웅구씨가 "어릴 적에는 이곳에 나무가 없었어요. 땔만한 나무는 전부 베어 냈으니까요" 라며 옛일을 회상했다.
비는 완전히 개어 이젠 아예 뙤약볕을 내리쏟고 있었다. 오래된 길가에는 다래넝쿨이 채 익지 않은 열매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늦여름이면 달짝지근한 열매 맛을 볼 수 있으리. 다시 황페한 건천과 맞닥뜨리자 이번엔 계곡 오른쪽 건너편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밤나무를 향해 이수영씨가 앞장선다. 길은 이제 계곡과 작별하고 고갯마루를 향해 산비탈길로만 이어지고 있었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가듯 옛길은 오랜 세월 사람들의 왕래로 움푹 패인 낙엽길을 좇아간다. 계곡은 이제 저만치 까마득히 아래에서 어른거린다. 소나 검었던 길치고는 초반부터 제법 가파르다 싶더니 이제 고즈넉하고 완만한 숲길이 이어진다.
좀 걷는다 싶더니 당도한 고갯마루는 의외로 무색할 정도로 싱겁다.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두리번거리니 송전탑 공사로 고개의 한쪽 사면은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고개 하산길 길목에는 돌무더기가 쌓인 성황단이 있어 길손들의 흔적을 잠시 기억케 해준다.
참외며 토마토를 꺼내 한입 베어물고 쉬려 하니 하늘에서 웬 천둥소리가 일행들을 깜짝 놀라게 하며 날씨도 참 변덕스럽기도 하지 하며 한 마디씩 내뱉는다. 내리쬐던 햇볕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심상치 않아 하산을 서두른다.
옛 유적의 향기가 그윽한 군내면
기어이 고갯마루를 나서기도 전 비가 거세게 쏟아졌다. 장대비였다. 오전보다 엄청난 양의 강도로 떨어져 상성북리로 하산하는 숲길은 저녁때인양 어두컴컴해졌다. 곧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할거라는 장선화씨와 차윤지씨는 이미 체력과 마음의 준비를 든든히 해서인지 비에 아랑곳 없이 앞장서 내려간다.
고갯마루를 오르는 데도 1시간 남짓 걸렸으니 하산은 비 때문이라도 더 빨랐다. 한 달음에 상성북리에 닿으니 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샘말을 지나던 일행은 접시꽃이 어여쁘게 핀 처마로 잠시 들어갔다. 처마에는 밭에서 일하다가 비를 만나 일행처럼 잠시 비를 긋고 있는 마을사람들이 흠뻑 젖은 채 처마로 쫓아 들어오는 일행을 궁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뭐하는 분들이길래 비를 그렇게 맞고 다니십니까?"
"솔치 옛길을 걸어서 넘어 오는 길입니다. 이곳 마을에 옛날 장터가 있다고 하던데요."
"글쎄 비가 와서요. 저 아래 동면말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묵, 떡, 엿을 세말식 지고 저 고개를 넘어와 이 장에서 팔아 우리 자식들을 키웠답니다."
삶의 고단한 일상이 서린 고갯길을 무심히도 걸어 넘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 켠이 접시꽃 잎처럼 붉어졌다.
*솔치 여행 길잡이
옛 포천현으로 넘어가는 시장길
솔치는 경기도 포천군 화현면 명덕리, 군내면 상성북리에 걸쳐 있다. 옛길 산행 구간은 화현면 명덕리 명덕교에서 군내면 상성북2리까지로 산행은 2시간이면 충분하다. 길 찾기 주의할 곳은 명덕교를 출발한 다음 계곡 초입 부분. 토종꿀 재배지를 지나면서 옛길은 계곡 왼쪽으로 건너가 숲길을 따라 이어진다. 숲길은 다시 갈대숲과 자갈 깔린 바닥이 드러난 게곡을 만나면서 두어번 숲과 건천을 들락거리다가 마지막에 계곡 오른쪽으로 건너가면서 이후론 고갯마루까지 숲길을 따라 오른다.
솔치 마루는 송전탑 공사 이후 복원 단계에 있어 다소 황폐스러운 풍경. 쉴 만한 장소는 없다. 고갯마루에서는 올라간 쪽에서 직진하는 골짜기로 내려가면 상성북2리가 나온다.
*교통
포천을 기점으로 한다.
대중교통편 포천 읍내가 기점이다. 들머리 명덕리행은 일동과 포천을 오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며, 명덕온천과 웨스턴밸리를 경유한다. 상성북리는 포천시내에서 샘말행을 타고 내리면 된다.
승용차편 포천읍내에서 가평 방면 56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가 상성북리로 가자면 용정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되고, 명덕리로 가자면 조금 더 가서 명덕온천 방향으로 들어가면 된다.
*잘 데와 먹을 데
명덕리 방면 화현리의 운악정(031-533-9355/017-246-9355 주인 이수영). 운악산 운주사 입구에 있는 이곳은 아늑하고 운치있는 숲속 통나무 민박집으로 숙식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단체 손님을 위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화현리에서 일동으로 가는 47번 국도변에서 500m 거리.
*온천 및 휴양지
솔치 근처에 두 곳이 있다. 명덕리 명덕온천(031-533-5066)과 새로 개장한 웨스턴밸리(531-3500, 531-9910).
*가볼 데
반월성 군내면 구읍리 소재. 형태가 반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삼국시대 때 처음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쪽과 서쪽이 험준한 산줄기로 차단되고 그 사이에 한내천이 남에서 북으로 흘러가며 형성된 분지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둘레는 약 1.08km로 삼국시대 성 가운데서도 비교적 규모가 큰 것에 속한다. 반월성은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통일신라 때까지 사용되다 고려 때 폐성되었다가 다시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포천군에서 성 복원을 해오고 있다. 성 안에는 샘과 기왓장이 발견돼 사람이 주거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상성북리 민지네수퍼 앞으로 난 길이 성 복원지까지 가는 길이다.
반월성이 자리한 청성산 자락에는 포천향교와 청성공원이 있다. 포천군청 문화관광과(031-530-8061)에 문의하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청성공원 반월성 자락에 있는 구읍리 청성공원. 포천시민의 휴식처인 이곳에는 최익현 선생 동상과 용정삼거리에서 옮겨온 포천 현감들의 선정비 등이 있다. 포천 읍내에서 상성북리로 가는 중 용정삼거리 전에서 좌회전해 들어간다.
포천향교 반월성 자락에 있다. 구읍리 소재 조선시대 교육기관.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27년에 다시 세웠고 그후 6.25 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1962년 다시 세우고 1984년에 보수하였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2년 7월호
******************************************************************************
- 산 벗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