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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거제로 감사하라 /민수기 15;17-21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YjDRiDY_u6Y
유대인 중에 배운 것이 없는 무식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식을 아주 훌륭하게 길렀습니다. 사람들이 자식을 훌륭하게 키운 비결을 물었더니 세 가지 비결을 말했습니다. ①모든 일에서 감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라.”고 가르쳤답니다. ②원망하는 사람하고 놀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불평분만이 많고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알았기에 자녀들에게 그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③감사하는 사람과 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인격을 형성하고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친구가 중요합니다. 그 유대인 어머니는 그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좋은 친구를 사귀게 했던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보는 좋은 친구의 포인트는 감사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감사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감사를 잊지 말라고 추수감사절을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는 보통 미국교회의 영향으로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그런데 이때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감이 있어서 교회 형편에 따라서 추수감사절을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몇 년 전부터 10월 셋째 주일에 지키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다음 주일인 10월 20일입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구원에 대한 감사와 영원한 천국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하지만 추수감사절에는 하나님께서 먹고 마시고 입고 쓸 것을 주심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1년 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셨으니 그 부분에 감사를 드리는 절기가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렇다면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우리는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까요? 본문에 나오는 거제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제란 제물을 높이 들었다 아래로 내려놓는 제사 방법입니다.
본문의 거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땅에서 농사를 짓고 그 땅의 양식을 먹게 되었을 때에 곡식이 아니라 떡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첫 이삭을 거둔 후에 드린 거제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겠습니다.
1.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드리라.
20절을 보겠습니다.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 마당의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첫 곡식을 거두어 가장 먼저 떡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첫 곡식을 거두면 그 곡식으로 맛있는 밥을 해서 먹을 수도 있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잔치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떡을 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라는 말씀이죠.
첫 곡식의 의미는 ‘우선’입니다. 첫 곡식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선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먼저 드립니다.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있는 사람은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을 드립니다. 새벽에 못 나오는 분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강문호목사님 글을 보니 유옥선 권사님은 이삭 토스트를 경영하면서 첫 손님이 낸 돈은 무조건 하나님께 드린답니다. 목욕탕을 경영하는 춘천 장로님은 문을 열자 말자 첫 손님이 낸 돈을 하나님께 드린답니다. 이발소를 경영하는 원주 권사님은 문을 열고 첫 손님에게 받은 돈을 하나님께 드린답니다. 어떤 사람은 취직하여 첫 월급 받은 것을 몽땅 하나님께 첫 열매로 드리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 청년 중에 한 명은 알바해서 받은 돈을 첫 열매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약 30년 전에 한국 교회에 가장 있기 있었던 간증 강사는 원종수권사님이었습니다. 이분은 암전문의로써 미국 의학계를 깜작 놀라게 한 분입니다. 이분의 간증을 들어보면 어머니의 신앙적인 삶이 자신에게 큰 복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원권사님은 어려서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공부를 잘하지 못했는데 고등학교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갑자기 공부를 잘하게 되었습니다. 대전고등학교를 다닐 때 480명 중에서 350등을 했습니다. 바보는 아니었지만 그리 좋지 않은 성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하다가 은혜를 받은 후에 신기하가도 책을 한 번 읽으면 마치 사진을 찍는 것처럼 외워져버렸습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서울대학교 의대를 들어갔고 수석졸업을 했습니다.
이분에게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의사가 되어서 돈을 벌면 가난한 어머니 속옷 한 벌 사드려서 춥지 않게 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어머니와 마주 앉아서 돼지고기를 실컷 먹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분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병원에 인턴으로 들어가서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월급봉투를 들고는 돼지고기를 사서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실컷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백화점에 가서 어머니 속옷을 사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월급봉투를 뜯지 않고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어서 참고 어머니에게 갔습니다. 원종수권사님은 흥분해서 말했습니다. “어머니! 첫 월급 받았어요. 어머니! 나와 함께 불고기 먹으러 가요. 어머니 속옷 한 벌 사드리고 싶어요. 백화점에 가요.”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종수야! 기왕 믿을 바에 잘 믿자.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으니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자. 타협하지 말고 깨끗하게 살자. 이건 네가 처음 받은 월급이지?”, “네!”, “그럼 첫 열매야. 이건 우리 것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 바치자.”, “어머니! 십일조만 드리고 우리 불고기 먹어요.”, “아니다. 이건 첫 열매야. 우리 것 아니다. 종수야. 깨끗하게 살자.” 그래서 원종수권사님은 어머니와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첫 월급을 모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보름쯤 지났는데 학장님이 부르셨습니다. 의사고시에서 전국 1등을 했는데 상금이 나왔답니다. 하나님 앞에 드렸던 첫 열매의 2배였습니다. 원종수 권사님은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이제는 어머니와 불고기를 먹고, 어머니에게 따뜻한 속옷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의사고시에서 전체 수석을 해서 상금을 받았어요. 어머니 이제 저와 함께 돼지고기 실컷 먹어봐요.” 어머니는 봉투를 받아들고 “종수야! 너 상금 타 본적 있니?”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인데요.”, “그러면 이 상금은 첫 열매다. 이건 우리 것 아니다.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주일까지 기다리면 시험에 들지 모르니 내일 새벽기도에 같이 나가서 하나님께 드리자.” 다음 날 새벽 두 사람은 새벽기도에 나가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는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면 손해를 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복의 원천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습니다. 시 127:1,2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사람이 아무리 집을 세우려고 해도 여호와께서 세워주지 않으시면 그의 수고가 헛됩니다. 아침 일찍부터 늦은 밤까지 수고해도 여호와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둔 사람에게 분명한 보상을 해주십니다. 마 6:33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 앞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공중 나는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책임지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키가 작은 사람이 염려한다고 키가 커집니까? 그렇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들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은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둔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십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
본문 19절 보니 여호와께 거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20절에서도 거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21절에서도 거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거제는 제물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가 다시 땅으로 내리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제물을 하늘로 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의 노예생활을 마치고 출애굽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적지는 젖고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했습니다.
광야생활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생활이었습니다. 쓴물을 만나니 하나님께서 단물로 바꿔주셨습니다. 아말렉이라는 대적을 만났을 때에는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셨습니다.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광야에서 새벽마다 하늘에서 내리는 꿀 섞은 과자의 같은 만나를 받아먹었습니다. 물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셨습니다. 광야의 낮 기온은 40도가 넘는데,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 가려주셨습니다. 밤에는 기온이 급속히 낮아져서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 보호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광야생활은 그야말로 은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가나안이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목적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곡식을 거두어 떡을 해서 하나님께 드리면서 얼마나 감동이 있었겠습니까?
저는 공개적인 칭찬을 받는 경우에 두 손을 하늘을 향해 살짝 들었다가 내립니다. 아니면 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려 박수를 칩니다. 제가 왜 그런 제스추어를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칭찬하는데, “그 칭찬은 제가 아니라 제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거제를 드릴 때 제물을 하늘을 향하여 들어 올리는 것이 그런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첫 거제를 드릴 때에는 과거부터 오늘까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베풀어주실 은혜에 대한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감사드렸을 것입니다. 가나안에서 첫 번째 거제를 드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적들은 아직 가나안 땅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그때 거제를 드리는 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대적들을 물리쳐주시고 가나안 땅에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는 소망의 감사였습니다.
믿음은 소망입니다. 히 11:1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바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 믿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것이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이 없다면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천국을 소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실상 믿음이 없습니다. 자기는 천국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주님을 잘 섬기면 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모순입니다. 성경이 천국을 말하고 주님이 천국을 말씀하셨는데 자기는 천국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다고요.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소망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이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소망이 가득한 믿음이었습니다. 창 12:4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따라갔던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먼저 창 12:1입니다. 땅에 관한 소망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보여주실 땅으로 갔습니다. 가나안에 대한 소망입니다. 천국 소망입니다. 그 다음 창 12:2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민족적인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창대케 되는 복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셔서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겠다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창 12:3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우신다는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소망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소망의 주님 때문에 절대소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인 증거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망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로마서 4:17입니다.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은 어떤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죽은 자에게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죽은 자에게서도 소망을 봤던 것입니다.
소망을 갖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 큰 유익입니다. 잭 캔트필드가 쓴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친구 사이인 암전문의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가 나옵니다. 한 의사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난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자네나 나나 암환자에게 똑같은 약을, 똑같은 양으로, 같은 스케줄에 따라 처방을 하지 않는가.”, “그렇지.”, “그런데 내 약을 먹은 사람은 22%밖에 살아나지 못하고, 자네가 주는 약을 먹은 사람은 74%나 살아나오니 무슨 비결이 있는가?”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자네는 약을 줄 때 환자에게 ‘이 약은 어제와 똑같은 것입니다. 열심히 드세요’라고 말할 거야. 그러나 나는 약을 주면서 이렇게 말해. ‘여기 당신의 희망이 있습니다. 이 약은 당신에게 생명을 줄 것입니다. 낫게 해 줄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한 사람은 그냥 의무적으로 약을 주었고, 다른 사람은 약과 함께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 차이가 놀랍습니다. 그저 약을 주고 처방할 때는 100명 중에 22명이 살아났는데, 약과 함께 희망을 주었을 때는 100명 중에 74명이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소망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비록 가진 것이 적어도 소망을 가지고 감사해야 합니다. 아직 내가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제를 드린 것은 첫 이삭으로 만든 떡이었습니다. 비록 지금 가진 것은 첫 열매이지만 이후에 열릴 많은 열매들의 소망을 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처음의 작은 은혜를 감사하면 나중에는 인생 전체가 감사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작은 것을 축복하셔서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마 14:19입니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오병이어의 기적이 그런 것이잖습니까? 사람은 장정만 5천 명이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2만 명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손에 들린 것은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주님은 그 적은 것 속에서 풍성한 역사를 바라보는 소망의 눈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적은 것을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 여기서 축사라는 단어는 감사입니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낸 지그 지글러(Zig Zigler)가 75세에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자서전을 썼습니다. 그 자서전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은 감사뿐이었다. 감사 외에 다른 할 말이 없는 그러한 일생이었다.” 위대한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간 지그 지글러그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했고 가족과 이웃들에게 감사했습니다. 그의 인생의 결론은 감사였습니다. 우리 인생의 결론도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감사거리가 충만합니다. “선한 능력으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저는 그 찬양을 좋아하는데, 가사 중에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하나님의 선한 힘이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인 체 살아갑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요히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의 인생을 가장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3. 받은 은혜를 나누라.
20절을 읽겠습니다.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 마당의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 여기 보면 처음 익은 곡식 가루로 떡을 만들어서 거제로 드리는데 타작 마당의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곡식을 타작한 마당에서 맨 먼저 거두어들인 한 단을 묶어 하나님께 거제로 드렸습니다. 유월절이 지난 첫 이삭 바치는 날 우리로 하면 부활절이고, 유대의 절기로는 초실절에 백성들은 타작마당으로부터 곡식 한 단씩을 제사장에게 가져가서 거제를 드립니다. 이 첫 이삭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이때 드리는 거제를 타작 마당의 거제라고 합니다.
강문호목사님의 글을 보니 첫 곡식을 드리는 절차가 있더군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후 첫 번째 안식일이 끝나고 해가 지면 밀이나 보리 농사짓는 집에 모입니다. 친척도 좋고, 이웃도 좋고, 기타 아는 사람도 좋습니다. 주인은 낫과 망태를 메고 앞장섭니다. 모두 랄랄랄라 노래를 부르면서 그 뒤를 따라 갑니다. 주인은 밭에 가서 가장 잘 익은 곡식을 고르고 그 앞에 낫을 들고 섭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를 둘러섭니다. 주인은 가장 잘 익은 첫 곡식을 붙들고 낫을 대며 질문하고 둘러선 사람들은 대답합니다. “해가 졌습니까?”, “해가 졌습니다.”, “이 낫으로 이 보리를 벨까요?”, “그 낫으로 그 보리를 베십시오.”, “이 낫으로 이 보리를 베어 하나님께 먼저 드립니다”, “그 낫으로 그 보리를 베어 하나님께 먼저 드리십시오.” 그리고 첫 곡식을 베서 망태에 담아 무리들과 함께 성전으로 갑니다. 성전에서 도착해서는 하나님께 그 곡식을 거제로 드립니다. 그리고 거제로 드린 곡식은 제사장의 것이 됩니다.
제주는 들러리를 섰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할까요? 제가 제주라면 그들을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식사 대접을 하겠습니다. 장례식 중에 화장장까지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인의 시신을 화장하면 유족들과 문상객들은 1시간 이상을 기다립니다. 그때 대개의 경우 상주는 오신 손님들에게 식당에서 식사 대접을 합니다. 그렇듯이 제주가 첫 곡식을 드리는데 들러리를 선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저는 여기서 나눔을 생각합니다. 첫 곡식은 제사장에게 주고, 예식에 함께 하신 분들에게는 식사 대접을 합니다.
제가 나눔에 관하여 붙들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 두 구절이 있습니다. 먼저 눅 6:38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는 일용할 양식으로 내가 사용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심을 씨앗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나눔으로 심는 것입니다. 심는다는 말은 때가 되면 거둔다는 말입니다. 심어야 거듭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거나 이웃에게 나누면 하나님은 심은 자에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십니다. 주는 것 즉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나누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풍성하게 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 교회는 항상 나누는 입장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부목사님이 집사로 출석하시던 교회에서 5만원 씩 1년 선교비를 받아봤습니다만 우리는 그보다 몇 백배 아니 몇 천배나 많은 선교비를 흘려보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자마자 필리핀 선교사님에게 10만원씩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는 8천 만 원을 선교비를 지출했습니다. 금년에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대형교회에서 8천만 원은 별것 아니겠지만 우리 교회 형편에서는 엄청나게 큰 금액입니다. 우리는 금년에 네팔에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파라과이 선교 센터를 위해서는 3천7백만 원을 지출했습니다. 그리고 매 달 몇 백만 원씩 선교사님들을 지원합니다. 우리는 받는 입장이 아니라 나누는 입장입니다. 성경은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니 우리 교회는 복이 있는 교회입니다.
저도 이 말씀을 믿기 때문에 담대하게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에 나눕니다. 저와 아내가 작년 1년간 드린 헌금만 4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꼭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고 확신하는 곳에 물질을 흘려보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곳에 나눕니다. 저도 우리 교회도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제가 붙들고 있는 또 한 구절의 말씀은 잠 19:17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구제는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꾸어놓고 나몰라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고후 9:6입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저는 4년 전에 거마지역교회협의회 회장을 하다가 장로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가까운 교회에서 시무하시는 명창환장로님입니다. 그 장로님은 비발디라는 가구회사를 경영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그동안 1년에 거마지역의 어려운 몇 개 교회의 신발장이나 싱크대 등을 무료로 설치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는 장로님이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거마지역교회협의회 회장 목사도 섬기라는 응답을 받으셨답니다. 그래서 그분이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제가 그 전화를 받고 “장로님, 저는 괜찮으니까 어려운 분들을 섬겨주세요.”라고 말씀 드렸는데, 굳이 저를 만나자고 하셔서 저희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제가 장로님을 만나서도 다시 “장로님, 저는 괜찮으니까 어려운 분들을 섬겨주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본인이 기도응답을 받으셨으니 꼭 해주셔야 한다고 하셔서 목양실에 신발장과 비품함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받으니 너무 감사하더군요. 제가 그 장로님을 만난 후에 ‘명장로님이 이렇게 섬기시니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에 그분과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요즘 너무 바쁘답니다. 주문이 계속 들어와서 직원들이 야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사실 그때가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회장으로서 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 이전에 30년 동안 많은 회장님들이 있었는데, 제가 회장으로는 최초로 혜택을 받았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제가 그동안 씨를 뿌린 것 중에 한 개의 열매를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시니까요.
“거제로 감사하라.” 오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첫 수확을 거둔 단으로 떡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거제를 드린 말씀으로 추수감사절을 앞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나누었습니다.
1.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드리라. 첫 이삭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서 첫 번째 수확을 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였습니다. 출애굽과 광야 40년 간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과 구원 이후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3. 받은 은혜를 나누라. 첫 이삭으로 만든 떡은 제사장에게 드리고 그 예식을 위해서 함께 한 사람들과 사랑의 식탁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주신 것 중에 일부는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