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참전한 여군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격화되자 평범한 여성들도 전쟁터로 향했다.
이들 역시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몸을 바쳤음에도 아무 조명도 받지 못했다.
참전했던 여성들의 평균 나이는 90세를 넘어가는데 이들의 여성 영웅의 공적은 여전히 묻혀 있다.
국가 차원에서 이들을 찾고, 업적을 알리고 보훈하는 예우도 부족하다.
6·25 참전용사 40만명 중 여군은 2554명이다.
국가보훈처는 “2019년 ‘6·25 참전 유공자 발굴 사업’에서 여군이 유공자로 등록된 현황으로
6·25 참전 여군 2554명, 베트남전 참전 여군 461명, 6·25 및 베트남전 참전 여군 11명 등 3026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6·25에 참전한 한국 최초의 여자군인 김명자(89) 유공자는 당시 나이 19세에 의용군에 지원했다.
김 유공자는 지난해 6월 방송 ‘아이콘택트’에 출연해 “나라가 완전히 망하기 직전이었으니까
여자라고 해서 그 위기에 모른 척 할 수 없지 않나”라며 “그때 나라가 정말 위급했다.
여자 의용군을 모집해서 응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남자랑 훈련 똑같이 받았다”고 덧붙였다.
안보경영연구원(SMI)이 발간한 ‘6·25전쟁과 베트남 파병 참전 여군의 활약 및 국위선양 사례 발굴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6·25가 발발하자 여성들도 육·해·공군·해병대 여군 및 간호장교로 참전했다.
군번도 없는 민간인 신분으로 학도의용군·민간간호사·유격대에 편입하거나 군사활동에 참여했다.
대한민국 6.25 참전 유공자회 직할회 ‘여군회’ 소속 광주 보병학교에서 훈련한 참전 여군 A씨는 22일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여군들은 가난하다”고 호소했다.
A씨는 “(당시) 남자들이랑 똑같이 훈련 받았다”며
“군복도 없어 남자 군복을 잘라서 입고 잘 곳도 없이 야전침대에서 자며 힘들게 지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나는 키도 작아서 군장도 질질 끌렸고 훈련이 너무 고되 매일 밤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다”고 말다.
A씨는 “유공자들은 자원해서 나라를 위해 몸을 받쳤는데 제대하니 취직할 곳이 없었다”며
“대부분 어린 나이에 군대로 갔기 때문에 졸업장 없으면 취직할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남자들도 취직하기 어려운데
여자들은 오죽할까.
결혼도 제대로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라에서 매달 주는 돈 34만원은 병원에 가면 없어지는 돈”이라며 “(여성 유공자 중에)
집이 있는 사람도 거의 없고 대부분 월세로 살고 있으며 노후대책, 보훈 홍보도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여군’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6·25 참전 사실을 숨기는 여성들도 있다.
지난 6일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 ‘연순, 기숙’에서는 6·25 참전 사실을 한평생 숨기고 산 여군들의 이야기가 조명됐다.
여자의용군 2기생으로 당시 6사단에 소속돼 사단장 장도영의 비서로 일했던 여군 송연순 유공자와
춘천여고 학도병으로 참전해 정훈부대에서 통일 노래를 부른 정기숙 유공자는 자녀에게조차 참전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송 유공자는 ‘여군’에 대한 편견 때문에 참전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
그 당시 ‘여군’이라고 하면 ‘기가 센’ 여자, ‘발랑 까진’ 여자라는 편견과 함께 군에서 성폭력을 당했을 거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한다.
결혼할 때도 여군이라는 점 때문에 시댁 어른에 흠이 잡혔다고 전했다.
내용은 2021년 6월25일자 여성신문의 기사를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