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
박숲
오늘의 화자는 누구일까
욕실 거울은 신기하기도 하지 얼룩을 닦으면 맑아지는 건 얼굴보다 화법 입술을 위로 올리면 거울은 금세 등을 보인다 화자가 식탁에 도착하기까지 시차가 필요하지 아이들의 화면을 터치할 때마다 숟가락을 놓치고 남편의 해장국은 식은 지 오래, 젓가락이 그릇을 두드리고 너무 짜, 물, 그만 줘, 누구에게서 떨어졌는지 모를 음절의 파편들
개는 명령하는 쪽으로 침을 흘리고 누구의 발화인지 중요하지 않아 식탁 밑 소리의 찌꺼기를 주워 먹고 앵무새들은 몇 개의 문장을 쪼아대지 발음은 정확하지만 화자의 흉내는 완성할 수 없는 영역, 안녕 괜찮아
언어학자들은 말하는 순간 화자가 발생*한다고 했지만, 오늘의 식탁은 소음만 발생했고 화자는 조사처럼 누군가에게 붙어야 이름을 가졌고 떨어지는 순간 의미를 잃고 말지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그릇마다 입술 자국이 떨어져 나와 물속으로 가라앉지 거품은 목소리를 부풀려 수챗구멍으로 흘려보낸다 다시 욕실의 거울은 흐릿해지고 입 모양을 닦을수록 얼굴을 먹어치운 입술이 탈피한 껍질로 거울 모서리에 붙어 있었지
* 프랑스 언어학자 에밀 벤베니스트는 '나'가 발화 속에서 성립하고, '나'와 '너'의 관계를 통해 주체성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_계간 『미래시학』 (2026년 가을호)
_박숲 시인 2021년 《전남매일》 신춘문예 단편소설, 2023년 《현대경제신문》신춘문예 장편소설, 계간 《시와산문》 시 당선. 소설집 『굿바이, 라 메탈』, 장편소설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