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야, 나 병원 좀 태워줘라.”
“어딘데요?”
“신영극장 옆에 이빈후과다.”
“네.......”
나는, 아버지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을 했다.
아버지 역시, 나에게 부탁하는 말에서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싱긋이 웃었다. 아버지가 드디어 나에게 항복을 한 것이다.
역시, 나는 사춘기 시절부터 한 번도 아버지에게 져 본 적이 없는 기록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작년, 매부를 두둘겨 팬 이후, 어쩌다 옥계에 가도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 나와 아버지의 모습에 어머니는 노심초사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작년, 서울에서 광고주와 미팅이 있었고, 술 한잔을 하고 여동생 집으로 간 것이 발단이었다.
결혼하고 한 번도 여동생 집에 가 본 적이 없어서, 그날은 강남에서 일부러 무리를 해서 택시를 타고 평창동 여동생 집으로 갔다.
아마, 한시가 넘었을 것이다. 여동생네 아파트 문을 열었을 때, 매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쉬...........”
매부는 나에게 별다른 인사도 없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왜 그래?”
“아기가 자고 있어요”
“뭐?”
“형님, 제발 조용히 하세요.”
나는 매부에 말에 어쩌구니가 없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큰 처남에게 보자마자 아이 타령이라니.
“야! 애새끼 그런 식으로 키우면 안돼!”
나는 화가 나서 매부에게 큰 소리를 쳤다.
아마 술 기운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아니, 형님, 저도 아이 키우는 방식이 있는 거예요.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매부의 말대꾸가 내 더러운 성질을 건드려 버렸다.
순간적으로 나는 돌아버렸고, 매부의 얼굴을 손으로 때리고, 다리를 마구 걷어찼다.
그리고는 다시 택시를 타고 강남으로 돌아와, 화가 나서 술이 취한채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으로 와버린 것이다.
다음날, 여동생의 남편 고막이 나갔다는 항의 전화를 받았고, 그것이 급기야는 아버지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다.
“니 놈이 고등학교 때부터 속을 썩이더니 아직도 그 모양이냐? 애들 실수 하면 타이르면 될 것이지, 니놈이 여동생 부부 사이 망가뜨릴려고 작정을 했냐?
낼 모래면 나이 오십인 놈이 아직까지 돌아다니며 주먹을 휘둘러! 저것도 자식이라고 왜 낳아가지고.......”
“..............”
나는 아버지의 말에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아버지 이야기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비록 나도 할 말은 많이 있었지만, 아버지 성질을 알기에 속으로 끙끙 앓으며 참아야 했다.
여동생이 아이를 낳고 옥계 부모님 댁에서 키워주었고, 나도 주말에 가서 아기를 얼르며 귀여워 해주었다.
아기를 워낙 좋아하는 둘째는 아기가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집안에 오랜만에 아기가 들어와서 그런지, 식구들은 아기를 무척이나 귀여워했다.
그런 아기였는데, 그런 식으로 처음으로 방문한 큰 처남은 안중에도 없고 아기 타령만 하다니. 아버지의 호령에 매부가 더욱 미워졌고, 남편 고막이 나갔다고 오빠에게 야단을 치는 여동생 마저도 싫어졌다.
미술 대학 나와서 집에서 미술 학원을 하면서 빌빌대는 여동생을 일본으로 데리고 와, 오늘 날 보석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게끔 기반을 마련한 것도 나였다.
그런 오빠에게 원망을 퍼부어대다니. 나로서는 그런 생각들 때문에 매부고 여동생이고, 나에게 호령을 하는 아버지도 싫었다.
가끔 옥계에 가도 아버지와는 말이 없었다.
돌아 올 때도 간다는 인사도 없었고, 어쩌다 집으로 전화가 와도 아내를 바꾸어 주었다.
아버지 역시, 급한 일이 있으면 과거에는 나를 찾았았고 나는 아버지 일을 도와드렸으나, 그후로는 아버지는 그런 부탁도 내게 하시지 않으셨다.
얼마 후, 초등학교 교장 퇴직을 하신 외삼촌이 나와 아버지 사이를 화해 시킬려고 왔으나, 나는 고집을 피우고 삼촌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드디어 아버지가 나에게 먼저 말을 하셨고, 시내에 볼일이 있을 때는 내 차 기름값 아끼신다고 태워달라고도 하지 않으시던 양반이 부탁을 하신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 스스로가 먼저 나에게 화해를 청한 것임을, 나는 눈치 챌 수 있었다.
젊은 시절, 아버지도 나처럼 성질이 보통이 아니셨다.
집안에서 어머니는 아버지 앞에 숨도 크게 쉬지 못할 정도로 성격이 벼락같았다. 고집 또한 무척이나 세서, 집 안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런 아버지의 고집과 성격을, 그런 아버지를 닮은 아들놈이 그 아버지를 사춘기 시절부터 꺽어 온 것이고, 오십 다 되어 가는 철부지 아들 놈이 또 한 번 불효를 저지른 것이다.
“나가실 때 전화하세요. 옥계 태워드릴게요.”
“괜찮다. 버스 타고 간다.”
역시, 아버지 고집은 여전했다. 내 차 기름값 때문에 급한 일이 아니면 좀처럼 나를 부르시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가까운 시내에 가시는데도 나를 찾은 것이다.
백밀러로 바라 본 두 노인네가 애처러웠다. 칠십 노구에도 허리가 꼿꼿하고 장골인 아버지가, 철부지 늙은 아들에게 져야만 하는 것이 가여웠다.
그리고 그 아들 놈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못내 서글펐다.
다행인 것은, 딸만 둘이 내가, 나 같은 아들 놈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