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4월12일(수)■
(데살로니가전서 4장)
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묵상/살전 4:1-8)
◆ 하나님의 뜻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다.
'거룩함'
아주 간단한 이 권고 속에 신앙의 진수가 들어있다.
많은 성도가 신앙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음란'이다.
물론 성욕과 음란은 구별되어야 한다.
음란을 멀리한답시고 성욕 자체를 죄악시하면 안 된다. 과거의 수도사들은 성욕 자체를 죄악시함으로써 자기 몸을 지나치게 학대했다. 성욕을 잊으려고 더 큰 고통을 추구하거나 다른 중독에 빠졌다.
성욕은 식욕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욕구다.
음란과 성욕은 무슨 차이일까?
음란은 헬라어로 '포르네이아 πορνεία'라고 하는데, 여러 사람과 관계를 갖는 '매음'과 관련이 있다. 참고로 '포르네 πόρνη'는 창녀, '포르노스 πόρνος'는 남창이다.
배고픈 자가 밥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식욕이다. 그러나 음식을 빼앗거나 훔치려는 생각을 갖는 것이나,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음식을 차지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탐욕이다. 성욕은 전자요, 음란은 후자다.
오늘날은 음란과 돈이 연결되어 있어서 엄청나게 강한 미혹으로 다가온다. 형제 중의 하나가 광고물 중에 음란과 연결된 것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말도 못 하게 많았다. 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상품조차 성적(sexual)인 것을 연상시키는 로고, 카피 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오늘날 세상은 온통 음란한 분위기다.
좌로 돌려도 음란, 우로 돌려도 음란, 시선을 둘 데가 없을 정도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는 음란한 동영상이 범람한다. 어떤 때는 그냥 내 앞에 다가온다. 호기심으로 클릭하면 바로 빠져들 수 있다. 그러나 성도는 클릭 자체를 거절해야 한다.
우리가 클릭하는 순간, 음란의 영은 즉시 공격한다. 페인트 물이 튀기는 장소에서 내 옷이 깨끗하길 바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마귀는 별문제 없을 것이라고 속삭이며 다가오지만, 한번 클릭하기 시작하면 그는 점점 중독될 것이다. 나중에는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고, 더 나아가서는 즐기게 되고, 벗어나기를 바라지 않게 된다.
결국 그는 예배가 지루해지고, 신앙이 시들해지며, 찬송이 의미 없어진다. 신앙을 잃는다. 음란이 그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장로나 집사가 음탕한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하며 좋다고 하니 과연 성도들이 이런 세상에서 경건한 신앙생활이 가능할까?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다.
'거룩함'
거룩함이란 세속과 구별된 속성이다.
성서대사전에 의하면 거룩이란 히브리어 명사 '코데쉬', 형용사 '카도쉬', 헬라어 명사 '하기아스모스', 형용사 '하기오스'인데, 모두 분리, 차단을 의미한다(성서대사전).
즉 거룩함이란 오로지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것에 사용하는 단어다. 성경은 성막에 있는 모든 기구, 즉 재를 퍼내는 부삽 같은 지저분하고 하찮은 기구조차 거룩하다고 한다(출 40:9, 출 27:3).
거룩함이란 단순히 도덕적으로 순결한 것에 붙여지는 속성도 아니다. 거룩함이란 오로지 하나님께 속한 속성이다.
그것에 반해 음란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 이 둘을 병행할 수 없다. 모름지기 성도란 '거룩한 자'란 의미인데 음란은 성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거룩해지려면 먼저 우리의 신분에 대해 자각해야 한다.
아무 성도나 붙잡고 물어보면 성도의 신분을 줄줄이 열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진짜로 믿는 자는 지극히 드물다. 우리의 믿음이란 그런 신분을 믿는 것까지 포함해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매일 우리의 신분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저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심을 감사합니다. 저는 택하심을 받은 거룩한 성도입니다. 저는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주님의 일꾼입니다.
음란을 버려라.
솔로몬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만으로 만족할 것을 이렇게 비유했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잠 5:15,18)
6절에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고 한 것은 음란에 빠진 사람들이 남의 부인을 탐내거나 남의 남편을 유혹함으로써 결국 형제와 자매들에게 상처를 주는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그 상처받는 사람이 자매 된 자기 아내일 수도 있고, 형제 된 남의 아내 남편일 수도 있다. 바람난 사람들의 수많은 파멸은 우리가 충분히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오, 형제여,
이미 중독에 빠져있는가?
그것은 너무나 비참한 상태다. 이제 당신 안에는 평화가 없다. 그러나 차가운 지식은 남아서 여전히 강단에 서서 설교할 수도 있고, 남을 비판하는 일에는 뛰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기도하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찬양 소리는 모깃소리 같아질 것이다.
살고 싶으면 몸부림쳐야 한다.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고, 건져주실 것을 구하라. 가능하면 금식할 것을 권한다. 금식은 중독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밥을 먹지 않는 금식이 어렵다면, 며칠만이라도 모든 오락과 인터넷을 끊는 그런 금식이라도 해라. 그게 불가능하다면 교회 목사나 장로에게 도움 기도를 요청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7-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