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청년부에서 선교를 갔습니다.
C국 신장 우.루.무/치를 갔습니다.
낯선 곳을 비전트립 했습니다.
구역을 나눠 현지인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조별로 전_도했습니다.
한참을 다니다 보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조만 낙오됐습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나섰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리더십이 강했던 청년이 앞장섰습니다.
빠른 판단과 결정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해병대를 전역한 기호진 청년 덕분에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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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8세와 6세인데 정확히는 17개월 차이입니다.
비슷한 연령이라 엄청 싸워댑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집니다. 서로 양보를 안 합니다.
특히 동생이 형한테 들이댑니다. 꼭 염소 같습니다.
어느 날 첫째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나중에 엄마 아빠 죽으면 철없는 동생 내가 보살펴야 되지요?
아휴, 그래도 잘 보살펴줄게요.”
첫째는 첫째로서 자연스럽게 동생을 챙겨야 함을 알아갑니다.
신기하게 장남의 리더십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동생은 세월이 흘러도 형을 의지하는 것 같고요.
우애가 돈독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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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장남, 장녀입니다.
자연스레 장손이 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예쁨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친동생은 없어도 사촌동생은 여러 명입니다.
“형, 오빠”하며 잘 따랐습니다.
초등학생 때 이모네 집을 갔습니다.
버스를 잘못 타 엉뚱한 곳에 내렸습니다.
혼자 터미널에 우두커니 앉아있었습니다. 결국 날이 저물었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길 잃어버린 건 안중에 없고 동생들에게 줄 과자를 한아름 샀습니다.
크라운 산도, 초코파이, 카라멜, 사탕 등을 샀습니다.
길 잃은 것보다 동생에게 줄 선물에 정신이 팔린 것입니다.
나이가 44세인데 아직도 오빠를 잘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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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진짜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만 쫓으며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였습니다.
지금도 똑같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돈보다 무료급식과 교회사역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이랬더니 먹여주고 살려주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기 싫어서 더욱 경각심을 갖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무엇에 힘을 쏟아야 할지 분별하며 삽니다.
무료급식을 하면 할수록 내가 하는 게 아님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이끌어가 주었고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의 김성민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이 하나도 없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한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을 통솔하고 인솔하고 계획하고 설득하고 설교할 수 있는 성격이 못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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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 이용자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젊었을 때 SKY 학부와 석사까지 마친 분, 오랜 기간 목회했던 분, 시인으로 등단까지 했던 분, 의대생까지,
사회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을 했던 사람을 만납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절로 꼬리가 내려갑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됩니다.
내가 뭐라도 된 것인 냥 으스대지 않겠습니다.
어울리지 아니하게 우쭐거리며 뽐내지 않겠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준 것이지 스스로 한 게 아님을 명심하겠습니다.
머리에 잘 심어놓겠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며 살아가겠습니다.
알량한 자존심까지 내려놓겠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작은 리더십과 책임감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지만, 이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