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움츠러들어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얼음 위로 개울물이 차오르고, 버들강아지도 솜털을 터트리며 기지개 켠다.
봄은 우리 부부에게 바쁜 계절이다. 나물을 캐고 손질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귀촌한 지 오 년쯤 됐을 때 이웃에게 금낭화 나물을 먹어 보고 싶다고 했더니 몇몇 사람만 아는 군락지를 소개 받았다.
금낭화는 야산의 돌밭 틈 사이 유일하게 피어 있었다. 그 고운 분홍은 절대 촌스러울 수 없는 색이다. 금낭화를 본 손님들은 갈래머리 묶은 모양 같다고 했다. 듣고 보니 수줍은 소녀가 화사한 볼웃음을 머금은 듯하다.
성실하게 나물을 채취하는 남편과 달리 철없는 나는 나들이 온 사람마냥 금낭화 주변 나무에 핀 꽃을 찾으러 다닌다.
"양지바른 곳에는 히어리가 벌써 폈어요. 어머, 진달래도 피고 있네. 아직 화전놀이 준비도 안 했는데."
봄은 금방 가 버리기에 긴장도 해야 하고 즐기기도 해야 한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역할을 한다. 집취나물도 뜯고 지리산에 난다는 들메나무순도 꺾고 오가피순도 따야 하고, 숨차게 바빠진다. 나무에서 채취한 나물을 손질하는 것은 남편 몫이고, 땅에서 나는 것은 주로 내 몫이다.
우리 가족은 봄마다 화전놀이를 하고 홑잎나물밥과 아카시아꽃튀김을 먹는다. 예전에는 여행 중 산에서 조금 꺾은 진달래를 물병에 꽂아 와 집에서 화전을 구워 먹었지만, 귀촌한 뒤부터 산 아래로 곱게 내려온 진달래를 남편이 오며가며 한 아름 꺾어 온다. 그걸 손질해서 민박에 오는 손님들과 함께 마당에서 화전놀이를 한다.
먼저, 찹쌀가루에 끓는 물을 쳐가며 익반죽을 해서 동그랗게 빚는다. 납작하게 눌러 구운 뒤 진달래, 유채, 광대나물, 앵두꽃 등 먹을 수 있는 꽃을 그 위에 올리면 마치 수채화를 그려 놓은 듯하다. 그림에 재주 없는 내가 그릇에 그려 내는 최고로 화려한 작품이다.
화살나무에 홑잎나물이 뾰족 돋아나기 시작하면 훑어서 초록 밥도 짓는다. 우리 가족은 나물 본연의 향과 은은한 단맛을 즐기지만 손님에겐 양념 간장을 곁들여 낸다. 아이가 홑잎나물을 처음 먹은 게 여섯 살쯤인데 어찌나 달게 먹던지, 해마다 봄이 되면 답을 알고도 아이에게 묻는다. "홑잎나물 반찬해 줄까?" 그러면 아이는 대답한다. "홑잎나물은 밥이지." 그렇게 셋이 호호거리며 봄을 가득 먹는다.
봄나기의 마지막은 아카시아꽃튀김이다. 남편이 집 앞에 핀 것을 바구니에 한 아름 따 오면 그중에서도 활짝 핀 것을 고른 뒤, 손질한 꽃에 찹쌀가루와 밀가루를 입혀서 튀긴다. 고소하고 은은한 꽃향기가 입안 가득 머무는 우리의 마지막 봄 잔치다.
도시에 살 때도 여행 다니는 틈틈이 재료를 구해 봄을 즐겼지만 지금만큼은 못했다. 이곳에서의 단순한 일상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명백히 깨닫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일을 위해 살아간다지만 우리는 오늘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순간이 모여야 내일로 다가갈 수 있으니까. 유한한 삶이기에 내년 봄은 기약하지 않는다. 아쉽고도 찬란한 오늘의 봄을 마음껏 누리며 보낼 것이다.
김랑 | 민박집 주인, 작가
왜 진작 이 드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_ 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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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목자 님 !
고운 멘트 감사합니다 ~
새봄과 함께
편안하고 여유로운
힐링의 나날들 보내시고
늘 평강하시길
소망합니다
~^^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고운 멘트 감사합니다 ~
편안하고 여유로운
힐링의 나날들 보내시고
늘 평강하시길
소망합니다
~^^
좋은글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목자 님 !
고우신 멘트주셔서
감사합니다 ~
일기불순한 환절기
늘 감기 유의하셔서
강건하게 지내시길
소망합니다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감동방에 좋은 글 고맙습니다
즐거운 불 금 입니다
행복하게 보내시고 주말 휴일 알차게 보내세요
월요일 반갑게 뵐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