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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5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우리의 입과 눈, 손과 발 등 지체를 제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틈만 나면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일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때로는 절망을 하고 낙심도 합니다.
주여, 이 종을 불쌍히 여기사 주의 보혈로 덮으소서.
나의 지체들만 아니라 마음까지 덮으셔서 오직 주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께 붙어서 주로부터 나오는 모든 은혜를 먹고 살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오늘도 주님과 함께 죽고, 또한 나의 몸 역시 불구자가 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직 주의 생각과 주의 걸음이 나의 것 되게 하소서.
주의 영으로 나를 채우사 주의 영으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약 3:1-18
제목 : 찬송과 저주가 나오던 입이 오직 주의 은혜만 구하는 가난한 입이 되게 하소서.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 나의 묵상
샘은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동시에 내지 못한다.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와 감람 열매를 동시에 맺지 못한다.
만약 이런 나무가 있다면 그 나무를 무화과나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감람나무라고 불러야 할까?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지 포도나 석류를 맺지 못한다.
그런데 유독 사람은 한 입에서 선한 말도 하고 악한 말도 한다. 한 입으로 칭찬도 하고 원망과 불평도 한다.
같은 손으로 남을 돕기도 하고 남을 해치기도 한다.
같은 발을 가지고 때로는 거룩한 곳에 가기도 하고 때로는 음란한 곳을 향해 가기도 한다.
한 심령으로 어떤 때는 주를 찬양하며 그 은혜에 깊이 침잠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속이 시끄러울 정도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남을 미워하며 저주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피조물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에 의해서 나고 자라고 열매 맺고 또한 썩어져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만 맺으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할지라도 그 모든 피조물 역시 썩어지고 사라지는 고통 가운데 존재한다.
생각 없이 나고 자라고 열매 맺는 식물이나 동물이라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다는 말이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 곧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아담의 범죄에 기인한다.
즉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고 그 땅에서 자라는 식물이나 모든 생명체들이 죽음이라는 고통, 즉 허무한 데 굴복하도록 되어졌다.
(창 3:17-18)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래서 그 모든 피조물들도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하여 고대하는 것이 있는데,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지으실 때는 보시기에 정말 좋은 것, 선한 것으로 지으셨다.
물론 피조물이 직접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그들은 죽음이라는 고통가운데 들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 영광의 자유, 곧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백성이 될 때에 온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데서 해방되어 그 자유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 역시 아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까지는 고통과 탄식 가운데 살게 되어 있다.
그것은 아직 구속받지 못한 몸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구속받지 못한 우리의 몸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구속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롬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 안에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영적 상태에 따라서 선한 일을 하기도 하고 악한 일을 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 안에는 아담이 지었던 죄의 본성인 옛 사람이 있다.
그 옛 사람이 죄의 세력의 지배를 받아 우리 몸으로 하여금 계속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죄의 세력을 모르기 때문에 전혀 고민하거나 갈등 없이 죄를 먹고 마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은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을 모시는 선한 양심의 좌소로부터 거룩한 고통이 발동한다.
그래서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으로 인하여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주를 사모하며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고 나아가지만, 끊임없이 공격하는 죄의 세력은 아직 구속받지 못한 우리의 몸을 공격하여 넘어지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영이 날마다 새 영과 새 마음이 되어 주의 영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주의 영이 우리를 온전히 장악하여 옛 사람은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고, 죄의 몸이자 죽을 몸도 이제는 죄에 종노릇하지 않고 오히려 주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의의 도구, 의의 병기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작은 혀가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도 있듯, 말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말은 혀로 인하여 나오는 것이며, 이 혀는 큰 배를 제어하는 조그만 키와 같이 우리 사람을 이끄는 키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혀의 움직임 역시 사람의 속에 있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그 마음은 더 중요한 영으로부터 발현된다.
따라서 나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가는 너무도 중요하다.
날마다 내 영을 주의 보혈로 씻어 내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만들고, 그 자리에 주의 영으로 채우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죄의 세력에 지배받는 옛 사람은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므로 주님의 죽으심에 함께 연합하는 자 되어야 한다.
죄의 몸, 죽을 몸은 육신의 쾌락을 더 즐기고자 하는 지체이므로 죄의 세력에 붙잡히지 못하도록 진리 안에서 불구로 살아가야 한다.
사실은 몸의 상태가 온전하지만, 주님께서 왕의 명령으로 불구임을 선포하셨으므로 나는 이제 예전같이 살 수 없는 불구자임을 깨닫고 오직 주의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넘어질 수 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주님의 보혈의 능력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넘어지고 저주가 나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자리에 엎드려 그 죄를 토설 할 때 주님은 사죄의 은총으로 용서하시고 나를 다시 주의 품으로 안아 주신다.
나는 오늘 야고보서 본문에서 말하는 한 입에서 나오는 찬송과 저주를 일삼는 자였다.
무화과나무인지 감람나무인지 알 듯 모를 듯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는 그런 회색분자와 같은 자였다.
교회에 가면 찬송하고, 세상에서는 아닌 듯 하면서도 내 안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으며, 하나님도 속이고 나도 속이고 사람도 속이는 그런 자였던 것이다.
찬송을 할 때는 가장 거룩한 자인 것처럼 보였으나, 그 속에서는 쓴 물이 나오는 자였기에 성령께서 함께 하실 수 없는 자였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할 때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시는데,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아도 그 속에서는 쓴 물이 나오고 있기에 성령이 함께 하실 수 없는 자였던 것이다.
(요 3: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나는 목사로써 이 작은 세 치 혀를 가지고 성도들에게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기 보다 나의 생각과 철학을 전하고 그 말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와 수단으로 이용하는 자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유하고 온전히 전하지 못했던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나는 얼마나 많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포장되어 평가되었는지 잘 안다.
그것은 내가 먼저 하나님을 속이고, 나를 속였으며 또한 주변 사람들을 속였다는 방증이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폐암이나 교통사고 그리고 여러 가지 질병 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수시로 나에게 보여주시고 심판하셨음에도 나는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죄의 자리에 앉아 있었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심판하셨고 나의 눈을 빼시고, 손과 다리를 끊어 불구로 만드셨다.
물론 여전히 몸은 성하지만, 이제는 진리 안에서 나는 불구자이다.
그래서 옛날처럼 살 수 없음을 마음으로 깨닫고 입으로 시인하여 주님만 바라보며 살기 원한다.
여전히 넘어질 때도 있으나 이제는 깨닫는 순간 그 자리에 꿇어 엎드린다.
그리고 내 죄를 토설하며 주의 은혜만을 구할 때 주님은 기쁨으로 용납해 주신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내가 나를 용납할 수 없으나 주님은 그런 나를 용납하시고 당신의 생명을 내게 선물로 주셨다.
천하에 가장 귀한 아들의 생명을 받았는데 어떻게 다시 옛날처럼 살 수 있단 말인가?
(벧전 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범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나는 염치가 없는 뻔뻔한 자이다.
그래서 그 염치없음과 뻔뻔함으로 오직 주의 은혜를 사모하여 아버지 품으로 나아간다.
이를 가리켜 파레시아 곧 담대함이라 한다.
(10-12)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쏟아져 나오고 단 물과 쓴 물을 뱉어내는 어리숙한 샘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공로나 공적이 아니라 주의 은혜를 구하는 사모함이다.
이 아침에 그 은혜의 강물로 풍덩 뛰어들어 한량없는 주의 은혜 속에서 헤엄치기를 원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입술은 주를 닮은 듯하나, 나의 마음은 너무나 추하여 주님을 도구로 이용하고, 말씀을 이용하며 살았던 자입니다.
그런 나를 주님은 용납하시고 당신의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아들의 생명을 가진 자는 아들의 권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을 압니다.
이제는 3번 생명인 아담의 생명이 아니라, 1번 생명인 아들의 생명으로 살게 하시고 그 권세도 나타내 주옵소서.
여전히 몸의 연약함이 있기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위하여 영적 투혼이 있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소서.
주님이 계시기에 오늘도 다시 한 번 힘을 냅니다.
주님 때문에 살 소망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한 입에서 찬송만 나오게 하소서.
한 입으로 선한 말을 하여 사람들을 세우며 섬기는 자 되게 하소서.
무엇보다 이 한 입으로 주의 복음을 전하여 아들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날마다 나타내 보이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질 때 다시금 주를 힘입어 담대하게 일어나 주의 은혜를 구하며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는 자로 서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