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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0.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1. 정치와 사회
2. 생산과 경제
3. 외교와 군사
4. 결 론
0.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결론 부터 말하자면 환단고기는 분명하게 위서입니다, 최근 증산도 교주님에 의해 자칭 완역본이 출간되었다고는 하나 본 디 위서의 정의는 서책에서 발간되었다고 주장하는 시기에 실제로 발간되었는가임을 볼때 삼성기 상, 하편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등 5개의 역사서를 엮어 출간되었다고는 하나 그 내용의 조잡성과 오롯하게 홀로 주장하는것 외에는 달리 입증된 부분이 전무한 점 등 그 가치는 위서 이상 이하도 아닌것이지요,
본 글에서는 앞으로 몇 부분으로 나누어 환단고기의 내용에 대한 비판을 다룰것인데, 추종자들은 현대의 사학계를 친일로 몰아가나 실제 저자인 이유립이야말로 대표적인 친일파였다는 이율배반적인 측면 등의 저자의 문제점, 여러 부분에서 물밀듯이 터저나오는 설정의 조잡성, 허구적인 책의 계승과 입증 등의 기존에 수없이 밝혀진 문제점 중에서 설정의 조잡성을 그 중에서도 환국 문명 그 자체의 문제점을 다루려 합니다.
엘빈 토플러를 가져올것도 없이 문명이라는 것은 물결처럼 흐르기 마련입니다. 주변 지역과 사회, 경제, 문화, 공학 등 족히 수 만년이상의 격차를 벌려놓은 이후에 후술하겠지만 가히 현대에 비견될만한 문명을 이룩한 환국 문명이 그 것들을 독점할수 있을까요?, 멸망한다고 그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수 있을까요?
왜 프랑스 혁명 당시 전 유럽은 프랑스를 향해 총칼을 빼들었을까요? 어째서 자스민 혁명이 세계를 격동시키고 있을까요?
조금 더 올라가 메소포타미아는 무슨 이유에서 청동기를 독점하지 못했을까요? 왜 중국의 화약이 서양에 전래되었을까요?
학계가 환단고기와 같은 유사역사학에 무관심 한것은 그 들이 무지하거나 감춰야 할 비밀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1. 정치와 사회
환국 문명은 연방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한것은 그 들이 택한 연방제는 다분히 서구적인 관점의 정치제도이지만 환단고기에서 언급되는 몇 안되는 등장은 동양의 정치제도를 답습한다는 것이지요,
연방이라는 것은 사전적인 의미를 빌리자면 국가의 권력이 중앙 정부와 주에 동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정치 형태인 연방제를 택한 2개 이상의 주권이 결합하여 국제법상 단일적인 인격을 가지는 복합 형태의 국가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외교권과 군사권등의 대외 주권을 제외한 권한을 행사하는 소국들이 모여 이루어진 국가라는 것이지만 환단고기를 보면 수밀이 국에서 조공을 바치는 기록이 몇차례 나옵니다. 즉 환단고기의 그것은 연방이라기 보다는 사대주의에 입각한 국가의 관계에 가까운 묘사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 실 정치와 사회적인 측면에서 볼때 사실 환단고기는 정말 끔찍한 수준입니다. 연방제 였고 국가가 무엇이 있고 그 외에 몇차례 조공 있었다 정도 외에 그 어떠한 묘사도 나와있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게 정말 몇권의 사서를 엮었다는 사서인것이 맞나 싶은 수준입니다.
그러나 언급되어진 내용만으로도 그 문명이 쌓아올린 고도의 측면을 엿볼수가 있습니다만 찾아보면 볼수록 스스로를 잡는 시쳇말로 팀킬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자 연방이라는 것을 좀 더 살펴보자면 역사와 행정학 부분을 개괄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양은 19세기 절대왕권의 시대를 거쳐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맞아 입법국가로 진화하게 됩니다. 여기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태동하게 되며 국가는 작은 정부 그러니까 야경국가를 지향하게 됩니다.
그 러나 빈부격차와 대 공황등 시장실패를 경험하며 20세기 행정국가로 변모하여 복지국가와 케인즈 주의가 태동하며 큰 정부 즉 국가 주의와 개입주의가 성행하게 되는데 복지병과 재정적자, 오일쇼크와 스태그 플레이션 즉 불황속의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복지 해체와 시장주의를 따라가게 되어 다시 작은 저부와 신 자유주의 시민사회로 대표되는 공동체주의 즉 시민사회를 강조하게 되는 행정의 경영화와 민영화, 기능의 민간 이양등을 따르는 뉴거버넌스로 이행되게 되지요,
덧붙이자면 1980년대 행정 환경 변화는 다분히 세계화 즉 국가간 상호의존성 심화와 정보사회 , 포스트 모더니즘을 따라 탈집중 탈 집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데 국가와 그 들이 속한 그 들에 의한 그 들의 지방 사이에 분명하게 선을 그을수 있는 서구 문화의 바탕인 가치 상대주의, 평등주의, 보편성, 개인주의와 더불어 수없는 실패와 그 에 따른 해답을 찾으려는 행정학의 결과물 위에서 이러한 지방 분권적인 연방제가 성립할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동양의 주 라는 개념은 비록 광역 행정 구역을 번역하는 단어로 사용되며 행정 구역을 지칭하는 단어인것은 같으나 연방제에서 다루는 그 것과는 분명하게 다릅니다.
주라는 것은 서양의 연방제의 그 것과 다르게 다분히 중앙 집권적인 개념입니다. 같은 문화권에서 주라는 개념을 시행한 중국과 우리 그리고 일본의 그것은 시작만 조금씩 다르지 그 결과물은 대동 소이합니다.
중국의 경우는 사서삼경에 따르면 하나라까지 올라간다는데 근래에 갑 골문이 한국에서 장난감으로 쓰이다 발견되는 큰 사고를 친 은나라와 다르게 아직까지 이렇다할 현실화가 이루어지지 못한탓에 주나라 당시 2,500개 남짓한 마을을 주라고 지칭한것이 그 시초로 여겨지며 사실상 동양의 주라는 개념은 여기서 출발한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반 면 한반도에서 주라는 것은 신라에서 처음 시작했는데, 비잔틴제국의 군관구제와 마찬가지로 지방군단에 의하여 통치되는 행정구역이 그 시작이었던것으로 보입니다. 이후에 시간이 지나며 별개였던 군,현 등을 포괄하여 다스리는 광역 행정 개념이 되었으며 조선시대까지 유지되었다가 갑오개혁으로 사라지게되었지요,
이러한 주의 개념은 다분히 동양적인 비 서구주의적인 문화 즉 전체주의, 일원주의 및 위계주의, 운명주의적인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비약하자면 국가와 운명 공동체 적인 그러한 조직이라고 할수가 있습니다.
그 러니까 쉽게 정리하자면 환국 문명이라는 것은 아시아에 있으나 서구적인 문화 위에 태동한 국가라 할수가 있겠습니다. 여기서 문화라는 것은 사회 기저에 깔린 개념을 일컫는 말입니다. 즉 환국 문명의 문화는 그 들의 정치 체제를 볼때 기존의 서양 철학과 유사한 다분히 서구적인 측면에서 발전한 것이라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만 여기서 바로 이율배반적인 사태가 벌어집니다.
환 단고기의 기록을 보면 서기전1660년에 수밀이국과 양운국에서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서 조공이라는 것은 제후가 천자에게 바치는 예식입니다. 조회하며 참례한다는 조와 공물을 의미하는 공 즉 천자께 예를 다함에 있어 부끄러움이 없이 공물을 바친다는것이 조공입니다.
다 시 이러한 조공은 큰나라를 섬기고 이웃나라와 교류한다는 사대교린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연방이라는 것은 나와 너의 관계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기초로 하여 대외주권을 제외한 그 모든 주권을 행사하는 한 국가내의 행정 구역을 이야기 합니다.
쉽게 말해 환국 문명에서 수밀이국이 조공을 보내는것은 경기도지사가 대통령에게 외교 사절을 보내는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른 예시를 드리자면 부산광역시장이 한국에 FTA 사절단과 함께 세금을 상납하기 위한 대대적인 외교사절단을 파견했습니다.
이해가 잘 안되시면 다른 부분에서 볼까요?
플로리다 주지사가 자연재해에 대한 지원금을 요청하러 미국에 대한 외교사절단을 파견했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되는 걸까요?
앞서 언급했듯 연방이라는 것은 지극히 비 서구적인 문명과 대치되는 관점에서 출발하여 수많은 세월을 거쳐 연구되고 또 시도되고 실패해온 정치 행정학적 결과물입니다.
그 과정에서 단순하게 정치 행정학적인 측면만이 변혁되는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생산력의 수직적인 급증, 사회 혁명, 시민혁명등 국가의 급격한 변동이 함께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이후에 다루게 될 여러 부분과 병행되어 발전하는게 바로 이러한 정치적인 제도와 개념들이며 그러한 변화에 따른 연구와 대처는 짧으면 몇년 길면 수십년 이상의 기간을 요구하는데 그에 따른 파급력은 국가 하나에 얽매이거나 국가 하나와 운명을 같이 하는것은 불가능합니다.
환국 문명은 홀로 연방들과 오롯히 시간을 보낸것은 아닙니다, 이후에 신시 배달국을 거치며 타 문명과 수없이 전쟁을 벌이고 대치했다는 것은 환단고기 스스로가 언급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다분히 시민 주의적인 연방의 개념 아래 절대 왕권이 유지되었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설명을 할수 있을까요?
역 시나 앞서 언급했지만 연방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중앙 집권적인 주와는 다른 개념에서 시민 혁명과 같은 자의식의 성장과 그 궤를 가치하지만 사서라는 환단고기에서는 시민 운동을 비릇하여 연방의 성립과 같은 국가의 매우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단 한 줄의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민주의적이며 비 왕권적인 기틀위의 국가가 가지는 군주제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정치적 위험성은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에서 우리는 익히 보았습니다.
군주제라는 정치 체제를 고수하던 유럽은 사회 계약설과 인민 주권설로 대표되는 급격한 시민들의 의식 성장에 대하여 심각한 위기를 느꼈고, 그에 따른 대불 전쟁이 대대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산업 혁명으로 급격히 늘어난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스스로의 권리를 갈망했고 사회주의라는 이상에 심취한 이 들이 그 앞에서 달려나가 러시아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서 구적인 문화가 사방 수만리에서 만연하고 있던 당시에 비 서구적인 문화가 태동하고 번창하며 시민들의 의식 성장이 팽배했던 세계에서 역설적으로 시민들이 억압되고 통치되는 기반을 그 스스로가 갈망했다는 것은 참으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 입니다.
쟈스민 혁명당시 그 들이 원한것은 독재자가 아닌 시민들의 정부입니다. 그렇기에 아랍이 세계가 그 들의 질서에 던지는 그 들의 욕구에 여러 가지의 의미로 크게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점은 이러한 고도의 사회 정치적인 체제를 갖추었다고 주장하는 환국 문명이지만 그 들의 통치시기 그 들의 통치 지역에서 발견되는 생활 및 기타 유적지 들은 철저하게 원시 부족 라는 것입니다.
참 으로 이율 배반적인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전국의 해당 문명의 모든 이 들이 갈망하여 이루어진 정치 문화 사회 체제이나 그 들의 삶은 철저하게 기존 학계에서 입증해낸 석기 시대 그 이상 이하의 문화와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지요,
과연 누가 옳은 것일까요? 흔히들 비유하는 민초들의 삶 그 자체가 발견된 현실 아니면 너댓권의 사서들을 모아 재 출간한 자칭 사서?
후술한 산업과 경제적인 측면과 함께 고도의 발전을 이룬 문명에서 그 기반이 될 시민들의 현실은 원시 부족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떠나 비록 중국의 황하 이남은 꿈도 꾸지 못했다지만 현재에 비견될만한 정치와 사회 체제를 갖추었건만 그에 수반되는 수 많은 기록들은 존재하지도 않고 있으며 그 들의 사상은 그 들외에는 전파되지 않는등 환국의 문명은 세계에 대하여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습니다.
하다못해 북아메리카의 원주민과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간에도 종종 교류는 있었습니다. 비록 거리와 더불어 가치가 없었기에 인접한 이들 외에는 보지도 않았지만 서로간에 문명의 격차 역시 크지 않았습니다.
아 프리카 역시 동 아프리카와 북 아프리카 지역은 카르타고와 로마와 교역을 행하였고 비록 일방적인 방향이었지만 문명의 교류도 이어졌습니다, 로마의 진출은 유럽 지역에 문명의 개화를 비록 그 과정이나 결과야 어쨌든 가져온게 사실이며 고대 지중해는 말해야 입아픈 수준입니다. 청동기 문명은 철기 문명의 유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고 철기 문명의 정착을 가져왔습니다. 페니키아와 같은 고대 국가들의 해상 진출로 문명의 확산과 정착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껏해야 수십년의 문명적인 격차를 가지고 있는 이 들과는 다르게 이웃들과 수만년의 문명적 격차를 가지고 있는 환국 문명은 그 어떠한 자취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연방국과의 교류는 조공 몇차례가 기록의 전부이며, 수없이 전쟁을 치루면서도 이웃국과의 문명적인 관계성은 전무합니다.
다시 한번 사례를 들지만 세계가 멸망한다고 그 순간 모든 문명이 리셋될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특 히나 정치와 사회라는 것은 단순한 개념이 아닙니다, 수없는 연구와 시도, 실패를 거치며 차근차근 쌓아올려가는 것이 바로 정치와 사회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동양 철학과 같은 거대한 저변이 존재하기에 존속할수 있는 것이 바로 정치와 사회이며 이러한 것은 어느 문명이 스스로 고립시킬수 없는 비 소유적 독점적인 가치의 재화입니다.
그렇기에 앞서도 수차 언급했지만 현대의 그것에 비견될 만한 사회와 정치 구조 및 체제를 견지한 환국 문명이 어느 순간 스스로 그 모든 자취를 끌어안고 사라진다는 것은 참으로 납득할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이 멸망한다고 전 세계의 일본과 관련된 모든 물질적이며 정신적인 재화들이 하다못해 S.O.D Tokyo Hot 개인들의 관념마저 한순간에 일본과 운명을 같이하여 사라질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환단고기를 보며 느낄수 밖에 없는 큰 물음은 현대 시민들 이상으로 자의식이 높을수 밖에 없는 사회적 바탕위에서 어째서 절대왕권이 성립하냐는 것이지만 역시나 환단고기에서는 그러한 문제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 들의 국가적인 성립 배경과 바탕등 설화적인 부분으로만 얼버무릴 단계가 한참 지난 의식 체계를 갖추고 있을수 밖에 없음에도 그 어떠한 정치 사회 경제적인 측면의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습니다.
즉 자칭 사서라고 주장은 하지만 당시 문명 수준으로서 가장 사서가 담을수 밖에 없고 담아야 되는 기초적인 내용마저 생략된것은 다분히 저자의 의도성을 엿볼수 있는 부분이라고 보입니다.
출처: 오늘의유머
원저작자: Lemonade
출처링크: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072799&s_no=1072799&kind=humorbest_sort&page=6&o_table=history
첫댓글 수밀이국이 조공 보냈다는 거 하나로 말 길게 그리고 쓸데없이 복잡하고 여러 역사적 사실과 단어 들이들면서 위서라고 하는데 공감이 잘 안됩니다. 그리고 현재 가치 판단으로 과거구조를 재단하는 방식도 공감이 안됩니다.
위서니 진서니 하는 구분은 그 내용이 참인가 거짓인가 하는 것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컨데 내용중 상당부분이 거짓이거나 과장되어 있는 일본서기나 성경의 경우 위서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위서와 진서의 구분은 담겨있는 내용이 참인가 거짓인가 보다는 알려진 저작자와 저작연대가 올바른지 아니면 고의적으로 속이고 있는지에 관한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서임에도 내용이 참일수도, 진서임에도 소설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위서의 경우에는 역사연구를 하는데 있어서의 도구, 즉 사료로써의 가치는 없다고 봐야하죠.)
@아쿠마 환단고기에 대한 위서 진서 논란은 의견이 분분합니다.
물론 강단사학의 분류에 의해 위서라고 얘기 되지만..
그러나 진서라고 알려진 일본서기 내용 중 신공황후의 신라정벌은 엄연한 허구 기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허구의 기록이 임나일본부설로 연결되면서 임진왜란이나 한일합방의 논리적 정당성의 근거로 이용 되었습니다.
강단사학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이 논리적으로 혁파 되었다지만 아직도 일본학생들은 임나일본부설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위서라고 알려진 환단고기 내용중 "5성취루" 현상은 천문학자인 서울대 박창범교수와
라대일 박사등에 의해 과학적으로 증명 되었습니다.
@아쿠마 여기서 논점은 강단사학이 위서라고 다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겁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상당부분 거짓이거나 과장되어 있는 일본서기나 성경의 경우 진서로 구분되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죠..
환단고기 위서 논란에 대한 반박글 url 입니다.
http://blog.daum.net/jsdvalley/16575927
위 글이 다 맞는 글이 아닐지라도 생각해 볼수 있는 논점을 제시한다고 생각입니다.
@사운드 말씀드린데로, 위서진서는 사서의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가지고 판단하는게 아닙니다. 따라서 위서논란에 대한 반박은 반박이 되지못합니다. 또한 교과서는 사서가 아닙니다. 따라서 위서다 진서다 하는 구분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결론지어진 이유는 그 내용때문이 아니라 저자와 전수과정에 있어서의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에 '갑'이라는 인물이 기록했다는 문서가 알고보니 500년이나 지난 시점에 쓰였고, '갑'이라는 인물이 실존인물인지도 확실하지 않다면 그 문서는 위서인것이죠. 그 문서에 쓰인 모든 사실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따라서 5성취루현상은 위서논쟁에 대한 답이
@사운드 되기 힘듭니다. 위서라는 개념자체가 내용의 참/거짓을 가지고 따지는 게 아니니까요. 일본서기나 성서가 진서인 이유는 그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탄소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고고학적 유적으로 고대의 기원을 알 수 있거나, 그 기록이 쓰였다고 전승되는 기록연대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위키백과의 위서 항목을 첨부합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C%84%EC%84%9C_%28%EB%AC%B8%ED%97%8C%ED%95%99%29
@아쿠마 말씀하신 부분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입니다. 다만 진서 라고 해서 참이라고만 할수 없는 맹점이 있다는 부분은 공감하시리라 봅니다. 다만 환단고기의 경우 중국사서에도 기록이 없는 그 이전의 고대사의 기록일수도 있기에 가능성과 시간을 두고서라도 꾸준히 연구해볼 필요성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오성취루 현상이 천문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처럼 아주 허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면.. 당장 역사다 아니다를 떠나서.. 어떤 가능성을 막지 말자라는 뜻으로 하는 얘기입니다.
출처가 '오유'인것을 감안하더라도 내용 자체가 너무 심한 비약과 역사 개념의 몰이해로 점철 되어있네요.
물론 환단고기에 저자가 불명확한 책들이 몇 권 엮여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범장이나, 이맥, 이암 등은 확실한 생몰연대가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책의 내용이 모두 사실로만 기술되었다고는 할 수가 없겠지만
이는 현존하는 모든 사서가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환단고기의 문제만이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위글의 필자가 어떤식의 공부를 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대의 문제를 현대식 행정학에 빗대 뭐가 맞고 틀리다 라고 하는 것은
개념에 대한 큰 오류가 아닐까요?
"엘빈 토플러를 가져올것도 없이 문명이라는 것은 물결처럼 흐르기 마련"이라는 문구를 가져오면서도
초기 씨족>부족>국가 형태로 가면서 이루어진것을 서구역사에서 정의한 행정학에 빗댄것은 말 그대로 비약이죠.
위와 같은 흐름이 있었기에 그런 흐름을 나름대로 추정하여 정의한 것이 행정학의 역사겠죠.
우리의 어느 시대에는 서양의 어느 시대에 나왔던 행정구획과 비슷하니 이 때의 서양보다 뒤다??
이건 너무 유치한 반박이라 할 수 있겠네요.
조공의 뜻에 대해서도 그렇네요.
한자의 정의는 한나라 시대부터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한 것인데..
바칠 조라서 사대의 의미로 조공한 거라니..ㅉ
@타임로드와타디스 그렇다면 조선 사신을 부러워 한 공자의 6세손 공빈은 뭐가 되는 건가요?
그가 조선 사신을 대국 사람으로서 대인의 풍모가 있다라고 표현한 것은 또 뭐고요?ㅎ
역사는 관점의 학문이자 종합학문입니다.
단순히 어느 한 쪽의 말이 옳다고 할 수는 없죠.
또한 역사는 대게 추정이 지배하기 때문에 일단 가설을 놓고 그 근거를 찾는데 일생을 바치기도 하죠.
단지 반대를 위한 반대보다는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네요.
물론 화자의 의도나 사상은 걸러가면서 말이지요.
(한편으로 화자의 생몰연대를 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사상이나 객관성이 얼마나 보장되었느냐 그런 것 때문은 아닐까요?^^)
저는 역사학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과학철학이나 학문적방법론등을 공부했기 때문에, 학문에서 통용되는 타당한 방법론에 대해서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출처가 오유인 것과 한열사 것은, 아니면 일반블로그인 것들은 모두 아마추어적 입장이라는데서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무슨 학술지나 학술게시판이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 타임로드와타디스님의 반박이 궁금합니다. 단순히 "현재 현대역사학계에서 통용되는 방법론을 옳다고만 볼 수 있느냐" 말고 구체적으로 왜 그게 틀렸는지, 더 나은 대안이 무엇이고 왜 그것이 더 나은 대안인지 알 수있으면 좋겠네요.
@아쿠마 글쎄요.
현재 한국사학이 잘못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서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네요.
대체로 우리나라 사학은
초기 국가의 비정으로 부터 사료의 오독에 이르기 까지
이루 말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오류를 가지고 있어서
유물이 나와도 그것이 정확히 언제의 어느 왕조의 것인지도 잘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거기에 이 땅에 옛 삼국이 있었다는 한번 잘못된 비정은
그에 맞지 않는 유물들이 튀어나오면 다시 덮거나 연대를 끌어 맞추느라
현장에선 여간 애를 먹는게 아니고,
급기야는 중국의 고사료들도 인정을 안해버리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도 비일비재합니다.
@타임로드와타디스 심지어는 초기에 잘못된 비정을 바꾸지 못해서
이제는 중국에 있던 동이와 한반도의 동이는 다르다는 이상한 학설까지 주장하는 실정입니다.
물론 현재 그 땅들이 남의 나라 땅이다 보니 여러가지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학술적인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하고 주장해야 하는데..
우리학계는 그렇지가 못하죠.
대체로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러하지만
해방이후 이 땅(남한)에 세워진 나라에 대한 정통성을 주장하다보니
삼국도 여기에 끌어 맞출 수 밖에 없고...ㅎ
이건 주장을 하면 할 수록 중국과 일본의 주장만 거들어 주는 웃기는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게 강단 사학의 맹점들이지요.
@타임로드와타디스 님이 위에 올리신 환단고기 위서 논쟁도 그 맥락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솔직히 그 책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음도 그렇고 의미도 그렇고요.
그나마 고임승국 교수께서 해설한 책이 좀 양심적이랄까요??
본인은 잘 모르겠으니 후학들이 좀더 연구해 달라던가하는 문구로 어느정도 이것을 인정했으니까요.
그런 겁니다.
위에 글을 올린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학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감히 말하건데 그 책 제대로 본적 없을 겁니다. 아마,
다른 사료도 마찬가지고요.
제대로 읽었다면 저런 어처구니 없는말 못하죠.
@타임로드와타디스 기본적으로 사료는 그 해석의 관점에 따라서도 천차만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그 어떤 사료던지 그냥 일반적인 구술로 쓰인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독음법은 말할 필요도 없죠)
정론 직필이요??
웃기는 소리지요.
앞의 왕조를 뒤엎고 새로 세운 나라의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한 책에
정론직필이 가당키나 하는 말일까요?
그걸 다 거르고 걸러서 봐야하는 게 사료입니다.
그럼 유물은 정직하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료상 증명을 할 수 없다면 그건 위서 만큼이나 진위논쟁에 휩싸이기 쉽기 때문이죠.
쉬운 예로 그건 한사군 유물 논쟁을 보아도 알 수 있죠?
@타임로드와타디스
너무 많은 부분에서 문제를 얘기하다보니 얘기가 점점 산으로 가네요.
얼마전 이 게시판에서 있었던 논쟁 중
아나사마님과의 논쟁도 그런 맥락 중 하나 입니다.
아나사마님의 주장처럼 예로부터 우리의 소리값이나 한자 정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료를 오독해서 왜곡의 빌미를 만들리가 없죠.
그 분 주장 중 제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중국도 인정하는 한자 소리값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급기야 우리나라가 변방이라 역사가 조용하다보니
소리가 변하지 않았다는 주장까지 한겁니다.
현재기준으로 당시 것이 이해가 안된다고 현대의 잣대로 모든 걸 재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우를 범하는 행동이 아닐까요
위에 써 놓은 것 다시 보니.. 성토만 있을 뿐 뭐 하나 제시한 것이 없네요.^^
여기서 환단고기의 어떤 문구를 들어 설명하면
또 환빠니 뭐니 하는 소리들을 할게 뻔하니까 다른 중국사료로 한가지 예시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의 강역 비정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일제가 얼마나 패배주의를 심어놓았는지 단적으로 보여드리지요.
얼마전 시진핑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최치원의 범해泛f海라는 시를 읊어서
국내 학자들이니 신문방송등에서 그를 추켜세우고 난리가 났었는데요.
그게 정말 각종 매체에서 찬사를 보낸 것처럼 우리를 대우해주느라 그런 것인지 한번 볼까요?
소위 범해泛f海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바다에 (배를) 띄운다'라고 알고 있죠.
그 이유는 수서나 당서 등에
'..泛海趨平壤城'이라는 문구 때문에 나온 것인데요.
이 문구대로 본다면 泛海는 배를 띄운다는 말 같죠.
하지만 이 문구의 완전한 구절은
《隋書》에 나온 開皇十八年伐高麗, 以一軍自東萊泛海趨平壤城입니다.
자, 이 문구 하나로 우리의 당시 역사 강역을 알수 있는데요.
위 문구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겠지만
개황은 수문제의 연호 입니다.
그런데 수 문제가 언제 동래(부산)에 왔었죠?
그리고 평양성을 치는데 동래에서 배를 띄워 거슬러 올라갔다고..ㅎ
이건 뭐...ㅎ
지금 기준으론 하나도 이해가 안되죠.
하지만 당서에 같지만 다른 내용이 있는데요.
帥戰艦自萊州泛海趨平壤。平壤箕子故鄉,《漢書》所稱王險城者是也,라고 되어 있죠.
동래는 다름아닌 산동의 래주萊州를 얘기하는 거라는 거죠.
그럼에도 범해는 역시나 바다를 건넜다는 뜻으로 보일 수 있죠.
그럼 이게 사실일까요?
통전에 보면 양주揚州(양저우)를 설명하는 문구에 보면
東北到臨海郡泛海行五百里。라는 문구가 있고
청대의 동행초록에는 故往時泛海者,至大青島成山岬二處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즉 泛海는 산동 내지는 강소성 양주 지역 인근이라는 얘기죠.
@타임로드와타디스 (참고로 당시의 성산成山은 옛 해海지방 중 登州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이건 태평광기의 由青州泛海라는 문구를 떠나서라도 금방 알 수 있죠.
(이외에도 당시 지도와 음운학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부분까지 하면 너무 길어져서 생략.)
그럼 대체 당시 신라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북방에 있었다는 흠정만주 원류고의 말이 맞을까요?
현재 일본 근처인 남방에 있었다는 우리 강단들의 주장이 맞을까요?
위 예시를 든 고적들은 모두 현재 중국이 인정하는 정사들이며
당시 신라와 연합해 고구려, 백제를 침범했던 나라들의 당시 기록입니다.
@타임로드와타디스 저는 시진핑이
정치적 이유?로 남방 신라를 고집하는 박근혜 무리들을 만나 범해泛海라는 시를 읊은게
너희는 계속 반도인으로 생각하고 살아라는 선긋기 내지는 조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님은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뻔히 고적 몇 장만 들춰보아도 나오는 것들을
우리는 대체 왜 엉뚱하게 해석해서 신라를 한반도 남단에 갖다 놓았을까요?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래요.^^
정말 수나라가 지금의 부산까지 왔었는지 어떤지요.
(제가 이렇게 말했다고..
설마 그 동래를 이조 조선의 동래까지로 확장하시지는 않겠죠?^^)
@타임로드와타디스 그리고 끝으로...
대안이라는 것은 별것 없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역사학은 정치적 목적과 떨어져야 하고
소위 학자라는 사람들은 음운학은 제쳐두고라도
서지학이라도 그 이름에 걸맞게 번역본만 보지말고 스스로 찾아 읽는 공부를 더 많이 해야죠.
@타임로드와타디스 말씀하신 부분들이 윗글 보다는 더 논리적이고 공감이 됩니다. ^^
우리나라 역사학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
규정화된것이 많죠 환단고기는 일제 독립운동가였던 계연수선생이 목숨을 걸고 전했던
한민족의 뿌리역사입니다 홍범도 오동진장군께서 출판시에 비용을 후원했고 대한민국의 역사발전에 결정적기여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