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의 일정 위에 함께 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저의 부정성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본문 주해)
1~12절 : 야고보는 자신을 포함한 가르치는 자 즉 선생 됨을 경계한다.
그 이유는 말의 실수 때문이다.
말의 실수는 길들이지 못하는 혀 때문이다.
혀의 부정적인 위력을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과 큰 배를 주관하는 작은 키 그리고 많은 나무를 태울 수 있는 작은 불의 위력에 비유하여 나타낸다.(1~8절)
길들이지 못한 혀의 실상은 한 입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그 입으로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샘이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내지 못하고, 한 나무가 두 가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어찌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올 수 있게 하겠는가?(9~12절)
그런데 사실 혀와 입이란, 말이 나오는 통로이지 그 근원은 아니다. 사람이 말을 실수하면 입술을 때리는데 그런다고 혀가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입과 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15:17~20)
13~16절 : 사람의 행위가 위로부터 난 지혜인가, 아니면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가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즉 선행과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서는 단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니 열심히 행함을 나타내자는 것이 아니라, ‘너의 믿음이 위로부터 나온 믿음이냐?’는 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17~18절 : 위로부터 온 지혜는 어떤 것인가?
첫째, 성결한 것이다.
성결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는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다.
위로부터 난 지혜에는 이런 성결이 있다.
둘째, 위로부터 난 지혜는 화평케 하는 일을 하게 한다. 각자가 믿음의 분량대로, 받은 은사대로 행할 때 시기와 질투가 일어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셋째, 관용과 양순이다. 즉 친절하고, 온순한 것이다.
땅의 지혜는 자기의가 가득하여 잘못한 일에 대한 비판과 책망과 책임전가만 있을 뿐이다.
넷째,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 긍휼(자비)이 곧 선한 열매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긍휼이 없다면 그것은 세상 지혜임을 알아야 한다. 선한 열매란 긍휼의 열매이지 시기와 다툼의 열매가 아닌 것이다.
다섯째, 위로부터 난 지혜에는 편견과 거짓(위선)이 없다.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18절, 새번역)
(나의 묵상)
야고보 장로는 길들이지 못하는 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저마다 선생 되고자 하는 마음에 대해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가르치는 자는 더 엄한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교회 안에서 청년부 부장을 맡은 자로 선생 되어 가르치는 자이니 더욱 두려운 위치에 있다.
예수님께서 입을 통하여 나오는 것은 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로서,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5:18)
그러므로 혀를 통제하려면 마음이 주의 은혜로 충만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주의 은혜로 충만할 수 있을까?
그것은 매일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아는 지식과 주님의 지혜로 가득 차게 하여 이 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본문과 관련하여 어느 글에서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고 증인이 되라’는 표현을 접했다.
아멘, 아멘이다.
과거에 나는 ‘선생’이 되어 열심히 가르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고 하였다. 은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와 열심으로 하게 되니 나의 혀가 나 자신과 주변을 사정없이 불사르는 것을 경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르쳤던 내용도 문제가 많았고, 삶의 태도에도 본받을 것이 없는 자였다.
이제 주님께서 복음을 알게 하시고, 생명으로 사는 자가 되어 다시 가르치는 위치에 있게 하셨다.
그래서 전에 우리 영지 청년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너희들이 어떻게 세상에서 잘 될 것인지 품고 있는 그 비전이라는 것에 불을 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세상 지혜에 계속 찬물을 끼얹는 복음만을 전하는 부장이 될 것이다.’라고.....
예수님을 증거 하는 복음 외에는 다른 말하지 않을 것이고, 그 말씀들은 다 세상 지혜와는 상반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찬물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선생이 되어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모으는 자는 혀를 통제할 수 없다.
그들은 온갖 세상 지혜를 동원하여 사람들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인이 되어 온몸과 마음으로 예수님을 가리키는 자가 될 때 그 입술의 말을 성령님께서 주관하여 주시리라.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가정을 비롯한 삶의 모든 현장에서 선생 되어 가르치는 자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만을 소원한다.
(묵상 기도)
주님,
선생이 아니라,
예수님의 증인되려는 마음이
바로 위로부터 오는 지혜임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증인의 삶처럼
생명이 넘치고 역동적인 삶이 어디 있을까요?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와 나라와 가정에서도 이 삶을 살 수 있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더럽고 추한 세상의 지혜를 남발하는 혀가 아니라,
복음과 생명을 증거 하는 성결한 입과 혀가 되게 하옵소서.
오로지 단물 나는 샘, 의의 열매 맺는 나무가 되게 하옵소서.
저로서는 할 수 없지만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성령님만을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