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동창들이 산에 기어오르다.
찹쌀떡
중학교 2학년 때, 책상 빼닫이 뽑아서
찹쌀떡을 담아 추운 날, 팔러 다녔다.
찹-싸-알 --더-억----------!
겨울 밤공기 가르며 손님 부르는 게
내가 들어도. 세련이 되고 구성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누군가 몽땅 다 팔아 준다고 ,
오라고 하여, 어슥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두해 선배였던, 그 사람은 얼른 다 먹고
돈 한 푼 안 내 놓고, "어린 게 까불어"하며
금방이라도 칠 듯이, 마구 협박을 하였다.
내 초등학교, 같은 반이었던 친한 여자
동창의 오빠였다.
그리고
내가 고삐리 2 정도, 짱! 잘 나갈 때 쯤!
밤중에 끌고 가, 떡이 되도록 손 좀 보려고
몇 번이고, 몇번이고 벼르고 다짐했다.
이 밤은 서울 중심지! 우리 집, 문 밖에서
찹쌀떡! 하며 팔러 다니는 목소리가 들린다.
예나 지금이나 내게는 그 노무 여자가 원수다.
<명자>야! 요거 보면 느끼는 바 있을거다!
너들, OO 옵빠야가 나한테 안 맞은 거는
순전히 초등 때, 의리라 카는 거 때문이데이!
이 밤은 예쁜 명자한테 곱빼기로 찹쌀 떡
배상을 받아 얻어먹고 싶은 추억도 삼삼한
밤이로구나!
요즈음 청주에 살며 세월 따라 노래 따라 ,
할마시가. 다 됐지만 옛날에는 서너 가닥
하는 빛나는 세수 대야였지!
민 낮짝, 어린 세수 대야도 보고 싶은 밤이다.
빼닫이--서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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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범절 있게 살고 있습니다. 함께 자는 것 보다
이런 글도 쓰며 뇌 건강을 단련하고 있습니다.
잠도 안 오고 어깨도 쑤시고 이레 저레 뒤숭숭합니다.
찹쌀떡 장사 목소리 참으로 오래 간만에 들려서
이렇게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거서리님의 찹살떡 추억에 저도 한껏 파묻힙니다 ~~
이 눔의 동네는 요즘 찹살떡 장수도 안다니네요. 소리나면 얼른 뛰어 내려갈 텐데.~~
일찍 주무세요 ㅎㅎ
밤에 문밖에서 찹쌀떡 하는 소리 들리는데요,
옛날 시골 동네 같이 구성지지는 못했습니다.
찹-사알에서, *알에서 꾼들은 사알에 혀를
치경(이뿌리나 이뿌리 위 딱딱한 부분)
즉 alveolar 쪽에 붙이고 길게 발음 하다가
더-억 하고 특이한 한국적인, 아마 어렵지요?
목에서 올라오는 후두음을 내는데 이게 영어의
후두음과 딴판 다른 게 있는데,
장사 시작 전 유경험자에게 배우고 익혔습니다.
그래서 장사 처음하나? 는 말도 생겼나 봐요?
그동네는 어딘지 모르지만, 울 동네는 가끔 찹쌀떠억~ 소리가 들려옵니다.
한번도 팔아주지 못해서 미안하기는 하지만요.
요즘도 늦은 밤에 저걸 사먹는 집이 있을까? 공연히 걱정만 해준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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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맞고요, 지금도 변함 없습니다”
ㅋㅋㅋㅋㅋ....!!
갑자기 문교부가 근무 태만하여 마비가 되었나요?
감상문도 없이 ㅋ ㅋ ㅋ 가 뭡니까? 공부해요!
공부 하세요-------
지금도 폭력으로 각 학교에서 골치아픈데 그때도 동네 마을에서
골목대장 깡패가 있었군요, 지금도 그놈 늙은 할배 쫓아가서
떡값 내노라고 패부려..ㅋㅋ
재미있고 코믹한 거서리님글감 한번 웃고갑니다.
그 선배는 세종문화 회관 동문회 때 만나
이야기 해주니 알면서도 웃기만 하더군요,
이제는 거의 친구가 되었지만 이게 다 잊지
못할 추억의 샘터이자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여자 이름은 그대로 써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떡 하나 주면 안잡아 묵지~ㅎㅎ
그래도 그때는 불량 청소년은 있을지언정, 지금 같은 악질은 없었지요.
골목으로 데려가 떡만 빼앗아 묵었지, 팰듯하고 패지는 않았자나요.
돈뺏고, 물건 뺏고 목숨까지 빼앗는 요즘 세상에 비하면 인간적이었죠.
거기에 거서리님 처럼 낭만적인 면도 있었으니...
초등 여친의 오빠라는 이유만으로 복수도 포기한 순정파 사나이~ ㅎㅎ ^*^
성이 허씨여서 허장강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오빠도 피부조차 뽀얀데다 잘 생겼습니다.
이게 동창 싸이트에 동시에 올렸는데 그 애가
이걸 보며 한창 웃을 것입니다.
내 딸내미 예식이라도 한다면 오겠지요만---
순정파여서 탈이라면 눈물이 흔했는데
어머님 사후 좀체 울지 않기로 했습니다만---
ㅎ ㅎ ㅎ예전에 야참으로 자주먹던 찹~싸알~~떡~~~구성지게 뽑아대던 그목소리
시험공부할때엔 참으로 정겨운 소리였지요~~~ㅎ ㅎ
추억으로 헤매다가 떠납니다. 감사합니다.~~ㅎ ㅎ
동창 싸이트 꼬리말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얄마야~! 글그지 마라! 명자는 1학년 6반때부터 3년간 내 짝이었데이~!
남자들은 착각도 자유지요, 지금 초코파이 2개에 물 한잔으로
점심 떼우고 있지만 그 시절 --- 그 맛은 어디 있나요?
옛날에 고학생들이 알바로 겨울철에는 찹쌀떡 장사, 설 대목에는 복조리 장사도 했지요.
모두가 어려운 시절의 지나가버린 추억입니다. 거서리님의 추억 이야기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꼭 그 장사를 해야 할 처지는 아니지만
찹쌀떡 장사도 복조리 장사도 해 보았습니다.
정초 친구들 중에 제가 최고 매출로 올려 ㅜ
폼 나게 쓴 적 도 있습니다. 이건 실화 맞습니다.
인정합니다. 거서리님은 분명 그럴것 같아요~^*^
거서리님 때문에 한참 웃습니다.
거서리님은 어릴적 부터 참 용기있는 분이셨군요
장사도 여러가지 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런것이 삶의 탄탄한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유추 해봅니다.
솔숲님 어찌 하루 이틀인가 안보여도 멀리 간 기분이 듭니다.
맞습니다. 용기가 있습니다. 그 병 때문에 요즘 제가 뭐 좀
하려고 하니 우리 어부인 마님이 제발 조용히 살다 가재요!
이제는 솔숲님 턴! 손수 글을 올리실 때가 안 되었나요?
힘내세요! 제가 거나하게 꼬리 글 달아 드릴게요! 건강히---
ㅎㅎ ~
감사합니다.~
ㅎ ㅎ ㅎ.....
그랬죠 우리에겐 누구에게나 영원한 명자도 있고
겨울밤 찹쌀떡 장수의 정겹고 그립고 아련한 추억들이 있었네요~~
거서리님 그시절 향수에 젖었다갑니다~
네 그렇지요, 그 시절 다 그런 추억이 있겠지요,
꼬리말 달아 주신 것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