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성격인지라 '곡학아세'하는 인간들은 지구 끝까지 달려가서도 고쳐주는 게 성미이다. 우파 진영의 혼란은 "자본론"에 反하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그릇된 해석에서 기인된다. 정확히 말하면, 우파진영에서 생뚱맞게 '트로츠키'주의자적인 해석으로만 통일하고, 토로츠키주의자 해석을 앞세워서 김정일 정권 타도를 하자는 주장이다. 결론은 좋을 지 몰라도, 과정이 틀렸기에 그 결론이 나올지는 불확실스러워 계속 반복하여 우파진영 내 '곡학아세'고쳐주기에 나서고 있다.
http://blog.naver.com/s14600/18711208 <====트로츠키주의자의 현실 사회주의 비판 (원고지 4매 미만의 짧은글)
우파와 좌파의 구분은 헤겔의 헤겔법철학과 마르크스의 헤겔법철학비판의 차이를 갖는다. 인간의 자유가 국가를 이루면서 달성된다는 자유민주주의 옹호의 헤겔과, 인간은 지배계급의 국가를 부숴야 자유를 이룬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으로 나뉜다.
마르크스주의는 [정신현상학]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으로 바뀌는 부분을 이해해야 된다. 마르크스주의자 내에서는 레닌의 헤겔의 [대논리학]을 이해해야 된다는 말이 성경구절 외우듯이 반복되기도 한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풀어서 알기 쉽게 단순화 시키면 이러하다. 무슨 일을 '할까' '해야겠지' 생각하다가, '말까' '마는 게 나을까' 하다가, 그래 '하는 게 좋겠지'하고 결론 짓는 차원을 말한다. 한 마음에 본시 품는 것이 '원초적'이고 반대가능성이 '반테제'이다. 결국, 최초와 종결이 일치되는 것으로, '어느 것을 택할까요 알아맞춰 보십시오'식의 두 손 중에 한 손에 숨긴 구슬 찾기 게임과 비슷한 것이다. 이것이 정신 내부의 일이라면 이것을 현실세계로 뒤바꾸는 것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이다. 얼마의 돈으로 교환될 수 있는 물건을 많이 생산하는 것이 기본이라면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관계창출이 변증법적 모순을 이룰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는 '생산력'이 넉넉하게 발전되어서 '생산관계'속에 종사하는 자들을 다 멕여 살릴 수 있는 상황만 가능하다.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최초의 마음이 이후 생긴 마음에 이기거나 비기거나 지거나의 가능성에서 종국적으로는, 헤겔이 자주 인용하는 '신약성경'에 담긴 예수님의 사랑에 대비될 '정신'의 흐름의 승리를 주장한 것에 비교될 수 있다.
또,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근로자계급의 해방의 머리가 '철학'이라 했다. 종교는 아편이라고 까지도 했다. 그렇다 하면, 남는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마르크스의 생각에는 자기 공부로서 자기 스스로의 머리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레닌 스탈린 체제의 현실 사회주의는 생산력이 발전은 커녕 명백한 농업후진국가 소련에서 시작되었고-특히,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크게 패했던 나라에서!!-, 2%미만의 볼셰비키(다수파)가 98% 멘셰비키(소수파)와 농민들을 압제하면서 시작된 위로부터의 체제 전복에서 시작되었다.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C7%F6%BD%C7+%BB%E7%C8%B8%C1%D6%C0%C7&frm=t1 <===검색어 "현실사회주의" ('지식 in' 전부와, 뉴스를 제외한 웹문서들을 하나 하나 살펴볼 이유가 있다. 웹문서에서 전체가 어려우면 서론과 결론이라도 꼭 읽어보시길)
우파진영은 곡학아세와 이념사기극에 휩싸여서 한국의 학계가 공유하는 지적 자산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오늘자 [조선일보] 사설을 보면 한국 학계의 성과를 무시하는 뉴라이트 내부의 '트로츠키주의자'적인 정보 제공에 흔들리는 바가 선명히 보인다.
"북한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합류하려면, ‘非正常비정상 국가’라는 汚名오명을 먼저 벗어야 한다. 핵은 물론이고 위폐 제조, 마약유통, 가짜 비아그라 제조 등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거나, 세계에 혐오감을 주는 행동에서 손을 먼저 떼야 한다. 김 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도, 미국이 마카오의 한 은행이 북한 돈을 세탁해준 혐의가 있다고 발표하자 동남아시아의 모든 은행이 위험한 북한과의 거래에서 손을 떼려 함으로써 돈줄이 막혀버린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서란 해설이 유력하다. 이런 상태로는 글자뿐인 개방을 하고 특구를 한두 개 더 만든들 북한 형편이 펴질 리가 없다. 북한은 하루빨리 6자회담에 복귀하고 그 다음 하나하나 세계의 의혹이 쏠린 ‘더러운 장사’에서 손을 떼야 한다."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601/200601190641.html
'불량국가' '깡패국가' 등으로 부르는 '자유민주주의'로 '나라 다운 나라'에서의 건전한 형태의 정반대치라는 의미의 '네오콘'(특히,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강한 국가의 조건]식의)정의가 혼돈되고 있다.
안병직 교수의 정의가 맞다. 북한 체제의 정의는 '현실 사회주의' 대붕괴 속에서 살아남은 '舊체제 사회주의' 국가이다. 김학준 교수님의 [러시아혁명사](문학과 지성사)를 보면 조폭 두목 레닌이 '위폐'제조 '마약밀매'등으로 얼마나 천재(?)적으로 러시아혁명 자금을 만들었는지가 나온다. 안병직 교수의 '현실사회주의'붕괴 속에서 살아남은 구체제 사회주의 국가라는 정의는 이러한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김정일의 '위폐제조'는 레닌의 위폐제조에, 김정일의 마약밀매는 레닌의 마약밀매에, 김정일의 군사 우선은 레닌의 적군 우선에, 김정일의 인명학살적 인권 침해는 레닌 스탈린 체제의 인권 학살 공포 체제에 기원을 갖는다는 내용이다.
이제, 앞서서 제기했듯이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항이라 할 '생산력'의 조건도 없이 각종 조폭 행각으로 불량한 돈으로 체제유지에 급급한 수준이고, 근로계급의 자율성과 복지증진은 커녕 여전히 그들을 착취하고 피 빨아 먹는 체제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이게, 트로츠키 주의자나 로자 룩셈부르크주의자 쪽의 핵심 반론이다. 주체사상파만을 공포라고 여기고 그거 아니면 다 좋다 류의 비운동권 정서에 편승한 1990년대 중반의 [조선일보]의 일반적 시각이기도 하다.
(뉴라이트 자유게시판 퍼옴)---------------------------------------------
북한에서는 자본론도 금서 - 좌파 경제학자 재일동포 이영화교수의 폭로.
이름 : 이용화 날짜 : 2006-01-19 17:41:14 조회 : 6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인가.
서방진영 학자로는 첫 교환교수로 북한에 체류했던 재일동포 이영화 간사이(關西)대 경제학부 교수는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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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바탕 아래에서 조갑제기자가 그리는 좌파에게 꼭 전향을 시킬 이유도 없으며, 김정일 정권 타도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는 발상법이다.
이제부터 반론을 하고자 한다.
첫 번째, 김정일정권 타도 이후에 몽롱한 꿈속에서나 존재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려는 자를 우파라고 믿으면서도 연대하는 것은, 김정일 정권 타도 이후에 ‘인민재판’으로 자기들 지지하지 않는자들을 괴롭힌다는 그들의 공언처럼 온당할 수 없다.
김정일 정권 타도 이후에 전대협 한총련 류의 사고관으로 원조 사회주의 건설이란 신앙심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김정일정권 타도란 주장은 겉으로는 외견상 같으나 본질적으로는 처음부터 ‘화합할 수 없는’ 방식을 갖고 있다. 올드 레프트가 송두율의 뉴레프트 연구 이후에 ‘뉴레프트’ 겉치레로 위장하듯이, 주체사상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조선일보]에 호평을 받았던 학술적 피디계열파로의 위장은 1997년 김대중 정부 이후로 너무도 흔했던 바로, 이제는 그것은 완료단계이다.
두 번째, [자본론]에 반하는 현실 사회주의의 철권 정치를 사회주의가 아니라 ‘왕조’라고 하는 조갑제*뉴라이트의 변종 트로츠키주의자식의 정의가 갖는 문제점은, 결국, 조갑제*뉴라이트가 속내로서 [자본론]이상의 과학적 성경 없네란 본질적으로 우파의 코드가 아닌 것을 지지한다는 것을 표현한다. (표현하는 바에서 말하는 자의 시점이 담기는 것으로서, 누구 누구랑 얼레껄레리의 놀림을 받을 때 과장되도록 거부하는 것이 그것의 사실상 시인을 말하듯이) 1992년 무렵의 대학가 [자본론] 읽기 바람에서 그 이상의 최고치 없네 하고 멈추는 자들은, 1970년대 좌파들이 대다수가 철학과 사회과학공부가 젬병 상태란 이유로 우파 진영에서 잘난 체 해서도 안된다.
[자본론]은 쌩둥맞도록 많은 사고의 비약이 있는 책이다. [역사철학강의]에서 아시아 방식 로마방식 게르만방식등으로 나열한 연구는 역사연구 짜깁기이고, 그대로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역사적 생산관계들의 연구에서 헤겔의 짜깁기를 반복한다. (좌파 사학자 이세영교수는 [이론]지에서 일찌감치 고발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의 개념 도식을 사용하여 잘 분석하다가도, 궁극적으로 생뚱맞게 빈 공백의 투쟁론을 제기한다.
이 공백이 한국 좌파 학계의 1990년대 중반의 유럽 좌파 공부로 드러난 것이나, 그러한 연구는 기나긴 우회를 거쳐서 결국은 동일한 결론인 현실사회주의 철권 정치에 대한 둘러가는 미화로 끝났다.
[자본론]에 反하는 구체제 사회주의 사회만이 몇 나라 남아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구체제 사회주의 전통이 아니라, 왕조라고 하는 방식은 학계 성과에 입각된 객관적 정의를 거부하는 초심자들을 초심자수준에서 묶어둘 방식이다. 학계에는 [자본론]에 반하는 구체제 사회주의 국가의 철권정치 체제를 ‘현실 사회주의’라고 이미 정의하고 있다. 이는 이미 한국 학계에서 ‘현실 사회주의’가 사회주의가 아니라면서 이상을 꿈꾸는 트로츠키와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세를, ‘꿈은 가상하나 그것 역시도 자유민주주의에서 바람직하지도 않고 백번 양보해도 그들의 이상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란 결론을 내린 상황이다.
도대체, 이러한 상황 놔두고서 왜 우파는 1992년 무렵의 주사파와 피디계열 학생운동의 한심한 주장 수준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낡디 낡은’ 수준에서 헤매어야 하는가? 한 때, ‘전위’로 왕자병으로서 대학 선배 됨을 철혈 독재 권력으로서 후배들의 인권을 짓밟아 온 전대협 선배님들 출신들에게, 어른 다운 어른이라면 따끔하게 야단 쳐야 마땅하다.
[자본론]에 반하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도 사회주의 체제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트로츠키나 로자 룩셈부르크 숭배자로서 우파를 두들겨 잡기 위해서 우파에 온 사람이라고 봐야 된다.
네이버 검색창에 나온 ‘현실사회주의’란 학계 정의를 써야 한다. 좌파들이 실제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우파들은 어떻게 비판하는가로 정의해야 ‘각’이 선다. 좌파들이 사용하는 용어 무시하고, 우파들도 좌파이론 스케일로 따라 배우기하면, 결국은 우파 내부에 ‘좌파승리’를 향해 노래를 부르는 자에 박자 맞추는 셈이 된다.
오늘 이후로 더 이상의 곡학아세와 이데올로기 사기극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 우파 사이트 곳곳에 퍼졌으면 좋겠다. 상식이 승리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주제만 몇 년 째 적어왔음을 알 사람은 안다. 더 이상 비생산적인 반복은 나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