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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09편)
20210623
5조 홍인 대사가 동자로 있을 때에 4조가 묻되
"그대의 성이 무엇인가?" 하니
동자가 대답하되
"성은 있으나 예사 성이 아닙니다."
"무슨 성인가?"
"불성입니다."
"그대는 성이 없는가?"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하니,
조사께서 그의 재질을 짐작하시고 곧 중을 만들었다가 나중에 법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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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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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방긋)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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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수요일에는 모처럼 청주에 있는 한 선원에 다녀왔는데요.
초기에 중국에서 한창 바쁘게 지낼 때 한 노스님이 소개해 준 곳이랍니다.
벌써 5년 가까이가 되어가고 있는데요.
청주에서 한 노보살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거사님 글을 보다 보면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된다"
라는 말씀인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을 드렸답니다.
제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 드리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유마거사 등이 이미 수도 없이 말씀하신 내용들을 저는 그대로 옮겨서 말씀드리는 것뿐이랍니다.^^
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경전은 무엇보다 모두가 옛 글들이라 안에 저장되어 있는 그 뜻을 잘 파악해서 배워야 한답니다.
그래야 바로 찾아 들어갈 수가 있답니다.
수행은 아주 쉽고 간편하고 가볍게 해야 한답니다.
너무 무겁고 힘들게 하시면 그만큼 멀어진답니다.
굷고 짧은 것보다 얇고 길게 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깨달음이나 증득은 단 한 번에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물방울이 한 방울 한 방울식 떨어져 바위를 뚫듯이 꾸진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뻥하고 뚫리게끔 되어있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순간순간 짧게 하는 찰나삼매로 하는 것이 유리하답니다.
처음부터 무리를 하시면 금방 포기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수행은 재미없게 접근하시면 진짜로 재미없는 것이 수행이거든요.
그리고 가급적이면 조용히 혼자 한적한 곳에서 하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노보살님이 콩국수를 만들어 주셔서 맛있게 잘 먹고 왔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열심히 해서 본참을 증득하고 오는 길이 좋았던 것처럼 이번 생을 마무리 지을 때에도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ㅡ♡
오늘 본문 내용은 4조 도신이 뒷날 5조 홍인이 되는 어린 동자의 대답을 듣고 싹수가 있어 보여 제자로 받아들이는 내용인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동자가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은 본성(마음) 자리를 묘사한 내용이랍니다.
실제로 깨닫고 본성을 보면 동자의 말처럼 모든 것이 텅 빈 그야말로 공(空)인데요.
이런 대답을 내놓은 동자의 말을 듣고 4조 도신이 앞으로 싹수가 있어 보이니까 일단은 중으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커서 법을 전했다는 내용이랍니다.
여기서 "전했다" 란 말은 "알려주었다" "전수해 주었다"라는 뜻이랍니다.
"나중에 법을 전했다."라는 내용으로 보아 어린 동자가 그 자리를 알고 하는 말은 아니고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재치 있게 답변을 하는 내용인데요.
당시의 절 문화는 선문답(禪問答)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가 육조 혜능이라는 스님이 나오면서 선문답이 대 유행을 했답니다.
일자무식이었던 육조 혜능이 선문답에 능했던 이유는 뜻풀이에 능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때 당시는 선문답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공부를 했답니다.
쉽게 말하면
무슨 뜻인지 물으면 무슨 뜻이라고 답하는 것이랍니다.
뜻으로 물으면 뜻으로 답하는 것이지요.
선문답이 유행하게 된 동기는 당나라 때의 과거시험 문화와 관계가 깊은데요.
그 이유는 당나라에 이세민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과거시험이 안착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고서(古書)들을 보면 시험뿐만이 아니라 배울 때에도 모두가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공부를 했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는 필기구도 귀했고 가격도 비쌌기 때문이랍니다.
이세민이 들어서면서 공부의 열기가 극도로 발전하면서 당시의 공부 방법을 그대로 스님들도 채택을 한 것인데요.
왜냐하면 그동안 천민들은 조정에 들어가 관료가 되기 어려웠으나 이세민이 등장하면서 누구나 실력만 있으면 등용을 시켰기 때문이랍니다.
지금도 이 당시에 등용된 인물들이 중국의 어학 문화를 이끌고 있는데요.
들어보면 문장이 상당히 아름답답니다.
여러분은 혹시 학문(學問)이란 뜻이 무슨 뜻인지 아시는지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선문(禪問)과 주제만 다를 뿐 그 의미는 같답니다.
학문(學問)이란 뜻은 "그동안 배우고 익힌(學) 것을 묻(問)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앞 글자만 다를 뿐 선문(禪問)도 그 뜻은 같답니다.
선(禪)에 대해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것을 묻(問)는 것이지요.
선문(禪問)이란 선(禪)에 대한 질문(問)이고
선답(禪答)도 선(禪)에 대한 답(答) 이랍니다.
학문(學問)이란 학(學)에 대한 질문(問)이고요.
주제만 다를 뿐이랍니다.
선문답이란 그동안 배우고 익힌 선(禪)을 얼마나 공부했는지 물어보는 것(問)이고
학문이란 그동안 배우고 익힌
학(學)을 얼마나 공부했는지 물어보는 것(問)이랍니다.
하나는 선(禪)에 대해서 묻(問)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학(學)에 대해서 묻
(問)는 것이랍니다.
(주의: 입소리에 익숙한 우리들은 한문을 접할 때 글자 하나하나를 찾아보면서 그 뜻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정확히 이해를 할 수 있답니다. 그냥 입에서 나는 소리로 이해하시면 뜻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답니다. 그래서 흔히 말에 끌려가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고요.)
이렇게 그 당시의 모든 학문과 과거 시험은 묻고 답하는 형식이었답니다.
우리도 조선시대 때까지 그러했고요.
선문답(禪問答)도 그 시기에 그대로 스님들에게도 적용되었답니다.
당시의 모든 시험방법은
질문자가 질문을 하면 그 뜻을 알아차리고 주제에 맞는 답변을 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가장 주제에 잘 맞게 표현하는 사람이 장원을 하는 것이고요.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묻고 답하는 가운데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알아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옛날의 과거시험은 주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이지만
선문답(禪問答)은 주제가 아예 [마음/心] 하나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선문]등을 듣고 "무슨 말인가?"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전부가 마음에 관한 내용들이니까요.
중국 글들은 뜻글자이기 때문에 선문 내용 중에 마음을 뜻하는 것만 잘 찾아내시면 된답니다.
입소리에 익숙한 우리들은 뜻 소리에 약해서 잠깐 헷갈리는 것뿐이랍니다.
여러분들은 상대의 선문 속에서 마음을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포인트랍니다.
안 그러면 선문 내용이 무슨 뜻인지 모를 수 박에 없답니다.
왜냐하면 중국 글들은 거의가 뜻글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질문자가 가리키는 마음의 뜻을 못 알아차리면 도저히 답변도 할 수 없겠지요.
이렇게 선문답이란 주제만 다를 뿐 그 당시 과거시험 방법 그대로인데요.
다만 선문답의 [주제]는 모두가 [마음자리] 하나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답니다.
이 말의 뜻은 선(禪) 자가 들어가는 모든 주제는 [마음] 이야기를 뜻하는 것이랍니다.
마음 이야기가 없는 선(禪)은 선이 아니라고 보시면 되는 거고요.
오늘 본문 내용인 공(空)에 대한 이야기도 마음을 뜻하는 내용인데요.
어린 동자의 말은 마음자리가 모두 공(空) 하다는 뜻으로 말을 한 것이랍니다.
이것을 한문으로 표현하면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 되는데요.
여기서 개공(皆空)이란 [모든 것이 공]이라는 뜻이랍니다.
오온(五蘊)을 돌이켜보면 모두가 공(空)이란 뜻인데요.
깨닫고 증득해서 보면 정말로 우리들의 마음은 공(空) 과 무(無)에서 인연 따라 흘러가는 것뿐인데요.
자연적으로 인연 따라 지구도 태어났다가 다시 소멸되고 우주의 은하계도 태어났다가 다시 소멸되지요.
전 우주의 이치(理致)는 그야말로 공(空) 과 무(無)에서 인연 따라 태어나고 소멸되고 다시 사라지는 윤회(輪廻)를 못 벗어나고 있답니다.
이러한 이치를 부처님은 그 당시 비추어보고 이미 아셨던 것이고요.
우리들 마음 또한 무수히 많은 것들이 공(空) 과 무(無)에서 인연 따라 태어나고 소멸되고 다시 살아나는 윤회(輪廻)를 못 벗어나고 있지요.
그래서 저의 카톡 머리글자에도 공무연기(空無緣起)라고 적어둔 것인데요.
이 문구는 제가 제일 먼저 깨닫고 적어둔 내용이기도 하답니다.
실제로 깨닫고 보면 모든 것이 인연 따라 흘러가는 그야말로 공(空) 과 무(無)랍니다.
살아가는 것도 그냥 살아있으니 사는 거랍니다.
죽는 것 또한 인연이 다하면 그냥 죽는 것이지요.
그 외에는 그 무엇도 없답니다. (空)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고, 잘 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고, 좋다, 나쁘다, 똑똑하다, 그렇지 못하다, 부자다, 가난하다, 능력이 있다 없다, 등이 모두 중생(衆生) 놀음이랍니다.
이러한 중생 놀음에서 서로가 울고 짜고, 싸우고 하는 것뿐인데요.
그래서 늘 중생들 마음은 편할 날이 없는 거랍니다.
저 또한 그동안 왜 그러고 살았는지 생각해 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경우인데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또한 하루속히 자신을 되돌아보시고(照見) 마음의 안락함을 찾으시길 기원드려봅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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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
오늘부터는 하루에 하나씩 선문답(禪問答)을 바라보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먼저 선문염송은 무엇인지 설명드리고 다음 주에는 간단히 선문답을 접하는 방법을 설명드리고 제가 선문답을 나누었던 경험들을 설명드리고 계속해서 하루에 하나씩 선문답의 예를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같이 보고 있는 선문염송에서 선문답도 응용되어 나왔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지면이 부족해서 바로 하겠습니다.^^
선문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선문은 (마음)을 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답니다.
그리고 시중에서..
"선문답을 통해 깨달음을 알 수 있다" 거나, "증득한다" 거나 하는 등의 내용들은 모두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랍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이란
"선문답을 통해 깨닫는 것"
이 아니라
선문답을 통해
"내가 깨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아는 것이랍니다.
알아도 100% 확실히 보고 아는 것이랍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것을 아는 것이랍니다.
이것이 깨달음이랍니다.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자신의 마음과 선문염송 이나 선문답 등을 통해 비교해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확실히 보고 아는 사람과 글로만 아는 사람들과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건데요.
그러나 상대가 끝까지 우기면 어쩔 수 없는 것이 또한 선문답 내용이기도 하답니다.
남대문을 못 본 사람이 이것이 그렇다 저렇다 해도 직접 남대문을 같이 가서 확인해 보지 않는 한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상대가 우기거나 못 알아들 때에는 부처님도 아무 말씀을 안 하시고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으셨는데요.
이럴 때에는 부처님처럼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이랍니다.
상대를 이해시키려고 하거나 설득하려고 하거나 더군다나 다툼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수행자로서 정말 어리석은 일이랍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보여줄 수도, 냄새도, 형상도 없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면 선문답을 잘 풀면 깨달은 것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선문답 또한 글자나 말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증득하고 체득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직접 느끼고 그 안에 있어봐야 아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듣고 알아볼 수는 있으나 환자가 거짓으로 대답할 수도 있거든요.
직접 속을 열어보지 않고는 장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선문답은 뜻글자에 제치가 있는 분들은 깨닫지 못했어도 얼마든지 답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음자리는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고 설사 안다 해도 모두 어긋날 수 박에 없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돌아가실 때
"나는 단 한마디도 설한적이 없다."
하신 것이고요.
물론 깨닫고 선문답 내용을 접하면 훨씬 이해하기는 좋지요.
그러나
못 깨달은 사람들도 조금만 요령을 배우면 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그런지 안 그런지는 앞으로 매주 저와 선문답을 같이 해보시면 아실 거고요.
그래서 깨달았는지 증득했는지 확인할 때 그나마 강장 확실한 방법은 부처님이나 유마거사와 같이 장시간 상대의 언행(言行)을 지켜보면서 가늠할 수 박에 없는 것인데요.
그 기준점이 바로 팔정도(八正道)와 바라밀다(波羅蜜多) 등이랍니다.
왜 그러냐 하면 모든 언행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깨닫고 증득했다는 사람의 언행에서 말만 유창하고 정작 본인은 이러한 면목(面目)이 안 보인다면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 안 되느니라."
가 된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깨닫고 증득한 자리의 마음이 곧 [팔정도]와 [육바라밀]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정법(正法)이라 하는 것이고..
이와 함께 깨끗한 일을 하는 것을 일러 정업(淨業)이라 표현하는 것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올바르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정업(淨業)이 아니라는 뜻이랍니다.
여러분들도 깨닫지는 못했어도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우주보다 넓은 이 마음의 세계를 어떻게 몇 마디의 말과 글로서 판단할 수 있을까요?
부처님이 웃을 일이랍니다.
[선문염송]이나 [선문답]은 어디까지나
"어? 내가 이미 깨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고
그동안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설사..
과거시험에 장원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모든 면에서도 장원일까요?
아닙니다.
선문답도 같습니다.
아무리 불경 공부를 많이 하고 선문답을 잘 풀면 뭐 하겠습니까?
밖에 나가면 일반 중생들과 별반 차이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 부처님의 불법인 것을요..
대중들과 같이 있을 때에는에는 그럴듯해 보여도 혼자 있을때 또한 그럴듯한지는 본인만 알 수 있겠지요.
공자(孔子) 님도 이런 말씀을 남겼답니다.
"군자(君子)의 도리는 혼자 있을 때 그 근본(根本)을 알 수가 있다" 고요.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엉뚱하고 부끄러운 짓들을 많이 한다는 뜻인데요.
공자가 하루는 수제자인 자로
(子路)와 함께 시장길을 걷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시장 상인과 갓을 쓴 선비가 물건값 때문에 서로 멱살잡이를 하고 욕질을 하면서 싸움을 하고 있더랍니다.
그것을 본 자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햐~ 저런 쌍놈들을 봤나.."
그래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공자가 자로에게 이렇게 묻더랍니다.
"자로야.. 너는 쌍놈과 군자의 도리를 아느냐..?"
하고 말이지요..
자로가 대답을 못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저 상인은 못 배운 사람으로 자신의 물건값을 충실히 흥정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저 선비는 많이 배운 사람으로 보이는데 저 상인과 똑같이 욕질을 해대고 있구나..
저 상인은 못 배워서 모르고 하는 짓이라 하지만 저 선비는 배운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 네 눈에는 누가 상놈이고 누가 군자로 보이는고..?
라고 말이지요..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답니다.
그래서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법문을 잘 한다고 해도 행실이 바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부처님과 유마거사는 수도 없는 비유를 들어 이야기하고 있는 건데요.
일반 중생들은 못 깨달았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러나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삼십만 원 이하로는 안 된다느니..
오백만 원 이하로는 안 된다느니..
천만원 이하로는 안된다느니..
하고 있다면 시장 상인이나 잡배와 다를 바가 뭐가 있느냐 이것이지요..
ㅡ
선문답 또한 그러하답니다.
선문답을 줄줄이 잘 푼다고 해서 고승(高僧)일까요?
아닙니다.
[선문염송]이나 [선문답]은 수행자들이 그동안 수행하고 공부한 내용들을 자신과 직접 비교해 보는 것이랍니다.
"어? 이 내용은 지금 내 마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네.."
하고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경허선사도 [콧구멍 없는 소]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고 막혔던 [선문염송] 속 공안(公案)을 푸셨던 건데요.
경허선사도
"어? 내 마음은 이미 콧구멍이 없는 소였네..? 내가 이미 깨어있었네.."
하고 확철대오를 하신 거랍니다.
ㅡ
음..
저와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 중 총 네 분이 공(空)의 자리를 보셨는데요.
특히 이분들은 앞으로 선문이 나올 때마다 답을 먼저 보지 마시고 스스로 선문 속에 담긴 뜻을 자신의 마음과 비교해 보면서 선문 속의 뜻을 알아차려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보고 있는 바로 그 자리를 보면서 말이지요.
그 자리를 보고 답변을 하시면 된답니다.
몰라도 깨달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답니다.
표현방식의 차이일 뿐이니까요.
부처님에게 영어로 선문을 한다면 부처님도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영어를 배운 적도 없는데요?
이와 같은 것이랍니다.
그 본성 자리를 알았으면 그다음부터는 그 자리를 잘 챙기시는 것이 앞으로 죽을 때까지 하셔야 할 일이랍니다
그 자리만 잘 챙길 줄 알면 모든 만법(萬法)은 그 자리에서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되는데요.
불교에서 [굴러간다]는 표현의 뜻으로 바퀴를 비유한 내용이 법륜(法輪)이란 뜻이랍니다.
모든 것은 마음 한 군데에서 돌고 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이것을 원효스님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표현하셨고요.
일반 사람들은 정말로 깨닫고 보면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 실 건데요.
마음을 모르면 정말로 어리석을 수밖에 없답니다.
이 공(空)의 자리는 또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으로 나누기도 하는데요.
이 둘은 불이(不二)랍니다.
여기서 (不二)란 "안과 밖이 다르지 않다"라는 뜻인데요.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지요.
이 내용은 제가 예전에 풍선을 예를 들어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요.
잠깐 예를 다시 들자면
여러 개의 풍선들이 있습니다.
이 풍선들을 우리들 각자의 몸이라고 비유해 보지요.
그리고 풍선 안의 공기를 본성이라 비유해 보지요.
풍선 속의 공기와 풍선 밖의 공기는 같을까요? 다를까요?
이 둘은 다르지 않답니다.(不二)
풍선 안에 공기가 있을 때에는 각자가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풍선이 터지고 나면 안에 있는 공기와 밖에 공기는 그대로 하나가 되지요.
여기서 풍선이 터졌다는 의미는 사람이 죽었을 때를 의미한답니다.
죽자마자 허공(空)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옛 분들은 "돌아가셨다."고 표현을 했답니다.
그런데 이것은 깨닫기 전에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 문제인데요.
왜냐하면 죽어서도 나 자신이 뭔지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곧바로 다음 생과도 연결이 될 수 박에 없기 때문이랍니다.
그 이유는 못 깨달으신 분들은 불안한 마음에 아무 자궁이나 막 찾아들어가거든요.
가급적이면 이런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은 자제를 하고 있는 편인데요.
이것은 [진실]이랍니다.
여러분들도 열심히 하셔서 이 공(空)의 자리를 볼 수 있도록 기원드려 보겠습니다.♡
ㅡ♡
선문염송(禪門拈頌)이 있고 선문답(禪問答)이 있는데요.
이 둘의 글은 비슷해 보이지만 뜻은 완전히 다르답니다.
왜냐하면 하나는 [門] 자이고 또 하나는 [問] 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문(禪門) 과 선문(禪問)을 바꾸어서 법문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음.)
중국어는 영어와 같이 어순이 (주어+동사+목적어)가 기본 어순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그리고 중국 글자는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대부분 두 글자가 한 쌍을 이루는 단어가 많답니다.
먼저 선문염송(禪門拈頌)부터 말씀드리면..
여기서 말하는
°선(禪)이란
"좌선하다", "터를 닦다", "물려주다", "전수하다", "양위하다." 등의 뜻글자인데요.
여기서는 [본성(불성/성령/마음)을 전수한다]로 보시면 된답니다.
°문(門)자는
"들어가고 나가는 문"이라는 뜻글자인데요. 여기서는 "들어가는 문"을 뜻한답니다.
즉
[선(禪)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염(拈)자는
"(손으로) 집다", "집어 들다"라는 뜻글자인데요.
염주(念珠) 와 염불(念佛) 할 때의 뜻과는 많이 다르답니다.
염주(念珠) 와 염불(念佛) 모두 수행과 연관이 있는 것들인데요.
이러한 것들을 다루는 방법은 나중에 기회 있을때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염(拈) 자라는 뜻은 말속에서 본성 자리를 잡아내라는 뜻이랍니다.
말속에서 본성 자리를 알아차려 보라는 뜻이지요.
°송(頌)자는
"칭송하다", "기리다", "낭송하다", "외우다", "암송하다"라는 뜻글자인데요.
여기서는 "낭송하다"로 해석하시면 된답니다.
요즘 말로 바꾸면 "연설하다" "강의하다" "말하다" "법문하다"가 되겠지요.
즉
[말속에서 핵심(마음)을 집어내라]는 뜻이랍니다.
여기까지가 선문(禪門)이랍니다.
다음 주부터는 선문답(禪問答)을 나누 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과 방법 등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 보고
(선문답 신설) 란을 만들어 누구든지 선문답을 나누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만들어볼 예정인데요.
오늘 한 번에 다 올리려고 했으나 내용이 너무 길면 집중도가 떨어질 것 같아서 나누어서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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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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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이 글은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한 내용이랍니다.♡
오늘도 법염처(法念處)에 해당하는 수행 방법이랍니다.
맨 처음에는 몸을 알아차리는 신염처(身念處)라는 수행 방법을 부처님께 배워보았고..
두 번째는 느낌과 감각을 알아차리는 수염처(受念處)라는 수행 방법을 부처님께 배워보았고..
세 번째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심염처(心念處)라는 수행 방법을 부처님께 배워보았고
오늘은 오온(五蘊)에 대한 내용인데요.
부처님은 이것을 다섯 무더기로 표현하셨답니다.
인도 언어도 우리와 같은 입소리 글자라 그런 건데요.
여기서 말하는 오온이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이르는 말이랍니다.
지금부터 부처님 설명을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말씀은 이러한 것들을 깨어서 잘 알아차리라는 것입니다.
제목: 대념처경 10 법념처 B 5온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dI9V6YYR96JCtEaMZJYfcrU6eEYW3ub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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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념처경. 11. 법념처 B 5온
B, 오온
- 다섯 무더기(五蘊)에 대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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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집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비구들이여,
그럼 어떻게 비구가 집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이것이 물질(色)이고,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며,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감각(受)이고,
이것이 감각의 일어남이며,
이것은 감각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인식(想)이고,
이것은 인식의 일어남이며,
이것은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반응(行)이고,
이것은 반응의 일어남이며,
이것은 반응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의식(識)이고,
이것은 의식의 일어남이며,
이것은 의식의 사라짐이다.
라고 바르게 안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법(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고,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며,
또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그는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내고,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내며,
또한 법에서 동시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낸다.
"이것이 법(法)이다"
라는 알아차림은 그에게 확립된다.
이렇게 그는 그의 알아차림을 오로지 지혜와 바른 알아차림 만이 있는 단계까지 개발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서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초연하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비구가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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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오늘 내용은 부처님이 수행하셨던 여러가지 수행 방법 중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하는 수행 방법을 말씀하시고 계시답니다.
중국불교의 영향으로 한국불교에서도 그동안 간화선(看話禪) 수행 방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가 몇 년 전부터 위파사나 수행 방법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데요.
부처님이 하셨던 수행 방법이 위파사나 수행 방법이랍니다.
중국은 공산화가 되고부터는 이러한 수행 방법은 거의 사라졌는데요.
대만에는 아직도 고승들이 몇몇 있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승은 달라이라마와 함께 세계적으로 추앙받고 있는 [성운스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요.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 현 한국불교에 대한 충고를 거침없이 함으로 해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분이신데요.
우리 불교도 하루속히 다시 일어나 번듯한 고승 한 사람쯤은 나와줘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고 있지요.
세계불교도대회(WFB)라는 것이 있는데요.
한때는 청담 스님, 효봉스님, 동산 스님 등이 참석을 했었지만 그 뒤로는 참담한 실정이랍니다.
세계 불교계에서는 선문답 같은 것은 끼워주지도 않거든요.
아무튼 그건 그렇고요.
수행 방법에 관해서는 [대념처경] 만큼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경전은 또 없을 건데요.
대부분 시중에 나와있는 법문 내용들이나 해설들을 보면 본성에 대하서는 설명을 많이 하더라도 수행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는 경우는 아주 드문 편인데요.
수행 방법은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답니다.
대념처경 안에 모두 있으니까요.
밀교(密敎)를 포함해 수행 방법은 500여 가지가 넘고 있는데요.
간화선도 이 중에 하나랍니다.
모든 수행 방법들은 대념처경을 응용한 방법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제 경우는 뭘 알고 한 것이 아니라 무작정 법화경과 반야심경 내용을 따라 해 보다가 된 경우인데요.
한참 후에 [대념처경]을 보니까 제가 심념처(心念處) 수행 방법으로 했더라고요.
[심념처] 방법이 마음을 직접 상대로 수행하는 [조사선] 이랍니다,
수행 방법 중에서 좋고 나쁜 수행 방법이란 없답니다.
가장 좋다고 하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수행 방법이 좋은 것이지요.
그래서 저도 이것저것 소개해 보는 것이고요.
그리고 자기에게 맞는지 아닌지는 본인이 직접 해보면서 잘 되는 쪽으로 찾아야 한답니다.
제 경우는 눈으로 하는 수행 방법이 제일 잘 되는 편인데요.
지금은 귀 든, 느낌이 든 닥치는 대로 하고 있답니다.
가장 미련한 수행자는
"나는 이 수행 방법 외에는 하지 앓겠다."
또는
"이 수행 방법이야말로 최고다."
하는 부류인데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만이라도 조금은 융통성을 가지고 수행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수행의 원리는 모두 같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잘되면 모두가 다 잘 될 수 박에 없답니다.
제 경우도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초기에는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엄청 스님들을 찾아다녔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만난 노스님이 계셨답니다.
중국에서 사업할 때 거래처 사장이 소개해 준 분이셨는데요.
저하고는 아주 친하게 지냈던 노스님이셨답니다.
이분은 동국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하셨던 유명했던 스님이셨는데요.
이분은 저에게
"나는 간화선 외에는 잘 모릅니다."
하셨던 분이신데요.
제가 늘 그분에게 수행은 한 가지로 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청원을 드린 적이 많았는데요.
그랬더니 이분은 말 대신 웃으시면서 손사래를 치시면서
"내가 오히려 자네에게 많이 배우네. 자네 같은 사람이 출가를 해서 그런 일을 해보면 모를까 워낙 이쪽 사람들이 고집들도 세고 수행과는 거리가 멀어놔서.."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제가 웃으면서
"저는 전생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스님 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또 그동안 쌓은 업보가 많아서 출가를 했었어도 기질이 너무 강해 스님 생활과는 어울리지 않았을 겁니다.^^"
라는 농담도 주고받았던 분이셨는데요.
아쉽게도 지금은 열반에 드셔서 찾아뵐 수는 없지만 이런 내용이 많이 아쉬운 내용들인데요.
특히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은 모든 수행을 다 할 줄 알아야 한답니다.
그래야 부처님처럼 사람의 근기(根氣)에 따라 다양한 수행 방법을 제시해 줄 수가 있답니다.
문제는 노스님 말씀대로 본인은 수행을 안 하면서 가르치려고만 드는 분들이 많아서 문제인데요.
시대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 하겠습니다.
좋은 예로 주리반타가의 예를 들 수 있는데요.
주리반타가는 [주리반타가경]이 있을 정도로 큰 아라한이 되셨던 분이랍니다.
수행이란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렇게 간단한 것이랍니다.
수행이란 이렇게 바보처럼 하는 것이 최상이기도 하고요.
이 만화 내용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는데요.
특히 내용 중에 여자 수행자들에게 가서 말하는 내용이 불성을 증득하는 핵심 중에 핵심 내용이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지요.
"방법에 따라서 진실하게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방법에 따라서란 나에게 맞는 수행 방법에 따라서" 란 뜻이랍니다.
수행자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내용이랍니다.
자기와 맞지 않은 수행을 충성스럽게 몇십년 동안 공들여서 하는 것도 좋겠지만
일단은 효과를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요.?
한번같이 [주리반타가]의 이야기를 다시한번 천천히 들어보시죠.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0q4Cf1jcadw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은 이렇게 바보에게도 수행할 수 있도록 수행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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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2)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분들의 글이랍니다. ♡
오늘도 [유마경] 내용을 들어보시면서 각자가 내가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하는지 가늠해 보시지요..♡
아직은 유마거사의 내용은 안 나오고 서품(서론)에 해당하는 부처님 가르침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는 것이랍니다.
제목: 깨달음의 보고寶庫, 선종의 소의경전 유마경維摩經(불가사의해탈경) 독송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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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청정한 사바세계
그때 세존께서 사람들이 여전히 미심쩍어 하시는 것을 아시고 이 삼천대천세계 위에 가만히 발가락을 올려놓으셨다.
순간 한량없는 백천의 보배를 겹겹이 치장한 세상이 눈앞에 가득 펼쳐졌다.
그것은 마치 보장엄여래(普莊嚴如來)의 세계가 무한한 공덕이라는 보배로 온통 장식되어 있는 것과 똑 같은 광경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무리는 한결같이 이를 크게 경이로워 하며 자신들 역시 보배로운 연꽃으로 꾸며진 자리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기에 이르렀다.
~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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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지금부터 서서히 중국식 표현이 나오고 있는데요.
중국식 표현은 아주 웅장하고 화려한 표현 방식이 많지요.
그 이유는 뜻글자로 표현하는 방식이라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청정한 사바세계]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세계를 표현한 내용이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 위에 가만히 발가락을 올려놓으셨다.]
라는 뜻은
그 자리에 안주(安住) 해 있다는 뜻이랍니다.
"발가락을 올려놓았다"라는 뜻을 우리 식으로 억지로 표현해 보면
"숟가락을 밥상(마음)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면 알아듣기 좋을듯합니다.
"청정한 사바세계에 발을 올려놓았다" 또는 "선정(禪定)에 드셨다" 등의 표현들은 모두 깊은 불성의 마음자리에 있다는 뜻이랍니다.
다리나 발이나 발가락을 뜻하는 것은 모두
"가다." "걷다." "출타하다." "도망가다." "있다."등의 뜻을 담고 있는 상형문자의 표현을 그대로 글로 표현한 내용인데요.
불성 자리에 들어있다는 뜻이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정(禪定)이란 뜻은 꼭 좌선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요.
"늘~" "항상~" 이란 뜻도 함께 내포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보장엄여래(普莊嚴如來)란 뜻도 중국식 표현인데요.
왜? 크고 화려한 것을 표현할 때 "장엄하다" 그러잖아요.
그 뜻과 같은 말이랍니다.
쉽게 말해 불성의 마음은 크고, 넓고, 화려하고, 장엄한 마음이라는 뜻이랍니다.
참고로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이라는 뜻도 같은 뜻이랍니다.
중국 글들은 상형문자에서 온 뜻글자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감탄사나 형용사 등을 말로 표현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답니다.
그래서 크고 화려한 동물이나 물건들로 표현을 많이 한답니다.
예를 들어서 용 그러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뒤어난 것을 뜻할 때 활용하기도 하고
중국 영화를 보면 지붕 위를 막 날아다니거나 장풍을 쏘는 표현 등은..
그만큼 "대단하다."
그만큼 "빠르고 강하다."
그만큼 "능력이 뛰어나다."
등의 뜻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지 진짜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장풍을 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중국 사람들은 허풍이 좀 심하답니다.^^
중국식 불교 경전 표현도 마찬가지랍니다.
오늘 내용만 보아도 그렇답니다.
실제로 발가락을 올려놓은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곧 우주이므로(不二) 그 마음 쪽으로 발가락을 올려놓았다는 뜻이랍니다.
쉽게 말해
"마음에 의식을 두셨다"
"마음에 안주(安住) 하고 계신다."
"선정에 드셨다."
등으로 해석하시면 된답니다.
"순간 한량없는 백천의 보배를 겹겹이 치장한 세상이 눈앞에 가득 펼쳐졌다."
라는 표현도 중국식 표현인데요.
"부처님 마음이 이렇다"라는 뜻글자랍니다.
"그것은 마치 보장엄여래(普莊嚴如來)의 세계가 무한한 공덕이라는 보배로 온통 장식되어 있는 것과 똑같은 광경이었다."
이 내용 또한 부처님 마음은 이렇다는 뜻글자랍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내용은?
우리들 마음이 실제로 이러하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 중요)
깨달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란..
모든 경전의 말씀들은 항상 내 마음과 비교를 해보고 모자라는 부분들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수행을 이어나가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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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리대장경》
제목: 죽음의 순간에 깨달은 것-빠알리대장경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YZDi-UHJZ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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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
욕망의 덤불에서 벗어나
수행의 숲으로 향한 자가
수행의 숲에서 벗어나
다시 욕망의 숲으로 달려간다.
저 사람을 보라
자유로운데 다시 속박으로 달려간다.
ㅡ♡
(해설)
오늘 내용은 견성을 한 분들이 꼭 명심해서 보고 귀감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랍니다.
오늘 내용은 쉽게 말해
수행을 통해 모든 것을 끊어낸 수행자가 다시 욕망의 늪에 빠져 깨닫기 전의 과거로 돌아간다는 뜻을 담고 있답니다.
이런 내용을..
욕망의 덤불에서 벗어난 사람이 다시 욕망의 숲으로 달려간다고 표현을 한 것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욕망의 덤불에서 벗어난 사람이란 지금으로 말하면 선지식인(善知識人)을 이르는 말인데요.
[선지식인]이란 불교의 바른 도리를 가르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랍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140813&supid=kku000176213
이런 선지식인이
친견비(親見費)를 적게는 30만 원 많게는 일백만 원 가까이 요구를 한다든지,
천도재를 적게는 몇백만 원, 많게는 몇천만 원까지 요구를 한다든지,
돌아가신 망자의 위패를 절에 봉안하는 비용으로 몇백만을 요구를 하는 행위 등이 모두
다시 욕망의 늪으로 빠지는 행위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어렵게 수행을 해서 깨달은 사람들이 도력(道力/마음의 힘)
이 없어 다시 욕망을 스스로 낸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리석은 행위라 아니할 수 없는데요.
오늘 내용은 듣기 싫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수행자라면 꼭 사귀어서 들어야 하는 내용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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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사선정(四禪定)이란
번뇌를 끊고 불법의 공덕을 발생시키는 4단계의 근본 선정(根本禪定)을 말하는 건데요.
(1) 초선(初禪).
모든 탐욕과 악을 여의고,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 작용〔覺〕과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 작용〔觀〕이 있고, 욕계를 떠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선정.
(2) 제2선(第二禪).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 작용과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 작용이 소멸되고, 마음이 청정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선정.
(3) 제3선(第三禪). 기쁨을 소멸하여 마음이 평온하고, 몸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선정.
(4) 제4선(第四禪). 즐거움과 괴로움이 소멸되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마음이 평온하여 생각이 청정한 선정.
을 말한답니다.
견성(見性)을 끝내고 아라한이 되기 바로 전단계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이 단계를 사다함과(斯陀含果) 라고 한답니다.
수행자들이 누구나 꿈꾸는 엄청난 단계이지요.
이런 엄청난 단계에서도 마음 한 번 잘못 먹으면 뒤로 후퇴하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인데요.
갓 견성한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다행히 사다함과 정도가 되면 지혜의 문이 열린 상태이기 때문에 동영상 내용처럼 한 번은 되돌아올 수 있는 지혜를 갖춘 수행자들이지만
그러나 갓 견성을 한 수다원과(須陀洹果) 분들은 다시 되돌아오기 힘든 경우라
어떡해서든지 힘들게 깨달았으면 오후 공부에 해당하는 보림(保任)을 철저히 해서 마음을 잘 다져 놓아야 하는데요.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를 못하고 상좌에 앉아서 선지식인 흉내를 내면서 위에서 나열한 새로운 욕망들로 다시 떨어지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인데요.
큰 어른들부터가 이러하니 어쩌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 내용은 견성을 한 분들이 꼭 명심해서 보고 귀감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고 앞으로 깨달으실 분들 또한 귀감으로 삼아서 다른 분들처럼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보충자료)
사다함과(斯陀含果)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story.kakao.com/_1RZ3c6/KCzUiNdbG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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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리대장경》
제목: 상인이 좋은 말을 제어하듯, 자신을 제어하라-빠알리대장경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CtSbnWxSb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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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
자신을 스스로 격려해야 한다.
자신을 스스로 제어해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고 깨어있는 그대는
행복하게 살것이다. 수행승이여.!
자신이 실로 의지처이고
자신이 실로 자신의 갈 길이다.
그러나 자신을 제어하라.
상인이 좋은 말을 제어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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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요새 저는 저의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어떻게 하면 [부처님]이나 [유마거사]나 [선문염송]이나 [선문답] 같은 기록들을 쉽게 이해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라는 연구를 많이 하고 있는데요.
장황한 설명 보다 옛 분들처럼 스스로 알아차리고 수행을 할 수 있도록 유도를 해보려는 것인데요.
제 경우는 중국에서 혼자 호기심으로 법화경으로 처음 이 공부를 시작한 경우인데요.
고서(古書)들을 좋아했던 제 경우는 뜻글자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상태에서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비교적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었답니다..
어느 나라 고서든 옛날의 표현 방식들은 지금처럼 언어와 글이 풍부하지 않았고 필기구도 귀했기 때문에 뜻글자로 기록을 많이 남겼답니다.
구름(雲.) 그러면 세월, 꿈, 욕망, 희망 등의 뜻으로 표현을 했고
강(江) 그러면 고난, 역경, 막힘, 고생, 생사, 등의 뜻이 담겨 있지요.
옛날 사람들에게 강이란 생사를 걸고 건너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깃발이나 깃대(旗)가 뜻하는 것도 강한 것을 뜻하는 건데요.
주관, 분별, 고집, 아집, 집념, 투쟁, 전쟁 등의 뜻을 담고 있지요.
불교식으로 접목시키면 우리들 마음에 이러한 고집이나 주관들의 깃대들이 꽂혀 있다는 뜻이지요.
군대나 관공서, 학교 등에서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 이유도
"우리는 이런 조직이다."
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너는 저런 사람이다"
하는 깃대들이 우리들 마음에 꽂혀 있다는 뜻이고 그러한 것들을 "버리라" 하는 뜻이지요.
그래서 앞으로는 모든 분들이 선문(禪問)에도 익숙해 지실 겸 뜻풀이 형식으로 이야기를 꾸며보려고 하는데요.
뜻풀이를 잘하면 [선문염송]이나 [선문답]도 이해하기 좋답니다.
오늘 내용은 단어 하나만 이렇게 바꾸어서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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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스스로 격려해야 한다.
마음을 스스로 제어해야 한다.
마음을 보호하고 깨어있는 그대는
행복하게 살 것이다. 수행승이여.!
마음이 실로 의지처이고
마음이 실로 자신의 갈 길이다.
그러나 마음을 제어하라.
상인이 좋은 말을 제어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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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하나만 바꾸어 보았는데요.
불교의 모든 내용은 이렇게 마음 이야기랍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을 부처님에게 더 들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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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에 보내드릴 선문염송 110편인데요.♡
뜻을 아시는 분들은 요점만 간단히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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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10편)
20210703
6조 혜능 대사가 인종법사에 회상에 있을 때에
두 중이 바람과 번을 보고 다투는 것을 보았는데
하나는 "바람이 움직인다" 하고 "하나는 번이 움직인다" 하였다.
이에 욕조가 말하되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번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하니 두 중이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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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튜브 동영상 내용이랍니다.
제목: 서암 대종사 - 01 선사상의 진수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X2zpz_6k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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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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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카페를 둘러보시면 아시겠지만 올려주신 글은 우리 카페 분위기에는 너무 길고 복잡하고 어렵고, 그래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글을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햇빛엽서 합장 ()
아.!
우리 아이가 모르고 올렸나보내요.
송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