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우재 미카엘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야 60,1-6 에페소 3,2.3ㄴ.5-6 마태오 2,1-12
“엎드려 경배하였다.”
유다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메시아 임금이 오시어 다윗 왕국을 다시 일으켜
주기를 고대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아주 이상합니다.
메시아가 탄생했는데 유다인들은 꿈적하지 않고 이방인들만 아기 예수님을 찾아 경배 합니다.
왜 그럴까요?
동방 박사들은 유다인들의 임금이 탄생했으니 예루살렘에 계시겠거니, 유다 백성들이
환호하고 있겠거니 했는데 예상과 달리 예루살렘은 너무 조용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하고 공개적으로 물었습니다.
헤로데는 당시 유다 지역을 다스린 임금이었지만 “유다인들의 임금”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왕좌를 잃을까 위협감을 느꼈고 새로 태어난 메시아를 없애버리려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위치를 추적했습니다.
그들은 백성의 지도자였고, 성경을 가르친 이들이었고,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린 사람들
이었습니다. 특히 율법 학자들은 학식이 가장 뛰어난 사람답게 예언서를 근거로
“유다 베들레헴입니다.”하고 곧바로 답을 내놓았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이를 듣고 베들레헴을 향해 곧장 길을 떠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런데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어떻게 했나요? 이들도 메시아 임금이 탄생한 것을 알았고,
그 위치를 알아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먼저 메시아를 경배하러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기만 했습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경배하라고
말한 이들이 실제로는 주님을 찾지 않은 겁니다.
날마다 율법서를 공부하며 주님의 가르침을 가장 잘 알던 이들이 실제로는 주님께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겁니다. 그들은 헤로데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헤로데의 품이, 그가 제공하는 돈과 힘의 그늘이 너무나 아늑했습니다.
겉으로는 주님을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영광과 세상의 편안함을 추구했던 겁니다.
오늘 복음은 당시 유다교를 첨예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메시아를 찾아 경배했건만, 유다교 지도자들은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 것만 찾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기 잘되는 것만 바랄 뿐 주님을 찾고 따르는 데는 그다지 관심 없는 현세대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입으로만 주님, 주님 해서는 안 됩니다. 동방 박사들처럼 자신을 주님께 맡겨드리며
“엎드려 경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산교구 노우재 미카엘 신부
2025년 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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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식 요셉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야 60,1-6 에페소 3,2.3ㄴ.5-6 마태오 2,1-12
경로를 이탈하여 재검색합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고도 길을 잘못 들어설 때가 있습니다.
초행길이거나 잘 모르는 길을 갈 때 종종 그렇습니다. 잠깐 시간과 거리가 늘어나긴 하지만
내비게이션은 친절히 목적지를 향한 다른 경로를 알려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동방박사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 떠납니다. 복음을 묵상하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동방박사와 헤로데의 만남은 꼭 필요했을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별 빛을 따라 먼 거리를 걸어온 동방박사지만 처음 만나게 된 것은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님이 아니라 헤로데라는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적잖이 당황했을 것입니다.
‘분명 맞게 찾아온 것 같은 데,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인가?’
그곳에 있던 헤로데와 이스라엘 사람들도 동방박사들처럼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늘에서 그들을 비추고 있는
별 빛입니다. 별빛은 목적지를 알고 있고 그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빛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그 빛을 따라간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더없이 기뻐하며 경배합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예수님을 따라나선 이 길 위에서 때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많은 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또 거짓된 빛들이 나를 유혹하기도 합니다.
주변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나의 시야는 좁아지고 삶의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럴 때일 수록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마음속 주님이 주시는 별빛을 잘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그 빛은 내가 헤매고 있는 그곳에서 변함없이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비춰주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경로를 이탈할 수 있지만 목적지를 향한 빛은 변하지 않습니다.
빛을 끝까지 따라간 동방박사들이 마침내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빛을 따라 걸으며
반드시 그분을 만나리라는 희망 속에 살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이천 년 전 시작된 빛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빛을 세상에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마태 2,10)
춘천교구 김만식 요셉 신부
2025년 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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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철 라파엘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야 60,1-6 에페소 3,2.3ㄴ.5-6 마태오 2,1-12
거짓으로 선하신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던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만민에게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인류의 구세주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5~6세기경부터 몇몇 지역 교회는 동방 박사들의 이름을
카스퍼(Casper)·멜키오르(Melchior)·발타사르(Balthasar)라고 전합니다.
동방의 박사는 세상 모든 나라를 상징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고, 그들이 가져온 예물도
신학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담습니다.
황금은 왕에 대한 고귀한 예물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유일한 왕이심을 나타내는 것이고,
유향은 성전에서 제사를 올릴 때 하느님께 경배 드리며 태우던 향료로 기도를 상징하여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몰약은 장례 때 사용하여 죽음을 상징하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수난과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만민의 왕이시며, 메시아이시고,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구세주이심을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에 의하면 동방 박사들이 별을 따라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로데는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라고 부탁합니다.
헤로데의 이 말이 진실일까요? 아닙니다. 거짓입니다. 헤로데는 유다인에게 새로운 왕이 탄생하면
자신의 왕권이 위협받으리라는 두려움에 주님의 탄생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헤로데의 의도는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났다는 아기를 없애려는 데 있음이 오늘
복음 이후(마태 2,13?23)의 그의 잔인한 행위를 통해 드러납니다.
헤로데는 아기 예수님을 결코 만나지 못합니다. 거짓으로는 선하신 하느님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병원에서 원목 사제로 지냈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 병실에 환자 방문을 다니면
고통스러워하는 교우들이 많이 기다립니다.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고통 앞에 힘들어하는 가족들과도 함께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고통 앞에 주위 사람들이 해주는 위로에는 거짓말이 많습니다.
나을 것이라고, 괜찮아질 것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합니다.
심지어는 임종 직전까지도 거짓 위로를 합니다. 결국엔 서로 사랑을 정리하고 하느님 자비에
의탁하며 마지막을 잘 준비할 기회도 못 갖는 경우가 생깁니다.
저는 언제나 교우분들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선의의 거짓말도 거짓입니다.
거짓은 결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밝게 만들 수 없습니다. 신앙인은 늘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물론 상대가 아직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에는 잠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진리 안에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늘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만이 세상의 참된 주인이시요 임금이심을 기억하며,
그분 뜻에 따라 세상이 다스려지고, 각자 자리에서 주님 뜻이 실현되도록 진실로써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봉헌할 예물은 사랑의 실천인 황금과 기도의 향기로운 유향과
고통 가운데에서도 참고 치유받는 인내의 몰약입니다.
우리 모두 거짓 없이 진실과 참됨으로 주님께 경배드리러 나아갑시다.
서울대교구 이계철 라파엘 신부
2025년 1월 5일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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