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올렸던 잊혀진 글입니다.
태평성대님 요청이 있어 제 러브스토리로 되살려 놓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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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회사에 출근하면 내 뒤통수에 이런 말이 들렸었다.
"저 놈이 결혼하려고 취직한 바로 그 넘이야."
늦게 군에 입대해서 제대를 하니 나이 스물일곱, 당면과제는 취업이었다.
제대하던 날, 빳빳한 예비군복을 입고 사랑하던 여자를 데리고 곧바로 태종대를 찾아갔다.
"기다려라 세상아!!! 내가 간다~~!!!"
호기롭게 외치고 돌아섰지만, 곧 당면한 취업은 산처럼 높은 벽이 되었다.
지방대학 졸업에 성적도 별로 우수하지 못했던 나는 날이 갈수록 그 전쟁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는 동안, 복학해서 학업을 계속했던 친구들은 하나 둘, 추천서를 받아 면접을 보고, 취업이 되면 승리자의 모습으로 맥주 한잔씩 거나하게 사고는 내 곁을 떠나갔다.
그 친구들이 첫 월급 기념으로 기쁘게 고향으로 달려와 그간의 사정을 무용담처럼 떠벌릴 때, 선보러 다닌다고 호텔 커피숍으로 떠돌 때, 나는 늘 쓴웃음 지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이 무거웠었다.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보다도, 잔소리보다도, 내가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바로 서클 후배로 만나 내가 군 복무를 하는 내내 일편단심으로 기다리고, 제대 후에는 또 내 취직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내 사랑하는 여자 보기가 무엇보다 민망하고 고통스러웠다.
세상의 모든 잘난 남자 다 포기하고, 나를 선택한 그 여자. 세상 누구보다 내가 강함을 믿고, 기다리고 격려해 준 그 여자에게 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졸업 후 군에 다녀온 사람은 취업 추천 서열 맨 끝으로 밀리니 기대할 바가 없고, 학교 총무과에서는 자주 찾는 내 얼굴을 익혔는지 반갑게 맞아주긴 했지만, 나는 갈 때마다 풀 죽은 얼굴로 성적증명서랑 졸업증명서를 각 열 통씩 힘없이 떼오곤 했다.
용돈을 타기가 민망해서 데이트할 때는 늘 그 여자의 주머니를 축냈다. 말라비틀어진 자존심 끝자락을 붙들고 늘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면 내가 벌어서 다 갚아줄게."
그녀는 그 말을 위안 삼아 늘 지갑을 열었다.
그렇게 제대를 한 후 열한 달이 지나고 나는 또 취업서류를 보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적과 졸업증명서만으로는 나를 알릴 수가 없다. 나를 한번 제대로 알려보자.'
마지막 열 번째의 서류를 봉투에 넣다가 나는 서류전형에는 없는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저는 지금까지 149통의 취업신청 서류를 보냈습니다. 아직까지 한 번도 면접 보라는 답장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지방대학이라서, 성적이 나쁘다고, 다른 회사들처럼 제 서류를 또 휴지통에 버리신다면 귀사는 귀사에 꼭 필요할지 모르는 한 사람을 잃는 손해를 볼지도 모릅니다. 저를 뽑아주신다면 저는... 이러저러한... 이득을 꼭 돌려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부디 한 번만이라도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저에게 주시면 깊이 감사하겠습니다.‘
어쩌고 하면서 내 소개를 두 장에 걸쳐 가득 채우고는 봉투에 넣고 주소를 적었다.
그 회사의 유명한 제약회사의 계열회사로 의료장비를 수입오퍼하는 회사였다.
며칠 후 답장이 왔다. 선명하게 내 이름이 적힌.
모일모시 서울 강남의 본사에서 면접이 있으니 올라오라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서울에 먼저 취직해 있는 친구에게 간다며, 체형이 나보다 적은 형의 양복과 목이 좁은 와이셔츠를 입고 벌어진 목을 감추느라 넥타이 꽉 동여맨 채, 길 떠나는 막내아들을 어머니는 이상한 듯 바라보셨다.
그녀에게도 서울 친구 만나러 간다며 둘러대고 길을 떠났다.
친구 하숙집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그곳을 찾아갔다.
그때가 5월. ROTC 장교들이 대거 취업 준비를 할 시즌. 면접장에는 머리가 아직 채 길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1500명 원서제출에 50명이 면접인원으로 뽑혔고 그중에서 6명만 뽑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렇다면 나는 분명히 빠져야 되는데... 이게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오전에 필기시험을 치르고 점심시간이 시작될 무렵, 누군가 나를 찾았다.
"XX 씨! XX 씨 왔어요?"
서울에서 나를 알 사람이 없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사람 앞에 섰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전데요...???"
"시험 잘 봤어요?"
"예... 그냥 그런대로..."
"오전 시험은 별 거 아니에요. 오후에 면접을 잘 보세요. 자기소개서에 쓴 대로 말하면 될 거예요."
그리고 그분은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두고 웃으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아~ 이 분이 내가 썼던 자기소개서를 보셨구나...'
오후 면접이 시작되었다.
난 어깨가 좁은 양복의 단추를 끼우고, 목이 좁은 와이셔츠를 넥타이로 단단히 동여맸다.
한 번에 아홉 명씩 들어갔다 나오고 나도 드디어 다음 차례로 면접실 앞에 줄 섰다. 줄번호 5번 맨 가운데였다.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던 순간, 이게 웬일???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한국말이었다.
오퍼상이라 분명히 영어로 면접 보리라 생각하고 며칠 동안을 고민하면서 영어로 내 소개와 면접 준비를 해왔는데, 안에서는 분명히 한국말로, 그것도 서울말로 자기소개들을 또박또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고 머릿속이 텅 비기 시작했다. 우리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순간은 살며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드디어 우리 줄 차례.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룹 회장이 중간에 앉았고 양쪽으로 두 명씩 다섯 명의 면접관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내 자리는 한가운데, 회장과 마주 보는 자리였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하고 1번부터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모두 서울말로 유창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
저는... 하고 시작하는데 꽉 동여맨 넥타이가 문제였다. 목소리가 꺽꺽 잠겨버린 것이다. 쇳소리가 나서 큼큼 기침을 했더니 회장 얼굴이 좀 불쾌한 얼굴로 바뀌었고, 내 얼굴은 감홍시처럼 붉게 변해버렸다.
"대구에서 자라고 대구에서 모든 공부를 마쳤습니다..." 할 즈음 지방대학 출신임을 확인한 회장은 내 서류를 옆에 앉은 사장에게로 넘겨 버렸다. 그 당황한 순간에도 '저 서류를 회장이 다시 집어오지 않으면 나는 떨어진다' 이런 생각이 들었고, 오기가 발동됐다.
'그래 까짓 거 도전적으로 해보자.'
"저는 보시다시피 지방대학에다가 성적도 우수하지 않습니다."
또박또박 끊어가며 큰소리로 말했더니, 회장이 저 놈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은지 쳐다봤다.
"그렇지만 저는 오늘 여기 면접 보러 온 누구보다도 이 회사에 더 필요한 사람일 겁니다"
이젠 사투리나 억양에도 더 이상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회장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저는 이 회사에 꼭 필요한 세 가지를 더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둘째!.... 셋째!.... 제가 앞에서 말한 세 가지가 이 회사에 필요하지 않으시면 저를 뽑지 마십시오. 면접 볼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나도 회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회장이 옆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내 서류를 향해 턱짓을 했다. 회장이 다시 내 서류를 잡고 자세히 훑어보았다.
서울에서 돌아온 후 발표를 기다리는 며칠은 참 견디기 힘들었다.
5일 후, 점심시간에 나를 찾아왔던 그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XX 씨. 축하합니다. ㅎㅎㅎㅎ"
"예??? 제가 합격했습니까?"
"네. 얼른 서류 준비해서 올라오세요. 서울서 봅시다."
고시에 합격한 것도 아닌데, 내 인생에서 첫아기를 얻었을 때와 비견되는 아주 행복한 순간이었다.
총무부 인사과의 이 XX 주임. 내 인생의 길을 열어 주신 분.
나중에 입사한 후, 그분 말씀이 정말 엄청난 서류더미 속에서 성적 불문하고 지방대학 출신자는 무조건 제외 방침이라 서류개봉 -> 지방대학 확인 -> 휴지통 이런 순으로 바삐 움직이던 중에 내 서류를 잡았고 휴지통에 던지려는 찰나 그 소개서가 보이더란다. 무료한 반복작업 중에 그 소개서가 재밌을 것 같아 읽어보셨단다. 읽은 후 왠지 공감이 가서 따로 서류를 빼두었다가 사장에게 면접 기회라도 한번 주고 싶다고 보고하고 면접통지를 보냈단다. 면접 날 내가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던 이주임은 나를 찾았고 나를 본 후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었단다.
참으로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얼른 시내에서 사업을 하던 큰누나에게 달려갔다. 취직된 사실을 알리고 용돈을 크게 타냈다.
오래 나를 기다려준 그녀가 근무하던 곳에 가서 그녀를 기다렸다.
퇴근시간이 되어서 그녀가 나왔고, 기다리던 날 보고는 반겼다.
"서울 친구들 잘 만나고 왔어요?"
"응."
"근데...?" 왜 와서 기다렸냐는 말.
"오늘 내가 용돈 타서 한 턱 내려고..."
시내에 가장 전망 좋은 레스토랑으로 갔다. 평소에는 절대로 먹지 않던 칼로 써는 음식을 주문하고 뜸을 들였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그런 날 이상스레 쳐다보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 XX상사란 그런대로 괜찮은 회사에 취직됐어."
"????"
그녀는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해 주자, 곧 환하게 웃다가 잠시 후 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더니 후루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 눈앞도 뿌해지기 시작했고...
둘이 손을 마주 잡고 한참을 그런 상태로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후 3개월 뒤. 수습사원 딱지를 떼자마자 우린 결혼을 했다.
그랬더니, 회사에 출근하면 직장 동료들이 뒤에서 한동안 그렇게 수군거렸다.
"저 놈이 결혼하려고 취직한 바로 그 넘이라며."
그 면접이 나의 제대로 된 첫 면접이자 인생 마지막 면접이었다.
첫댓글 아주 리얼하고 극적인 취업기와 결혼기 잘 읽었습니다
저는 재학중 고시공부를 한탓인지 취직은 비교적 수월하게
했는데 승진시험에 수도없이 떨어져서 동기를 상사로
여러차례 모셨습니다
사회에서든 군에서든 동기를 상사로 모시는 일은 참 힘들 것 같습니다.
저는 일찍 친구와 사업을 시작해서 그런 힘든 일은 다행히 겪지 않고 잘 지나왔습니다.
태평성대의 요청?
마음자리님 고맙습니당
마음자리님의 150 번의 이력서 쓰기?
나 태평성대의 100 번의 이력서 쓰기?
마음자리님의 제대후 11개월 만의 취직?
태평성대의 제대후 10 개월 만의 취직 ?
두사람 다 첫 취업의 아픔은 비슷했지만
나는 제대할 때까지 나를 기다려준 여성이 없었습니다
제대후 취업 하기전까지? 소개팅녀?
무직자인 나와 교제가 오래 갈수가 없었습니다
취업을 하고나서의 소개팅녀?
나는 의무적으로 중동을 가야하는데?
당연히 기다려 주지도 않고 도망가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선을 보고 아내와 결혼 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 있다가 제대할때 까지 마음자리님을 기다려주고
무직이었던 11개월 동안을 더 기다려준 사모님은
도데체가 어떤 지고지순한 여인이란 말 입니까?
나에게는 왜 그런 여인이 없었단 말 입니까?
그래서 마음자리님의 러브스토리를 듣고 싶었습니당
하긴 나도 첫 직장을 그만두고 4개월의 백수 생활을 하는 동안
선을 보고 교제한 아내가 도망을 안갑디다
그게 결혼을 한 계기가 되었지용
사실은 마음자리님과 사모님의 첫 만남부터 결혼 까지의 러브 스토리를 듣고 싶었습니당
그거 다시 부탁드립니당
위와 같은 내용의 꼬리글을 달고 나니 시원함을 느낍니당
마음자리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빕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
방금 마음자리님의 글 라스트 콘서트 비기닝 콘서트 라는 글을 또 읽었습니다만
보충 스토리를 부탁 드립니당
충성
!@#$%^&*()
오래 교제하다가 취업을 한분들은 취업하자마자 결혼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디다
충성
글과 댓글 주고 받으면서 태평성대님과
제가 첫 취업 시에 아주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ㅎ
남녀가 만나고 부부가 되는 인연은
그 사연들이 다 달라도 그 뿌리에는
서로의 믿음이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태평성대님은 늘 가정과 가치관에 모범을 보이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옛글 하나 살렸습니다.
감사합니다. 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율산과 원은 기억하는데 대봉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홍세화씨도 몰랐는데, 말씀하셔서
찾아보니 그분이 쓴 책 제목은
본 기억이 났습니다.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그분의 이력을 읽어보니 초기 순수 진보자유주의 사상을 가지셨던 분 같습니다.
세상이 급변하던 시기라 다들 갈피를 잡기가 어려운 시대였고 여러 위기도 있었지만 잘 이겨내고 현재의 수준까지 잘 이끌어 왔는데, 현재는 그간의 성과를 지켜낼 국민 공동의 가치관이 너무 잘게 분열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곧 뭔가 미래로 눈을 돌릴,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할 멋진 가치관이 깃발로 우뚝 서기를 소망합니다.
당연히 결혼하려면 직장을 취직해야죠...그당시 마음님 심정은 대다수 졸업반 학생들의 심정하고 다를바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력서 쓰고 명함판사진부치고 서류제출하고 필기시험보고 면접보던 그때가 좋았습니다.
그 당시 공대 출신자들은 추천서를 받아 크게 힘들이지 않고 취직하는 분위기였는데... ㅎㅎ 저는 졸업 후 군에를 갔고 다녀오니 복학생들 위주로 추천서가 나가서 제 순서에 돌아올 추천서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운이 좋아 취업이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었지요.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서 전심 전력,
불굴의 대구 사나이입니다.
마음자리님은 따뜻한 가정과
순정녀를 만난 것이 복 중의 복 입니다.
맘자리님의 앞날에도,
변함 없는 행운과 좋은 날들이
건강과 함께 이어지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때는,
지방대학 출신이 각 직장에서
성실하다고 인정 받은 때도 있었습니다.^^
소위 서울 출신의 일류라는 대학도
실력은 어떤지 몰라도, 뺀질거리며
더 좋은 곳을 넘겨 보는 사람이 있고,
자신 보다 더 잘난 사람과는 화합하지 못해
스카웃이라는 명목으로...^^
필요없이 사족을 달았습니다.^^
지방출신들 힘내라고...
돌아보니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행운들이 따라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일도 사람도 사랑까지도. ㅎ
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콩꽃 요즘도 그런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방대학들이 외국 특히 중국 유학생들
없으면 운영이 안 될 지경이라더군요.
다행히 큰 산업체들이 지방에 많이
있다보니 이공계 출신자들은 그나마
취업 기회가 열려 있는 것 같은데..
인문계통과 기초과학 계통은 그때보다
더 취업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지방출신들이 힘낼 수 있는 지혜로운
정책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누나에게 달려갈때
속으로 얼마나 양양했을까요
저는 그대목에서 가족의 사랑을 생각해봅니다.
네. 저에겐 참 든든한 큰누나였습니다.
자랑도 마음대로, 고민도 다 받아주고..
오호라 님의 자제분의 어머님 되시는 분이 눈이 작으신 편이시군요.
네 저도 눈이 좀 작은 편의 여성들을 선호합니다만 왠걸...제 마눌은 눈이 큽니다. 쩝...하하하..
소상한 취업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는 커서 왕방울이고
아내는 가늘고 깁니다. ㅎㅎ
@마음자리 뭐 간단히...또는 우리같은 점문가의 설명으로 ,,,
북방계 미인이란 그말씀이구만유~~~
쌍카풀진 큰 눈의 미인형은 우린 별루~~~ㅎㅎㅎㅎ
청년시절의 마음자리님을 보는듯 잘 읽었습니다 .
무엇이든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진리처럼
취직도 되고 결혼도 하고~ 좋습니다
살며 가장 간절한 한 때였습니다. ㅎ
가정을 이루고
좋은 배우자 만났으니
그만큼 용기 있는 노력이
지금 행복을 누리는 것이겠네요.
박수박수 드립니다.
많이 많이 행복만 가득하시기를
늘 기원 드립니다.
저런 우여곡절의 일과 인연들로
제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났고,
오늘 수필방 인연으로 이어졌으니
참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신의 은총이라 하나 봅니다.
그 당시 상사는 꿈에 직장였는데요.
공부 잘한다는 동창들만 들어갔었는데.
맘자리 님은 그때도 글솜씨가 좋아 자소서가
대박을 쳤어요^^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와이프와의 사랑에
뭉클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늘 행복한 모습이 넘나
좋아보여요.
어떤 작은 인연이 하나 닿는 것도기적
같은데 삶의 매 순간들이 기적이니...
기적 속에 빠져 살며 기적이 일상인 줄
알며 사는 것이 삶인가 싶어요. ㅎ
서로의 진심이 통하여 입사도 하고 결혼도 하셨으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군요.
마음자리님. 앞으로도 화목한 가정 잘 이루어가시길 바랍니다.
요즘도 그 시절의 이야기를 가끔 나눕니다.
서로 속이 타던 시절이었지요.
마음자리 님 러브스토리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두 분 다 넘 순수하시고요.
이렇게 글솜씨가 좋으시니
자소서를 얼마나 멋있게 쓰셨겠어요.ㅎ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날이 너무 덥다가 갑자기 남쪽에
비가 많이 온다하고...
이베리아님, 건강 괜찮으시죠?
그당시 덕산 레스토랑이 제일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ㅎㅎ
@마음자리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