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신묘년조 기사는 광개토대왕릉비에 나와있는 일본 관련 기록으로서, 일본인들이 임나일본부
를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입니다. 솔직히 이 문제 때문에 한국 역사학자들과 일본 역사학자
들이 끊임없이 다투었죠.
일단 광개토대왕릉비에 나오있는 신묘년조 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왜(일본)가 신묘년(391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__ 신라를 정복하고 신하로 삼았다." 그 뒷부
분은 그래서 광개토대왕이 군사 5만을 이끌고 남부로 내려가 왜군을 격파하여 내쫓는다는 내용
입니다.(바로 이것 때문에 금관가야는 몰락하고 맙니다. 이 시기 이전만 해도 신라보다 금관가야
[김해]가 훨씬 더 강력한 국가였거든요. 온갖 철제 무기를 만들어내닌 나라니...일본서기에서도
금관가야를 "소나라" 즉 "쇠의 나라"라고 부를만큰 제철기술이 발달한 나라였고 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광개토대왕의 공격으로 금관가야는 완전히 초토화되고 맙니다. 그
바람에 약화된 금관가야와 다른 가야국가들은 신라에게 먹히고 말죠)
이 기록에 따른다면 391년 당시에 백제는 왜군에게 지배되고 있었고, 그래서 고구려 광개토대왕
은 한반도 남부로 내려가서 왜군을 내쫓았다는 말이 됩니다. 즉 그 이전까지는 일본이 한반도 남
부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이상한 이야기로 흘러가게 됩니다. 처음 일본인들은 광개토대왕릉비를
발견했을 때, 아주 좋아 미치는줄 알았답니다.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튀어나왔으
니까요.(하여튼 일본놈들은......)
그럼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들이 발생했고, 지금도 논
쟁 중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주장이 바로 "조작설"이죠. 즉 광개토대왕릉비를 처음 발견
한 게 사쿠오 라는 일본군 장교였는데, 이 사람이 자기나라의 영광을 위해 광개토대왕릉비의 신
묘년조 기사 부분을 석회를 발라 글자를 고쳐 조작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매우 널리 퍼
져 있고, 여러분들도 많이 들으셨겠습니다. 이건 주로 북한학계의 주장입니다.
또다른 주장은 광개토대왕릉비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입니다. 바른 해석은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가 왜(일본)를 격파하였다. 그런데 백제가 [왜놈과 서로 결탁하여 고구려의 속국
인] 신라를 침략하여 신하로 삼았다. 그래서 대왕은 군사를 이끌고 왜를 격파하여~~"라는 겁니
다. 그밖에도 여러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 쪽이 맞다고 봅니다.
최근에 나온 연구결과로는 광개토대왕릉비에 석회를 바른 건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이었다고
합니다.광개토대왕릉비의 글자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많은 중국인들이 탁본(종이에다 비
석의 글자를 뜨는 것)해갔는데, 광개토대왕릉비는 표면이 좀 거칠죠. 그래서 탁본이 잘 되라고
중국놈들이 표면에다가 석회를 발랐는데, 그게 바로 신묘년조 부분이었다는....... 즉 일본인들이
한 게 아니라 중국인들이 했다는 거죠. 즉 일본인들의 조작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건 왕건군
이라는 중국인 학자가 직접 광개토대왕릉비를 조사하고 그 주위에 살던 사람들과 계속 인터뷰함
으로써 얻은 결론입니다.
그래서 저는 광개토대왕릉비의 해석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가
왜(일본)를 격파하였다. 그런데 백제가 [왜놈과 서로 결탁하여 고구려의 속국인] 신라를 침략하
여 신하로 삼았다. 그래서 대왕은 군사를 이끌고 왜를 격파하여~~" 라는게 바른 해석일 겁니다.
사실 백제는 당시 일본을 거의 속국처럼 부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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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신묘년조 기사 내용입니다.
cre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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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30 14:41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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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약간정정.... 광개토왕의 남하는 가야가 타킷이었습니다. 백제 한성을 쳐서 무너트리고 백제를 퇴각시킨왕은 장수왕입니다. 근대 저는 무언가 건는 왔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다만 저는 일본학계의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고대 한반도와 열도를 지금의 한국과 일본 처럼 칼로 두부쓸듯이 딱 구분한다는 것도 좀 모순이죠. 당시 열도도 세력 분포가 복잡했습니다.
저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큐슈지역에 있던 존재들을 의심합니다. 광개토왕 비문의 그 왜라는 존재가 그들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단하면 안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소설이 됩니다. 오늘날의 역사란것도 어찌보면 근대 이후 정치적으로 재단된듯한 흔적이 많죠.
사실 그당시에 한국과 일본처럼 한반도와 열도가 특별이 구분이 되어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마치 고대 발칸반도와 소아시아와 비슷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략 종합을 해보면 당시 신라와 주변의 타세력들 사이에 반목이 있었습니다. 그런 탓에 일종의 다구리를 당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라도 당시엔 그일대의 작은 소국들 중하나였을 뿐입니다. 어쩌면 가야와 신라를 따로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너로 몰린 신라는 결국 고구려에 SOS를 쳤고 광개토왕이 이에 화답을 한것이죠.
한국과 일본을 구분한다는게 모순입죠......일본이 한국사에서 갈려나간지는 백제 멸망후기때문에..... 사실...응신천황의 도래설도 있고하니....한국고대사 많큼 수 많은 난제가 있는 나라가 있을찌..
아..... 제가 실수했네요. 맞습니다. 리틀솔져님 말씀대로 광개토 대왕은 가야로 내려가는 거죠.
한일사는 백강전투이전에는 구분할 수 없는 것이죠. 실상.(학자들의 인위적 구분이 관념을 지배해서 그렇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