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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1994/06/07 00:00
*쉽다고 무분별한 사용은 곤란 문자의 변천과정을 보면 상형문자에서
음절문자, 음소문자로 변화하는 등 배우고 사용하기 쉬운 형태로 바뀌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문 알파벳같은 음소문자가 누구에게나
가장 배우기 쉬운 문자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음소라는 단위가
다분히 추상적인 것이어서 배울 글자의 수는 적어도 원리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있는 것이다. 70년대초 미국에서 국
민학교 상급생이 되도록 단어 30개도 읽지 못해 지진아로 분류되던 아
동들에게 글라이트맨과 로진이라는 심리학자가 한자를 성공적으로 가르쳐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초등교육을 마친 학생의 20%가 문맹이라는 미
국, 영국, 캐나다에 비해 한국, 중국, 일본의 경우 같은 그룹의 문
맹률이 거의 0에 가깝다고 한다. 이렇게 현저한 문맹률의 차이를 교육
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보다는 동양 삼국이 모두 음소문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데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한글은 음소문자이면서도 모아쓰기를
하기 때문에 음절문자의 특성도 갖고 있다). 문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자같은 복잡한 문자가 처음에는 배우기 어려워도 한번 익힌 후에는
다른 문자와 구별해내기가 오히려 쉽다고 한다. 물론 분별하기 쉬운
것과 쉽게 쓸 수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읽을 수는 있어도 쓰
기가 쉽지 않은 한자 때문에 애먹은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것
이다. 그래서 한글 세대는 한자 사용을 기피해 왔는데 요즘 한글세대
컴퓨터 사용자들 가운데 한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 대부분의 워드 프로세서가 한글을 한자로 쉽게 변환해 주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으로 한글로 쓰는 말까지, 바꿀
수 있는 단어는 모조리 한자로 바꿔 놓아 한자에 익숙한 사람조차 읽
기 힘든 문서들도 어렵지않게 눈에 띈다. 우리같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
는 사람들에게 사용자가 한자 변환 비율을 정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문
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문서는 국장님이 보실 것이니까 한자의
비율을 30% 수준으로", "이 문서는 과장님한테 가는 거니 10%
정도로 자동으로 바꿔달라"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에 대한 주문도 있다
. 현재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문서의 한자를 한글로 바꿔 보여달라는
것이 그 예이다. 자신이 공들여 만든 문서에 들어있는 한자를 읽기가
벅차니 편집하는 동안은 한글로 보여 줬다가 인쇄할 때 자동으로 한자
로 돌아가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국제화를 위해 일
상 생활에서 한자를 혼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자라는 표의문자가 갖는 특성때문에 이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러가지 이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결국 한자를 사용하
고 안하는 것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결정해야 할 것이다. 컴퓨터가 무
분별한 한자 사용을 확산시키는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