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강성․비타협적이면 신자유주의 세력이 집권한다? 경험적으로 이 명제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오늘 발견했다. 최장집 교수의 서평을 읽다가 우연찮게 알게된 학자인데, 현재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사회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인 인도 출신 미국 사회학자
모니카 프라사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최근 출근된 '자유시장의 정치학: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에 있어 신자유주의 경제의 흥기'(The Politics of Free Markets: The Rise of Neoliberal Economic Policies in Britain, France, Germany, and the United State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6.)에서 독일과 프랑스와 달리 미국과 영국이 신자유주의적 자유시장 체제를 채택하게 된 것은 노동운동이 약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 사회가 진보적이지 않았다거나 친시장적 문화가 강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자유시장 체제를 다른 국가보다 빨리 흡수하게 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1960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 각 국가의 조세자료와 산업정책, 복지정책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그의 연구가 내린 결론을 최장집 교수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녀는 우선 1970년대 중반 이전까지 미국과 영국의 조세정책은 진보적이었으며 산업정책은 기업에 적대적이었고 복지체제는 재분배적이었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또한 대처의 신자유주의적 급진개혁이 가능할 수 있었던 영국에서 노동 운동은 약했던 것이 아니라, 1970년대 동안 파업을 통해 정부를 붕괴시킬 정도로 강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전후 사회경제적 전환과정에서 노동운동은 중산층과 연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따라서 대부분의 투표자들은 노동자 계급과 분리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투표자들을 소외시켰고 또 소외되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수당은 신자유주의적으로 급진화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경우 강한 노동운동의 조건은 신자유주의적 급진화를 가속시키는 효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녀가 볼 때, 두 나라 모두 전후 정치사회 구조와 국민경제 성장과정에 있어서 좌와 우, 노동과 자본이 공존의 틀 위에서 파트너로서가 아니라 적대적 경쟁관계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두 나라 모두에서 전후 사회경제적 전환정책이 좌파 내지 진보적 정부들에 의해 수행된 바 있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투표자를 두 적대적 분획의 서로 다른 반대쪽으로 움직이게 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자들은 투표자들의 급진적 성향을 알고 그 이점을 활용했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연구결과다. 투표자들과 분리된 강력한 노동운동 세력은 결국 정책의 재구성 여부를 판가름하게 되는 주요한 선거에서 노동 대변세력의 패배를 불러오고, 이는 다시 노동 정책의 퇴보라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대중 배타적인 노동운동 세력이 다수의 투표자들과 괴리됨으로써, 다수의 투표자들이 반노동적․친시장적 후보들에게 표를 나눠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007년 대선을 전망해보자. 다수의 유권자들 사이에서 노동운동 세력은 ‘파업만 하는 귀족노조’라는 냉소적 상징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심지어 귀족노조와는 거리가 먼 비정규직 노조조차도 ‘파업만 일삼는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노동운동 세력이 대중들과의 접촉면을 넓히지 못하고 강성화함으로써 스스로를 고립화하고 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노동운동계의 가장 큰 투쟁 목표는 비정규직 철폐와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의 타도일 것이다. 하지만 프라사드에 의하면 이들이 이 두 구호를 더 강하게 소리 높여 외칠수록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지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문제는 이 딜레마를 풀지 못하면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친노동적 후보가 당선될 확률은 극히 낮을 것이다. 또한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질 것임은 분명하다.
타협에 대한 즉자적이고 본능적 반감을 벗어던지고, ‘타협=변절’로 여기는 투사적 운동에서 벗어날 때, 노동계가 바랐던 과제들이 하나둘씩 풀려갈 수 있지 않을까? 과연 노동운동 세력이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될까?
‘신념은 굳건하게 방법은 유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