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나는 이천 다산고 1학년에 재학중인 성 군이 사는 이천에서 그를 만나 강원도 횡성군으로 이동했다.
활동하기에 적당한 가을 날씨, 모든 게 풍족스러운 주변 여건,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얻은 알찬 지식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11시 다 돼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횡성 한우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성 군이 예전에 갔다던 섬강 상류를 피해 아래쪽으로 갔다.
비탈에 가득 핀 코스모스와 구절초 꽃들이 가는 바람결에도 허리를 하늘거리면서 우리를 환영해 주는 듯했다.
성 군은 도착하자마자 잽싸게 가슴장화를 입더니 족대(반두)와 뜰채를 들고 물가로 달려갔다.
이런 열정이 금년에 그를 전국 과학전람회에서 교육부장관상을 받게 한 것 같다.
처음 잡은 것은 얼룩동사리였다. 농촌의 순박한 청년같이 거뭇거뭇한 피부에 도톰하게 살 오른 게 순 우리의 민물고기가 틀림없음을 직감하게 했다.
이어 올라온 납자루는 제주도에서 반찬 젓갈로 먹던 자리돔과 같아 문득 내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했다.
30여 분 동안 성 군의 족대에는 돌고기, 참갈겨니, 돌상어, 쉬리가 차례로 올라왔다.
얼룩동사리, 붕어, 대륙종개가 1마리씩, 납자루 2마리, 밀어 3마리가 잡혔고, 참마자, 모래무지, 꺽지는 7마리 이내였다.
쉬리와 피라미는 20여 마리, 돌상어 30여 마리, 참갈겨니와 돌고기가 50여 마리씩 잡혔다.
쉬리가 많은 걸 보니 이곳 여울이 꽤나 청정한 듯했다.
쉬리는 여울의 지표 종으로서 쉬리가 많고 적음에 따라 그 여울이 얼마나 건강한지 나타내준다.
2년 전 겨울, 성 군과 같이 탐어 갔던 경기도 광주의 곤지암천에서 쉬리 떼를 보며 놀라워했던 적이 있다.
그곳은 공장 밀집 지대여서 물이 맑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성 군은 광주 시내로 흐르는 경안천과 더불어 곤지암천은 시에서 관리를 잘 하고 있다고 전문가처럼 진단을 내렸었다.
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섬강을 바라보자니 ‘섬강은 어드메요 치악산이 여기로구나’ 하고 읊조리던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중의 싯구 한 구절이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돌상어가 수십 마리 잡혔다고 해서 놀라워할 일은 아니다.
돌상어는 거친 바다 속을 누비며 대양의 제왕으로서 위용을 뽐내는 상어와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약육강식의 피라미드 하단에 위치하여 다른 생물의 먹잇감으로 제공되는 나약한 민물고기이다.
돌상어 치어는 속까지 내비친다 생각될 정도로 투명한 연분홍색 빛깔을 띠고 있으며 길이는 5cm 이하이다.
성어래야 10cm, 최고로 커야 13cm일 정도이다.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2급인 12종 중의 하나로서 주둥이가 상어 모양이면서 돌에 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일 따름이다.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에 따라 피부색을 달리한다.
오늘 우리한테 잡힌 물고기는 운수 사나우면서도 행운을 안은 편이리라.
잡았다가 관찰이 끝나면 바로 풀어주기 때문에 그 고기는 두 번 사는 기적과 함께 앞으로는 남에게 쉽게 잡혀서는 안 될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성 군은 묵납자루 잡는 데 집착했다.
한 마리도 보이지 않자 조금 위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한우 축제 행사 때문에 벌써 차량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읍 입구의 다리 옆에 주차한 채 기다렸고, 성 군 혼자 탐어에 나섰다.
그동안 나는 다리 옆에 세워진 운암정(雲巖亭)이라는 정자가 있는 숲 속에 앉아 성 군이 준비해 온 “우리나라의 민물고기”라는 책을 읽었다.
1시간 반쯤 후에 성군은 쭈구리와 돌상어를 30여 마리 잡아왔다.
쭈구리와 돌상어는 중상류 여울 지대에서 같이 산다. 쭈구리는 눈이 고양이 눈 같고, 돌상어보다 수염이 길다.
쭈구리는 잔돌 아래 살지만 돌상어는 물살 센 곳의 주먹돌 이상 되는 곳에 숨어 산다.
꺽지, 배가사리, 새코미꾸리가 그 안에 섞여 있었다. 환경에 따라 변색하는 꺽지는 덩치가 컸고, 새코미미꾸리는 꼭 미꾸라지 같이 생겼다.
민물고기 탐어에 빠져 우리는 제때 점심을 먹을 수 없었다.
성 군의 호들갑에 나는 그의 일정에 맞춰 밥이고 뭐고 없이 꽁무니를 따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오후 1시 반쯤, 우리는 원주시 문막읍의 간현으로 이동했다.
간현의 섬강에 이르자 나는 강가에서 그대로 퍼질러 누워 버렸다.
베개 삼아 벤 족대에서 나오는 비린내가 실바람에 실려 내 코언저리를 맴돈다.
자갈들이 맞춤형인 듯 평평하게 펼쳐져 있어서 고르게 하지 않았는데도 등을 편하게 해 준다.
하늘을 향해 사지를 뻗고 눈을 감자 세상의 온갖 시름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대학 시절, 강원도 신림 친구네 집에서 잠깐 기거할 때 이따금 타고 다녔던 중앙선의 청량리 행 열차 소리가 아름다웠던 옛 추억을 되살리게 해준다.
은은히 귓전을 후비는 물소리와 바람 소리에 취해 살짝 잠결에 빠졌다.
10분 잔 게 10시간 잔 것 같다.
새우망 작전은 실패했다.
성 군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그는 묵납자루를 빨리 잡기 위해 떡밥 넣은 새우망을 물속에 드리웠으나 시간이 지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실망한다.
뜰채로 물속을 몇 번 흔들어 봐도 허사였다.
여기서도 묵납자루를 잡지 못하자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잡았다!” 하는 탄성을 질러댄다.
그의 손에 잡혀 온 것은 10여 마리의 *****(개체 보호를 위해 무기명으로 표시함)였다.
50여 마리는 족히 보았다고 한다.
*****는 곧 보호종 2급에 선정될 것이고 뒤늦게 지정된 감이 있다며 어른스럽게 말한다.
“선생님은 오늘 참 귀한 것을 보셨어요. 어쩌면 이게 묵납자루보다 더 귀할 걸요.”
이 사실이 자기네 인터넷 카페에 노출되면 보호종 콜렉터들의 노림수에 의해 많은 개체수가 사라질 것이라며 걱정을 한다.
2시간 정도 탐어를 마치고, 이번엔 원주시 부론면으로 이동했다.
여주시 강천면과 경계인 지역인데, 골짜기가 외져서 탐어하기에 아주 쾌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 군은 이미 이곳을 20여 차례 탐어 다녀갔다고 했다.
주변엔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빛 벼의 벌판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임금님께 진상했다던 여주 이천의 쌀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누렇게 익은 벼 밭이 정말 황금벌판이 아닐까 착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늑한 강가 자갈밭에 앉아 민물고기 책 독서에 몰두했다.
성 군도 분위기에 취했는지 물 밑바닥에 가라앉은 납추를 끌며 족대를 이리저리 저어 다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강 상류를 보니 성 군은 물이 가슴께까지 찰 정도로 깊은 곳으로 들어가 물고기가 몰려 있는 주요 목 지점을 찾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민물고기 매니어들이 우리 것에 각별히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은은한 색상과 함께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주는 편안함, 그리고 각시붕어, 쉬리, 돌고기 등에서처럼 우리말 이름이 주는 정겨움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자연은 늘 그렇게 정이 있는 곳에서 만난다.
야생화와 새, 곤충 등에 붙여진 우리말 이름과 은은한 색상의 아름다움이 우리의 정서를 은연중에 지배하고 있다.
서양화의 화려함에 비해 동양화에서 느끼는 여유와 은은함은 그래서 더욱 우리 것인 양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견물생심이라고, 예쁜 민물고기를 가까이하다 보니 사육수조에 붕어마름이나 검정말 같은 수초를 넣고 민물고기 사육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이내 생각을 접는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은 자연 그대로 놔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산란철인 4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 탐어하는 것도 자제해야 할 것 같다.
심지어 우리의 물고기 생태를 교란시키는 베스나 블루길도 잡으면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져 올린 어종 또한 다양하다.
한강납줄개 비슷한 납지리, 미꾸라지 같은 꾹저구, 돌상어 닮은 꾸구리, 장어 새끼로 착각할 정도인 새코미꾸리와 납자루, 돌고기 등이 잡혔다.
큰 각시붕어와 작은 떡납줄갱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비교 사진을 찍으면서 오늘 탐어를 마무리했다.
진종일 온몸을 물고기와 함께했던 성 군과 함께 귀가할 때 내 차 안은 비린내로 진동했다.
이천에 도착하니 저녁 6시였다.
집 근처 다산고등학교 정문에는 성 군이 요번 전국 과학전람회에서 교육부장관상 받았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내년에는 더 열심히 해서 대통령상에 도전해 보겠다고 한다.
물고기 한가지에 집중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기 그지없다.
이천에서 분당으로 오는 3번 국도가 엄청 막혀 짜증났지만 오늘 얻은 기쁨으로 인해 모두 상쇄되는 듯했다.
다시 또 언제 이런 아름다운 시간이 올까.
미래의 어류 학자와 함께한 이번 탐어 여행의 추억은 좀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첫댓글 열정이 대단하시네요. 글도 잘 쓰시고... 수고하셨어요.
감사해요. 별 거 아닌데
나날이 익어가는 제비동자님의 글솜씨에 관심없었던 물고기 이야기를 한달음에 읽어버렸네요..오랜만에 들어와 멋있게 나이들어가시는 제비동자님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습니다. 글쓰는 재주가 있다는 것은 남을 행복하게 한다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서...성군도 정말 대단하고...
감사해요. 고마리님은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