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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 운서산 장육사 순례 慶北 永德 雲棲山 莊陸寺 巡禮
8월 22일 오후 3시 24분 보경사를 출발하여 57.3Km 떨어진 장육사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달리다 보니 장육사 조금 못미처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가 영덕군 창수면 신기리입니다. 4시 15분, 이곳에 도착했는데 아담한 반송정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전총무원장 지관(智冠) 큰 스님의 친필 현판이 현액되어 있으리라 상상했는데 아직 반송정은 공사 중에 있었습니 다. 이곳은 나옹선사의 탄생설화가 서려 있고 출가하실 때 꽂은 지팡이가 반송이 되었다는 전설이 얽혀 있는 곳입니다.
반송정(盤松亭)을 한창 짓는 중입니다.
반송정 풍경
반송정(盤松亭)과 나옹선사사적비(懶翁禪師事蹟碑) 영각(影閣)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나옹혜근왕사 영각(懶翁慧勤王師影閣)
나옹선사 (懶翁禪師 1320 ~ 1376)
나옹선사(懶翁禪師)는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왕사(王師)로 이름은 원혜(元慧)이며, 법명은 혜근(慧勤)이고, 호는 나옹(懶翁), 당호(堂號)는 강월헌(江月軒)입니다.
에서 출생하였습니다.
20세 때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어른들에게 물었으나, 아는 이가 없으므로 비통한 생각을 품고, 공덕산 묘적암에 가서 요연(了然) 스님에게 출가하였 습니다.
요연 : "여기에 온 것은 어떤 물건이냐?" 나옹 :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거니와 보려 하여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나이다. 어떻게 닦아야 하겠나이까?" 요연 : "나도 너와 같아서 알 수 없느니라. 다른 스님에게 가서 물어라."
스님은 그 곳을 떠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1344년 양주 회암사에서 4년 동안 좌선하여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중국 원나라 북경에서 지공선사(指空禪師)를 뵙고 깨달은 바 있었고, 2년 동안 공부하였습니다. 다시 남쪽으로 가서 평산처림(平山處林)에게서 법의 (法衣)와 불자(拂子)를 받았습니다.
복룡산에서 천암(千巖)의 선실에 들어 갔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선지식을 찾은 뒤에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지공의 법의(法衣)와 불자(拂子)를 전해 받았습니다. 법의와 불자를 전해 받는 다는 것을 법을 전해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1358년 귀국하여 가는 곳마다 법을 설했고, 1360년 오대산에 들어갔습니다. 공민왕이 청하여 내전에서 법요를 듣고, 신광사에 있게 하였습니다.
영각의 옆모습
1371년 왕사가 되었고 보제존자(普濟尊者)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뒤에 회암사(檜巖寺)를 크게 중건하고 문수회(文殊會)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회암사에 엄청나게 대중이 모이자 위기를 느낀 조정에서는 이것을 문제 삼아 왕이 밀양의 영원사(瑩源寺)로 가게 했는데 스님 들과 불자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이에 스님은
"부디 힘쓰고 힘쓰시오. 나 때문에 하던 공부를 그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내 걸음은 여흥(驪興 여주) 땅에서 멈출 것이오."
그리하여 밀양으로 가던 중 신륵사(神勒寺)에 머물게 되었는데 여기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때 세수 57세며 법랍 38년입니다. 시호는 선각(禪覺)이며, 목은 이색이 글을 지어 세운 비와 부도가 회암사에 있습니다.
이날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오색의 고운 구름이 산봉우리를 덮는 것을 보았고, 다비를 마 치고 뼈를 씻을 때는 구름도 없는데 빙 둘러 수백 걸음 안에 비가 내렸으며, 스님의 사리가 150과(顆)가 나왔는데 이 사리에 기도를 드리니 다시 558과(顆)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또한 스님들과 불자들이 잿속에서 사리를 몰래 빼내어 모셔간 수가 부지기수라 합니다.
스님의 사리에서 신령한 빛이 나왔는데 사흘만에야 그쳤다고 합니다. 달여라는 스님은 꿈 속에서 스님을 다비한 터 아래에 용이 서리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생김새가 마치 말과 같았다고 합니다.
스님의 위패를 모신 배가 회암사로 돌아올 때는 비도 오지 않았는데 강물이 넉넉히 불어 나니, 보는 사람마다 이것은 여흥 땅을 지켜주는 용이 도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해 팔월 한가윗날 회암사 북쪽 언덕에 부도를 세웠고, 스님의 정골사리는 스님께서 열반하신 신륵사에 모셨는데, 탑 위에 돌종을 만들어 덮은 것은 감히 망가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간곡히 알리는 뜻이라 합니다.
나옹선사사적비((懶翁禪師事蹟碑)) 2008년 10월 21일 제막
안민호국중흥불교나옹당혜근선각왕사비명(安民護國中興佛敎懶翁堂慧勤禪覺王師碑銘)
이 사적비는 좌대를 포함 47t 이며, 가로 5m, 높이 3.4m, 폭 0.8m로 보령의 오석으로 제작 되었으며, 비문은 당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이신 가산 지관(伽山智冠) 큰 스님께서 근찬(謹撰)하시고, 글은 영덕지역 향토 서예가이신 초당(艸堂) 이무호(李武鎬)선생의 글씨로 제작했다고 합니다.
나옹왕사선시(懶翁王師禪詩)
懶翁王師禪詩 나옹왕사선시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聊無愛而無憎兮 요무애이무증혜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반송(盤松) 기념식수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가산 지관 큰스님 기념식수
반송에 얽혀 있는 나옹왕사 이야기
반송(盤松)에 얽혀 있는 나옹왕사 이야기
나옹왕사(懶翁王師 1320~1376)는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와 더불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조(宗祖)로 지공(指空)ㆍ무학(無學)과 더불어 3대화상(三大和尙)으로 추앙하고 있는 고승으로 고려말 공민왕(1371)과 우왕(1374)의 왕사(王師)로 책봉(冊封)되었으며, 조선 건국에 기여한 자초 무학(自超無學)대사의 스승이다.
왕사의 속명은 아씨(牙氏)로 법명은 혜근(慧勤), 초명은 원혜(元惠)이며 법호는 나옹(懶翁), 당호는 강월헌(江月軒), 시호는 선각(禪覺)이다.
나옹왕사의 탄생일화를 살펴보면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 불미골(佛岩골)에서 아버지 아서구 (牙瑞具)와 어머니 정씨부인(鄭氏夫人) 슬하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어머니 꿈에 금색(金色) 새매가 날아와 오색(五色)이 영롱한 알을 떨어뜨려 품속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 다음 잉태 하였으며 그 당시 세금을 내지 못하여 어머니가 관가(영해부)에 불려 가는 도중에 아이를 낳았으나 관리들이 아이를 개울가에 그대로 두고 십리가 넘는 관가(영해부)에 끌고 갔다고 한다.
부사가 옷자락에 묻은 피를 보고 이상하게 여겨 연유를 물어보니 도중에 출산한 아이를 그대로 두고 왔다는 것을 알고는 관리를 크게 꾸짖으면서 빨리 돌려 보내라는 부사의 엄명 (엄명)에 따라 그 자리에 돌아와 보니 아이는 죽지 않고 수백 마리의 까치들이 아이를 보호 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자라서 왕사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곳에는 '까치소'라는 지명이 전해오고 있다.
20세에 친구의 죽음을 보고 인생무상을 느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의 길을 떠나면 서 이 곳에 자신의 반송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 놓고 "이 나무가 자라면 내가 살아 있는 줄 알고, 이 나무가 죽으면 내가 죽은 줄 알라." 하는 말을 남기고 문경 사불산 대승사 묘적암 에서 당대 명필인 요연선사(了然禪師)에게 출가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곳에 꽂아 둔 소나무 지팡이에서 움이 돋아 낙락장송이 된 반송(盤 松)이 625년 정도 살다가 고사(1965년경) 되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영덕군에서는 왕사의 출가지 반송 유적지에 영각을 짓는 등 이 자리를 복원 정비하였으며, 나옹왕사 입적 632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를 기념하여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큰 스님께서 근찬(謹撰)하신 사적비를 세우고 고사된 소나무가 있던 그 자리에 다시 반송을 심어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인근에는 왕사의 출생 전설이 있는 까치소와 20세까지 살던 불미골, 그리고 왕사께서 창건 한 운서산 장육사가 있다.
2008. 10. 21 영 덕 군
이 반송정을 주욱 살펴보고 나옹선사의 사적비를 감상하다가 장육사로 향하였는데 좌측으 로 가든 우측으로 가든 장육사가 나오는데 내비는 좌측으로 가자하고, 이정표는 우측으로 되어 있어, 우측으로 향하여 몇 백미터 가니 드디어 최종목적지인 장육사가 나왔습니다. 길가에 농부는 참깨를 털고 있기도 하는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4시 34분, 드디어 운서산 장육사에 도착했습니다. 운서산 장육사(雲棲山 莊陸寺) 일주문(一柱門) -가져온 사진-
차도가 일주문과는 많이 떨어져 있어서 일주문(一柱門)을 통과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문은 문경 봉암사 일주문을 본떠서 2009년 9월에 낙성했다고 합니다. 이는 나옹스님의 선맥을 잇고자 하는 뜻이며 현판은 홍원루에 있는 글자를 집지해서 조성했다고 합니다.
운서산 장육사(雲棲山 莊陸寺) 운서산방(雲棲山房)이란 현판도 보입니다.
운서산 장육사(雲棲山 莊陸寺)에 대하여
장육사(莊陸寺)는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120번지 운서산(雲棲山 520m)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데,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로, 주위에는 동쪽에 칠보산(七寶山), 등운산(騰雲山) 서쪽에는 독경산(獨慶山), 남쪽에는 형제봉(兄弟峰) 등 높은 산들이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장육사에 대한 소개문을 올려 봅니다.
대웅전(大雄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 입니다. 지붕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방식으로 건축되었으며, 조선중기 사찰 건축 양식으로 알려져 있고, 대웅전의 단청을 금단청(錦丹靑) 으로 하여 화려하기 이를 데 없으면서도 색상이나 무늬가 장엄하고 거룩합니다.
우보처 보현보살 본존 석가모니불 좌보처 문수보살
삼존불 뒤의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인데 경북 유형문화재 제373호로 조선 영조 1764년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칠성탱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좌우에는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이 협시하고 있으며, 위로 칠원성군(七元星君)이 서 있고 아래로는 그 밖의 권속들이 시립해 있습니다.
치성과여래는 천재지변을 관장하고 난리(전쟁)와 질병을 다스리고 재앙을 물리치며, 특히 아이 낳기를 소원하면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합니다.
신중탱화
법당내 벽화. 사자를 탄 문수동자(文殊童子)
육아백상(六牙白象)을 탄 보현동자(普賢童子)
관음전(觀音殿)
울창한 소나무 밑에 자리한 관음전 모습입니다. 2007년 5월 신축하여 낙성했다고 합니다.
옆에서 본 모습
우보처 사가라해상용왕 본존 관세음보살 좌보처 남순동자
관세음보살좌상은 건칠관세음보살좌상(乾漆觀世音菩薩坐像)이라고 하는데 보물 제99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원래 대웅전에 모셔져 있었는데 관음전을 신축하면서 이운하여 모셨다 고 합니다. 이 이운식에는 4,000여명의 불자가 운집하여 성황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건칠이란 진흙으로 속을 만들어 삼베를 감고 그 위에 진흙가루를 발라 묻힌 다음 속을 빼어 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복장에 발원문과 개금묵서지가 발견되어 1395년(홍무28년)에 백진 을 비롯한 영해부 관리들과 부민들의 시주로 조성되었으며, 1470년(영락5년)에 개금되었음 을 밝히고 있다고 합니다.
좌보처 남순동자(南巡童子)는 화엄경 입법계품에 근거하여 관음도(觀音圖)의 오른쪽 아래에 합장하고 있는 모습으로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일찍이 남행(南行)하여 53 선지식을 두루 섭렵하고 문수ㆍ보현보살을 만나 불도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순동자(南巡童子)라 고 합니다. 관음전에서 관음보살의 해상용왕과 더불어 좌우보처로 모시고 있습니다.
동자(童子)는 동아(童兒)ㆍ동진(童眞)ㆍ동남(童男)이라고도 하는데 보살(菩薩)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용은 우리 민간신앙에도 많이 등장하는데 불교에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천룡팔부중(天龍八 部衆)의 하나로 등장합니다. 인도에서는 용은 천궁을 수호하는 용, 비를 부르는 용, 지룡 (地龍)과 회륜전왕(回輪轉王)의 대복팔장(大福八藏)을 관장하는 용으로 분류합니다.
불경에 등장하는 용은 선악 양면을 보여주는데 그 중 선룡으로 팔대용왕(八大龍王) 등장하 는데 이는 난타(難陀)ㆍ발난타(跋難陀)ㆍ사가라(娑竭羅)ㆍ화수길(和修吉)ㆍ덕차가(德叉迦)ㆍ 아나바달다(阿那婆達馱)ㆍ마나사(摩那斯)ㆍ우발라(優婆羅) 등입니다. 이들은 불법을 수호 하고 비를 내리게 하여 풍년을 이뤄 준다고 합니다. 특히 바다 용왕인 사가라(娑竭羅)는 기우(祈雨)의 본존입니다. 법화경에 8세의 용녀(龍女)가 성불(成佛)했다고 하는데, 그 용녀 가 바로 사가라 용왕의 딸입니다. 그리고 난타(難陀)와 발난타(跋難陀) 용왕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강탄하실 때 청정수를 토하여 부처님의 몸을 씻었다고 합니다.
산령각(山靈閣)
이 산령각은 2002년 태풍 매미로 반파된 것을 2003년 새로이 중수했다고 합니다.
운서산 산신 독성 나반존자
이 산령각에 모셔진 탱화들은 30여년 전에 도난을 당하고 새로이 조성한 탱화라 합니다.
홍원루(弘願樓)
이 건물은 1937년에 중수하였는데, 현재는 템플스테이를 할 때 교육장으로 활용한다고 합 니다. 약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육화당(六和堂)
이 육화당은 여섯 가지로 화합하라는 육화의 뜻을 새기고 육화하는 대중방이란 뜻인데 현재는 템플스테이 대중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육화당 모습
육화(六和)란 부처님께서 공동생활에서 모든 사람이 항상 염두에 두고 새겨야 할 여섯 가지 덕목을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육화(六和)라 합니다.
첫째는 계화(戒和)이니 같은 계율을 가지고 서로 화동(和同)하고 애경(愛敬)하라. 둘째는 견화(見和)이니 오직 정법에 의한 정견만을 가지고 화동하라. 셋째는 이화(利和이니 이익을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라. 넷째는 신화(身和)이니 부드럽게 행동하라. 다섯째는 구화(口和)이니 자비롭게 말하라. 여섯째는 의화(意和)이니 남의 뜻을 존중하라.
이와 같은 육화정신을 잘 새겨야 하겠습니다.
마당 한 곁에 피어난 자수련
진흙 속에 피어난 수련
삼륜당(三輪堂)
이 삼륜당은 공양간입니다. 불교에서는 식사하는 것을 공양(供養)이라 합니다. 삼륜(三輪)이란 보시를 할 때 보시하는 사람, 보시 받는 사람, 보시하는 물건을 말하는데, 이때 이 삼륜이 청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시하는 사람은 불순한 목적과 교만한 마음이 없어야 하고, 받는 사람은 또한 비굴한 마음이라든가 마음에 꺼리는 마음이 없어,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주었다는 생각 받았다는 상을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시물(施物)은 청정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 합니다.
미유암(瀰瑜庵)
이 미유암은 물 깊은 곳에서 옥구슬이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공부가 되어 옥구슬처럼 아름다운 불성의 자리가 드러나는 것과 같음을 비유한 이름이라 합니다. 이는 다른 사찰에서 많이 쓰는 심검당(尋劍堂)과 같은 의미인데 심검당이 갖는 강한 이미지를 부드럽게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건물은 관음전에 있던 건물을 2008년 2월 이건(移建)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쭉쭉 뻗은 내나무가 장관입니다.
이 옆에 홍련암이 있으나 메모리 부족으로 촬영을 못했습니다.
사찰 곳곳을 다니는데 조그마한 쇠파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도 못합니다. 사정없이 달려 들어 쫓아내기 바빴습니다. 몇 가지 더 담으려 했지만 메모리 부족으로 여기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요 전각은 다 담았습니다. 심진당이라는 스님들의 요사채가 있으 나 육화당과 비슷합니다.
쇠파리와 싸우며? 사진을 찍는 동안 일행들은 다 내려가셔서 인물사진이 전무합니다.
나옹스님의 고향을 찾고 나옹스님의 자취가 서려있는 성지를 찾아 참배하니 감개가 무량 합니다. 언제 다시 인연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후일을 기약하며 물러나왔습니다.
5시경 장육사를 출발하여 안동으로 몇 고개를 넘으며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날자를 넘겨 밤 12시 30분이었습니다. 돌아오자 마자 세찬 비가 쏟아지더군요. 기이한 날씨입니다.
이번 순례는 참으로 많은 곳을 다녀왔습니다. 해맞이 동산에서 상생의 손과 해맞이를 하 면서 화합의 의미를 새겼고, 오어사에서 혜공스님과 원효스님 자장스님의 자취를 더듬었 으며, 천곡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의 향훈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보경사의 창건주 지명스님과 중창자인 원진국사를 찾아 참배하기도 하였고, 영덕이 고향 이신 나옹스님의 자취를 새기며 장육사를 돌아보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와 보니 꿈 속의 일인양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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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 또한 모든 절을 순례하고 온 착각이 들 정돕니다. 곳곳 자세하게 담아주시고 설명까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해 주신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리구요, 나옹선사의 반송에 얽힌 이야기도 잘 읽었습니다. _()_
서울서 포항, 포항에서 장육사까지는 참으로 먼거리였습니다. 그러나 백우거가 길을 잘 찾으니 문제는 없었습니다. 순례길이 정말 거웠습니다. 나옹스님의 고향 영덕은 지금 반송정을 중심으로 장육사까지 성역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2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인데 그 1차로 행한 것이 사적비를 세우고 영각을 세우고 반송정을 건립하는 것 같습니다. 설명을 하자면 한도 없어서 줄이려 노력했는데 길어졌네요. 감사합니다. _()_
나옹스님에 대한 공부 잘 하고 갑니다. 그럼 출생 하신곳, 열반 하신곳(여주 신륵사) 그리고 부도(양주 회암사) 까지 모두 다녀 온것 이겠지요. 날씨가 넘 덥고 긴 장거리라 법당만 참배하고 나왔는데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나무묘법연화경()()()
그러고 보니 묘법님과 나옹스님의 향훈이 서려있는 중요한 곳은 다 돌아보았네요. 스님의 탄생지, 수행과 법을 펴신 회암사, 열반지인 신륵사, 부가 모셔진 회암사 등을 모두 함께 순례했네요. 감사합니다. 다음은 안동을 가고 싶다고 하는데... _()_
계획한 곳 모두를 돌아보고 나니 마음이 뿌듯합니다._()_
계획한 일정표대로 거의 오차없이 다녀왔습니다. 새벽부터 움직이니 가능하네요. 넌 곳에 갈 때는 이 번의 방법으로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_()_
애쓰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시방법계에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나무 불().
감사합니다. 장육사까지 함께 동행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다음 순례길에 한 번 인연을 같이 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_()_
고생하셨읍니다 덕분에 집에서 편하게봅니다
나옹 스님의 고향을 찾고 나옹 스님의 고향에 세운 장육사를 찾으니 나옹 스님과 관련한 큰 절은 몇 군데 찾은 듯합니다. _()_
이번 포항의 순례길은 좀처럼 마음내기 힘든 머나먼 길 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열정을 불태우시는 백우님. 비니초님 묘법님 덕 분에 아름다운 고찰을 순례 하여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운날씨에 억수로 고생 하셨지예
고생했다면 모두가 그랬을 것이고,거웠다면 모두 함게 거웠던 순례길이었습니다. 먼 길도 함께라면 언제나 겁습니다. 보화로 다시 환원입니까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