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67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한 권의 책 때문에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내게는 이기적 유전자가 바로 그런 책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생겨났나? 언뜻 보면 내가 생명의 주체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내가 바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또 죽어갈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버드대의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만들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체에 불과하다. 닭이 알을 낳는 것 같지만 사실 알이 닭을 낳는 것이다.
도킨스는 우리에게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살아 숨쉬는 우리는 사실 태초에서 지금까지 여러 다른 생명체의 몸을 통해 끊임없이 그 명맥을 이어온 DNA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DNA를 불멸의 나선이라 부르고 그의 지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모든 생명체를 생존 기계라 부른다.
신하들을 풀어 불로초를 찾게 했던 진시황제도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갔다. 그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100조 개의 세포 속에 들어 있던 DNA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정자 속에 담겨 그의 자식의 몸으로 전달된 DNA의 일부는 아마 지금도 누군가의 몸속에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은 영속성을 지닌다. 태초에는 보잘것없는 한낱 화학물질에 지나지 않았던 DNA는 단세포생물을 거쳐 오늘날에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몸속에 살아남아 면면히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생명의 역사는 한마디로 DNA의 일대기 내지는 성공담에 지나지 않는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우리 속담을 이기적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다시 보면 호랑이도 죽어서 유전자를 남기고 사람도 죽어서 유전자를 남긴다라고 할 수 있다.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생명은 사뭇 허무해 보인다.
하지만 그 약간의 허무함을 극복하면 무한한 겸허함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내 생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면 내 생명은 물론 이 세상에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에 머리가 숙여질 것이다.
삶에 대한 회의로 밤을 지새우는 젊음에게, 그리고 평생 삶에 대한 회의를 품고 살면서도 이렇다 할 답을 얻지 못한 지성에게 이기적 유전자를 권한다. 일단 붙들면 밤을 지새울 것이다. 그리곤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눈으로 다음 날 아침을 맞을 것이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모든 과목에서 이 책을 권한다. 적어도 이 책만큼은 읽어야 내게 강의를 들었노라고 말할 수 있다고.
이기적 유전자로 인해 거듭난 이들에게 도킨스의 또 다른 명저 확장된 표현형을 함께 권한다. 유전자의 표현형은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도구이며 그 효과는 생명체의 몸 밖으로 확장되어 심지어 다른 생명체의 신경계 속으로까지 파고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킨스는 현재 옥스퍼드대의 과학대중화 석좌교수로서 현대적인 진화의 개념을 알리는 데 전념하고 있다.
최재천 서울대 교수 생명과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