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안티고네>
1. ‘실정법과 자연법’, 인간이 만든 규정과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과 권리의 충돌을 ‘가족’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보여준 고대 그리스의 <안티고네>가 현대적 상황에서 다시금 탄생했다. 고대 그리스의 안티고네는 반역자는 땅에 묻힐 수 없다는 법을 거부하고 오빠의 장례를 치러 줌으로써 죽게 되지만, 현대의 안티고네는 아랍의 비극을 피해온 캐나다에서 오빠의 추방을 막기 위해 오빠를 탈출시킴으로써 법과 맞선다. ‘안티고네’는 혼돈스러운 세상이 규정한 법에 종속되길 거부한다. 그녀는 인간이 당연하게 선택해야 하는 가치를 그녀의 말대로 ‘심장이 시키는 대로’ 실천한 것이다.
2. 현대의 안티고네는 인간의 ‘도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의 행동은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멸시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그녀의 행동은 그녀의 다른 오빠가 경찰들에게 총격을 받고 죽었음에도 경찰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오빠들의 범죄 경력을 트집삼아 남은 오빠를 추방하려는 서구 세계의 ‘법적 경직성’에 대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안티고네는 법정에서 ‘나는 언제든지 법을 어길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법은 형식적 절차와 규정을 통해 정의를 훼손시키는 ‘차별적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3. 그녀의 행동은 과거와는 다르게 SNS을 통해서 알려지고 수많은 지지자와 추종자를 낳는다. 영화는 우리 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 질서를 명분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파괴하는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법’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법은 질서를 위한 최소한의 역할에 머물러야함에도 때론 ‘법’의 이름으로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훼손시키는 괴물로 등장한다. ‘법’에 대한 저항은 결국 법이라는 방벽을 통해 타자를 지배하려는 다른 존재들의 위치를 말해준다. 법으로 둘러싸인 옹성 속에는 세계를 떠돌아야 하는 ‘이민자’들에 대한 서구적 시선, 젊은이들의 도전과 자유를 무시하는 기성세대의 경멸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4. 이 영화도 최근 영화의 추세처럼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재현된다. 오빠를 탈출시킨 안티고네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오빠 탈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가석방 후에는 안티고네가 감금된 보호소 옆에 매일 찾아와 그녀를 격려하는 고향의 노래를 부른다. 그녀의 노래에 감동한 수많은 사람들도 그녀 곁을 지키면서, 여론은 안티고네에 대한 호의적 반응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가석방이 임박할 즈음에 예기치 못한 일이 터진다. 탈출시킨 오빠가 술집에서 발견되어 체포된 것이다. 여성들의 연대를 통한 노력이 철모르고 천박한 행동에 의해 무산되어 버렸다. 오빠를 향해 외치는 그녀의 분노는 우리의 삶을 개선해나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무수히 많은 어리석음과 무책임에 대한 절망을 대변할지도 모른다.
5. 오빠는 추방당하고 할머니는 손자를 위하여 같이 동행하기로 결정한다. 평범한 삶을 원하는 언니를 제외하고 안티고네 또한 그녀를 후견하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고 고향으로 가는 길에 합류한다. 그녀의 귀향은 비극적인 귀환이었다. 가족을 위한 안티고네의 용기가 비록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이민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지만, 무책임한 오빠의 행동은 이민자에 대한 또다른 편견을 강화시켰음에 분명하였다. 그녀의 귀환은 인간의 존엄을 위한 시도가 어떤 방식으로 무너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비극적 상황의 상징일지 모른다. 떠들썩한 과정 속에서 수많은 연대가 만들어지고 다양한 협력이 뒤따랐음에도, 현실의 벽은 높았고 그들은 캐나다(서양)을 떠나야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안티고네가 왕의 아들과 많은 사람들의 온정과 연대를 이끌었음에도 죽을 수밖에 없었듯이 현대의 안티고네도 참혹한 땅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시민권이냐 가족이냐’의 결정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인간에게 때로 부여되는 ‘(포기할 수 없는) 인간적 책임이냐 아니면 (생존을위한) 사회적 질서이냐’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첫댓글 비극을 통한 카타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