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말하면, 속기사가 이를 기록한다.'
전병헌(18대 국회의원 / 민주당, 국회 문광위원회 간사)
국회에서 열리는 공식 회의를보면 발언자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여성분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100이면 100 회의를 기록하기 위한 속기사 입니다.
요즘에는 남자 속기사 분들도 꽤 많습니다만, 여전히 여성 속기사 분들이 많습니다.
국회 상임위에서 가장 가운데 자리하는 것이 속기사석이다.
'속기'는 국회법에 규정돼 있는 회의록 기록 방법으로 사실상 국회 속에서 이뤄지는 모든 공식 회의를 역사로 남기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988년 국회 의사중계를 위해 국회방송이 근거조항을 갖고 개국하기는 했지만, 국회방송의 기록은 고정된 화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중계'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기록된 역사'라는 측면에서는 '속기'를 통한 회의록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기록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것이 대한민국 헌정사의 1p로 기록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그 내용은 국회의장과 사무총장을 통해서 보존하도록 돼 있습니다.
안타깝기도 합니다. 좋지 않은 기록은 좀 지웠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흐릿하게 남자 속기사가 보인다. 귀는 언제나 발언하는 의원쪽을 향한다.
헌정사. 국회의원이 말하고 속기사가 기록한다.
'국회법' 7장 회의록에 대한 규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115조(회의록)
①국회는 회의록을 작성하고 다음 사항을 기재한다. (개의에서 산회까지 기타 19가지 사항)
②본회의의 의사는 속기방법으로 이를 기록한다.
③회의록에는 의장, 의장을 대리한 부의장, 임시의장과 사무총장 또는 그 대리자가 서명·날인하여 국회에 보존한다.
제117조(자구의 정정과 이의의 결정)
①발언한 의원은 회의록이 배부된 날의 다음날 오후 5시까지 그 자구의 정정을 의장에게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발언의 취지를 변경할 수 없다.
②회의에서 발언한 국무총리·국무위원 및 정부위원 기타 발언자에 있어서도 제1항과 같다.
③속기방법에 의하여 작성한 회의록의 내용은 삭제할 수 없으며, 발언을 통하여 자구정정 또는 취소의 발언을 한 경우에는 그 발언을 회의록에 기재한다.
④의원이 회의록에 기재한 사항과 회의록의 정정에 관하여 이의를 신청한 때에는 토론을 하지 아니하고 본회의의 의결로 이를 결정한다.
국회의원들은 때때로 "속기록에 다 남는다",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등의 표현을 곧잘 사용합니다. 질의시간이 끝나서, 주어진 발언시간이 지나서 마이크가 꺼지더라도 육성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끝마칩니다.
국회방송이나 의사중계록에는 발언시간이 끝나면 국회의원의 발언의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속기사들은 발언시간에 상관없이, 발언권과 상관없이 회의에 참석자(권한이 부여된 이.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 본회의에서는 모든 국회의원)의 작은 발언까지 기록하게 돼 있습니다.
속기방법으로 기록된 회의록은 국회에 보존되기 때문에 그 하나가 대한민국 의정사 중 일부가 됩니다.
더욱이 속기방법으로 작성된 회의록은 삭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때때로 위원장이나 발언 본인이 자구를 수정하거나 정정하기 위한 발언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연유로 지난 12월 31일 한나라당이 2010년 예산을 날치기 할 때는 별의 별 촌극을 벌이기도 합니다. 마이크를 대신 속기사들이 사용하는 녹음기를 손에 잡고 예산심사 보고를 하는가 하면, 차명진 의원은 속기사의 녹음기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전달하기 위해 몸싸움, 릴레이까지 연출했습니다.
회의에서 나온 발언이 속기록을 통해서 확정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월 31일 예산안 날치기 설명하는 심재철 위원장이 선 곳이 본회의장 속기사석이다.
속기사들이 사용하는 녹음기를 한나라당 의원들이 양쪽에서 받쳐주고 있다.
속기사에게 녹음기를 건네받는 차명진 의원.
정부측 윤증현 장관의 예산설명 발언을 기록에 남기기 위해서다.
날치기를 많이 보기는 했지만, '속기사 녹음기 날치기'는 또 처음 본 것 같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인지, 정부측 관료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속기사들은 항상 녹음기를 소지하고, 혹시나 속기에 놓친 것 하나까지 기록하는 노력을 합니다. 귀는 항상 발언을 하는 사람을 향해 열어놓고 있습니다.
제목이 좀 아리송 하기는 합니다만, 국회의원들의 발언은 속기사의 속기를 통해 기록되고 그래야 대한민국 헌정사에 작으나마 족적이 됩니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회의를 할 때 속기사들을 때때로 많이 신경을 쓴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이 잘기록되고 있는지해서 말이죠.
그리고 회의 중에 어떠한 일이 발생을 하면, 지난번 국토해양위에서 이병석 위원장이 4대강사업 예산을 날치기 할때 "이의 없습니까?" "이의 있습니다."라는 민주당의 항의를 묵살한 것. 회의에서 의원 간의 발언으로 민감한 감정싸움이 되는 일 등이 발생하면 항상 '속기록'을 가장 먼저 찾습니다.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의 국회 명연설을 보고 싶을 때도 속기록은 아주 유용합니다. 다만, 과거 국회 속기록은 한문이 혼용돼 있어서 아쉬움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국회의원에게 발언시간은 언제나 한정적이다. 시계가 발언시간을 알려준다.
그러나 발언시간이 끝나도 기록에 남는다. 속기사들의 손에 의해서다.
국회의원과 속기사. 바늘과 실이라고 해야할까요? 악어와 악어새라고 해야할까요? 여하튼 국회의 흥미로운 모습 중 하나 "국회의원의 발언은 속기사의 기록을 통해 헌정 역사가 된다" 입니다. 끝
첫댓글 역시 멋져요... 속기사는 확실히 매력있는 직업이죠. ㅎㅎ 이 기사 보고 다시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갑니다.
국회의원중에 이렇게 속기에 대해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진 분이 있을 줄이야....맨 마지막 줄이 압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