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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K(서울) 등산별곡 1회(회갑)-100회(고회)
* 이글을 지금 병마와 결투를 하고 있는 박진대장의 승리위해
모든 14K 전원이 큰소리로 박진 대장의 쾌유를 빌며 왜치는
응원가로 박진대장에게 바친다.
-출발점에서-
2001년 초 까지는 나 홀로 팀 혹은 몇몇 가까운 친구들 끼리 끼리 만 모여 북한산 팀, 청계산 팀 등등 산행을 즐겨왔습니다. 이에 2001년 6월초 회장 조규향동문과 등산대장 박진 동문 등이 마음을 모아 전 14K가 참여할 수 있도록 14K 산악회를 조직하였습니다.
14K 등산 팀이 조직된 2001년경은 많은 동기들이 회갑을 전후한 시기였고 그의 매달 약 40명 전후의 동기들이 모여 다닌 등산이 2010년 올해 5월이 100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일본대마도에서 중국의 황산까지 여러 곳을 함께 다니며 우리14K 용마들은 순금처럼 단단한 우정을 다졌습니다. 나아가 경부합동 등반, 전체 경남고 출신 용마의 등반을 주도해 왔습니다. 100회 등산인 2010년 울릉도 성인봉 등산은 우리 동기들의 나이가 고회가 되고 고교졸업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시작은 2001년 6월 24일 서울 근교 과천 청계산에서 시작했고 100회 등반인 2010년 6월 울릉도 등반은 풍랑이 준 선물로 약 40여명의 동기들이 6박7일을 함께하여 귀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등산을 통하여 건강을 되찾고 우정을 쌓아가며 부부 금실을 돈독히 하니 7순의 젊은이들이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산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100회 등반을 <14K 등산별곡>이라는 이름으로 요약하여 회상해보니 다함께 그때의 좋은 기억들을 되살려보고 새로운 만남을 준비합시다.
-이헌영-
** 2001년-2002년 14K 등산별곡 **
1. 2001년 6월 24일 과천 청계산에 올라 14K 산악회가 탄생한 날을 만 천하에 고하고
2. 구월 경북 제1명산 주왕산에 올라 병풍처럼 솟아있는 바위에서 주왕의 전설을 듣고
3. 시월은 경부합동으로 덕유산 북쪽 빨간 치마(붉은 단풍)를 입은 적성산에 올랐다.
4. 십이월은 도봉산 끝자락 사패산에 올라 회룡폭포, 성불사, 안골폭포 둘러보고
5. 2002년 새해가 밝아 정월 북한산 문수봉에 올라 시산제를 지내고 한해를 기원하고
6. 이월 재경 총동문회와 함께 경기 양평의 봉미산에 올라 전용마 설경을 즐기고
7. 삼월은 서울북부지역 불암산에 올라 길게 뻗은 모래능선, 시원한 조망을 만끽했다.
8. 오월에는 수목과 기암괴석이 절경인 단양의 금수산에 올라 충주호를 조망하고
9. 유월은 용인 광교산 시루봉에 올라 삼림욕을 즐긴후 소주한잔을 나누고
10. 칠월은 거북터를 거쳐 매지봉(광주)에 올라 솔밭에서 쉬고 토끼골로 내려온다.
11. 구월은 전 용마 함께 경기 알프스라 불리는 가평 석용산에 올라 맑은 공기 마시고
12. 십일월은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대둔산에 경부합동으로 올라 단풍을 즐기고
13. 송년등반은 청계산삼림욕장에서 약수먹고 생각하고 아카시아향 맡으며 독서한다.
** 2003년 14K 등산별곡 **
14. 일월 검단산에 올라 백곰 약수 먹고 기를 받아 육모정에서 곰에게 시산제지내고
15. 이월 덕숭산에 올라 일엽처럼 견성하고 만공을 기리며 만공탑 향해 합장한다.
삼월은 방콕산에 올라 사월의 재경 총동문회 의 큰 행사를 준비하여 쉬어가고
16, 사월은 청계산 이수봉에 전용마 함께 올라 14K 신회장 전용마 회장됨을 축하하고
17, 포천의 운악산에 올라 궁예와 고려 태조 왕건과의 운명적인 전투를 되세기고
18, 유월 영암 월출산에 올라 천황봉 괴암괴석에 왕인 박사와 도선국사가 태어난다.
19. 칠월 관악산 삼막사 둘러 삼선산에 올라 안양으로 내려오니 조각품들이 반기고.
20. 팔월 강화도 마니산에 올라 단군이 천제를 올리는 모습을 첨성단에서 따라하고
21. 구월 남한산성에 올라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국치를 되씹으며 위례성을 조망한다.
22. 시월 합천 가야산에 올라 해인사 팔만대장경으로 어께가 어썩하고
23. 십일월 예산용봉산에 올라 공룡바위등 기암들이 일품이고 하산하니 덕산온천이라
24. 십이월가평 수덕산에 올라 펜션에서 켐프화이어로 올해의 시련을 날려버렸다.
** 2004년 14K 등산별곡 **
경신년 일월은 집에서 세해를 맞이하고
25. 이월 백두대간 명산 불법의 오대산에 올라 월정사, 상원사, 적멸보궁을 둘러본다.
26. 삼월 선운산에 올라 지방의 명물인 풍천장어 구이에다 복분자 술에 취한다.
27. 사월 북한산 산장에 전용마 함께 올라 개나리 능선 따라 봄 향기에 취하고
28. 오월 서울의 수호산 수락산에 올라 이태조의 꿈을 그려보고 막걸리에 또 취한다.
29. 유월 백록담에 올라 큰소리 외쳐보고 귀경 오하마나호 선상에서 소주잔 기울인다.
30. 칠월 강촌 검봉에 올라 북한강을 조망하고 칡국수 칡막걸리로 입맛을 돋아주고
31. 팔월 전북 마이산에 올라 암수 두봉 바라보며 이태조의 전설을 되세기고
32. 구월 인제의 방태산 조경동 계곡에서아침가리, 결갈이, 연가리를 배운다.
33. 시월 경부합동으로 보은 속리산에 올라 단풍을즐기고 법주사에서 합장하고
34. 십일월 강화 고려산(오련산)에 올라 예성강 하구 북녘당 바라보며 한숨짓고
35. 송년의 밤은 가평 수덕산 펜션 하우스에서 켐프화이어로 한해의 시름을 태운다.
** 2005년 14K 등산 별곡 **
36. 일월 가평 유명산에 올라 유명한 14K 등산 팀의 한해를 기원하고
37. 이월 경기 광주 백마산 용마봉에 올라 용마들의 기상을 드높이고
38. 삼월 강화 석모도 해명산에 올라 해동(解冬)과 대춘(待春)에 심호흡한다.
39. 사월 울릉도 성인봉에 올라 해호랑과 오기동이와 함께 독도를 지키고;
*참조; 울릉도 기행-이헌영 수필
40. 오월 성남 영장산에 올라 14K는 확실히 만물의 영장임을 확인하고
41. 유월 공주 계룡산에 올라 14K의 운세가 “백두 대통할 운세”라는 점괘를 받았다.
42. 칠월 영동 천태산에 올라 삼복더위에 백두 대통할 근력(筋力)을 시험하고
43. 팔월 백두산 일출과 천지의 영험한 기(氣)를 받아 14K가 순금으로 변하고
* 참조; 14K 카페-산악회-224. 성공적인 도전
44. 구월 팔봉산에 전 용마가 함께 요란한 발굽 소리를 내니 서산 땅이 요란하다.
45. 시월 무주구천동 덕유산에서 경부 14K가 랑데부하여 옛 친구들과 회포를 풀고
46. 십일월 많은 동창이 낙마하여 다른 용마들과 합세해 안개 속 박달재 울고 넘었다.
47. 십이월 한해를 보내는 송년등반, 함박눈이 내리는 보리산이 축복해주었다.
** 2006년 14K 등산별곡 **
48. 일월 눈 덮인 태백산 천제단에 올라 시산제를 지내고 동화속의 설국을 거닐고
49. 이월 전용마함께 영인산 신선봉에 올라 삽교방조제와 서해대교 조망하고
50. 삼월 광양 매실향에 취하고 화개장터 지나 지리산 불일폭포에서 고로쇠맛 즐긴다.
51. 사월 총동문회의 등산의 날 행사에 청계산 이수봉에 올라 14K의 단합을 과시하고
52. 오월 콩받 매는 아낙네를 만나러 충남 청암 칠갑산에 올라 천년 고찰 장곡사 보고
53. 유월 전북명산 모악산에 올라 만경평야 둘러보고 전주비빔밥과 모주에 취한다.
54. 칠월 아차산 생태공원에서 우리꽃에 취하고, 용마산에 올라 용마의 기상을 높이고
55. 팔월 설악산 12선녀탕에 둘러 두문폭포 수직 절벽, 낙락 장송에 시흥을 돋우고
56. 구월 중국 천하재일 황산의 십만계단 밟아보고 상해의 야경에 가슴 저린다.
* 참조; 14K 카페-산악회-229. 황산별곡(이헌영)
57. 시월 경부 14K 합동 등산으로 문경 주홀산에 올라 여궁폭포와 혜국사를 다녀오고
58. 십일월 용마산악회와 함께 충남 아산 광덕산에 올라 ‘이뭣고’로 참선하고
59. 십이월 송년 등반은 성유굴을 들러 죽변해변에서 Camp-fire로 2006년을 보낸다.
** 2007년 14K 등산별곡 **
60. 일월 인천에서 오하마나 호 타고 제주도 한라산 윗세오름에서 설화를 만끽하고
* 참조; 14K 카페-산악회-동고동락(이헌영 수필)
61. 이월 청계산에 올라 서울을 둘러보고 내려와 막걸리와 오리고기로 회포를 풀고
62. 삼월 충남의 금강산, 가야산 석문봉을 등반하고 덕산 온천에서 몸을 녹혔다.
63. 사월 제경 총동창회와 함께 청계산을 등반후 개나리 진달래에 봄기운을 즐기고
64. 오월 가평 잣나무숲 자연휴양림 축령산과 철쭉꽃으로 유명한 서리산을 등반하고
65. 유월 무장공비 사태후 출입이 통제되어 40년 만에 개방된 북악산행로 둘러봤다.
66. 칠월 인천 무의도의 호룡곡산 등반하고 주위 해수욕장에서 실미도를 바라보고
67. 팔월 팔봉산 산허리 감고 도는 홍천강 바라보며 기암절벽 노송에 넋을 빼앗긴다.
68. 구월 대마도 가서 조각배타고 낚시를 즐기고 이루지 못한 세종대왕의 꿈을 새긴다.
69. 시월 구미시 박대통령 생가를 둘러 감사의 절을 하고 금오산에 오르고
70. 십일월 보련산에 올랐으나 흔적이 없고
71. 심이월 송년 등반으로 작년의 추억을 되새기며 다시 한 번 죽변해변가를 찾았다.
** 2008년 14K 등산별곡 **
72. 일월 청계산 자연휴양림, 대공원 삼림욕장에서 무자년의 새해를 맞이하고
73. 이월 이미 가본 인천 무의도의 호룡곡산을 용마산악회와 다시 한 번 섭렵하고
74. 삼월 파주의 박달산에 올라 신호약수를 마시고 노란 생강나무꽃을 감상했다.
75. 사월 서울 뒷산 북한산에 올라 발전된 서울의 빌딩숲속에 나의 아파트를 찾고
76. 오월 춘천 삼악산에 올라 선녀탕, 등선폭포등을 구경하며 계절의 여왕과 놀고
77. 유월 해남 당끝 마을에서 뱃길로 보길도를 가며 어부사시사를 읊었다.
78. 칠월 더위를 식히러 청계산 이수봉에 올라 시원한 생맥주를 드리키고
79. 팔월 설악산 12 선녀탕 계곡을 누비며 8폭 8탕이나 나신으로 둘러볼까?
80. 구월 문경새재 도립공원 조령산 둘러 부산의 14K 친구들과 회포를 풀었다.
81. 시월 지리산 칠선계곡과 성철스님의 겁외사, 함양 8경중 하나인 상립숲 둘러보고
82. 십일월 단양팔경 구경하고 친구 강통삼의 닭농장에서 매포 막걸리로 흥을 돋우고
83. 십이월 송년 등반은 서해의 안면도 기지포에서 맛조개 잡기 채험은 별미였다.
** 2009년 14K 등산별곡 **
84. 일월 시산제 행사는 남한산성에 올라 북쪽 오랑케의 굴욕을 되세기고
85. 이월 재경 용마 산악회와 함께 강화 석모도의 낙가산, 상봉산에서 상봉하고
86. 삼월은 경기 이천 설봉산과 산수유 마을에서 봄향기를 만끽하였다.
87. 사월 철쭉 군락지로 유명한 합천의 황매산 모산재에서 철쭉 향기에 넋을 잃고
88. 오월 예술혼과 역사가 숨쉬는 광주로 무등산에 올라 귀봉, 입석대등을 둘러보고
89. 유월은 ---?
90. 칠월 청계산 박진 대장 대신 김익명 후미대장 인솔하에 이수봉에 올르고
91. 팔월 북한산 우이령길 둘러 김신조 사건을 다시 음미하고 송추 평양면옥 즐기고
92. 구월초 재경, 재부 동문 선후배들과 함께 구미 금오산을 다시 찾았고
93. 구월말 경기도 광주 부근 천진암 수도원, 박물관 등 둘러보고 앵자봉에도 올랐다
* 참조; 14K 카페-산악회-205. 길가다 도(道)를 잃다 (손수정)
94. 시월 한려수도의 많은 섬들 중 비경으로 이름난 통영 소매물도 절경을 구경하고
95. 십일월 포천의 진산 왕방산에 올라 황금빛 전나무숲과 단풍을 즐기고.
96. 송년여행 용평스키장 콘도라도 타고 정동진 구경, 동해안의 캠프파이어로보냈다.
** 2010년 14K 등산별곡 **
97. 일월 경인년을 축원하며 서울대공원 삼림욕장 외곽산책로 돌며 시산재를 지내고
98. 삼월 소백산의 죽령, 연화봉 능선을 따라 눈길 등산후 희방사로 하산하고
99. 사월은 계룡산 동학사를 둘러 청남대 대통령 별장도 둘러보았다.
* 참조; 14K 카페-산악회-286. (손수정)
100. 오월은 올해 14K 등산 100회를 맞이하는 의미 있는 등산이었다.
경고 졸업 50 주년을 맞아 울릉도, 독도를 2박 3일 예정으로 다녀올 예정이었으나
태풍과 파도로 울릉도에 잡혀 예상치 않게 6박 7일을 친구들과 즐기고 온
여행이었다.
* 참조; 14K 카페-산악회-300-310; 울릉도여행(손수덩,천광렬,이헌영)
참조 수필;
1. 고교동기들 울릉도, 독도를 가다.
긴 겨울, 눈 속에 허기진 울릉도의 개척자들을 연명(延命)시켰다는 명(命)이,
이른 봄 눈 속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산(山) 마늘, 효녀 심청 명(命)이가
이제는 맛 자랑 식품으로 미식가들의 혀끝을 자극하며 명(命)이의 명성을 높인다.
먹을 것을 찾아 섬 주위를 기웃거리던 바다의 집시 갈매기(일명 거지 갈매기)들이
지금은 예쁜 발레리나가 되어 유람선들을 따라 멋있는 저공비행을 하며
나의 손에 있는 새우깡도 맵시 있고, 귀엽게 키스하듯 물고 가 나의 애를 태운다.
찰칵! 찰칵! 울릉도 호박엿을 떼던 엿장수의 가위질은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엿장수 딸 해호랑들의 손놀림으로 호박엿 공장과 호박 동동주 주막은 부산하다.
오기동이는 오징어 팔기에 신이 나고, 맥반석 위에 구워지는 오징어 냄새가 구수하다.
도동항과 저동항은 울릉도를 찾아준 모든 지구인들을 향해 팔을 벌리고 환영하며
성인봉은 송곳봉 칼 등에 차고 독도를 바라보며 동해를 지키는 믿음직한 장군이고
공암, 삼선임, 죽도, 저동 촛대 바위는 관광 한국의 신비를 세계에 알린다.
4월 21일 경고 14회의 산악 반은 박진대장과 김용후총무의 주선으로 목요일 저녁 10시 교대전철역에서 사조관광 버스를 타고 독도를 향해 출발하였다. 오전 2시경 경포 해수사우나에 도착 간단히 샤워를 하고 우리 일행 35명과 다른 손님들이 합쳐 찜질 방 하나에 남녀노소 약 50명이 함께 혼숙을 하였다. 코를 고는 사람, 바닥이 뜨거워 서성이는 사람들 틈에서도 너무 피로하였던지 모두들 잠깐 눈을 붙였다. 그래도 부지런한 친구들은 동해의 일출을 보려고 5시에 일어났다.
나는 4월 22일 금요일 새벽 경포대 앞바다 모래사장을 황원재동문과 함께 거닐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쌍화차, 생강차 등을 팔려고 다가왔다. 쌍화차 2잔을 사 먹고 있는 동안 해가 어느새 떠올라와 있다. 이글거리는 동해 일출을 기대했던 우리는 실망하여 내가 물어보았다. “할머니! 해가 왜 저렇게 희멀건 해요?” “ 아! 저건 봄의 ‘물해’라서 그래요!” ‘물해’라? 처음 듣는 단어이다. 할머니의 설명은 봄에 해가 물을 머금어서 그렇다는 설명이다. 할머니가 70은 넘어 보여 “할머니! 만수무강하세요.”라고 말하려는 찰라 황원재동문이 “할머니! 연세가?” “예. 저는 해방둥이 입니다.” 큰일 날 뻔했다. 내 마누라와 동갑내기인 사람에게 “만수무강하십시오!”라고 할 뻔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오전 10시 우리 일행은 묵호항에서 배를 타고 약 161km 떨어진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 7울릉비치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말이 호텔이지 서울의 2류 여관 정도이고 사정이 여의치 않아 우리 집 안방보다 적은 방에서 4명이 머리를 맞대고 자야 했다. 코를 골면 바로 귀가 마이크가 되어 크게 증폭되었다.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하고 독도로 가기 위해 뱃멀미 약을 먹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독도의 사정으로 일정이 변경되어 성인봉을 먼저 오르기로 했다. 오후 늦게 출발하여 시간에 쫓기고 뱃멀미 약을 먹고 성인봉을 오르다 보니 많은 일행이 산멀미(?)를 해서 반 정도는 중간에서 하산했다.
필자와 신수범사장의 부인 임경조여사가 제3진이 되어 정상을 향한 집념으로 올라갔으나 9부 능선에 있는 정자까지 올라가고 시간 때문에 정상을 오르지 못하고 하산을 하기로 했다. 하산 시 필자와 임여사의 ‘맹인 코끼리 몸통 만지기’식 울릉도 해석은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무식이 탄로 나고 말았다. 9부 능선에서 하는 대화; 임여사 - “울릉도에는 소나무, 뱀, 지렁이, 새들을 볼 수 없어요.” 필자 - “분화구도 보이지 않고 돌멩이들도 용암 등 화강암 같지는 않고 수성암 같다. 아마 울릉도는 화산 폭발로 생긴 것 같지 않다” 이렇게 학자인 양 나누었던 대화가 몇 시간 후 뱀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올라갔다면 분화구인 나리분지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산에 오르기 전 조금만 주의 깊게 보고 들었다면 많은 소나무와 새소리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렁이도 많이 있다고 한다. 다음날 새벽에 해변의 산책로를 걸으면서 용암으로 만들어진 갖가지 아름다운 자연의 조각품을 보면서 내가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을 놀렸든가 후회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산에서 내려오자 바로 울릉도 약소고기(?) 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소가 울릉도의 약초만 먹고 자랐다고 하여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약소고기를 명(命)이에 싸서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이젠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특산물을 개발하기 위한 아이디어 경쟁이 치열하다. 위에서 말한 해호랑과 오기동이는 호박과 오징어의 캐릭터로 울릉도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해호랑과 오기동이가 쑥쑥 자라기를 바란다.
4월 23일 토요일 아침 4시 반에 기상하여 도동항에서 일출을 보려고 해안 도로를 따라 걸었다. 해안가에서 아름다운 일출을 보고, 박진대장의 안내로 도동 행남 등대에 올라갔다. 필자는 저동항을 바라보며 촛대바위, 죽도 등의 절경을 만끽했다. 걸으면서 하는 조장일동문의 재치 있고 컬컬한 유머는 무궁무진했다. 본인이 조 씨라 조자(字)가 어두(語頭)장식하는 말이 많았다. ‘조붓하다’는 순 우리말도 배웠다. 배우면 써먹어야지! 호텔로 돌아오는 오솔길은 조붓했지만 멋이 있었다, 그리고 독도 근해의 파도가 심하지 않기를 ‘조비비었다.’ 조붓한 길에서 대나무를 주워 울릉도 지도가 있는 손수건을 사서 깃발을 만들었다. 비록 돈은 2천원 밖에 들지 않았지만 내가 울릉도에서 가져온 제일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아침을 먹고 독도로 가기 전 10시경부터 유람선을 타고 울릉도 해상 일주에 들어갔다. 출발부터 뱃전주위를 돌며 관광객의 손을 주시하는 바다 갈매기 떼의 군무는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 엄지와 검지사이에 새우깡을 들고 있으면 정확히 새우깡만 물고 달아난다. 얼마 전 방영된 ‘마파도’라는 우리나라 영화에, 당첨된 로또 복권을 들고 좋아하는 한 시골 처녀의 손에서 바다 갈매기가 복권을 물고 달아나는 장면을 보고, 있을 수 없는 일일 테지만 그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냈는데 막상 직접 바다 갈매기에게 내 손으로 먹이를 주어보니 작가의 상상력이 아니라 실화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내 손끝에 남아있는 갈매기 부리의 터치가 감미롭다. 도동항에서 군무를 하며 따라온 갈매기 떼들은 섬을 약 1/4 바퀴 돌고 다른 갈매기들에게 바통터치를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동문 전상배장군의 해설에 의하면 갈매기 떼들도 영역이 있다고 한다. 코끼리 모양의 공암, 삼선암 등 자연이 만든 조각품들의 아름다움은 보고 느끼는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오후 2시 도동항에서 약 87.4km의 뱃길을 약 1시간 30분에 달려가는 대형 유람선 썬-플라워 호를 타고 우리 일행은 독도로 향했다. 옆에 앉은 김원조동문은 고전음악 애호가로 요한 시빌리우스의 이야기를 신나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김원조동문이 구상하고 있는 소설이야기를 듣다보니 벌써 독도에 도착했다. 비록 상륙의 꿈은 사라졌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도동으로 돌아왔다.
4월 24일 새벽 6시 한겨레 호를 타고 묵호로 돌아와 해변 식당에서 곰치 국밥을 맛있게 먹고 정동진을 향했다. 신 노아의 방주처럼 생긴 산상의 유람선, 주식회사 승화 썬 크루즈에서 만든 이 호텔은 우리에게,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많은 꿈을 심어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들의 꿈은 바다로 향하고 세계로 향한다. 정동진의 해변에 파도와 빛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신비한 그림은 여기서 아침 일출을 보지 못한 우리 일행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가족들과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냥 신이 난다.
대관령의 대성산 사슴목장에서 사슴고기와 조 껍데기 술로 점심시간에 만찬을 즐겼다. 그리고 엘크와 래드 등 알라스카 사슴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목장을 둘러보고, 녹용과 사슴 육즙의 선전을 듣다보니 너무 늦게 서울로 향했다. 귀경길이 막혀 국도나 샛길로 우회하기도 하며 서울에 도착하여 손영목동문과 함께 전철을 타고 보라매 타운에 도착한 것은 11시를 훌쩍 넘긴 후였다.
2005년 4월 26일
이헌영
2.성공적인 도전
-백두산 서파를 종주(縱走)한 후, 북파를 관광(觀光)하고-
-프롤로그
2005년 8월 22일 백두산의 청명한 일기가 경고 14회 동문과 부인들 43명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평범한 14K가 여생(餘生)을 자신이 순금(純金)이라고 자부(自負)하며 살 수 있도록 자신감을 안겨준 등반(登攀)이었다. 38 따라지가 아니고 38 광땡을 잡은 것이다. 38선으로 꽉 막혀있든 가슴이 간도 만주벌판을 바라보며 뻥 뚫렸다. 백두산의 찬란한 아침 햇빛에서 우주의 정기(精氣)를 받고 천지(天池) 옥빛의 잔잔한 물이 우리의 상한 혼(魂)을 정화(淨化)해 주었다.
-결코 무모(無謀)한 도전(挑戰)은 아니었다.
“임마들아! 너그 및 살 인줄 아나? 환갑 진갑 다 지난 놈들이 환장(換腸)을 했구마?”
“일기가 나쁘고 환자라도 생겨 시간이 지체되어 해진 후 그 비탈을 내려온다고 생각해봐! 미친놈들 우짤라 켔노? 천우신존 줄 알아야 된데이”
새벽 1시 반에 일어나 4시 반에 한중 국경5호 경계비 부근, 서파의 시작에서 일출을 본 후 서파를 종주하고 오후 6시가 넘어 북파에 있는 장백폭포 가까운 달문으로, 푸석푸석한 화산 석으로 된 40-70도 경사의 가파른 비탈을 한발 한발 미끄러지면서 내려오는 33명의 A팀 늙은이들을 바라보며 마중 나온 B팀의 힐책이다. 그러나 A, B팀으로 새벽에 이별한 어떤 부부는 저녁에 달문에서 다시 만나 10년 만에 만난 듯 얼싸안고 부끄럼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포옹을 했다. 결코 무모한 도전은 아니었다.
-출발과 일출(日出) 구경은 함께
백운산장에서 한방에 두 쌍씩 4명이 혼숙을 했다. 잠을 설치며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 1시 반에 일어났다. 세수를 하려고 합동 세면장으로 내려가니 43명의 뒷바라지를 하는 김용후 총무는 벌써 일어나 대기실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 얼굴에 물 한두 방울 찍어 바르고 라면 한 사발에 미지근한 물을 부어 룸메이트 황원재동문과 나누어 먹었다. 14K 43명은 2시에 6인승 지프차와 미니버스 등에 나누어 타고 어제 다녀온 고산화원과 금강 대협곡을 지나 백두산 서파의 끝, 9부 능선에 올랐다. 거기서 다시 천386의 고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숨이 콱 막힌다. 내 심장에 이상이 있는가? 고산(高山)으로 산소(酸素)가 부족한가? 그러나 출발부터 포기할 수는 없다. 3천배를 하는 심정(心情)으로 한중(韓中) 경계가 있는 산마루를 향해 한발 한발 올라갔다.
-장엄한 일출(日出)과 분단의 아픔
4시 45분 찬란한 해가 북한의 장군봉 쪽에서 솟아올랐다. 일제히 탄성이 터졌다. 몇 개월 전 한국의 최남단 강진 땅끝 마을에서 본 일출(日出)은 아름다운 슬픔을 노래하는 시인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금강산 여행 시 동해에서 본 일출(日出)은 통일의 염원을 담은 물먹은 해(그 인근의 사람은 물해 라함)이었다면, 지금의 삼천리강산 최고봉에서 보는 일출(日出)은 백의민족에게 무한한 힘을 솟아나게 하는 천기(天氣)로 너무 쾌청한 날씨 때문인지 햇살 한 가닥 한 가닥이 나의 폐부를 날카롭게 찌르며 스며든다. 신기석 동문의 선창으로 애국가등 몇 곡을 합창하고 사진 촬영에 들어갔다. 천지 수면의 잔잔한 물결에 비취는 아침 햇살이 반사되어, 바람과, 빛과 물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에 넋을 잃었다. 그 풍광을 잠시나마 잡아보려고 카메라를 맞추어보지만 그것은 인간의 과욕이었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임을 표시하는 나지막한 경계비가 있었다. <중국5>라는 표식을 배경으로 최낙섭 동문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하고, 무심코 경계비의 뒷면을 바라보았다. 아마 <조선>이라고 쓰여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의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을 하려하자 남루한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다가오더니 “촬영하면 안됩네다.”아마 북한 경비원인 모양이다. 그제야 그쪽이 북한이라는 것을 알고 급히 돌아 나오며 씁쓸한 마음, 아픈 마음을 쓰다듬었다.
-도전해보지 않으면 결과도 없다.
백두산 일출(日出)이 옥빛 천지(天池)에 비추어 잔잔한 물결을 더욱 신비하게 수놓고 있어 모두들 넋을 잃고 있을 때, 바진대장이 소리쳤다. “이젠 정신 차리고 출발합시다. 차를 타고 갈 B조는 하산하고 종주할 A조는 나를 따르시오.” 33명이 박진 대장을 따라나섰다. 처음 천 하고도 386의 계단을 올라 올 때 숨이 가빠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최근 도보(徒步)로 약 한 시간 거리의 병원을 출퇴근해 왔던 내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도전해 본 사람에게만 새로운 역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측은 한발만 내디디면 천 길 가파른 낭떠러지가 있고 200m 이상 수심(최대 384m)의 파란 천지(天池)가 기다리고 있다.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한 수면은 아름다운 보석의 빛을 뿜으며 우리의 눈길을 유혹한다. 좌측은 끝없는 만주 벌판이 펼쳐져 고구려의 영화를 생각나게 하고, 용담화 등 화산의 야생화가 넓은 초원을 품위 있게 수놓고 있다. 한 친구가 길에서 천지 쪽으로 한발 나서자 P대장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야! 죽고 싶으면 천지 쪽으로 다가가! 자살하기 좋은 곳이야!”
청석봉 중턱에서 아침 도시락을 먹고 계곡으로 내려와 개울물에 발을 담갔으나 너무 차서
1초도 참을 수가 없었다. 야생화를 감상하는 친구, 찬물에 발을 담가 오래 참기 등 어린 시절로 돌아가 오기(傲氣)를 자랑하는 친구, 담배를 피우는 친구 등 잠깐의 휴식 후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여자 분들과 산행에 자신이 없는 친구들을 앞장세우고 백운봉을 향해 우회하여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도 가능하면 선두에 따라 붙으려고 노력했다. 꽁지 등반은 정말 힘들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의사를 구했다.
휴식 후 약 15분, 백운봉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데 김용후 총무가 제일 후미에서 들어 누워 버렸다. 등산에 자신이 없어 앞쪽에서 박진대장을 따라 여자분들 뒤를 바짝 따라가던 나를 후미를 지키며 따라오던 서 관주 동문이 진료가방을 가지고 되돌아오라고 손짓을 한다. 다리에 힘이 쭉 빠지지만 의사의 직분을 포기할 수는 없다. 더욱이나 우리를 위해 새벽부터 온 정성을 다한 총무가 쓰러졌으니 그 고마움을 외면하고 나만 살겠다고 도망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배가 아파?” “아니.” “설사를 해?” “아니.” “다리가 아파?” “아니.” 대답하기도 싫은 표정이다. 얼굴에 핏기가 없다. 새벽부터 먼저 일어나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미지근한 라면에 아침도 먹지 못했으니 탈진을 할만도 하다. 잠도 못자고 먹은 라면에 체했을 수도 있다. 좌우간 여기서는 쓰러져서는 안 된다. 기운을 차려 일행을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제시간에 하산을 해서 B팀을 천지 달문에서 만날 수 있다.
여기서는 약물 검사도 없을 테니 일단 스테로이드 (베타메타손)주사를 놓아 기운을 차리게 하자. 얼마 지나도 별로 효과가 없다. 내과 이 창화 박사에게 투약을 부탁했다. 본인은 배가 아프지 않다고 하지만 체했을 가능성이 많다. 다른 분들은 먼저 백운봉을 향해 올라가고 후미 대장 서관주, 김 총무와 부인 김계순씨, 여행사 대표, 그리고 정형외과 의사인 내가 환자를 돌보기 위해 뒤에 처졌다.
김 총무는 몇 발자국 걷다가 또 주저앉아 큰일을 본다. 내가 먹으려고 가져간 전해질 음료를 마시게 했다. 그래도 큰 효과가 없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동서의학 비교연구회와 몽골, 우즈벡등 해외 무료진료에서 전세일 교수에게 배운 침을 동원했다. 약 10분을 쉬고, “야! 김 총무! 너 나를 돌팔이로 만들 거야?”하며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자 지금부터 내 구령에 따라 발을 때어 놓는다. 하나, 둘, 셋,----스물”“자! 잠시 쉬고” “야! 잘한다. 다음은 서른 발자국이다” 이렇게 하여 조금씩, 조금씩 백운봉 중턱에 접근해 가는 동안 김 총무는 모두 대여섯 차례 둔부를 바람 쏘였다. 서파 종주하는 동안 총 8-9회의 대사(大事), 기네스북에 올리자고 농담을 했다. 김 총무가 큰일을 보는 동안 우리 후미(後尾) 팀은 만주 벌판과 어제 다녀온 금강 대협곡과 멋있는 분지, 그리고 서북 쪽 파란 하늘에 떠있는 몇 점의 하얀 구름이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그림을 감상하며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김 총무의 부인 김여사를 위로하기 위해 내가 말을 건넸다. “ 김 총무 아니면 내가 먼저 쓰러 졌을 것입니다. 김 총무 덕분에 잘 쉬면서 갑니다. 나폴레옹 군대가 눈 덮인 알프스를 넘을 때 쓰러진 동료를 업고 간 군인은 그 체온 때문에 둘이 모두 살고 혼자 살겠다고 먼저 간 군인은 동사(凍死)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 총무가 나를 구한 것입니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동창들이 기다리고 있는 백운봉 바로 밑의 넓은 분지에 도달하였다. 체한 데는 손가락을 따서 피를 내는 것이 좋다는 양상선약사에게 시술(施術)을 부탁했다. 모든 좋다는 방법은 총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점심 도시락을 풀었다. 대부분의 동창들은 한눈에 백두산 천지를 바라볼 수 있다는 백운봉 정상에 올라가서 구경하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 후 김 총무는 약 때문인지, 주사 때문인지, 침 때문인지, 손을 따서 인지 좌우간 서파를 완주해 우리를 안도케 했다. 모두들 김총무의 건투에 박수를 보냈다. 나는 미소를 잃지 않고 말없이 내조(內助)하는 김 여사의 가슴속으로 흐르는 보이지 않는 눈물에 더 큰 감명을 받았다. 첫 출발에서 종주 산행이 불가능하리라 믿었던 송금자여사(조정현동문 부인)가 선두 그룹을 유지하게 힘을 준 것도 김 총무의 공이 아닐까? 물론 조동문의 끊임없는 유머도 큰 힘을 주었겠지만.
-후미(後尾) 대장 서관주동문과 선봉(先鋒) 박진대장
자칭 저승사자! 14K 등산에서는 항상 서 동문이 후미대장을 맞는다. 서 동문이 뒤에 오면 쳐다보지도 말고 앞으로 달아나야 낙오하지 않은 것이다. 그 박식(博識)함과 유머러스함은 몇 번의 여행과 산행을 같이 하면서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이번 백두 산행에서도 한자 풀이 등 많은 것을 배웠다. 선봉(先鋒)의 박진 대장이 치밀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돌격 대장이라면 후미(後尾)를 맡은 서 관주 대장은 (서)두르지 않고, (관)리하며, (주)시하는 사려 깊은 대장이다. 본인이 병마로 고통을 당해본 경험이 그를 더욱 진지하게 만드는가 보다. 두 사람의 절묘한 조화는 14K 등산 팀이 오늘의 백두산 서파 종주를 성공적으로 이끈 원동력임에 14K 모두를 대신하여 두 동문께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손수정여사와 최낙섭 동문
내가 이 두 분을 여기에 함께 특별히 소개하는 이유는 두 분의 남다른 탤런트에 감복을 했기 때문이다. 손여사는 빠짐없이 메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보듯 진실한 여행담을 수려한 문체로 써주시는 분이고, 최동문은 사진으로 현장을 포착하여 우리에게 즐거운 회상을 두고두고 하게 하는 자기의 역할에 그 이상 충실할 수 없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귀찮아하는 일을 그 두 분은 즐기면서 하기 때문이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출세의 비결에는 3모가 있는데 메모, 용모, 유모(어)라고 한다. 또 다른 이는 정약용 형인 정약정이 자기 머리만 믿고 글을 남기지 않았고, 정약용은 철저히 메모하고 글을 남겨 ‘목민심서’등 주옥같은 글을 5백편 이상 남겨 후손들에게 커다란 정신적 문화적 유산을 물려주었다고 말한다. 이 두 분은 그러한 의미에서 정약용에 비길 만하다.
그리고 내가 여행기를 간단히 내 개인의 생각만을 담은 몇 부분만을 쓰고 많은 것을 생략할 수 있었던 것도 14K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손수정 여사의 글과 최동문의 사진을 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작품은 현장감, 생동감, 사실감이 넘치기에 나의 글은 사족(蛇足)이 될 따름이다. 나는 그분들의 글과 사진이 있는 곳을 알려줌으로서 나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자부한다.
-장백폭포와 산천어
달문에서 A, B 조가 다시 만나 천지 물로 목을 축였다. 천지의 물은 항상 일정하게 북쪽 달문을 통하여 이도백하(송화강 상류)로 흘러간다. 천지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으려 하니 중국의 장사치들이 자기들의 와이드 사진기로 사진을 찍으라고 졸라대다가 우리가 우리 카메라로 단체사진을 찍자, 한사람은 우리가 사진을 찍는 앞에서 확성기를 크게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며 방해를 하고 한사람은 천지(天池)라는 글자를 몸으로 막고 서있다. 그들이 연변의 우리 조선족이 아닐까 우려되고, 대국(大國)이라는 중국이 왜 이지경이 되었나 싶다. 중국이 대국이고 무한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선진국이 되기는 아직 요원한 것 같다.
천지에서 넘치는 물줄기를 따라 약 20분 걸어 내려오니 약 68m의 장백폭포(비룡폭포라고도 함) 옆으로 가파른 계단 공사가 한창이다. 약 980 개의 계단이 너무나 가파르게 되어 있어 B조의 한 친구는 이 계단을 올라오다가 포기하고 되돌아갔다고 한다. 마지막 40도 내지70도의 화산재 비탈을 겨우 겨우 내려온 우리에게 이 장백 폭포 옆의 계단은 또 하나의 마지막 시련이었다. 계단 중턱에 앉아 내려오는 부인들의 무릎에 약을 발라준다는 핑계로 친구 부인들의 다리를 만져보며 피로를 풀었다.(이 대목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위배되므로 대외비로 해주시길 ).
장백폭포에서 얼마 내려오지 않아 우리나라 사람이 새로 지었다는 한 호텔이 있었다. 가까워서 좋기는 했지만 장백폭포의 신비와 장엄함을 해치는 장사치의 발상이다. 내려오자 말자 피로를 풀기 위해 호텔 안에 있는 온천탕을 찾았는데 일인당 만 이천 원이란다. 내부는 엉망이고 서비스는 제로, 야외 온천에서는 중국인들이 수영을 하고 야단법석이다. ‘정말 부끄럽다. 깨어나는 중국을 가르치는 한국인의 얄팍한 상혼이여! 그들이 잘못 배운 것을 우리에게 마구 쏟아 놓을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저녁을 한입 겨우 털어 넣고 있는데 박진 대장이 와서 조규향 총장의 방송대 제자가 하는 산천어 횟집으로 가자고 했다. 너무 피로하여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박진 대장을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에 황원재동문과 함께 호텔 옆에 있는 산천어 횟집으로 갔다. 김일성의 지시로 붕어, 숭어 등 여러 물고기를 천지에 풀어 보았으나 숭어 과에 속하는 민물고기만 살아남아 ‘산천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맛은 보통이지만 귀한 것이라 모두들 흐뭇한 표정이다. 많은 동문들이 모여 왁자지껄 오늘의 무용담을 나누었다. 힘이 남아있는 B조의 목소리가 훨씬 요란하다. ‘훌륭히 마쳤고 덕분에 좋은 경험했다’는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피로하여 먼저 숙소로 돌아왔다.
-다시 오른 천문봉 관광
다음날 아침도 쾌청한 날씨였다. 우리 일행은 모두 북파인 천문봉까지 지프를 타고 올라갔다. 백두산에 다녀왔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 다녀온 것이다. 나도 약 6년 전 눈 덮인 천문봉을 관광하고 돌아와 “백두산에 잘 다녀왔다”고 자랑을 했으니까. 이번에는 눈이 녹아 없어지고 미끄러지는 화산재만 있어 전혀 다른 풍광이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는 용정의 대성중학을 돌아오는 길에 들렀다.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아는 이름들이 많아 정겹다. 친척 아저씨인 해외 한민족 연구소의 이윤기소장, 세브란스 선배 현봉학 선배님, 연대를 졸업한 윤동주 시인, 문익환 목사 등등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의 서시의 첫 구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을 인용한다. 특히 정치인들이 많이 인용하는 것 같다. 윤 시인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노래해 놓고 자기의 시를 인용해 부끄럼이 없는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저승에서 가슴아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해란강과 일송정에 대해 너무나 커다란 기대를 하다가 약간의 실망을 한분도 있겠지만 항상 글이나 노래는 우리의 상상을 극대화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우리 옥상의 감나무에 대해 글을 썼다가 그 감나무를 보자는 독자 때문에 얼마나 민망했는가!
그러나 용정, 간도, 일송정, 해란강이 잊어버려도 좋을 과거의 지나간 역사가 아니다. 지금에도 우리의 연변 조선족, 그리고 한반도와 밀접한 운명을 안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우리의 옛 땅은 또 한 번 선구자의 노래를 불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조JH 동문 등 많은 동문들이 방명록에 서명하고 해외 한민족의 뿌리를 위해 촌지도 보태었다.
-울릉도 갈매기와 인천 앞바다의 갈매기
연길에서 장춘으로 비행기로 이동, 호텔투숙 후 아침에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항상 우리 14K 등반 팀을 가족처럼 돌보는 정희수 사조관광기사가 돌아오는 우리를 공항에서 버스를 몰고 마중 나왔다. 8월 20일 교대역 출발부터 우리를 태우고, 인천 공항 부근의 아파트 야외 공원에서 중참도 마련하여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하였다. 그 버스는 우리를 태운 채 대형 페리호 선박에 올랐다. 울릉도에서 본 집시 바다 갈매기 때들이 인천 앞바다에서도 페리호를 감돌며 먹이를 달라고 아양을 떤다. 이젠 바다의 야생 갈매기가 아니고 인간이 사육하는 갈매기처럼 되어버렸다.
인천의 월미도에 내려 이름도 정다운 자갈치 횟집에서 전 대원과 마중 나온 유영철 동문은 함께 맛있는 회와 소주로 백두산 등산의 피로와 회포를 풀었다. 금강 대협곡, 야생화, 우루사, 장춘에서의 만찬 때의 일, 자갈치 횟집에서의 일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그 후 집으로 향한 버스 내에서와 3차 뒤풀이 이야기는 손SJ 여사의 백두산 여행기의 자세한 글을 읽어 보시기 바란다.
-에필로그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시조 단군왕검의 신시(神市)가 펼쳐진 높고 광활한 시원지(始原地), 키는 해발 2744m, 천지를 병풍처럼 둘러싼 16개의 봉우리, 그중 우리는 한중 경계인 5호 경계비를 시작으로 중국 쪽의 청석봉, 백운봉, 녹명봉, 달문, 장백폭포 등 서파를 종주하고 북파인 천문봉을 관광하고 돌아온 것이다. 곧 남북한의 관계가 좀 더 밀접해지면 북한을 통해 백두산 여행이 가능하리라고 한다. 특별케이스로 이미 다녀온 친구들도 있다. 우리가 멀리서 바라보기만한 북한 쪽의 반을 우리 14K가 또다시 주파하여 5호 경계비에서 받은 충격을 다소나마 보상받을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단상을 맺는다.
3. 황산 별곡(黃山別曲)
2005년 8월 백두산 서파를 종주하고 정상에 올라서서 중국 땅 바라보니
안휘성 구름 바다위에 중국 제일명산 황산이 높이 솟아있다.
2006년 9월 용마가족 26명은 황산의 72개 봉 기암괴석과 기묘한 송백을 향해
인천에서 한발을 쭉 뻗으니 한 시간 반 만에 상하이가 발밑에 와 닿는다.
상하이 웅장한 빌딩 숲 뒷골목에 자리 잡은 초라한 대한임시정부청사를 둘러보니
선조의 한과 얼이 깊이도 스며있어 무뎌진 내 가슴도 조용히 저려온다.
중국의 빠른 개발에 묻혀 역사의 뒤안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대한독립의 요람이여!
젖은 마음으로 황산에 도착하니 황산도 내 마음 알아 운무(雲霧) 속에 숨어있네.
옥병 케이블카 타고 하늘 높이 치솟으니 운해(雲海) 위 옥병루에 신선처럼 올라섰네.
구름바다에 깊이 뿌리박고 하늘 높이 솟은 바위산, 그 위에 뿌리내린 기묘한 소나무들,
운무(雲霧)바다를 이루니, 실제 바다는 없는데 서해(西海)라 북해(北海)라 하는구나!
천년세월 암반에 뿌리박고 시원한 손을 내민 영객송, 송객송이 용마들을 환영한다.
황산의 최고봉인 연화봉(1,860m)이 운무 속에서 숨바꼭질하여 우리의 애를 태우고
천도봉, 오어봉 둘러 해심정(海心亭)에 짐을 풀고 마음에 점을 찍어 배를 불리고 나니,
24용마 간이 부어 서해대협곡의 5만 계단 고행(苦行) 길을 용감하게 따라 나서고.
어진 양(羊) 두 분이 무거운 짐 맡아 우리들의 오늘 숙소인 북해빈관으로 질러간다.
서해대협곡을 내려가는 첫발걸음은 신선(神仙)놀음, 탄성을 내지르며
신선들이 거닐던 보선교(步仙橋)를 뛰어넘고 희희낙락 아래로 내려보니
심연(深淵)이 하도 깊어 바닥이 보이질 않으니 깊은 운해 속에 용궁 찾긴 어렵겠다.
하얀 운무의 화지위에 바람 따라 변화무쌍한 동양화나 감상하자.
깎아지른 2천 미터 바위산 직벽(直壁)에 붙여 만든 십만의 요술 계단!
인간 개미떼들이 과거에는 만리장성 쌓아 세계인을 놀라게 했고
이제는 하늘에 닿을 것 같은 신선 길을 만들어 또 한 번 놀라게 하는구나!
중국인들의 미련함인가? 우직함인가? 위대함인가?
간 큰 14K들 천행 길 잘못 들어 힘든 고행 길을 다시 한 번 오르내리게 하네.
신선들이 놀던 곳에 인간들이 웬 말이냐? 교만함을 질책한다.
오천 계단 돌고 돌아 배운정(排雲亭)에 올라와서 구름을 몰아내고 가쁜 숨 몰아쉰다.
천신만고 끝에 북해(北海)빈관 찾아 몸을 푸니, 머리는 신선 같고, 다리는 버러지 같다.
오만계단 오르내리며 배운 것은 하늘 닿는 계단 만든 인간의 집념이요 인내이니
누가 다리 아픈 핑계로 중도에서 낙마(落馬)할 수 있겠는가?
앞서가시는 칠순 넘은 선배 내외분, 고소공포증 친구와 심장 좋지 않다는 동창도
성큼 성큼 앞서가니 뚱뚱한 스마일 오방떡 뒤따라가며 부끄러워하네.
북해호텔에서 자고나니 다시 몸이 가뿐해져, 새벽 5시에 일어나
청량대에 올라가서 일출을 기다리나 구름 속에 일출은 떠오르지 않고
"백두산에서 그렇게 맑은 일출을 보고 여기서도 또 보려느냐?
욕심을 버려라! 인간들아!" 하늘에서 한 음성 들려온다.
광명정, 시신봉등 두르며 일출을 기다리나 "황산에 다시 오라!"는 말뿐.
운무의 하얀 화지 위에 바람의 멋진 붓으로 그려지는 동양화나 감상하자.
누가 말했던 가? “황산에 올라오니 천하에 산이 없다!” 고,
나도 흉내 내어 말해본다. “운무에 숨바꼭질 하는 72 암산 봉우리들, 기암괴석,
소나무들을 바라보니 천하의 유명 화백이 그린 동양화가 하찮게 보이더라.”라고.
운해위의 신선놀음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가려고 백아령에서 케이블카를 기다린다.
신선에서 중생되려하니 4시간을 기다려 진을 빼어 신선 기분을 완전히 뺏어버린다.
40명이 함께 타고 장장 2,804m를 내려오니 운곡사 염불 소리가 인간 고해를 알려준다.
꿈같은 지난 이틀, 신선 놀던 황산의 운해를 뒤로하고 인간고해로 다시 내려왔다.
또 하나의 미스터리, 개미 인간들이 1500년 전에 암산을 파서 만든 화산미굴,
36개의 석굴은 누가? 어떻게? 왜? 그 규모의 방대함에 또 한 번 놀란다.
인간들의 집념은 마이크로 칩에서 우주정거장에 이르니 내가 거닐 곳은 어디메뇨?
만리장성! 황산의 암산 직벽에 붙어있는 십만 계단들! 엄청난 규모의 인조 석굴!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라는 항주의 서호에 배 띄우니
중국의 옛 시인 소동파가 다시 살아나고, 지상 천국이란 말이 헛말이 아니구나!
중국 선종의 10대 사찰중의 하나인 영은사를 둘러보니 아! 많기도 많다! 부처님들!
40억 중생에 셀 수 없는 부처님들! 인산인해 여기에도 있네! 극락도 만원이다.
돌아온 상하이! 중국 경제, 무역, 기술, 문화의 중심도시 상하이!
황포 강에 유람선타고 상하이 빌딩숲의 멋있게 연출된 빛나는 야경을 본다.
휘황찬란한 내온의 보석 옷으로 갈아입은 상하이 빌딩들은 말한다.
이제는 40억 인구가 짱꼴라 잠바를 벗어던지고 세계 제일의 신사가 되겠노라고.
황포강가의 아편전쟁 후의 조차지에 지은 서양열강들이 만든 건물들은 말한다.
매일 새로이 죽순처럼 우뚝우뚝 솟아나는 상하이 빌딩 숲을 보면 두려워진다고.
아! 죽의 장막 어둠을 뚫고 번득이는 40억 중국인의 눈빛! 깨어나는 공룡!
그 성장 속에 사라질 운명에 처한 대한임시정부청사의 운명은?
호랑이 가죽을 둘러쓰고 우쭐대는 토끼야! 정신을 바짝 차려라.
만용은 필요 없다. 공룡과 싸우려면 지혜와 힘이 필요하다.
금강산 자랑 말고, 금강산의 현관인 장전항의 민둥산에 나무를 심고, 불 좀 켜주렴.
백두산 자랑 말고, 남아있는 반쪽이라도 빼앗기지 말고 잘 지켜보려무나.
신선놀음하고 돌아와 저려오는 이 가슴을 어이할꼬!
아직도 짱꼴라! 만만디! 라고 비웃으려는가?,
아직도 기름때 묻은 더러운 때 놈이라 무시할 것인가?
호랑이 가죽을 둘러쓰고 긴 담뱃대 입에 물고 어슬렁거리려는가?
겨우 잠깐 동안 밝힌 동방의 등불을 꺼버리려는가?
죽의 장막을 걷고 달려 나오는 용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토끼여! 지금 눈을 부비는 용을 두려워 말고 용마의 등에 올라타라!
다시 한 번 정신 차려 달려보자! 고구려의 옛 영광 터를 되찾으러
만주 벌판으로 달려가자. 대마도, 태평양으로 배 저어가자.
- 을왕리 해변에서 실미도를 바라보고
횟집에 모여앉아 황산 여행 뒤풀이를 하며
황산여행 4박 5일을 되돌아본다 ―
2006년 9월 17일 이헌영
4. 동고동락
2007년 1월 26일, 금요일 오후 4시 교대전철역을 출발한 14K 30명은 서울의 진눈깨비 전송을 받으며 오후 7시 인천연안부두에 도착 오하마나 여객선을 탔다. -호화여객선을 타고 현란한 무도회에 참석하고 서해의 밤하늘별을 감상하며 ‘친구여! 바다여! 산이여!’를 목청 놓아 부르리라. 선상에서 아름다운 일출을 맞으리라. 한라산 백록담에서 눈 축제를 하고 천지의 얼과 백록담의 얼을 하나로 섞으리라! - 이렇게 호화판 크루즈여행 꿈을 꾸며 정원 약 1000명의 오하마나 호에 승선했다.
12만 원으로 2박3일의 호화 유람선 크루즈여행과 한라산 산행을 꿈꾼 내가 염치가 없지만 일단은 기대를 하며 배정받은 여객선 6층 이벤트 홀로 들어섰다. 대 강당(이벤트 룸)에 3단 패드 요하나, 모포하나, 베개 하나 씩 배급받아 약 3-4개조 120-150명가량의 혼합 혼성 등산 팀이 자리를 잡으니 완전 만원이다. 걸어서 밖으로 나가려면 남의 침상을 밟고 나가야한다. 거기다 약 3-40명씩 끼리끼리 둘러앉아 중간에 틈을 내어 부둣가에서 사온 회와 소주로 파티를 벌리니 “오! 하마나!” 호화 여객선은 저리가고 바람찬 흥남부두 철수 피난선 위의 전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한라산 여행은 동고동락의 고와 락으로 시작되고 이어졌다.
14K는 둘러앉아 박진, 김용후, 조정현 동문, 그리고 정희수 기사 등이 애써 마련한 회와 소주를 마음껏 즐겼다. 일류 일식집에서 먹는 요리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팀별 파티가 끝나고 밤이 깊어갔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밤하늘의 별은 캄캄한 구름 속에서 나오질 않는다. 조용히 잠자리에 드는 사람, 여성 팔씨름 대회, 라이브 가요무대, 선상 불꽃놀이 등으로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사람, 술에 곯아떨어져 세상모르고 꿈속을 헤매는 사람, 뱃멀미로 고생을 하는 사람 각양각색이지만 일견하여 훑어보면 매우 질서 정연한 것 같다.
한잔하고 있는 도중 곁눈질해보니 나의 잠자리 옆에 다른 팀의 처녀가 자리를 잡고 누워있다. 내가 코를 많이 고는데 코고는 할아버지가 소주 냄새를 풍기며 옆에 누워 있으면 저 처녀의 심정은 어떠할까? 내 잠버릇이 고약하여 온 방을 헤매는데 오늘 밤을 온전히 보낼 수 있을까? 즐겁고도 고약한 생각을 하며 등산복을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들었으나 그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탈도 없이 잘도 잔다. 나도 깊은 잠에서 깨어 보니 비교적 얌전하게 잔편인지 내 자리에 내가 있었다. 꿈결에 내 다리가 몇 번 처녀의 엉덩이를 걷어찬 것 같은데 그 처녀도 아무 불평 없이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니 내가 신사도를 지킨 모양이다. 나는 신사라 치고 저 많은 취객들이 어떻게 저렇게 질서정연하게 잘 자고 있을까? 집에서는 내 코골이 때문에 아내가 자는 나의 머리를 돌리기가 바쁜데! 돈 많은 귀족 성향의 사람들은 이러한 재미는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동고동락을 알고 산과 바다를 즐기는 친구들은 삶의 참 맛을 아는 친구이다.’라고 혼자서 중얼거려본다.
아침 9시경 오하마나 호는 제주항에 입항했으나 기대했던 선상 일출 구경은 할 수 없어 다음 기회로 미루고 선상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한 후 기다리고 있던 관광버스에 올랐다. 여러 학교의 R.O.T.C 출신으로, 박진 대장 후배라는 8명의 건장한 사나이들이 우리 버스에 동승했다. 밖은 눈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한라산의 차도에 하얀 눈이 쌓이기 시작하자 우리의 마음은 눈 축제의 꿈으로 부풀기 시작했다. 허나 어리목도 못미처 우리가 탄 버스는 이리저리 미끄러지더니 급기야는 옆 도랑으로 쳐 박힐 뻔했다가 가까스로 길옆에 멈추어 섰다. 잘못했다가는 대형 교통사고가 날 뻔했다. 동고동락은 좋지만 동행참사는 싫다. 자주 눈이 오는 한라산의 겨울 산행을 인도하는 관광버스가 스노타이어도 없이, 스노체인도 하지 않고 귀중한 40명을 태우고 눈 오는 날 산행을 하다니?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우리 일행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박 대장을 보니 불평도 할 수 없어 “야! 이렇게 함께 고생하는 것도 재미있다. 한라산 꼭대기 백록담이야 자주 보았으니 이 눈 속에서 뒹굴다 가면되지!”라고 위로하며 기다리자 다른 교체버스가 왔다. 어리목을 향해가던 이 버스도 어리목도 못미처 스톱하고 우리는 걸어서 어리목을 향했다. 우리는 스패츠, 아이젠, 비옷 등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약 2km 남았다는 어리목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눈에 미끄러지는 자가용들, 주위의 목장에 어슬렁거리는 제주 조랑말들을 구경하며 모두 은빛으로 변하는 나무들을 보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어리목에 도착했다. 우리를 반기는 것은 커다란 까마귀 떼들이었다. 그들이 우리가 반가워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반기는 것은 라면 부스러기 등, 우리가 먹고 버린 음식물 찌꺼기라는 것이다. 천막 속에서 눈을 피해 찬 도시락을 펼쳤으나 밥은 얼어 전혀 맛이 없다. 박대장이 나누어주는 라면국물을 얻어 말아먹으니 그대로 먹을 만했다.
점심 식사 후 원하는 사람은 1-2십분 더 걸어 올라가 눈 꽃 구경을 하고 내려오자는 박대장의 권유에 따라 윗세오름 쪽으로 눈을 구경하며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조용한 설경은 형언키 어려운 마음의 감동을 주었다. 이런 멋있는 설경을 보면서 왜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일까? 그래서 일행을 앞으로 보내고 뒤로 슬슬 처지기 시작했다. 와이프를 집에 두고 혼자 온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점심때 먹은 찬 도시락 때문인지 살살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 김용후 동문과 권명 동문이 뒤따라와 함께 조금 쉰 후 어리목으로 다시 내려왔다.
제주 시내의 수협부근 식당에서 R. O. T. C.팀과 합류하여 고등어조림, 매운탕 등으로 모두들 맛있게 식사를 하고 소주잔을 돌리고 있었다. 내게도 소주잔이 왔으나 배가 좋지 않아 사양하고 서관주 동문이 가져온 포도주만 한잔 먹었다. 나는 배가 아파 슬그머니 빠져 화장실을 찾았다. 통 위에 올라앉자 내세상이다. 시원한 거사를 엄밀히 시행하고 있는데 신나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박찬배, 조정현 동문이 흥에 겨워 R. O. T. C.팀에 합류하여 군가 등을 신나게 불러대고 있었다. 거사를 치르고 나니 나도 그들의 노래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당구 귀신(박찬배, 조정현)들은 R. O. T. C.팀과 합세하여 당구를 친다고 그 잠깐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다가 약속시간을 어겼다. 이들을 혼내주기 위해 버스를 먼저 출발시켰다. 뒤늦게 도착한 이들은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하기야 노름판에 정신을 뺏긴 남편을 길들이려는 마누라처럼 처량한 신세도 없지!
귀경을 위하여 저녁 7시경에 다시 오하마나에 승선했다. 우리 팀은 식후에 선상에서 벌어진 디스코 등 춤 경연대회에 박대장의 부인 윤희섭씨와 조정현 동문이 출연해 젊은이들을 물리치고 노익장을 과시했다. 군대 막사보다 좁은 방 가득히 여객들을 몰아넣어 오늘밤은 앉아서 자야겠다고 고생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젊은이들이 회와 소주파티에 질렸는지 다른 곳으로 피해주어 그런대로 발을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 수평선으로 떠오르는 태양, 인천 부두에서의 마무리 회식, 비록 힘들긴 했으나 동기동창끼리의 동고동락은 화려한 고급 외국 여행보다 훨씬 기억에 남고 어린 시절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이 뿌듯했다.
2007년 3월 이헌영
첫댓글 자료를 정성껏 뫃아 두셨군요 눈이 않보입니다 이를 어쩌나
충고 고맙습니다. 글자를 좀 키웠습니다.
나는 돋배기를 쓰고 보았으니 전형의 맨눈과는 달랐지요!
글 쓰는 것이 사진 박는것 보다 더 어려운데
눈앞에 흘러가는 구름같이 풍광이 선 하구나
붓하나 먹 덤뿍 찍어 내리 그어면 산수 풍경이 절로 그려지겠구나!
사부님이 한필 휘둘러주시면 제자도 도포자락 잡고 따라 그어리다.
부산 14K 390회 등반에 비하면 100회가 얼마 안되지만 40여명이 매달 꾸준히 다닌것에 박진 대장을 대신하여 자랑하고 싶소.
박대장! 빨리 일어나 함께 산에 갑시다.
이글을 지금 병마와 결투를 하고 있는 박진대장의 승리를 위해
모든 14K 전원이 큰소리로 박진 대장의 쾌유를 빌며 왜치는 응원가로
박진대장에게 바친다.
지난 14K들의 등산 역사가 이곳에 총 집합해 들어 있네요... 귀한 자료 와 글 잘 읽고 갑니다
대장님께 드리는 응원가 해외 동문들도 함께 부를거라 믿어요
이영 특파원! 항상 고맙습니다. 직접 뵈오니 아름다운 미소가 더욱 좋았습니다.
박진 대장을 위해 많은 기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