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실성 마립간(402-417년)때 충신 박제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박문량이었는데 아버지 박제상이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 있던 눌지 마립간의 동생 복호를 고구려에서 데려오고, 또 왜국에 붙잡혀 있던 미사흔을 탈출시킨 후 자기는 왜군에게 잡혀 죽자 박제상의 부인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린 박문량은 둘째 누나가 키웠다. 눌지 마립간은 죽은 박제상에게 대아찬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박제상의 딸은 미사흔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박문량도 높은 벼슬을 얻었다. 그러나 박문량은 거문고를 훨씬 좋아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너무 여려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부모님을 한없이 그리워했다. 박문량에게 거문고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그는 아버지를 죽인 왜국에 대한 분노를 거문고에 담았다. 또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거문고에 담았다. <아마 네가 없었다면 나도 이 세상에 살기가 싫었을거야.>
박문량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늘 거문고를 옆에 두고 살았다. <난 관직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 박문량은 가끔 부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럼 무얼 하고 싶으신지요?> <영계기처럼 살고 싶소.> <영계기라뇨?> <중국춘추시대에 살았던 사람이오.> <무슨 일을 했는데요?>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오. 그 사람은 사슴 가죽 옷에 새끼줄을 매고 항상 악기를 타며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오.> <그럼 당신도 세상을 등지고 싶으시단 말씀인가요?> <그런 뜻은 아니오. 아무런 욕심없이 악기를 타며 살고 싶을 뿐이오.> <삶에 얽매여서는 진정한 예술인이 될 수 없지.> <악기 연주하시는 것이 그렇게도 소원이시라면 뜻대로 하세요.> <정말 그렇게 해도 괜찮겠소?> <당신이 하시고 싶어하는 일인데 제가 왜 반대를 하겠습니까?> <가난해요 괜찮겠소?> <당신도 참, 지금은 우리가 부자인가요?>
박문량의 아내는 피식 웃고 말았다. 박문량은 본래 재물에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벼슬을 하고 있지만 늘 가난했다. <벼슬을 하는 사람이 재산이 많다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을 많이 했다는 증거가 아니겠소?>
결국 박문량은 모두가 원하는 벼슬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 음악에 전념했다. 친구들은 음악은 벼슬을 하면서 틈이 날 때 하면 되지 않냐고 그를 설득했지만 그는 틈이 날 때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음악과 함께 살고 싶어했다. 박문량은 음악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서 3일 밤을 꼬박 새우며 낙천악이라는 곡을 작곡하여 친구들에게 거문고로 그곡을 들려주었다. 음악을 전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즐거워했던지 낙천악은 샘물이 펑펑 솟아나듯 기쁨이 솟아나는 곡이었다. 나중에 박제상이 후회하지 않을까 염려했던 친구들도 이젠 말리지 않았다. 친구들 중에는 박문량을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었다. <벼슬을 한답시고 남의 눈치나 보고 욕심스럽게 재물을 모으고 한 평생 사는 것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오히려 자네가 부럽네.> 다음날로 박문량은 고향인 낭산 밑에 있는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로 떠났다. 신라 지증왕 21년의 일이다.
높은 벼슬을 했지만 이삿짐이 별로 없었다. 왕족의 후손이고 유명한 충신 박제상의 아들이면서도 집도 초라한 초가집이었다. 박문량은 단벌 옷만 입고 살았는데 그 옷을 꿰맨 자리가 백군데는 되었을 것이다. 그는 그래서 백결선생이라고 불렸다. 백결이란 가난하여 옷이 갈갈이 헤어져서 누덕누덕 기워 입은 옷이라는 뜻인 ‘현순백결’이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었지만 백결선생은 전혀 아이들과 아내를 돌아보지 않았다. 결국 아내가 남의 집 일을 거들어 주고 먹을 것을 얻어 왔다. 아내는 그런 박제상을 원망하고 불평하곤 했다. 그러나 나중에 방아타령을 지을 때 큰 감동을 받아 백결선생의 음악을 이해하고 후원하게 된다. 설이 되어 다들 설빔을 하느라 방아를 찢는데도 백결선생의 집에는 먹을 것이 없으니까 방아찢는 소리가 들릴 수 없었다. 그런데 왠 일인지 백결선생이 아내에게 집에서 방아찢는 소리가 나게 하겠다고 하더니 정말 거문고로 방아찢는 소리를 냈다.
백결선생은 거문고와 결혼한 사나이였다. 베토벤이 결혼을 안 하냐고 누가 질문하니 나는 음악과 결혼했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백결선생은 하루종일 거문고만 생각하며 사는 괴짜였다. 산책을 할 때도 그의 머리 속에는 거문고가 떠나지 않았다. 머리 속으로 곡을 만들고, 거문고를 타다가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지기도 했다. 그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누구나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백결선생은 거문고에 깊이 빠져 있었다. 겉으로 보면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은 백결선생이 불쌍하기도 하고,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당신은 어디서 온 사람이오?> <어디서 오다니요? 그것참 어려운 질문이구려.> <뭐라구요?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것이 어려운 질문이라구요?> <그럼요.> <하하하. 그럼 당신은 어디서 온 줄도 모르오?> <그렇게 묻는 당신은 어디서 왔소?> <나야 우리 고향에서 왔지요?> <나도 그렇소.> <고향이 어디요?> <내 고향은 우리 어머니 뱃속이지 어디겠소?> <허허, 그 사람 꽤 까다롭군. 그럼 댁의 어머니 고향은 어디요?> <그거야 뻔하지 않소. 바로 우리 할머니 뱃속이오.> <그만 둡시다. 당신하고 얘기하느니 소하고 하는 것이 낫겠소.> 그 사람은 화를 내며 가버렸다.
백결선생은 잠을 자면서도 거문고를 연주했다. 백결선생은 꿈 속에서 타던 거문고 소리를 기억해 내며 연주를 하기도 했다. 매미가 울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여름에는 듣기만 해도 시원한 곡으로 거문고를 탔다. 가물어서 농작물이 타들어 가면 거문고로 비오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천둥치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비가 후두둑 쏟아지는 소리를 내었다. 백결선생의 이런 곡을 연주하자 하늘도 감동했는지 가물어 농작물이 타들어가던 여름에 비가 쏟아져 내린 일도 있었다.
신라 사람이라면 방아타령을 다 알고 모든 신라사람이 그 노래를 불렀다. 유명해진 백결선생은 자비왕에게 초청받아 궁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다. 왕은 많은 곡식과 옷감들을 상으로 내렸다. 그러나 재물이 있으면 욕심이 생길까 두려우니 상으로 주신 것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백결선생은 끝내 상을 받지 않았다. 거문고만 가지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