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로 만나 꾸준히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나는 정씨에게 "나"의 존재를 계속 심어주었다.
결국 계약과 보험금 지급을 거쳐 지금은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인연인지!
정씨는 200*년 4월, 나의 첫번째 고객의 소개로 만났으나 당시에 택시운전을 하고 있어서 보험에 대한 소개만 하고 계약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정씨는 택시를 정리하고 통닭집을 개업하였지만 오토바이 배달이 잦아 계약요건에 미달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몇 개월 사업이 잘 안되어 정씨는 통닭집을 정리했고, 중장비학원을 다니며 지게차 운전을 시작하였다. 그제서야 정씨는 위험 1등급직종에서 벗어났고 고객이 원하던 보험을 가입할 수 있었다.
청약서에 정씨가 서명을 할때 나에게 한 이야기는 아직도 내게 미소를 짓게만든다.
" 보험계약을 안했는데도 수시로 전화하고 안부를 물어주어 당신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까다로워서야 보험을 가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나는 유쾌하게 웃으며 "가입은 까다롭게 하셨지만 그만큼 철저한 보장을 약속드리겠습니다."고 말했다.
200*년 2월 10일 설연휴가 시작되는 일요일밤 9시 30분
출산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집사람과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핸드폰 수신기에서는 지금 정씨가 교통사고로 병원응급실에 누워있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서둘러 옷을 입고 병원으로 급히 달려갔다.
피투성이의 고객, 어떻게 이런일이...
나는 새벽녘까지 정씨의 보호자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새웠다. 아침에 의식을 찾은 정씨는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어`하는 한마디와 왼쪽눈이 안보인다고 당황해 하는 것이다. 온몸이 쑤시고 아픈건 둘째고 앞이 안보이는데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는가?
00병원은 산재보험 전문병원이라 안과가 없었기 때문에 정씨를 인근의 안과로 데려갔다. 그 후로 나는 한쪽 눈이 안보이는 고객을 모시고 매일같이 다른 병원으로 통원치료를 다녔다.
정씨는 나의 첫째 딸이 태어나는 날 퇴원을 했다. 나는 집사람과 잠깐 시간을 보내고 퇴원수속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바로 정씨에게 달려갔다. 집사람에겐 미안했지만 내일에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생각에 머뭇거림 없이 달려간 것이다. 그 후로도 수차례 나는 정씨와 안과병원을 같이 다녔고 정밀한 검진을 위해 부산의 종합병원까지 동행해주었다.
정씨는 퇴원후 혹시나 시력이 돌아올까 하는 희망에 계속해서 유명안과를 찾았다. 그러나 주치의는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다며 이대로 살아 가는 길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하였다. 부산의 종합병원까지 가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고, 나의 어떤 위로의 말도 정씨에게는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미혼인 정씨는 얼마 안되는 월급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상환하고 있었다. 생활에 여유가 많지는 않았지만 보장의 필요성을 느껴 우리 OO생명과 D보험사에 보험가입을 했고, 그 결과 이번 사고로 2억이라는 큰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정씨가 잃어버린 눈의 값어치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정씨는 대출금을 모두 상환하고, 나머지는 은행에 예치중이다.
"보험에 대해서 여러번 설명도 들어봤지만 아는 사람이라 가입했다가 해지하곤 했지, 이번처럼 자세히 설명듣고 계약한 일은 없었다. 또 D생명에서는 전화한통 없었는데, 사고나서부터 보험금지급까지 이렇게 신경써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한다. 또 현재 은행예금의 만기가 끝나면 우리회사의 저축성 상품에 예치하고 싶다고 하며, 지금은 계약 Upgrade를 상담중이다.
기존계약자의 소개로 만나 꾸준히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나는 정씨의 머리속에 "나"의 존재를 계속 심어주었다. 그것이 결국에는 계약으로 연결되었고, 그리고 보험금 지급을 거쳐 지금은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인연인가?
총지급보험금 : 5,020만원 (장해 진단급여금 5,000만원, 입원 2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