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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다 송 |
東茶頌(原文)
東茶頌 承 海道人① 命作
艸衣 沙門 意恂②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해도인(海道人):해거도인(海居道人)을 말함. 해거도인은 홍현주 (洪顯周)의 호. 동다송(東茶頌) 다예관본(茶藝館本)이나 석오본(石梧本)에 모두 거(居)자가 생략되고 해도인(海道人)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해거도인(海居道人)이라고 해야 한다.
② 의순(意恂):의순은 초의선사(艸衣禪師)의 법명(法名)이다. 의순의 순(恂)자는 두 가지가 있다. 심방변(忄:恂:믿을 순)으로 쓰기도 하고 삼수변(氵:洵:믿을 순)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두 글자가 서로 뜻이 통하는 글자이다.
東茶頌(校訂文)
東茶頌 承 海居道人 命作
艸衣 沙門 意洵
동다송
동다송 승 해거도인 명작
초의 사문 의순
동다송(東茶頌)①
동다송은 해거도인(海居道人)②의 부탁을 받아 사문(沙門)③인 초의의순(艸衣意洵)④스님이 지었다.
주(註)
① 동다송(東茶頌):우리나라(東國)에서 생산되는 차(茶)를 송구(頌句)로 예찬한 시(詩)의 문체(文體)이다.
② 해거도인(海居道人):홍현주(洪顯周)의 호, 자는 세숙(世叔), 호는 해거재(海居齋), 약헌(約軒), 정조(正祖)의 딸인 숙선옹주(淑善翁主)에게 장가 들어 영명위(永明尉)가 되었다. 풍산인(豊山人), 영의정(領議政) 낙성(樂性)의 손자이자, 우부승지(右副承旨) 인모(仁謨)의 아들이다. 형 석주(奭周)는 좌의정(左議政)을 지냈다, 순조 15년(1815)에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고, 문장에 뛰어났다
③ 사문(沙門):출가(出家) 수행자(修行者)를 일컫는 말이다. 범어(梵 語)로「śramana」라고 하는데, 한역하여 사문(沙門), 상문(桑門․喪門), 사문(婆門), 사문나(沙門那), 사라마나(舍囉摩拏)라고도 쓰며, 식심(息心), 공로(功勞), 근식(勤息)이라 번역한다. 부지런히 모든 좋은 일(善業)을 닦고, 나쁜 일을 일으키지 않는 이라는뜻. 외도(外道)나 불교도(佛敎徒)를 불문하고, 처자 권속을 버리고 수도 생활을 하는 이를 총칭하는 말이었으나, 후에 불문(佛門)에 출가한 사람만을 가리킴. 비구(比丘)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④ 초의의순(艸衣意洵):조선 말(1786~1866년)의 고승, 한국 차문화(茶文化)의 중흥조이다.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 해남 대흥사 일지암(一枝庵)에서 열반했다. 동다송(東茶頌), 다신전(茶神傳) 일지암시고(一枝庵詩槁), 일지암문집(一枝庵文集), 선문사변만어(선문사변漫語), 초의선과(艸衣禪課)등의 저서가 있다.
동 다 송 1 |
第一頌 (原文)
后皇嘉樹配橘德 受命不遷生南國
蜜葉①鬪霰貫冬靑 素花濯霜發秋榮
姑射仙子粉肌潔 閻浮檀金芳心結
[茶樹如瓜蘆 葉如梔子 花如白薔薇 心黃如金② 當秋開花 淸香隱然云]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밀엽(蜜葉):밀(蜜)자가 다예관본에는 꿀 밀(蜜)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빽빽할 밀(密)자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빽빽할 밀(密)자로 쓰는 것이 타당하다.
② 심황여금(心黃如金):황(黃)자와 여(如)자의 순서가 바뀌었다. 그러나 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심황여금(心黃如金)으로 되어 있다. 바로 잡으면 심여황금(心如黃金)이 된다. 이를 해석하면「꽃술은 황금과 같다」는 뜻이다.
第一頌(校訂文)
后皇嘉樹配橘德 受命不遷生南國
密葉鬪霰貫冬靑 素花濯霜發秋榮
姑射仙子粉肌潔 閻浮檀金芳心結
[茶樹如瓜蘆 葉如梔子 花如白薔薇 心如黃金 當秋開花 淸香隱然云]
제1송
후황가수배귤덕 수명불천생남국
밀엽투산관동청 소화탁상발추영
고사선자분기결 염부단금방심결
[다수여과로 엽여치자 화여백장미 심여황금 당추개화 청향은연운]
제1송
후황(后皇)①이 아름다운 나무(차나무)에 귤나무와 같은 덕(德)을 갖게 하였으니,
명(命)을 받아서 옮겨가지 아니하고 남쪽 나라에서만 사는구나.
빽빽한 이파리는 싸락눈과 싸우며 겨우내 푸르르고,
흰꽃은 서리에 씻기어 가을 정취를 빛내누나.
고야산(姑射山)②에 사는 신선(神仙)의 살결 같이 희고 깨끗하며,
염부제(閻浮堤)의 단금(檀金)③같은 황금빛으로 꽃술을 맺었구나.
[차나무는 과로(瓜蘆)④와 같고, 잎은 치자(梔子)⑤ 와 같고, 꽃은 백장미(白薔薇)⑥와 같고, 꽃술은 황금과 같아 가을이면 꽃을 피워 맑은 향기가 은은하더라]
주(註)
① 후황(后皇):황천후토(皇天后土)의 줄인말, 즉 천지의 신,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를 말한다.
② 고야산(姑射山):장자(莊子)의 소요유편(逍遙遊篇)에 보면 고야산에 신선이 사는데 살결이 처녀같이 곱고 희다고 하였다.
③ 염부단금(閻浮檀金):지도론(智度論)에 보면「염부주(閻浮洲)에 큰 숲이 있고 그 숲 가운데 하천이 있고 그 밑바닥에 사금(沙金)이 있다. 이를 염부단금이라고 한다」 그 빛깔은 적황색(赤黃色)이다.
④ 과로(瓜蘆):고로(皐蘆), 과라(過羅), 물라(物羅), 고등(苦등)이라고도 한다. 나무이름. 우리나라의 고로수와 같은 나무로 차나무와 비슷하다.
⑤ 치자(梔子):나무이름. 상록수로 잎이 차나무 잎과 비슷하다. 약초로 쓴다
⑥ 백장미(白薔薇):꽃나무, 장미과에 속하는 것으로 하얀 꽃이 핀다. 찔레꽃은 차의 꽃과 비슷하다.
해설(解說)
제1송
제1구:차나무가 지니고 있는 덕이 귤나무와 같음을 말했으며,(君子의 德을 상징)
제2구:차나무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만 자라며 옮겨가지 않는 것을 말했으며, (부녀자의 貞節을 상징)
제3구:차나무는 상록수(常綠樹)로서 겨울철 추운 눈보라에도 굴복하지 않는 지조가 있는 나무이며, (선비의 忠節을 상징 歲寒精神)
제4구:차나무의 꽃은 흰색이며 작은 백장미 같다고 했으며, (純潔을 상징)
제5구:신선의 살결같이 곱고 깨끗하며 아름답다고 했으며,
제6구:꽃술은 노란 황금빛을 띄었으며 염부제 단금천의 황금처럼 좋더라고 하였다.
원문주:차나무의 생김새를 알기 쉽게 설명하였는데 차나무는 과로와 같고 잎은 치자잎과 같고 꽃은 백장미와 같고 꽃술은 황금과 같은데 가을이면 꽃이 피어 맑은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더라고 하였다. 제1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나무가 인간에게 베푸는 덕(德)과, 따뜻한 곳에서만 생장하는 성품과, 상록수가 가지는 지조 있는 품덕과 가을의 영화로움을 한껏 자랑하는 꽃의 소박함과 향기 등 차나무의 생김새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1송의 인용문헌은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와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인데, 원문은 초사의 귤송(橘頌)을, 원주(原註)는 다경의 일지원 (一之源)을 각각 인용하였다.
굴원의 귤송에 보면
「후황가수(后皇嘉樹) 귤래복혜(橘徠服兮)
수명불천(受命不遷) 생남국혜(生南國兮)
심고난도(深固難徒) 경일지혜(更壹志兮)
녹엽소영(綠葉素榮) 분기가희혜(紛其可喜兮)
증지섬극(曾枝剡棘) 환과박혜(圜果博兮)
청황잡유(靑黃雜楺) 문장난혜(文章爛兮)
정색내백(精色內白) 유임도혜(類任道兮)
분온의수(紛縕宜修) 과이불추혜(姱而不醜兮)」라고 되어 있다. 원주문은 다경의 일지원(一之源)중에서 발췌 인용하였는데, 그 원문을 보면 「다자(茶者) 남방지가목야(南方之嘉木也) 일척이척(一尺二尺) 내지수십척(迺至數十尺) 기파산협천(其巴山峽川) 유양인합포자(有兩人合抱者) 벌이철지(伐而掇之) 기수여과로(其樹如瓜蘆) 엽여치자(葉如梔子) 화여백장미(花如白薔薇) 실여병려(實如栟櫚) 체여정향(蔕如丁香) 근여호도(根如胡桃)」라고 되어 있다.
동 다 송 2 |
第二頌(原文)
沆瀣潄①淸碧玉條 朝霞含윤閵②翠禽舌.
〔李白云 荊州玉泉寺 靑③溪諸山 有茗艸羅生 枝葉如碧玉 玉泉眞公常采飮〕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수(潄):빨래할 수(潄)자는 다예관본에는 속자(俗字)인 수(潄)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본자(本字)인 수(漱)로 되어 있다. 원자인 수(漱)로 교정한다.
② 윤(潤):윤(潤)자는 윤달 윤(閏)자와 같은 자이다. 다예관본에는 윤달 윤(閏:閏)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윤택할 윤(潤)자로 되어 있다. 이 윤(潤)자는 석오본의 윤택할 윤(潤)자가 맞는 글자이다.
③ 청(靑): 푸를 청(靑)자는 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푸를 청(靑)자로 되어있으나, 이백의 시문에는 맑을 청(淸)자로 되어있다. 맑을 청(淸)자로 바로 잡는다.
第二頌(校訂文)
沆瀣漱淸碧玉條 朝霞含潤翠禽舌
[李白云 荊州玉泉寺 淸溪諸山 有茗艸羅生 枝葉如碧玉 玉泉眞公常采飮]
제2송
항해수청벽옥조 조하함윤취금설.
[이백운 형주옥천사 청계제산 유명초라생 지엽여벽옥 옥천진공상채음]
제2송
푸른옥(碧玉)같은 줄기는 맑은 이슬(沆瀣)①로 깨끗하게 씻었고, 새의 혀(禽舌)같은 이파리는 아침 이슬(朝霞)②을 담뿍 머금었네. [이태백(李太白)③이 말하기를 형주(荊州) 옥천사(玉泉寺)가 있는 청계산(淸溪山) 일대에는 차나무가 가득 번성하는데, 그 가지와 잎은 푸른 옥(碧玉)과 같다. 옥천사의 스님 진공(眞公)이 항상 이 차를 따다가 마신다.]
주(註)
① 항해(沆瀣):밤중에 내리는 맑은 이슬 기운이다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원유(遠유)에 「여섯가지 기운(六氣)을 먹고 항해를 마시며 정양(正陽)으로 양치질하고 조하(朝霞)를 머금는다」라고 하였다. 주(注)에 능양자(陵陽子)의 명경(明경)에 말하기를「겨울에 항해를 먹는다」라고 하였다. 항해는 북방의 밤중에 내리는 기운이다. 한서(漢書)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상권에 보면「항해는 물 흐르는 소리」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항해는 북방의 하늘에서 야밤 중에 내리는 이슬 기운을 가리킨다.
② 조하(朝霞):아침 일찍 맑은 햇볕을 받아서 구름이 아름답게 비 치는 것을 말함. 아침 안개, 싱그러운 아침 안개를 말함. 항해편 참조.
③ 이태백(李太白):이백(李白:701~~762년) 당나라 때 시인. 자는 태백(太白)이요,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면주(綿州) 창명(昌明)의 청련향(靑蓮鄕)으로 이사 하였다. 지금의 사천성 백양현 부근이다. 도사 오균(吳筠)의 추천으로 한때 한림(翰林)에머물렀으나 곧 버리고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시를 지었다. 낙양(洛陽)에서 두보(杜甫)를 만나 깊이 서귀었다. 낭만파 최고의 시인이요, 시선(詩仙)으로 추앙을 받았다.
④ 옥천사(玉泉寺):호북성 당양현(當陽縣) 서쪽 옥천산(玉泉山)에 있는 절. 산 위는 푸른 숲이 울창하고 사계절 내내 푸르므로 취한산(翠寒山)이라고도 하며, 산에 유굴(乳窟)이 있고 옥천(玉泉)이 그 사이로 교차하여 흐른다. 수(隋)나라때 천태종의 3조인 지자대사(智者大師)가 와서 산 후로는 이름을 옥천이라하고 산 아래에 옥천사가 있다. 선종(禪宗)의 신수대사(神秀大師)도 일찌기 이 절에서 주석하셨다.
해설(解說)
제2송
제1구:차나무의 푸른 줄기는 푸른 옥(碧玉)같은데 맑은 이슬(沆瀣)로 깨끗하게 씻어 아름답고,
제2구:푸른 새의 혀(翠禽舌)같은 차나무 이파리는 아침 안개(朝霞)를 담뿍 머금어 싱그럽다.
원문주:이태백이 차시의 서문에서 말하기를 형주(荊州: 호북성 江陵縣)의 옥천사가 있는 청계산 일대에는 좋은 차나무가 가득히 번성했는데, 그 가지와 잎이 푸른옥(碧玉)과 같다. 옥천사의 주지스님인 진공대사는 항상 이 차만을 따서 애음하였다고 한다.
제2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나무의 줄기와 잎이 벽옥(碧玉)이나 취금설(翠禽舌) 같은데, 줄기는 맑은 이슬(沆瀣)로 몸을 씻었고, 이파리는 아침 안개(朝霞)로 덮여 있다는 말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2송의 인용문헌은「분류보주이태백시권 (分類補註李太白詩卷)」 의 오언고시(五言古詩) 중에서 답족질승중부증옥천선인장다 병서(答族姪僧中孚贈玉泉仙人掌茶 幷序)의 싯구 중 서문이다.
「여문형주옥천사(余聞荊州玉泉寺) 근청계제산(近淸溪諸山)산동왕왕유유굴(山洞往往有乳窟) 굴중다옥천교류(窟中多玉泉交流) 기중유백편복대여아 (其中有白蝙蝠大如鴉) 안선경(按仙經) 편복일명선서(蝙蝠一名仙鼠) 천세지후체백여설(千歲之後體白如雪) 서즉도현개음유수이장생야(栖則倒懸蓋飮乳水而長生也)기수변처처유명초라생(其水邊處處有茗草羅生) 지엽여벽옥(枝葉如碧玉)유옥천진공(唯玉泉眞公) 상채이음지(常采而飮之) 연팔십여세(年八十餘歲) 안색여도화(顔色如桃花) 이차명청향골숙이어타자(而此茗淸香滑熟異於他者) 소이능환동진고부인수야(所以能還童振枯扶人壽也) 여유금릉견종승중부시여(余遊金陵見宗僧中孚示余) 다수십편권연중첩기장여수 호위선인장(茶數十片拳然重疊其狀如手 號爲仙人掌) 다개신출호옥천지산광(茶蓋新出乎玉泉之山曠) 고미적인지지견유겸증시요여(古未覿因持之見遺兼贈詩要余) 답지수유차작후(答之遂有此作後) 유고승대은지선인장다(有高僧大隱知仙人掌茶) 발호중부선자급청련거사이백야(發乎中孚禪子及靑蓮居士李白也) 상문옥천산(嘗聞玉泉山)
산동다유굴선서여백아(山洞多乳窟仙鼠如白鴉) 도현청계월명생차중석(倒懸淸溪月茗生此中石) 옥천유불헐근가려세방진채복윤기골(玉泉流不歇根柯麗芳津採服潤肌骨) 총노권녹엽지지상접(叢老卷綠葉枝枝相接) 연폭성선인장사박홍애견거(連曝成仙人掌似拍洪厓肩擧) 세미견지기명정수전(世未見之其名定誰傳) 종영내선백(宗英乃禪伯) 투증유가편(投贈有佳篇) 청경촉무염고참서자연(淸鏡燭無鹽顧慙西子姸) 조좌유여흥장음파제천(朝坐有餘興長吟播諸天).」
「집안 조카 중부선사가 보내 준 옥천 선인장차를 받고 답하다」라는 오언고시 서문 중에서 내용 몇 구절만 빼내 인용하였다.
동 다 송 3 |
第三頌(原文)
天仙①人鬼俱愛重 知爾爲物誠奇絶 炎帝曾嘗載食經.
[炎帝食經云 茶茗久服 人②有力生③志]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선(仙):신선 선(仙)자는 다예관본에는 선(仙)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선(僊)자로되어 있다. 선(僊)자는 선(仙)자의 고자(古字)이다.
② 인(人):사람 인(人)자 앞에, 하여금 령(令)자가 들어가야 한다. 다경(茶經) 7지사(七之事)에 보면,「염제식경(炎帝食經) 다명구복(茶茗久服) 령인유력열지(令人有力悅志)」라고 되어 있다.
③ 황(怳):다예관본에는 황홀할 황(怳)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즐거울 열(悅)자로 되어 있는데, 열(悅)자가 맞는 글자이다. 다경에는 열(悅)자로 되어 있다.
第三頌(校訂文)
天仙人鬼俱愛重 知爾爲物誠奇絶 炎帝曾嘗載食經.
[炎帝食經云 茶茗久服 令人有力悅志]
제3송
천선인귀구애중 지이위물성기절 염제증상재식경.
[염제식경운 다명구복 령인유력열지]
제3송
천인(天人)이나 신선(神仙)이나 사람이나 귀신이나 모두가 다 애중(愛重)히 여기나니,
너의 타고난 성품 참으로 기절(奇絶)함을 알겠구나.
일찌기 염제(炎帝)①신농(神農)씨가 맛을 보고 식경(食經)②에 기록해 두었네.
[염제 신농씨의 식경에 이르기를 「차를 오래도록 마시면 사람이 힘이 생기고 즐거운 뜻을 얻는다」고 하였다]
주(註)
① 염제(炎帝):삼황(三皇) 오제(五帝) 중의 한 사람으로서 옛날 고대 국가의 제왕이다. 백성을 교화하여 농업을 일으켰으므로 신농씨(神農氏)라고 하며, 또는 불(火)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하여 화덕왕(火德王) 또는 염제(炎帝)라고도 한다. 처음에 열산(烈山)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열산씨(烈山氏)라고도 하며, 진(陳 : 하남성 진주부)에 도읍을 두었다가 나중에 곡부(曲阜: 산동성 곡부현)로 옮겼다. 성은 강(姜)씨이며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 같은 우상(牛相)을 한 모습이다. 백 가지 풀을 씹어 맛을 보아 약초를 가려내어 약을 만들었으며 이로서 백성의 질병을 치료하니 의약의 신으로 숭배 받기도 했다. 이와같이 처음으로 방서(方書:의약서)를 저술하여 백성의 질병을 치료했고 시장을 세우고 화폐를 사용하였다. 삼황이란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씨를 말한다. 중국인들은 동이족(東夷族)인 이들의 역사를 전설로 취급하고 있다.
② 식경(食經):신농씨의 식경은 전해지지 않고「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3권만 전한다. 약칭「본초」또는「본초경」이라고 하는데 한(漢)나라 초기에 지어진「신농본초」가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실려있다. 당 고종(高宗)때 이적(李勣) 등이 명을 받아 수찬하고 도홍경(陶弘景)이 주(注)를 달아「본초경」7권을 만들고 뒤에 소공(蘇恭)과 장손 무기(長孫 無忌) 등이 더 증보하고 주를 붙여 53권을 만들었다. 이것을「당본초(唐本草)」라고 하며 개원(開元) 년간에 진장기(陳藏器)가 또「본초습유(本草拾遺)」를 저술했다. 후에 명나라 때 이시진(李時珍)이 저술한「본초강목(本草綱目)」이 유명하다.
해설(解說)
제3송
제1구:하늘나라 사람(天人)이나 신선(神仙)이나 사람이나 죽은 귀신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차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모두 차를 올린다.
제2구:차의 성품이 기이하고 신령스러워 모두가 좋아하게 됨을알겠다고 하였으며,
제3구:염제 신농씨가 일찌기 차를 먹어보고 그 신효함을 식경에다 기록해 놓았다고 한다.
원문주:염제 신농씨가 저술한 식경에 보면 차를 오래도록 마시면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운 기분과 힘을 얻는다고 하였다.
제3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의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덕스러워 하늘나라 사람이나 신선이나 귀신이나 사람이나 모두가 한결같이 차를 좋아하게 되었으며, 염제 신농씨가 이를 증명하여 일찌기 그의 저술인 식경에 차의 효능을 기록하여 놓았다고 한다. 그 효능은 차를 오래도록 장복하면 힘이 솟고 즐거운 기분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3송의 인용문헌은 다경의 7지사(七之事)인데, 원문은 초의선사의 저술이고, 원문주는 다경의 구절을 인용하였다.
다경(茶經) 7지사(七之事)에 보면,「神農食經 茶茗久服 令人有力悅志」라고 되어 있다.
동 다 송 4 |
第四頌(原文)
醍醐甘露舊傳名.
[王子尙詣雲①齋道人 于八公山 道人設茶茗 子尙 味之曰 此甘露也②. 羅大經瀹湯詩 松風檜雨到來初 急引銅甁離竹爐 待得聲聞俱寂後 一甌春雪勝醍醐]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운(雲):운(雲)자는 담(曇)자로 고쳐야 한다. 다예관본에는 운(雲)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담(曇)자로 되어 있는데, 예장왕(豫章王) 자상(子尙)이 찾아간 사람은 담제도인(曇濟道人)이다.
② 예장왕 자상(子尙):예장왕 자상에 대한 기록은 생략된 부분이 많다. 전문(全文)은 다경(茶經) 7지사(七之事)에 보면, 「송록(宋錄) 신안왕자란(新安王子鸞) 예장왕자상(豫章王子尙) 예담제도인어팔공산(詣曇濟道人於八公山) 도인설다명(道人設茶茗) 자상미지왈(子尙味之曰) 차감로야(此甘露也) 하언다명(何言茶茗)」이라고 했다.
第四頌(校訂文)
醍醐甘露舊傳名.
[宋錄 新安王子鸞 豫章王子尙 詣曇濟道人於八公山 道人設茶茗 子尙 味之曰 此甘露也 何言茶茗. 羅大經瀹湯詩 松風檜雨到來初 急引銅甁離竹爐 待得聲聞俱寂後 一甌春雪勝醍醐]
제4송
제호감로구전명.
[송록 신안왕자란 예장왕자상 예담제도인어팔공산 도인설다명 자상미지왈 차감로야 하언다명. 라대경약탕시 송풍회우도래초 급인동병이죽로 대득성문구적후 일구춘설승제호]
제4송
제호(醍醐)①나 감로(甘露)②는 옛부터 그 이름이 전해 오는구나. [송록(宋錄)③에 신안왕(新安王)인 자란(子鸞)④과 예장왕(豫章王)인 자상(子尙)⑤이 담제도인(曇濟道人)⑥을 팔공산(八公山)⑦으로 찾아갔다. 도인이 차를 대접하니, 자상(子尙)이 맛을 보고 이것은 감로(甘露)이다, 어찌 차라고 하시오라고 하였다. 라대경(羅大經)⑧의 약탕시(瀹湯詩)⑨에 「솔 바람소리(松風)⑩전나무에 빗방울 지는 소리(檜雨)⑪일어날 즈음에, 급히 탕관(銅甁)⑫을 죽로(竹爐)⑬에서 내려 놓았네. 비 바람소리 고요하게 그친 뒤에 끓인 한 잔의 춘설차(春雪茶)는 제호(醍醐)보다도 좋구나」라고 했다.]
주(註)
① 제호(醍醐):우유(牛乳)의 정액(精液)이다. 열반경(涅槃經) 성행품(聖行品 第七之四)에 보면, 소(牛)에서 우유가 나오고 우유에서 낙(酪)이 나오고, 낙에서 생소(生穌)가 나오고, 생소에서 숙소(熟穌)가 나오고, 숙소에서 제호가 나온다. 제호가 최상이다. 지금의 치즈와 같은 것이다.
② 감로(甘露):달콤한 이슬로 천하가 태평하면 하늘이 내려주는 상서로운 이슬기운이다. 미로(美露), 천주(天酒), 고로(膏露), 서로(瑞露), 신장(神漿), 달즉고빈(達卽古賓)이라고도 한다. 이슬이 어리는 모양이 기름같고 맛은 엿과 같다. 그래서 감고(甘膏), 주장(酒漿)이라고도 하며,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내리는 상서로운 것으로, 감로가 내리면 죄수를 사면․석방하고 잔치를 베풀어 하늘의 은택에 감사하곤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종, 세조때에 감로가 여러 번 내린 적이 있었다. 세조는 감로가 내리자 죄수를 사면하고 백관의 진하를 받았다.
③ 송록(宋錄):수(隋)의 경적지(經籍志)에 실려 있는 송략(宋略)과 송춘추(宋春秋)를 가리켜 송록이라고 한다. 신안왕 자란과 예장왕 자상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④ 신안왕(新安王):신안왕 자란(子鸞)은 남조(南朝) 송(宋)의 효무제(孝武帝: 재위 453~464년)의 여덟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은귀비(殷貴妃)이며 자란이 어려서 부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자 이를 미워하여 형(廢帝 : 劉子業)이 등극하자 자란에게 죽음을 내렸다. 나이 겨우 10세였다. 후에 형이 폐위되고 숙부 명제(明帝: 재위 465~472년)가 즉위하자 신안왕(新安王)에 봉해졌다. 기념이 되게 신안사(新安寺)를 세우고 고승 법요(法瑤), 도헌(道獻), 담빈(曇斌) 등을 초대하고 담제도인(曇濟道人)을 사주(寺主)로 모셨다.
⑤ 예장왕(豫章王):예장왕 자상(子尙)의 자는 효사(孝師)이며 효무제의 둘째 아들이다. 어려서 부왕 효무제의 총애를 받다가 자란(신안왕)이 태어나자 부왕의 사랑이 자란에게로 쏠리고 말았다. 폐제가 즉위하자 양주(楊州) 남서주(南徐州)의 도독(都督)이 되었다가 명제(明帝)가 승하하자 후폐제(後廢帝)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나이가 겨우 16세였다.
⑥ 담제도인(曇濟道人):하동(何東: 山西人) 사람으로서 13세에 출가하여 석승도(釋僧導)의 제자가 되어, 수양(壽陽:지금의 안휘성 봉대현)의 팔공산(八公山) 동산사(東山寺)에서 수도하였다. 열반경(涅槃經)과 성실론(成實論)을 읽고 심취했으며, 후에 효무제 대명 2년(大明二年: 458년)에 스승과 함께 경도(京都)의 장엄사(莊嚴寺)로 옮겨 살았다. 담빈(曇斌)과 동시대 사람으로서 차의 달인이다.
⑦ 팔공산(八公山):일명 북산(北山)이라고도 하며 지금의 안휘성 수현(壽縣) 북쪽에 있다. 해발 160미터의 작은 산이지만 남북조시대에는 국경으로 군사 요충지였으며 한(漢)나라 회남왕(淮南王:劉安)의 묘(廟)가 있다. 회남왕은 회남자(淮南子: 신선술책)의 저자로서 신선술(神仙術)을 좋아하여 항상 여덟 명의 신선들을 초청하여 연단술(鍊丹術)을 닦았다. 팔공(八公)이란 산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⑧ 라대경(羅大經):남송(南宋) 때의 여릉(廬陵) 사람으로 자는 경륜(景綸)이다. 과거에 입제(入第)하여 용주(容州)의 법조연(法曹椽)이 되었다. 저서로 학림옥로(鶴林玉露)가 있다.
⑨ 약탕시(瀹湯詩):약탕시라는 시제(詩題)는 초의선사께서 편의상 임의로 붙인 제목이다. 학림옥로 권3에 수록된 싯구중 일부만을 골라 인용한 것이다. 원 시제는「인보이일시운(因補以一詩云)」이다. 친구 이남금의 시를 보완했다.
⑩ 송풍(松風):탕관에서 물 끓는 소리가 마치 소나무에 바람 스치는 소리처럼 쏴하고 나는 것을 말한 것이다.
⑪ 회우(檜雨):물 끓는 소리가 마치 전나무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같이 나는 것을 말한 것이다.
⑫ 탕관(銅甁):구리병은 찻물을 끓이는 탕관을 말한다. 차를 우리는 다관(茶罐)이 아니라 물을 끓이는 그릇이다.
⑬ 죽로(竹爐):찻물을 끓이는 화로를 말하는데, 화로의 겉을 뜨겁지 않게 대나무로 싸서 만들었다. 대나무를 쪼개서 화로의 겉을 감쌌기 때문에 만져도 뜨겁지가 않다.
해설(解設)
제4송
제1구:맛 좋기로 소문난 제호(醍醐)나 달콤한 이슬 감로(甘露)는 천하에 이름난 기이한 물건이다.
원문주:남조송(南朝宋)의 역사를 기록한 송록(宋錄)에 보면, 신안왕 자란과 예장왕 자상 형제가 함께 팔공산에 사는 담제도인을 찾아갔더니, 담제도인이 차를 끓여 대접했다. 차를 마셔 본 자상이 말하기를 「이것은 차가 아니라 감로입니다. 어찌 차라고 합니까」라고 말했다. 차가 감로처럼 달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라대경이 읊은 싯구에 춘설차가 제호보다 좋다고 하였다. 탕관(구리병:銅甁)을 죽로(竹爐: 대화로)에 올려 놓고 솔바람 소리가 나도록 물을 끓여 울궈낸 한 잔의 춘설차는 제호와도 비길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4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라고 하는 것은 천하에서 맛있기로 이름난 제호나 감로보다도 더 좋고 달콤하다고 하였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4송의 원문은 창작된 송구이고 그 뜻을 보충한 원문주는 다경과 학림옥로에서 인용하였는데, 다경 7지사(七之事)에 보면,
「송록(宋錄) 신안왕자란(新安王子鸞) 예장왕자상(豫章王子尙) 예담제도인어팔공산(詣曇濟道人於八公山) 도인설다명(道人設茶茗) 자상미지왈(子尙味之曰) 차감로야(此甘露也) 하언다명(何言茶茗)」이라고 되어 있고, 학림옥로 권 3에 보면 「여동년이남금운(余同年李南金云) 다경이어목용천연주위자수지절(茶經以魚目湧泉連珠爲煮水之節)․․․ 인보이일시운(因補以一詩云) 송풍회우도래초(松風檜雨到來初) 급인동병이죽로(急引銅甁離竹爐) 대득성문구적후(待得聲聞俱寂後) 일구춘설승제호(一甌春雪勝醍醐)」라고 되어 있다.
동 다 송 5 |
第五頌(原文)
해①酲少眠證周聖.
[爾雅檟苦茶 廣雅荊巴間 采葉其飮醒酒 令人少眠]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해( ) : 다예관본에는 해( )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해(解 ) 자로 되어 있다. 해( )자는 해(解)자의 속자(俗字)이다.
第五頌(校訂文)
解酲少眠證周聖.
[爾雅檟苦茶 廣雅荊巴間 采葉其飮醒酒 令人少眠]
제5송
해정소면증주성
[이아가고다 광아형파간 채엽기음성주 영인소면]
제5송
술을 깨워주고 잠을 적게 한다는 것은 주나라 성인(周聖)①이 증명했네.
[이아(爾雅)②에 가(檟)는 쓴 차(苦茶)라고 하였고, 광아(廣雅)③에는 형주(荊州)④와 파주(巴州)⑤에서 차잎을 채취해서 마시니 술을 깨워주고(醒酒),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적게(少眠)⑥하더라고 하였다]
주(註)
① 주성(周聖):주나라 성인, 즉 주공을 말한다. 성은 희(姬)요. 이름은 단(旦)이다. 주 무왕의 아우로, 형의 아들인 성왕(成王)이 어린 나이에 등극하자 주공이 섭정을 하였다. 관제(官制)를 정하고 예악제도(禮樂制度)를 창제하였으며 주나라의 문물을 완비하였다. 공자(孔子)는 꿈 속에서라도 주공을 보기를 간절히 바랬다.
② 이아(爾雅):책 이름, 13경(十三經)의 하나로,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내용으로 보아서 한나라때 학자가 지은 것이 틀림 없다. 일설에는 주공이 지은 이아를 공자가 증보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爾)는 가깝다(近)는 뜻이고 아(雅)는 바르다(正)는 뜻으로, 가까이 많이 쓰이는 말을 바로 잡는다는 뜻에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천문지리의 이름, 음악기재의 이름, 초목조수의 이름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문자를 설명한 것인데 제자(諸子) 잡서(雜書) 중에서 인용한 것도 많으나 경서 특히 시경(詩經)에 관한 문자를 설명한 글이 많으므로 경서 중에 넣었다. 진(晉)나라의 곽박(郭璞)이 주(註)를 달고 송(宋)나라 형병(邢昺)의 소이아주소십일권(疏爾雅注疏十一卷)이 이것이다.
③ 광아(廣雅):책 이름. 삼국시대 위(魏)나라 장읍(張揖)이 찬술함. 장읍이 이아가 취하지 못한 삼창(三倉), 방언(方言), 설문(說文)과 한나라 학자들의 제경전주(諸經箋注)의 어휘를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듦. 이아를 널리 증보했다고 하여 광아라고 함. 상․중․하 3권으로 총1만8천1백5십자를 수록했다. 당나라 이후에 10권으로 나눔. 청나라 왕념손(王念孫)의 광아소증(廣雅疏證)이 있다.
④ 형주(荊州):주 이름. 옛 구주 중의 하나로서 형양(衡陽)을 형주라고 함. 한무제 때 13자사를 두었다. 현재의 호북․호남 두개 성과 하남․귀주․광동․광서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⑤ 파주(巴州):주 이름. 본래 한나라 파군(巴郡)의 탕거현(宕渠縣)이다. 북위 연창3년에 파주(巴州)로 설치했는데 수나라때 청화군(淸化郡), 당나라때 다시 파주로 고치고 명․청때는 보령부(保寧府)로 민국 2년에 파중현(巴中縣)으로 고쳐서 사천성(四川省)에 소속시켰다.
⑥ 소면(少眠):다경에는 불면(不眠)으로 다릉도경(茶陵圖經)에는 소면(少眠)으로 되어 있다. 초의선사는 다경이 인용한 다릉도경의 소면(少眠)을 인용하였다. 차를 마시면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덜 자게 한다는 것이다.
해설(解說)
제5송
제1구:차를 마시면 술을 깨게 하고 잠을 적게 한다고 했는데 이는 이미 주나라 성인 주공(周公)이 증명한 바이다.
원문주:이아라는 책에 보면, 「가(檟) 나무는 쓴차(苦茶)이다」라고 하였고 광아라는 책에 보면, 형주와 파주에서 나는 차잎을 채취해서 마시면 술을 깨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고르고 적게 한다고 하였다.
제5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를 마시면 술을 깨게 하는 효능과 잠을 고르고 적게 하는 효능이 있는데 특히 중국 형주와 파주에서 나는 차에 효과가 더 있더라고 하였다.
인용문헌(引用文獻)
다경의 7지사(七之事)에서 인용하였는데, 원문은 다음과 같다.
「周公爾雅 檟 苦茶 廣雅云 荊巴間 採葉作餠 葉老者餠成以米膏出之 欲煮茗飮 先炙令赤色 搗末置瓷器中 以湯澆覆之 用葱薑橘子芼之 其飮醒酒 令人不眠」
이 대목은 북송(北宋)의 태평어람(太平御覽) 권867 명(茗)조에도 실려 있는데, 현존하는 광아(廣雅)에는 이 기록이 실려 있지 않다.
동 다 송 6 |
第六頌(原文)
脫粟伴菜聞齊嬰.
[晏子春秋 嬰相齊景公時 食脫粟①飯 灸三戈② 五卵③ 茗菜 ④而已]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식탈속반(食脫粟飯):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는 다같이 식탈속반이라고 되어 있으나, 원문을 인용한 다경에는 식탈속지반(食脫粟之飯)이라고 되어 있다. 갈 지(之)자가 생략되어 있다. 갈 지(之)자는 첨가해도 되고 생략해도 무방하다. 초의선사는 이를 생략하였다.
② 구삼과(灸三戈):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 다 같이 창 과(戈)자로 되어 있으나 다예관본에는 창 과(戈)자를 주살 익(弋)자로 바꿔 놓았다. 후세 사람이 고쳐 놓은 것이다. 창 과(戈)자로 쓰면 구운 고기 세꼬치(灸三戈)가 되고, 주살 익(弋)자로 쓰면 구운 세 마리 새고기(灸三弋)란 뜻이 된다. 그러나 현존하는 다경 원본에는 모두 창 과(戈)자로 되어 있다.
③ 오란(五卵):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알 란(卵)자에 한 점(․)이 빠진 글자( )로 되어 있다. 다경 원문 중 가장 오래된 송(宋 : 左圭) 백천학해본(百川學海本)에는 토끼 묘(卯)자로, 명(明 : 吳旦) 가정본(嘉靖本)에는「 」자로, 명(明 : 湯顯祖) 옥명당본(玉茗堂本)에는「 」자로, 청(淸 : 吳其濬) 식물명실도고장편본(植物名實圖考長編本)에는 (卯)자로, 민국(民國 : 張宗祥) 설부본(說郛本)에는 (卯)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사고전서(四庫全書)에는 알 란(卵)자로 되어 있는데 알 란(卵)자로 쓰는 것이 타당하다.
④ 명채(茗菜):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명채(茗菜)의 나물 채(菜)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다경 원본인 백천학해본이나, 가정간본이나, 옥명당본에는 쑥 래(萊)자로 되어 있고, 식물명실도고장편본이나 설부본이나 사고전서에는 나물 채(菜)로 되어 있다. 나물 채(菜)자를 취하면 차나물(茗菜)이라는 뜻이 되고 쑥 래(萊)자를 취하면 차(茗)와 쑥(萊)이라는 뜻이 된다. 여기에는 초의선사 원본에 있는 나물 채(菜)자를 쓰기로 한다.
第六頌(校訂文)
脫粟伴菜聞齊嬰.
[晏子春秋 嬰相齊景公時 食脫粟(之)飯 灸三戈(弋) 五卵 茗菜(萊)而已]
제6송
탈속반채문제영.
[안자춘추 영상제경공시 식탈속(지)반 구삼과(익) 오란 명채(래)이이]
제6송
제(齊)나라 안영(晏嬰)①은 껍질 벗긴 조밥과 차나물을 먹었다고 들었네.
[안자춘추(晏子春秋)②에 제나라의 경공(景公)③ 때에 재상을 지낸 안영이 껍질 벗긴 조밥과 구운 고기(새) 세 꼬치와 다섯 개의 알과 차 나물을 먹었다고 하였다]
주(註)
① 안영(晏嬰):안영(BC?~BC500)은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대부(大夫) 약(弱)의 아들. 자는 평중(平仲)이며 시호도 평중(平仲)이라고 하고, 현재 산동성 래(萊:高密縣 주변)지방에서 태어났다. 제나라의 영공(靈公:BC581~552)과, 장공(莊公:BC553~548)을 섬기다가 경공(景公 :BC547-490)때에 재상(宰相)이 되었다. 평상시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덧옷(狐裘) 한 벌을 30년이나 입었다고 한다. 그의 전기는 사기(史記 : 卷62 列傳)에 실려있다 한다.
② 안자춘추(晏子春秋):책 이름, 제나라 때 안영이 편찬한 책으로 옛 이름은 춘추(春秋), 한서 예문지에서는 안자(晏子)라고 했고,사기(史記)나 수서(隋書)에서는 안자춘추라고 함. 내외편(內外篇) 합쳐서 전 8권인데 215장(章)으로 이루어졌다. 1972년에 산동성 임기현(臨沂縣) 은작산(銀雀山)의 서한묘(西漢墓)에서 출토한 안자(晏子) 목간(木簡) 일부가 있는데, 지금의 안자춘추의 장절(章節)과 똑 같다.
③ 경공(景公):제나라의 국왕으로 장공(莊公)의 뒤를 이었다. 장공의 배다른 동생으로서 중신 최저(崔杼)가 장공을 살해하고 저구(杵臼)를 옹립하니 이가 곧 경공이다. 경공(BC547~490)은 대단히 사치스럽고 용렬한 사람이었다. 안자는 이를 보필하여 검약함을 몸소 실천하였고, 간쟁(諫諍)을 많이 하였는데, 훗날 안자춘추에 이 간언들이 수록되었다.
해설(解說)
제6송
제1구:제나라 때 안영은 껍질 벗긴 조밥과 차나물을 먹었다고 들었다.
원문주:안자춘추라는 책을 보면 제나라 경공 때에 재상을 지낸 안자가 평상시 껍질 벗긴 조밥에 구운 고기 세 꼬치(구운 새고기 세 마리)와 알 다섯 개와 차나물을 먹었다고 한다.
제5송의 전체적인 뜻은 제나라 경공 때 재상 벼슬을 지낸 안자라는 이가 매일 조밥에 구운 (새)고기 세 꼬치와 알 다섯 개와 차나물을 먹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참 좋은 음식이다. 담백하고 칼로리가 많은 음식으로 식생활 개선이라는 차원에서도 좋은 식단이다. 차나물은 특히 밥맛을 돋구고 소화를 촉진시키며 머리를 맑게 해준다. 안자의 검소한 식생활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인용문헌(引用文獻)
다경의 7지사(七之事)에서 인용하였는데 원문은 다음과 같다.
「晏子春秋 嬰相齊景公時 食脫粟之飯 灸三戈五卯(卵) 茗菜(萊)而已」
현존하는 다경은 5개본이 전하는데, 송(宋:左圭)의 백천학해본과, 명(明:吳旦) 가정본과, 명(明:湯顯祖) 옥명당본과, 청(淸:吳其濬) 식물명실도고장편본과 민국(民國:張宗祥) 설부본이 그것이다. 이 외로 사고전서(四庫全書)에도 실려 있다.
동 다 송 7 |
第七頌(原文)
虞洪薦餼①乞丹邱② 毛仙示구③引秦精
[神異記 餘姚④虞洪 入山采⑤茗 遇一道士 牽三靑牛 引洪至布瀑⑥山曰 予丹邱⑦子也 聞子 善具飮 常思惠見⑧ 山中有大茗 可⑨相給 祈子他日有甌餼⑩之餘 乞相遺也 因⑪奠祀後 入山常獲大茗⑫. 宣⑬城人秦精⑭入武昌山中採茗 遇一毛人 長丈餘 引精至山下 示以裘⑮茗而去 俄而復還 乃探懷中橘以遺精 精悕負茗而 ]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회(餼):다예관본에는 먹일 회(餼)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희생 희(犧)자로 되어 있다. 인용문헌인 다경의 신이기(神異記)에는 희생 희(犧)자로 나와 있다. 먹일 희(餼)자를 희생 희(犧)자로 바로 잡는다.
② 단구(丹邱):단구자(丹邱子)라는 신선․단구의 구(邱)자가 다경에는 언덕 구(丘)자로 나와 있다. 그러나 청식물명실도고장편본(淸植物名實圖考長編本) 다경에는 구(邱)자로 나와 있다. 두 가지 다 사용한다. 원본을 따라 구(丘)자로 바꾼다.
③ 구(구):갖옷 구(裘)자와 흡사한 글자로서 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 모두 구( )자로 나와 있다. 가장 오래된 다경 송(宋) 백천학해본에는 떨기나무 총(藂)자로 되어 있고, 명(明) 가정본이나 명(明) 옥명당본 다경에는 구( )자로 되어 있고, 청(淸) 식물명실도고장편본에는 떨기 총(叢)자로 되어 있고, 설부본 다경에는 떨기나무 총(藂) 자로 되어 있다. 초의선사께서는 명나라 때 다경본을 인용하셨던 것같다. 여기에서는 송나라 때 백천학해본을 따라 떨기나무 총(藂)자로 바로 잡는다.
④ 여요(餘姚):다경의 원문에는 여요인우홍(餘姚人虞洪)으로 되어 있다. 사람 인(人)자가 누락되어 있다.
⑤ 채명(采茗):채(采)자가 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캘 채(采)자로 되어 있고, 다경에는 딸 채(採)자로 되어 있다. 차잎은 캐는 것이 아니라 따는 것이기 때문에 원문대로 딸 채(採)자로 바로 잡는다.
⑥ 포폭산(布瀑山):다예관본에는 포폭산(布瀑山)으로 되어 있지만, 석오본에는 폭포산(瀑布山)으로 되어 있다. 다경에도 폭포산으로 되어 있다. 글자의 순서가 바뀌었다. 폭포산(瀑布山)으로 바로 잡는다.
⑦ 단구자(丹邱子):단구자의 구(邱)자를 언덕 구(丘)자로도 사용한다. 다경에는 언덕 구(丘)자로 나와 있다.
⑧ 상사혜견(常思惠見):다예관본에는 상사혜견(常思惠見)으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상사견혜(常思見惠)로 되어 있다. 은혜 혜(惠)자와 볼 견(見)자의 순서가 바뀌었다. 다경에는 상사견혜(常思見惠)로 되어 있다. 상사견혜로 바로 잡는다.
⑨ 가상급(可相給):다에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가상급(可相給)으로 되어 있지만 다경에는 가이상급(可以相給)으로 되어 있다. 써 이(以)자가 누락되어 있다. 이(以)자를 채워 넣는다.
⑩ 희(餼):주 ①과 같이 희생 희(犧)자로 바로 잡는다.
⑪ 인전사(因奠祀):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는 모두 인전사(因奠祀)로 되어 있지만 다경에는 인립전사(因立奠祀) 로 되어 있다. 설 립(立)자가 누락되어 있다.
⑫ 입산상획대명(入山常獲大茗):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는 모두 입산상획대명(入山常獲大茗)으로 되어 있지만, 다경에는 상령가인입산 획대명언(常令家人入山 獲大茗焉)이라고 되어 있다.
⑬ 선성인진정(宣城人秦精):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는 모두 선성인진정으로 되어 있으나 다경의 원문을 보면 진정의 일화는 속수신기(續搜神記)에 실려 있는 기사로서 「속수신기 진무제(續搜神記 晉武帝)」라는 7자가 누락되어 있다.
⑭ 입무창산중채명(入武昌山中採茗): 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있으나, 다경의 원문에는 상입무창산채명(常入武昌山採茗)이라고 되어있어, 들 입(入)자 앞에 상(常)자가 들어 있고 메 산(山)자 뒤에 중(中)자가 빠져 있다. 원문을 따라 상입무창산채명으로 고친다.
⑮ 구(구): ③번과 같이 떨기나무총(藂)자로 바로 잡는다.
정희부명이귀(精悕負茗而皈): 다예관본에는 생각할희(悕)자와 돌아갈귀(皈)자의 약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두려울포(怖)자와 돌아갈귀(歸)자의 정자로 되어 있다. 육우의 다경에도 두려울포(怖)자와 돌아갈귀(歸)자로 되어있다. 두려울포(怖)자와 돌아갈귀(歸)자로 바로 잡는다.
第七頌(校訂文)
虞洪薦犧乞丹邱 毛仙示藂引秦精.
[神異記 餘姚人虞洪 入山採茗 遇一道士 牽三靑牛 引洪至瀑布山曰 予丹邱子也 聞子善具飮 常思見惠山中有大茗 可以相給 祈子他日有甌犧之餘 乞相遺也 因立奠祀 後常令家人入山 獲大茗焉. 續搜神記 晉武帝, 宣城人秦精, 常入武昌山採茗, 遇一毛人長丈餘, 引精至山下, 示以藂 茗而去 俄而復還 乃探懷中橘以遺精 精怖負茗而歸]
제7송
우홍천희걸단구 모선시총인진정.
[신이기 여요인우홍 입산채명 우일도사 견삼청우 인홍지폭포산왈여단구자야 문자선구음 상사견혜산중유대명 가이상급 기자타일유구희지여 걸상유야 인립전사 후상령가인입신 획대명언. 속수신기 진무제, 선성인진정, 상입무창산채명, 우일모인장장여, 인정지산하, 시이총명이거 아이부환 내탐회중귤이유정 정포부명이귀]
제7송
우홍(虞洪)①은 간소한 제물로 단구자(丹邱子)②에게 차를 빌었고,
모선(毛仙)③은 차나무를 보여주며 진정(秦精)④을 이끌었네.
[신이기(神異記)⑤에 여요(餘姚)⑥사람 우홍(虞洪)이 산에 들어가 차를 따다가 우연히 한 도사(道士)를 만났다. 그 도사는 세 마리의 검은 소(靑牛)⑦를 이끌고 있었는데, 우홍을 인도하여 폭포산에 이르러말하기를 「나는 단구자(丹邱子)라고 하네. 듣자하니 그대가 차를 좋아한다고 하여 한번 만나 보고 싶었네. 저 혜산(惠山)⑧중에는 큰 차나무가 있으니, 가히 만족할 것이오. 그러니 훗날 간소한 제물로 제사를 드리도록 하오」하였다. 그로 인하여 제사를 지낸 뒤에 언제나 가족들을 산에 들여 보내 큰 차나무(大茗)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속수신기(續搜神記)⑨에 진무제(晉武帝)때에 선성(宣城)⑩사람 진정(秦精)이 항상 무창산(武昌山⑪에 들어가 차를 따는데 우연히 키가 10척이나 되는 한 모인(毛人)을 만났다. 진정을 인도하여 산 아래에 이르러 차밭( 藂茗)을 보여 주고 가더니, 다시 돌아와서 품속을 뒤져 귤을 꺼내 주었다. 진정은 두려워서 차를 짊어지고 얼른 돌아왔다.]
주(註)
① 우홍(虞洪):사람 이름. 생몰연대는 알 수가 없으며 신이기에 그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절강성 여요현 사람.
② 단구자(丹邱子):신선(神仙)이름. 단구(丹丘)는 신화 속에 나오는 신선이 사는 땅. 밤낮 없이 밝고 죽음이 없는 곳이다. 굴원(屈原)의 원유(遠遊)편에「잉우인어단구혜(仍羽人於丹丘兮) 유불사지구향(留不死之舊鄕)」이라고 되어 있다.
③ 모선(毛仙):털보신선. 무창산에서 선성사람 진정이 만난 신선. 키가 10자나 된다.
④ 진정(秦精):사람 이름. 진 무제(武帝)때 선성(宣城)에 살던 사람.
⑤ 신이기(神異記):한(漢)나라 때 설화책 이름이다.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때 동방삭(東方朔)이 지었다고도 하는데 동방삭이 지은 신이경(神異經)은 전하지만 신이기는 전하지 않는다. 신이경을 신이기라고도 하는데, 신이경은 진(晉)나라 때 장화(張華)가 주(注)를 단 책 1권이 지금 전한다. 혹자는 육조(六朝)시대 문사들이 지은 것이라고도 하지만 확실치 않다. 사고전서(四庫全書) 제요(提要)27 자부(子部)소설가류 3에 신이경 1권이 수록되어 있다.
⑥ 여요(餘姚):현 이름. 절강성 소홍현(紹興縣) 동북쪽에 있다. 남북으로 돌로 나누어져 있는데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가운데 돌다리가 있고 그 밑으로 큰 배들이 왕래하는데 절강성 동쪽의 제일교(第一橋)라고 한다. 명나라 왕양명(王陽明), 황종희(黃宗羲), 주순수(朱舜水)의 탄생지이다. 이곳에 옛날 순제(舜帝)의 자손들이 살고 있는데 순임금의 성이 요(姚)씨이다. 진나라 때 여요현으로 회계군(會稽郡)에 소속되었다.
⑦ 청우(靑牛):도가(道家)의 신선이 타고 다니는 소. 검은 색 털의소를 말함. 함곡관 수령인 윤희(尹喜)가 부하에게 만약 어떤 노인이 청우차(靑牛車)를 타고 오거든 정중히 관에 모시라 하였다. 희는 말하기를 <내가 평상시 존경하는 도인께서 오셨다.>하고 맞아들여 차를 대접하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때 받은 것이 도덕경(道德經)이다. 노자가 타고 서쪽으로 간 소가 청우이다.
⑧ 혜산(惠山):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산 이름. 구룡산(九龍山),관용산(冠龍山)이라고도 하며 산 꼭대기에 아홉 봉우리가 있고 밑에 아홉 골짜기가 있는데, 그곳에 혜산사(惠山寺)가 있다. 이곳의 샘물이 제2의 명천(名泉)이라고 한다. (전다수기: 장우신).
⑨ 속수신기(續搜神記):수신기의 속편인데, 수신기는 동진사람 간보(干寶)가 지은 20권이 있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법원주림(法苑珠林)이나 태평어람이나 예문유취 등 서적에 함께 들어 있다. 육조시대 민간 전설인데 영통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돈황(敦煌)에서 발견된 수신기는 오대(五代) 때 구도홍(句道興)이 지었는데 간보의 수신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 후에 도잠(陶潛)이 수신후기(搜神後記) 10권을 지었다.
⑩ 진무제(晉武帝):서진(西晉)을 개국한 제왕(서기 236-290년)으로 이름은 염(炎)이고, 자는 안세(安世) 성은 사마(司馬)이다. 사마소(司馬昭)의 아들로서 위(魏)나라 말, 정권을 잡아 진왕(晉王)을 계승하였다. 후에 낙양에 도읍하고 제(帝)라 칭호를 바꾸었다.
⑪ 선성(宣城):안휘성(安徽省) 남릉현(南陵縣)의 동쪽 40리 거리에 있다. 옛날부터 이름난 차 산지이다. 송나라 때 아산차(雅山茶)라는 유명한 차가 생산되었다.
⑫ 무창산(武昌山):호북성(湖北省) 악성현(鄂城縣)남쪽 190리에 있는 산이다. 이곳 지형지세가 군사 요충지로서 사방으로 통하고 강을 끼고 있어 유리하므로, 오나라 손권이 도읍을 정하고 무력으로 창성하라는 뜻으로 무창(武昌)이라 하였다. 지금은 무창현이라고 하며 현 남쪽에 무창산이 있다.
해설(解說)
제7송
제1구:절강성 여요현 사람 우홍은 단구자 (신선)에게 안내 받아 폭포산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좋은 차를 얻었고,
제2구:진나라 때 선성에 사는 진정이란 사람은 털보신선을 만나 무창산에서 좋은 차를 따게 되었다.
원문주:신이기라는 책에 보면 우홍이란 사람이 차를 따다가 단구자라는 신선을 만났는데, 단구자가 우홍을 인도하여 폭포산에 이르러 하는 말이, 혜산(惠山)에는 큰 차나무(大茗)가 있는데 그대가 만족할것이다. 훗날 간소한 제물을 준비하여 제사 지내고 차를 따면 될 것이네 하기에 우홍은 제사를 지내고 집사람을 보내서 언제나 차를 따왔다. 그리고 속수신기라는 책에 보면, 진나라 무제 때에 선성에 사는 진정이란 사람은 항상 무창산에 들어가 차를 따는데 하루는 털이 많이 난 신선을 만났다. 이 신선이 산 아래에 있는 좋은 차밭을 가르쳐 주었다. 그 뒤로 진정은 좋은 차를 많이 딸 수 있었다고 하였다.
제7송의 전체적인 뜻은 사람이 차를 좋아하면 신선의 도움도 받을수 있고 신선도 차를 좋아하여, 차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차를 알려 주어 딸 수 있도록 해 준다는 내용이다. 우홍이나 진정은 둘다 신선의 도움으로 좋은 차를 얻은 사람들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다경의 7지사(七之事)에 실려 있는 일화를 인용하였는데, 원문은 다음과 같다.
⌈神異記 餘姚人虞洪 入山採茗 遇一道士 牽三靑牛 引洪至瀑布山曰予丹邱子也 聞子善具飮 常思見惠山中有大茗 可以相給 祈子他日有甌犧之餘 乞相遺也 因立奠祀 後常令家人入山 獲大茗焉.⌋
⌈續搜神記 晉武帝 宣城人秦精 常入武昌山採茗 遇一毛人長丈餘 引精 至山下 示以藂 茗而去 俄而復還 乃探懷中橘以遺精 精怖負茗而歸⌋
이상의 원문이 실려 있는 다경은 5본이 전하는데, 다른 부분은 모두 같으나, 속수신기에 떨기나무 총(藂)자로 되어 있는 것도 있고, 갖옷 구( )자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속수신기나 신이기의 원본이 전하지 않고, 다경이나 사고전서 등에 내용만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을 여기에 옮긴 것이다. 또 사고전서본에는 신이기의 내용 일부가 다경과 다르게 되어 있다. 다경에는 인립전사(因立奠祀)로 나와 있는데, 사고전서본에는 홍인설전사지후(洪因設奠祀之後)로 되어 있다.
동 다 송 8 |
第八頌(原文)
潛壤不惜謝萬錢.
[菀① 剡縣 陳務妻 少與二子寡居② 好飮茶茗 宅③中有古冢④ 每飮輒先祭⑤之 二子⑥曰 古冢⑦何知徒勞人意⑧ 欲掘去之 母⑨禁而止 其夜夢一人云 吾止此⑩三百年餘⑪ 卿⑫子常⑬欲見毁 賴相保護 反⑭享佳茗 雖潛壤朽骨 豈忘翳桑之報 及曉於庭中 獲錢十萬⑮.]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원(菀):다경에 보면 진무처(陳務妻)에 대한 일화는「이원(異苑)」이란 책에 기록되어 있다. 원(菀)자는 이원(異苑)이라는 책이름을 잘못 적은 것이다.
② 소여이자과거(少與二子寡居):다예관본이나 석오본이나 다경에는 모두 위와 같이 나와 있다. 그러나 서고전서(四庫全書)에는 「소과여이자동거(少寡與二子同居)」라고 되어 있다.
③ 택(宅):집 택(宅)자 앞에 써 이(以)자가 빠져 있다. 다경에 보면「이택중유고총(以宅中有古塚)」이라고 되어 있다.
④ 고총(古冢):무덤 총(冢)자가 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는 총(冢)자로 되어 있고 다경에는 흙 토(土)변이 붙은 총(塚)자로 되어 있다. 총(塚)자는 총(冢)자의 속자(俗字)이다.
⑤ 제(祭):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제(祭)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다경에는 사(祀)자로 되어 있다. 제사 제(祭)자나 제사 사(祀)자는의미가 같다. 어느 것을 쓰나 무방하다.
⑥ 이자왈(二子曰):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는 이자왈(二子曰)로 되어 있지만 다경에는「이자환지왈(二子患之曰)」로 되어 있다.
⑦ 고총(古冢):주④번과 같다.
⑧ 도로인의(徒勞人意):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도로인의(徒勞人意)로 되어 있으나 다경의 원문에는 「도이로의(徒以勞意)」로 되어있다.
⑨ 모금이지(母禁而止):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모금이지(母禁而止)라고 되어 있으나 다경에는 모고금이지(母苦禁而止)라고 되어있다. 쓸 고(苦)자가 빠져 있다.
⑩ 오지차(吾止此):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오지차(吾止此)라고 되어 있다. 다경에는 오지차총(吾止此塚)이라고 되어 있다. 무덤총(塚)자가 빠져 있다.
⑪ 삼백년여(三百年餘):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삼벽년여(三百年餘)로 되어 있다. 다경에는 삼백여년(三百餘年)으로 되어 있다.
⑫ 경자(卿子):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경자(卿子)로 되어 있다. 다경에는 경이자(卿二子)로 되어 있다. 두 이(二)자가 빠져 있다.
⑬ 상욕견훼(常欲見毁):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상욕견훼(常欲見毁)로 되어 있다. 다경에는 항욕견훼(恒欲見毁)로 되어 있다. 항상 상(常)자와 항상 항(恒)자는 서로 뜻이 통하는 글자이다.
⑭ 반향가명(反享佳茗):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반향가명(反享佳茗)으로 되어 있다. 다경에는 우향오가명(又享吾佳茗)이라고 되어있다.
⑮ 획전십만(獲錢十萬):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획전십만으로 내용이 끝이 나지만, 다경에는「사구매자(似久埋者) 단관신이(但貫新耳) 모고이자(母告二子) 참지(慙之) 종시도궤유심(從是禱饋愈甚)」이라는 문구가 더 있다. 이 부분은 장황해서 생략한 것 같다.
第八頌(校訂文)
潛壤不惜謝萬錢
[異苑 剡縣 陳務妻 少寡與二子同居 好飮茶茗 以宅中有古塚 每飮輒先祭(祀)之 二子患之曰 古塚何知徒以勞意 欲掘去之 母苦禁而止 其夜夢一人云 吾止此塚三百餘年 卿二子常(恒)欲見毁 賴相保護 又享吾佳茗 雖潛壤朽骨 豈忘翳桑之報 及曉於庭中 獲錢十萬]
제8송
잠양부석사만전.
[이원 섬현 진무처 소과여이자동거 호음다명 이택중유고총 매음첩선제(사) 지이자환지왈 고총하지도이로의 욕굴거지 모고금이지 기야몽일인운 오지차총삼백여년 경이자상(항)욕견훼 뢰상보호 우향오가명 수잠양후골 기망예상지보 급효어정중 획전십만]
제8송
땅 속에 묻힌 귀신도 만전(萬錢)으로 사례하기를 아끼지 않았네.
[이원(異苑)①에 보면 섬현(剡縣)② 진무(陳務)의 아내가 젊어서 과부가 되어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차 마시기를 좋아하였다. 집안에 옛 무덤이 있는데, 매일 차를 마실 때마다 먼저 무덤에 제사를 드렸다. 두 아들이 근심스레 말하기를「옛 무덤이 어찌 수고하는 뜻을 알겠습니까」하고는 무덤을 파헤치려고 하였다. 어머니가 간신히 만류하여 그쳤는데, 그날 밤 꿈에 한 사람이 나와서 말하기를 「내가 이곳 무덤에 묻힌 지가 삼백여 년인데, 부인의 두 아드님이 항상 파헤치려고 했습니다. 그때마다 부인의 보호로 무사하였고, 또 좋은 차까지 대접해 주셨으니, 비록 땅 속에 묻혀 썩은 뼈골일지라도 어찌 예상(翳桑)의 보은(報恩)③을 잊겠습니까」하였다. 새벽이 되어 뜰 가운데에서 돈 십만 냥을 얻었다]
주(註)
① 이원(異苑):남송(南宋) 때 유경숙(劉敬叔)이 지은 요괴담 10권. 이원은 진체비서(津逮秘書)의 제11집에 수록되어 있다. 유경숙은 송 문제(宋文帝) 원가3년(元嘉三年:426년)에 급사황문랑(給事黃門郞)을 지냈다.
② 섬현(剡縣):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승현(嵊縣) 남쪽에 있으며 조아강(曹娥江)의 상류인 섬계(剡溪)가 있다. 이 계곡에서 만든 종이의 빛깔이 눈같이 희다. 옛부터 이름난 종이로 섬등(剡藤), 죽이(竹二)가 있다.
③ 예상지보(翳桑之報):예상(뽕나무 밭)에서 굶어 죽게 된 사람이 받은 은혜를 보답하였다는 고사.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보면 진(晋)나라의 대부(大夫)인 조돈(趙盾)이 수산에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예상에서 굶어 죽게 된 영첩(靈輒)을 보고 먹을 것을 주어 살려 주었다. 그후 영첩은 영공(靈公)의 경호관이 되었는데, 어느 날 영공으로부터 조돈을 살해하라는 하명을 받고 나가 보니, 옛날 예상에서 자기를 구해준 은인이었다. 그래서 영첩은 동료를 찌르고 조돈을 구해 주었다. 조돈이 그 이유를 묻자 영첩은「제가 예상에서 굶주려 죽을 뻔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해설(解說)
제8송
제1구:땅 속에 묻힌 귀신도 차를 얻어 마신 은혜를 십만 냥의 돈으로 갚았다고 한다.
원문주:이원이라는 책을 보면, 절강성 섬현에 살던 진무(陳務)의 아내가 젊어서 과부가 되어 두 아들과 함께 살았는데, 차 마시기를 매우 좋아 하였다. 집 안에 옛 무덤이 있는데 매일 차를 마실 때마다 먼저 무덤에 차로써 제사를 드렸다. 두 아들이 이것을 보고 「어찌 옛 무덤이 어머님의 수고로움을 알겠습니까」하고는 무덤을 파헤치려고 하였다. 어머니가 간신히 만류하여 그만두었는데, 그날 밤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내가 이곳 무덤에 묻힌 지가 삼백여 년인데 부인의 두 아드님이 항상 파헤치려고 하는 것을 그때마다 부인의 보호로 무사하였으며, 더우기 좋은 차까지 대접해 주셨으니, 비록 땅 속에 묻혀 썩은 뼈 일지라도 어찌 예상의 보온을 잊겠습니까」하고 사라졌다. 새벽에 부인이 뜰에 나가보니 돈이 십만 냥이 있었다. 엽전은 땅 속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것 같았으나 꿰맨 끈은 새로 만든 것이었다. 어머니가 이 사실을 두 아들에게 말하자 그들은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 뒤로는 옛 무덤을 정성들여 보살피게 되었다고 한다.
제8송의 전체적인 뜻은 땅 속에 묻힌 귀신도 차를 좋아하며, 은혜갚는 일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 차를 싫어하거나, 은혜를 모르면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리요. 차를 사랑하는 사람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다경의 7지사(七之事)에서 인용하였는데 원문의 일부는 생략하고일부만 인용하였다. 생략된 부분은 말미로 「사구매자 단관신이 모고이자 참지 종시도궤유심(似久埋者 但貫新耳 母苦二子 慙之 從是禱饋愈甚)」이다. 이고사는 다경 이외에 사고전서(四庫全書)에도 실려있다.
동 다 송 9 |
第九頌(原文)
鼎食獨稱冠六情.
[張孟陽① 登樓詩② 鼎食隨時進 百和妙具③殊 芳茶冠六情④ 溢味播九區]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장맹양(張孟陽):다예관본에는 장맹탕(張孟湯)으로 되어 있으나 석오본과 다경 원문에는 맹양(孟陽)으로 되어 있다.
② 등루시(登樓詩):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등루시로 되어 있는데, 다경에는 등성도루시(登成都樓詩)라고 되어 있다.
③ 백화묘구수(百和妙具殊):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갖출 구(具)자로 나와 있다. 그러나 다경에는 또 차(且)자로 되어 있다.
④ 육정(六情):다예관본, 석오본, 각종 다경의 원문에는 모두 육정(六情)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일본의 모로오까(諸岡存)씨는 그의 역저 다경평석(茶經評釋)에서 육청(六淸)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맑을청(淸)자를 뜻 정(情)자로 잘못 썼다는 것이다.
第九頌(校訂文)
鼎食獨稱冠六情.
[張孟陽 登成都樓詩 鼎食隨時進 百和妙且殊 芳茶冠六情(淸) 溢味播九區]
제9송
정식독칭관육정.
[장맹양 등성도루시 정식수시진 백화묘차수 방다관육정(청) 일미파구구]
제9송
모든 음식(鼎食①) 가운데 차만이 홀로 육정(六情②)에 으뜸이라 하네.
[장맹양(張孟陽③)의 등성도루시(登成都樓詩)에「솥 안의 온갖 음식은 때때로 올라오는데, 백 가지 요리는 미묘하고 또 뛰어났도다. 향기로운 차는 육정(六情:六淸)④에 으뜸이요, 넘치는 맛은 천하(九區)⑤에 가득하구나」하였다]
주(註)
① 정식(鼎食):귀인의 음식이며 부호만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솥을 늘어놓고 음식을 지어 먹음. 부호의 사치생활을 가리키는 말이며 후세에 부귀인을 정식지가(鼎食之家)라고 함. 한서(漢書) 주부언전(主父偃傳)에 보면「장부로 태어나 오정식(五鼎食)을 받지 못할지라도 죽은 뒤에 오정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하였다. 장안의 주(注)에 의하면 오정식(五鼎食)은 쇠고기(牛), 양고기(羊), 돼지고기(豕), 생선(魚), 사슴고기(糜)이다. 제후(諸侯)는 오정식(五鼎食)을 경대부(卿大夫)는 삼정식(三鼎食)을 먹었다.
② 육정(六情):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등 여섯 가지 사람의 성정(性情)을 말함.
③ 장맹양(張孟陽):장재(張載), 진나라의 안평(安平)사람, 자는 맹양(孟陽), 서진(西晋)의 무제(武帝)를 섬겼으며 벼슬은 중서시랑(中書侍郞)을 지냈다. 문장에 뛰어났다. 무제가 새겨놓은 글이 검각산(劍閣山)에 있다.
④ 육청(六淸):여섯 가지 음료 이름 즉 물(水), 미음(漿), 단술(醴), 식은 죽(酪), 감주(醫), 미음(酏:薄粥)을 말함. 주례(周禮)의 천관(天官) 선부(膳夫)조에 보면「膳用六牲 飮用之淸」이라고 하였다.
⑤ 구구(九區):천하를 아홉 등분하여 구주(九州) 또는 구구(九區)라고 했다. 온 천하를 일컬음.
해설(解說)
제9송
제1구:왕이나 제후 등 부호가 즐겨 먹은 온갖 음식 가운데, 차만이 홀로 육정(六情)에 으뜸이라 하는구나.
원문주:진나라 때 장맹양이 읊은 등성도루시(登成都樓詩)에 보면, 백 가지 미묘한 요리나 진기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지만, 향기로운 차 한 잔이 온갖 음식을 능가하니 천하 사람들이 차 마시기를 즐겨 하더라는 것이다.
제9송의 전체적인 뜻은 왕이나 부호들이 즐겨 먹는 온갖 진기한 음식보다 차가 더 좋으니 차를 마시라는 것이다. 차의 성품이 인간의 성품에 잘 맞아 어질고 덕 있는 이가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되었다.
인용문헌(引用文獻)
다경의 7지사(七之事)에 실려 있는 싯구를 인용하였는데 원문은 오언고시(五言古詩)로 모두 16행(行)에 이른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차문양자사(借問揚子舍) 상견장경로(想見長卿盧) 정탁누천금(程卓累千金) 교치의오후(驕侈擬五候) 문유연기객(門有連騎客) 취대요오구(翠帶腰吳鉤) 정식수시진(鼎食隨時進) 백화묘차수(百和妙且殊)피림채추귤(披林採秋橘) 임강조춘어(臨江釣春魚) 흑자과용해(黑子過龍醢) 과찬유해서(果饌踰蟹蝑) 방다관육정(芳茶冠六情) 일미파구구(溢味播九區) 인생구안락(人生苟安樂) 자토연가오(玆土聯可娛)」라고되어 있다. 이 싯구 중에서 4구절만 가려 뽑아 쓴 것이다.
동 다 송 10 |
第十頌(原文)
開皇醫腦傳異事.
[隋文帝 微時夢 神①易其腦骨 自爾②痛 忽遇一僧云 山中③茗草可治④帝服之有効 於是天下 始知飮茶⑤]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신역(神易):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신역으로 되어 있지만, 사고 전서(四庫全書)의 원문에는 신인역(神人易)으로 되어 있어 사람 인(人)자가 들어 있다. 사람 인(人)자를 보충했다.
② 자이통(自爾痛):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자이통으로 되어 있다. 원문에는 자이뇌통(自爾腦痛)으로 되어 있다. 머리 뇌(腦)자가 빠져있다.
③ 산중명초(山中茗草):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산중명초로 되어 있어 있을 유(有)자가 빠져 있다. 원문에는 산중유명초(山中有茗草)라고 되어 있다.
④ 가치(可治):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가치라고 되어 있으나 원문에는「자이음지당유(煮而飮之當愈)」라고 되어 있다.
⑤ 어시천하 시지음다(於是天下 始知飮茶):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어시천하 시지음다로 되어 있으나, 원문에는 이런 문구는 없다. 이 문구는 초의선사께서 요약 첨가한 글귀이다. 원문에는「요시인경채철(繇是人競採掇) 내위지찬(乃爲之讚) 기략왈(其略曰) 궁춘추연하도(窮春秋演河圖) 불여재명일차(不如載茗一車)」라고 되어 있다. 진사(進士)인 권서(權紓)의 찬문(讚文)이 요약되어 있다.
第十頌(校訂文)
開皇醫腦傳異事.
[隋文帝 微時夢 神人易其腦骨 自爾腦痛 忽遇一僧云 山中有茗草 煮而飮之當愈 帝服之有効 於是天下 始知飮茶]
제10송
개황의뇌전이사.
[수문제 미시몽 신인역기뇌골 자이뇌통 홀우일승운 산중유명초 자이음지당유 제복지유효 어시천하 시지음다]
제10송
수 문제(開皇)①는 두통을 치료한 신이(神異)한 일을 전했네.
[수 문제(隋文帝)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꿈을 꾸었는데, 귀신(鬼神)이 나타나 그의 머리골(腦骨)을 바꾸어 갔다. 그 뒤로 두통을 앓게 되었는데, 문득 한 스님을 만났더니 말하기를, 산중에 차나무(茗草)가 있는데 달여서 마시면 마땅히 나을 것입니다 하였다. 문제가 차를 마시니 효과가 있었다. 이로부터 천하 사람들이 비로소 차 마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註)
① 개황(開皇):개황은 수 문제의 연호이다. 581년부터 604년까지 24년간 제위에 있었다. 개국황제(開國皇帝)로 성은 양(楊) 이름은 견(堅)이다. 지금의 협서성 화음인(華陰人)으로 호족출신이다. 조카 정제(靜帝)를 페위시키고 자립하여 국호를 수(隋)라고 하였다.
해설(解說)
제10송
제1구:수 문제가 차를 마셔서 두통을 치료한 신기한 일을 후세에 전하였다.
원문주:사고전서에 보면, 수 문제가 등극하기 전에 꿈을 꾸니 어떤 귀신이 나타나서 머리골을 바꾸어 갔는데 그때부터 머리가 아팠다. 어느날 한 스님을 우연히 만났는데 알려주기를, 이 산중에 차나무가 있는데 이를 따서 달여 마시면 두통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문제가 이 말을 듣고 차를 따서 달여 마시니 두통이 나았다. 이로부터 천하 사람들이 차 마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10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를 마시면 두통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수 문제의 일화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차를 마시면 두통이 치료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있는 글을 인용한 것인데 원문의 전부를 인용한 것이 아니라 일부만 이용하고 마지막에 붙어 있는 진사 권서(權紓)의 찬문은 생략하였다. 생략된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요시인경채철 내위지찬 기략왈 궁춘추연하도 불여재명일차」이다.
동 다 송 11 |
第十一頌(原文)
雷笑①茸香取次生.
[唐覺林寺② 僧志崇 製茶三品③ 驚笑自奉④ 萱草帶供佛⑤ 柴茸香待客⑥云]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뇌소(雷笑):차 이름을 말하는데, 원래 경뇌협(驚雷莢)이란 차이름을 줄여서 뇌협(雷莢)이라고 했는데, 협(莢)자를 소(笑)자로 잘못 쓴 것이다. 백미고사(白眉故事)나 사고전서(四庫全書)를 보면「각림승지숭(覺林僧志崇) 대객이경뇌협(待客以驚雷莢)」이라고 되어 있다.
② 당각림사(唐覺林寺):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당각림사(唐覺林寺)라고 되어 있는데, 유원장(劉源長)이 찬한 다사(茶史)에는 각림원(覺林院)이라고 되어 있고, 백미고사와 사고전서에는 각림(覺林)이라고만 되어 있다. 당(唐)자가 빠지거나 사(寺)자가 원(院)자로 되거나 다 빠지기도 하였다.
③ 제다삼품(製茶三品):다예관본, 석오본에는 제다삼품이라고 되어 있으나, 다사(茶史)나 사고전서 모두 수다삼등(收茶三等)이라고 되어있다.
④ 경소자봉(驚笑自奉):다예관본에는 경소자봉이라 되었고, 석오본에는 경뇌소자봉(驚雷笑自奉)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다사나 백미고사나 사고전서에는 대객이경뇌협(待客以驚雷莢)이라고 되어 있다.
⑤ 훤초대공불(萱草帶供佛):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훤초대공불이라 되어 있지만 다사, 사고전서, 백미고사에는 자봉이휜초대(自奉以萱草帶)라고 되어 있다.
⑥ 시용향대객운(柴茸香待客云):다예관본에는 시용향(시茸香)이라고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자용향(紫茸香)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다사나 백미고사나 사고전서에는 공불이자용향(供佛以紫茸香)이라고 되어 있다.
第十一頌(校訂文)
雷莢茸香取次生.
[唐覺林院 僧志崇 收茶三等 待客以驚雷莢 自奉以萱草帶 供佛以紫茸香]
제11송
뇌협용향취차생.
[당각림원 승지숭 수다삼등 대객이경뇌협 자봉이훤초대 공불이자용향]
제11송
경뇌협(驚雷莢①)과 자용향(紫茸香②)을 차례로 만들었네.
[당(唐) 각림원(覺林院)의 지숭(志崇)스님이 세가지 등급의 차를 거두어서 경뇌협으로는 손님을 대접하고, 훤초대(萱草帶③)는 자기가 마시고, 자용향으로는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주(註)
① 경뇌협(驚雷莢) : 차 이름. 당나라 때 각림원의 지숭스님이 손님 접대용으로 만든 차.
② 자용향(紫茸香) : 차 이름. 지숭스님이 불공용(佛供用)으로 만든 차.
③ 훤초대(萱草帶) : 차 이름. 지숭스님이 스스로 먹기 위하여 만든 차.
해설(解說)
제11송
제1구:당나라 때 각림원의 지숭스님이 경뇌협과 자용향을 만들었네.
원문주:유원장이 찬한 다사나 백미고사나 사고전서에 보면, 각림원의 지승 스님이 세 종류의 차를 만들었는데, 제일 좋은 자용향은 부처님께 드리고, 그 다음 좋은 경뇌협은 손님 접대할 때 쓰고 훤초대는 자기가 마셨다고 하였다.
제11송의 전체적인 뜻은 당나라 때에 비로소 차에 이름이 붙여지기 시작했으며 상품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때부터 각자가 만든 차에 자기 나름대로 이름을 붙이다 보니 많은 종류의 차 이름이 등장하게 된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이 구절은 어떤 문헌을 인용했는지 확실치가 않다. 제일 많은 오류를 남긴 것을 보면, 권위있는 문헌을 인용하지 않고 굴러다니는 문헌을 인용한 듯하다. 그러나 이 고사는 청(淸)나라 유원장(劉源長)이 찬한 다사(茶史)에 기록되어 있다. 이 다사는 1669년경에 저술된 것인데 상하 2권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백미고사(白眉故事) 권10 음식부 다류(茶類)조에 수록되어 있고 또 흠정사고전서(欽定四庫全書) 제845책 다보(茶譜) 4권에 수록되어 있다. 초의선사는 원문을 모두 인용하지 않고 그 일부만을 인용하였다. 후반부에 빠진 부분은 다음과 같다.「부다자이유낭(赴茶者以油囊) 성여력귀(盛餘瀝歸)」
동 다 송 12 |
第十二頌(原文)
巨唐尙食羞百珍 沁園唯獨記紫英.
[唐德宗 每賜同昌公主饌① 其茶有②綠花紫英之號]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찬(饌):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찬(饌)으로 되어 있으나, 두양잡편(杜陽雜編)에는「상매사어찬탕물(上每賜御饌湯物)」로 되어 있다. 원문의 내용을 살려서 찬탕물(饌湯物)이라고 했다.
② 기다유(其茶有):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기다유로 되어 있으나 두양잡편의 원문에는 기다측(其茶則)으로 되어 있다.
第十二頌(校訂文)
巨唐尙食羞百珍 沁園唯獨記紫英.
[唐德宗 每賜同昌公主 饌湯物 其茶則綠花(華)紫英之號]
제12송
거당상식수백진 심원유독기자영.
[당덕종 매사동창공주 찬탕물 기다측녹화(화)자영지호]
제12송
영화(榮華)로운 당(唐)나라에는 진수성찬이 가득하지만, 공주의 방(沁園)①에는 오직 자영(紫英)차만이 홀로 기억되네.
[당 덕종(德宗)②이 동창공주(同昌公主)에게 매일 음식과 마실 것을 하사하였는데, 그 차에는 녹화(綠花)③와 자영(紫英)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주(註)
① 심원(沁園):후한시대 명제(明帝:57~75년)의 딸인 심수공주 (沁水公主) 소유의 원림. 건초 2년(建初二年:77년)에 두헌(竇憲)으로부터 빼앗았다. 후세에 심원이라면 공주 소유의 원림을 말한다.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심양현(沁陽縣)의 동북쪽 심수(沁水)의 북안(北岸)에 있다. 금(金)나라 때에는 백관(百官)의 연회장소로 쓰였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② 덕종(德宗):당나라 제왕(779~805년)으로 다세(茶稅)제도를 만들어 차 세금을 받아들인 왕이며 기운 국운을 일으키는데 큰 공을 세운 임금이다.
③ 녹화(綠花):다예관본에는 꽃 화(花)자로 되어 있지만 원문에 빛날 화(華)자로 되어 있다. 두 글자는 서로 통하는 글자이며, 녹화는 차 이름이다.
해설(解說)
제12송
제1구:문물이 번창한 당나라에는 진기한 음식이 가득하여 부족함이 없다는데,
제2구:오직 공주의 방에는 향기로운 차만이 으뜸일세.
원문주:당나라 덕종은 동창공주에게 많은 음식과 차를 하사하셨는데 유독 녹화와 자영차만이 그 이름이 전하는구나.
제12송의 전체적인 뜻은 문물이 풍부한 당나라 때에 온갖 진기한 음식이 많지만 그 이름은 전하지 않고 유독 동창공주가 즐겨 마신 녹화와 자영차만이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하네.
인용문헌(引用文獻)
동창공주에 대한 일화는 당나라 때 소악(蘇鶚)이 저술한 두양잡편(杜陽雜編)에 상세히 전하는데, 이 책은 함통 9년(咸通九年:868년)에 쓰여졌다. 권하에 이 기사가 실려있다. 그 부분 중에서 내용의 일부만 발췌하여 인용한 것이다. 또 이 기록은 사고전서 광군방보와 농정전서(農政全書)에도 전한다.
동 다 송 13 |
第十三頌(原文)
法製頭綱從此盛 淸賢名士誇雋永.
[茶經 稱茶味 雋永]
제13송
법제두강종차성 청현명사과준영.
[다경 청다미 준영]
제13송
법도에 맞는 제다법(法製)은 두강(頭綱)①차로부터 성행하게 되었고, 맑고 어진 이름 난 선비들이 차맛을 준영(雋永②)과 같다고 했네. [다경(茶經)에 차맛을 준영(雋永)이라고 했다]
주(註)
① 두강(頭綱):제일 먼저 만들어서 제일 먼저 서울(京師)에 도착시켜 진상한 이른 봄차(春茶)를 말한다. 송나라 웅번(熊蕃)이 쓴 선화북원공다록(宣和北苑貢茶錄)에 보면,「한 해를 십여 강(綱)으로 나누었는데, 오직 백다(白茶)와 승설(勝雪)차만은 경칩(驚蟄) 이전에 차 만드는 일을 시작해서 열흘(浹日) 사이에 완성하여 날랜 기병(騎兵)을 빨리 달이게 하여 중춘(仲春:음력2월)을 넘기지 않고 서울에 이르게 하기에 두강(頭綱)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② 준영(雋永):지극히 맛있는 것을 말하는데, 준(雋)은 살찐 고기이고 영(永)은 뛰어나다(長)는 말이다. 한나라 때 괴통(蒯通)이란 사람이 지은 책 이름인데, 준영 81칙(儁永八十一則)이 있다. 지금은 이미 없어졌지만 한서(漢書) 괴통전(蒯通傳)에 전국시대의 세사(說士) 권변(權變)을 통론하고 그 설을 자서(自序)했는데 81수(首)에 달한다. 이것을 일컬어「준영(雋永)」이라고 했다. 이 글귀의 의미가 깊고 감미로우며 무한장구(無限長久)함을 비유한 말이다. 괴통의 본명은 철(徹)인데 세사(說士) 였다. 준영은 그가 담론(談論)한 글을 모은 책이다. 당나라 안사고(顔師古)가 괴통전에 붙인 주석문(注釋文)에는 준(雋)은 살찐 고기(肥肉)이고 영(永)은 뛰어나다(長)는 뜻이다.
해설(解說)
제13송
제1구:법도에 맞게 차를 만드는 제다법은 이른 봄에 진상품 차를 만드는 제도를 따라 발전하게 되었고,
제2구:어질고 덕있는 선비들이 좋은 차맛을 준영과 같다고 하였네.
원문주:육우의 다경 제5장 달이기편에 보면 차맛을 준영과 같다고 하였다.
제13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를 만드는 데에도 일정한 법도가 있는데, 이 법도를 따라서 차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이고, 이를 쫒아서 차 만드는 법이 성행하게 되었으며, 차도 품질이 우수한 상품이 많이 생산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준영과 같이 감미롭고 지극히 맛이 뛰어난 차가 생산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13송의 제1구절은 어느 문헌에서 인용하였는지 밝히지 않고 있지만 내용으로 보아서 북송(北宋)때 웅번(熊蕃)이 찬한 선화북원공다록(宣和北苑貢茶錄)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듯 싶다. 그러나 원문에 인용문 전체가 다 누락되어 있으니 무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제2구의 다경 인용문과 짝이 될 주해문이 있어야만 한다. 주해문을 복원한다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북원공다록(北苑供茶錄) 유백다여승설(惟白茶與勝雪) 자경칩전홍역(自驚蟄前興役) 협일내성(浹日乃成) 비기질치(飛騎疾馳) 불출중춘(不出仲春) 이지경사(已至京師) 호위두강(號爲頭綱)」제2구의 인용문헌은 다경의 제5장 달이기(五六煮)조에서 인용하였는데, 원문 전체를 인용하지 않고 요약해서 인용하였다. 다경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기제일자(其第一者) 위준영(爲雋永)」이라 했고 그 주(註)에「지미자(至美者) 왈준영(曰雋永) 준미야(雋味也) 영장야(永長也) 사장왈준영(史長曰雋永)」이라고 했다.
동 다 송 14 |
第十四頌(原文)
綵莊龍鳳轉巧麗 費盡萬①金成百餠.
[大小龍鳳團 始於丁謂 成於蔡君謨 以香藥合而成餠 餠上飾以龍鳳紋供御者 以金莊成. 東坡詩 紫金百餠費萬②錢]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만금(萬金):만냥의 금을 말하는데 다예관본에는 만(萬)으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만(万)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두 글자는 서로 통하는 자요, 약자이다.
② 만전(萬錢):만냥의 돈을 말하는데 다예관본과 석오본에는 만(萬)자가 각기 다르게 쓰여져 있다. 만(萬)자가 정자이다.
第十四頌(校訂文)
綵莊龍鳳轉巧麗 費盡萬金成百餠.
[大小龍鳳團 始於丁謂 成於蔡君謨 以香藥合而成餠 餠上飾以龍鳳紋供御者 以金莊成. 東坡詩 紫金百餠費萬錢]
제14송
채장용봉전교려 비진만금성백병.
[대소용봉단 시어정위 성어채군모 이향약합이성병 병상식이용봉문공어자 이금장성. 동파시 자금백병비만전]
제14송
오색 비단으로 싼 용봉단다(龍鳳團茶)①는 용봉의 무늬를 아름답게장식했고, 만금(萬金)을 들여서 겨우 백 개의 떡차를 만들었네. [크고 작은 용봉단다는 처음으로 정위(丁謂)②가 만들기 시작하여 채군모(蔡君謨)③가 완성했는데, 향약(香藥)을 넣어 떡차를 만들고, 그 위에는 용과 봉의 문양을 장식하였다. 임금에게 진상하는 차는 금(金)으로 장식하여 만들었다. 소동파(蘇東坡)④의 시(詩)에 「자금색(紫金色) 떡차 백 개에 일만전을 들여서 만드네」라고 하였다]
주(註)
① 용봉단다(龍鳳團茶):용단(龍團) 봉단(鳳團)을 말하는데 크고 작은 대소(大小) 용봉단이 있다. 대관다론(大觀茶論:徽宗)에는 용단(龍團), 봉병(鳳炳)으로 되어 있고, 고려도경(高麗圖經:徐兢)에는 용봉단(龍鳳團)으로, 고려사에는 용봉다(龍鳳茶)로 기록되어 있다. 이 용단 봉병 차는 송나라 때 건안(建安:복건성 건구현)지방의 어용 다원인 북원(北苑)에서 만들어 궁중에 진상하던 덩어리 차로, 표면에 용이나 봉의 문양을 새겨서 금으로 장식하였다. 용단은 용의 무늬를 새긴 차를 말하고, 봉단 또는 봉병이라고 하는 차는 봉의 무늬를 새긴 차를 말한다. 차는 똑같은데 무늬가 다를 뿐이다. 용과 봉의 문양은 임금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반 서민은 쓸 수가 없다. 용봉차가 만들어진 유래는「선화북원공다록」에 이렇게 나와 있다.「성조(聖朝:宋) 개보(開寶:태조연호:968~975년) 말년에 남당(南唐)을 항복시켜서, 태평흥국(太平興國:태종연호:976~983년) 초년에 용과 봉황의 문양틀을 특별히 비치하고, 사신을 북원에 보내어 단다(團茶)를 만들게 해서 서민이 마시는 것과 다르게 하였다. 용봉차는 대개 이로 부터 시작되었다.」
② 정위(丁謂):송나라 때 사람(962~1033년)으로 장주(長洲:강소성 오현)에서 났다. 자는 위지(謂之) 또는 공언(公言)으로 시 짓기(作詩)를 기뻐하고, 그림 그리기, 음악 등 박학하여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다. 순화(淳化) 3년에 진사가 되었고 진종 때 구준(寇準)이 재상이 되었을 때 정사에 참여하였다. 진종 때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켜 옥청소응궁(玉淸昭應宮)을 세웠다. 후에 진공(晉公)에 봉해졌다. 그래서 정진공(丁晉公)이라고 부른다. 일찌기 건안다록(建安茶錄) 3권을 저술했다. 복건(福建)의 전운사(轉運使)로 있을 때 건안(建安)의 공다소(貢茶所)의 차밭과 차공장, 기구, 차따기와 제다법 등을 기록한 책이다.
③ 채군모(蔡君謨):북송(1012~1067년)때 서예가(書藝家)로서, 자는 군모(君謨)요, 이름은 양(襄)이다. 복건성 선유(仙遊) 사람으로 시문(詩文)에 밝고 사학(史學)에 정통하며 서법(書法)에 능하였다. 19세에 진사가 되고 인종 때 장주판관(漳州判官) 서경유수(西京留守) 복건로전운사(福建路轉運使)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을 지냈고, 영종 때에는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와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지냈다. 인종의 하문을 받고 다록(茶錄)을 지어서 바쳤고 인종으로부터 군모(君謨)라는 자를 하사받기도 했으며 그가 죽자 신종은 충혜(忠惠)라는 시호를 내려 주었고 묘비명은 구양수(歐陽脩)가 썼다.
④ 소동파(蘇東坡):북송 때 (1036~1101년) 문학가, 서화가이다.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 이름은 식(軾)이다. 미산(사천성) 사람으로 22세에 진사가 되고 신종 때 밀주(密州) 서주(徐州) 호주(湖州) 등 주지부(州知府)를 지냈고.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하다가 황주(黃州)로 유배를 갔다. 철종 때 다시 복직이 되어 한림학사와 예부상서를 역임했다. 당송 8대가 중의 한 사람으로그가 죽자 시호를 문충(文忠)이라고 했다.
해설(解說)
제14송
제1구:금으로 장식하고 비단으로 싼 용단 봉병의 귀한 차는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 없구나.
제2구:만금을 들여서 만들어도 겨우 백여 개의 덩어리 차 뿐이니 귀하고 값지기 이를데 없네.
원문주:크고 작은 용봉단다가 있는데 이는 정위가 처음 만들기 시작해서 채군모가 완성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도 있었다. 웅번의 북원공다록에는 「대개 용봉차 등은 모두 태종때 만들어진 것으로 함평(咸平) 초에 정진공이 처음으로 다록에 기록하였던 것이다. 많이들 말하기를 용봉단다는 정진공으로부터 비롯 되었다고 한다. 장순민(張舜民)의 화만록(畵漫錄)에도 전운사인 진공이 처음으로 용봉단다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지만 이 말은 전해 들은 것이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채군모가 용단 봉단을 더욱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처음에 용단 봉단을 만들 때는 용뇌(龍腦)의 향료를 섞어서 만들어 진상하였지만, 차에 천성의 향기가 있어 이를 빼앗길까 염려하여 쓰지 않게 되었다. 떡차 표면에는 용과 봉의 무늬를 새기고 금(金)으로 장식하였으며 비단으로 쌌다. 진귀한 떡차 한 근에 금이 두 냥이 되는데, 일만 전을 들여서 자금색 떡차 백여 개를 만든다고 하였다. 이 떡차를 만드는 방법은 북원별록(北苑別錄 : 趙汝礪)에 상세히 나와 있다.
제14송의 전체적인 뜻은 송나라 때 북원이라는 어용다원에서 전운사로 있던 정위가 처음 용봉단다를 만들기 시작해서 채군모가 소용봉단다를 만들어 정교하고 아름답기 이를 데 없게 하였는데, 이 차를 만드는 비용 만 전을 들여도 겨우 떡차 백여 개에 그치니 실로 진귀하기 비길 데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만든 떡차는 한 근(28 덩어리)에 금2냥이나 되는 비싼 차였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용봉단다에 대한 문헌은 여러 곳에 실려 있는데, 초의선사는 웅번의「선화북원공다록」을 많이 활용하였으며,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내용을 요약해서 골자만 뽑아 썼다. 그리고 소동파의 싯구는「장기(蔣蘷)가 보내준 차에 화합하여(和蔣虁寄茶)」라는 칠언고시(七言古詩)에서 한 구절을 뽑아 쓴 것이다. 그 앞뒤는 다음과 같다. 「청시양폭기천리(淸詩兩幅寄千里) 자금백병비만전(紫金百餠費萬錢) 음아팽초양기절(吟哦烹噍兩奇絶) 지공투걸번봉전(只恐偸乞煩封纏) 노처치자부지애(老妻稚子不知愛)」
동 다 송 15 |
第十五頌(原文)
誰知自饒眞色香 一經點染失眞性.
[萬寶全書 茶自有眞香 眞味① 眞色② 一經他物③ 點染便失其眞④]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진미(眞味):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는 있을 유(有)자가 빠지고 진미라고 되어 있으나 만보전서나 장원(張源)의 다록(茶錄)이나 다신전의 원문에는 유진미(有眞味)라고 되어 있다. 있을 유(有)가 중복되므로 초의선사가 생략한 것 같다.
② 진색(眞色):진색도 마찬가지로 있을 유(有)자를 생략하였다. 앞의 경우와 같다.
③ 타물(他物):동다송 원문에는 오염시키는 물질을 타물이라고 표현하였으나, 이 글귀는 다신전이나 만보전서에는 없고, 타물 대신 실질적으로 오염시키는 물질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 이 구절은 초의선사가 만들어 넣은 문구이다.
④ 기진(其眞):동다송에는 기진(其眞)으로 문맥이 끝났으나, 만보전서 원문에는 기진 다음으로 오염시키는 물질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생략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여수중착함(如水中着醎) 다중착료(茶中着料) 완중착과(碗中着果) 개실진야(皆失眞也)」
第十五頌(校訂文)
誰知自饒眞色香 一經點梁失眞性.
[萬寶全書 茶自有眞香 眞味 眞色 一經他物 點梁便失其眞]
제15송
수지자요진색향 일경점염실진성.
[만보전서 다자유진향 진미 진색 일경타물 점염편실기진]
제15송
뉘라서 알리오 스스로 갖춘 진색(眞色) 진향(眞香)을, 한 번만 오염되면 그 진성(眞性)을 잃게 되는 법.
[만보전서(萬寶全書)①에「차에는 스스로 진향(眞香), 진미(眞味), 진색(眞色)②이 있는데, 한번만 다른 물질에 오염이 되면 그 진성(眞性)을 잃는다」고 하였다]
주(註)
① 만보전서(萬寶全書):만보전서는 백과사전의 일종이다. 여러 가지를 기록해 놓았는데, 채다론(採茶論)이 들어 있는 책은 경당증정만보전서(敬堂增訂萬寶全書)본이다.
② 진향, 진미, 진색(眞香, 眞味, 眞色):차에는 스스로 갖추고 있는 참된 향내, 참된 맛, 참된 빛깔이 있다. 이것은 다른 물질에 한 번만 오염되면 그 참된 색깔과 향내와 맛을 잃게 된다. 중국인들은 옛부터 다른 물질을 많이 섞었는데 소금이나 향료나 과일 등을 넣어서 마셨다.
해설(解說)
제15송
제1구:그 누가 알리요. 차에는 참다운 향기와 빛깔과 맛이 들어있는 것을 스스로 갖추고 있는 이 참된 본성은,
제2구:한 번만 오염되어도 그 진실한 성품을 잃어버린다네.
원문주:만보전서라는 백과사전에 보면 차에는 스스로 갖추고 있는 진실한 향내와 진실한 맛과 진실한 빛깔이 있다고 하는데, 한 번만이라도 다른 물질에 오염이 되더라도 그 참다운 성품을 잃어버려 다시는 찾을 수가 없다.
제15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는 오염이 잘 되는데, 한 번만 오염이 되면 차가 가지고 있는 진실한 향내와 진실한 맛과 빛깔은 다시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오염이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주의를 하도록 하라는뜻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15송의 인용문헌은 만보전서의 채다론(採茶論)을 인용하였는데전문을 모두 인용하지 않고 일부만 인용하였으며, 또 내용도 요약하고 생략하였다. 원문과 뜻은 부합하나 문구는 다르다. 원문은 만보전서의 점염실진(點染失眞)조를 인용하였는데, 이 글은 명(明)나라 때 장원(張源)이 1595년경에 찬술한 것을 만보전서에 수록하였다. 초의선사는 이글을 보고 인용한 것이다. 생략된 원문은 원문교정란에 기재하였다.
동 다 송 16 |
第十六頌(原文)
道人雅欲全其嘉 曾向蒙頂手栽那
養得五斤獻君王 吉祥( )與聖楊花
[傅大士① 自住②蒙頂結庵③ 種茶凡三年 得絶嘉④者 號聖楊花 吉祥( )⑤ 共五斤⑥ 持歸供獻]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부대사(傅大士):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부대사라고 되어 있으나, 사고전서에 실린 청이록(淸異錄)에는 쌍림대사(雙林大士)라고 되어 있다. 성씨가 부(傅)이기에 부대사 또는 쌍림사(雙林寺)에 살았기에 쌍림대사라고 한다. 부대사나 쌍림대사는 동일인이다.
② 자주(自住):청이록에는 머무를 주(住)자가 아니라 갈 왕(往)자이다. 갈 왕(往)자로 바로잡는다.
③ 결암(結庵):청이록에는 결모(結茅)라고 되어있다. 뜻은 서로 통하지만 암자 암(庵)자가 뜻이 더 좋다.
④ 가자(嘉者):청이록에는 가(嘉)자가 가(佳)자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두 글자는 서로 뜻이 같다. 초의선사가 가(嘉)자를 쓴 것은 본문에서 운(韻)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주석문에도 같은 글자를 선택한 것이다.
⑤ 길상(예)(吉祥 예):청이록에는 예(예)자를 예(蕊)자로 썼다. 예(예)자는 꽃술 예(蕊)자의 속자이고 예(예)자는 예(蕊)자와 같은 글자이다. 무엇을 써도 무방하다.
⑥ 근(斤):청이록에는 힘쓸 근(觔:筋)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으로 보아 근(斤)자가 알맞다.
第十六頌(校訂文)
道人雅欲全其嘉 曾向蒙頂手栽那
養得五斤獻君王 吉祥(예)與聖楊花
[傅大士 自往蒙頂結庵 種茶凡三年 得絶佳者 號聖楊花 吉祥예 共五斤 持歸供獻]
제16송
도인아욕전기가 증향몽정수재나
양득오근헌군왕 길상예여성양화.
[부대사 자왕몽정결암 종다범삼년 득절가자 호성양화 길상예 화공오근 지귀공헌]
제16송
도인(道人)은 좋은 차를 얻고자 하여.
일찌기 몽정산(蒙頂山)①에 들어가 차나무를 재배했네.
잘 가꾸어 만든 차 다섯 근을 임금님께 바치었는데.
그 이름은 길상예(吉祥예)와 성양화(聖楊花)라네.
[부대사(傅大士)②가 몽정산에 들어가 암자를 짓고 살면서 차를 심어 가꾼 지 3년만에 절묘하게 좋은 차를 만들어 성양화(聖楊花)와 길상예(吉祥예)라고 이름지어 겨우 다섯 근을 만들어 가지고 돌아와 바쳤다]
주(註)
① 몽정산(蒙頂山):사천성(四川省)의 아안현(雅安縣) 명산현(名山縣) 노산현(蘆山縣)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정에 차밭이 있는데 이곳에서 나는 차를 몽산다(蒙山茶)라고 하는데 약효가 뛰어나다.
② 부대사(傅大士):성은 부(傅)씨요 이름은 흡(翕)이요, 자(字)는 현풍(玄風)이다. 절강성(浙江省) 금화현(金華縣 : 옛 東陽) 출신으로 24세 때 우연회 인도승(梵僧) 숭두타(崇頭陀)를 만나 알게된 인연으로 출가하여, 송산(松山)에 들어가 암자를 짓고 고행 7년만에 해탈(解脫)을 했다. 석가금속정광(釋迦金粟定光) 삼불(三佛)을 친견하고 난 뒤로는 신이(神異)하게 되었는데, 양 무제(梁武帝 : 502~519년)가 매우 공경하였다. 선혜대사(善慧大士) 또는 동양대사(東陽大士)라고 불렸스며 특히 금강경(金剛經)에 밝았다. 진(陳) 대건(大建) 원년(元年: 569년) 4월 24일에 입적(入寂)하셨다. 부대사가 세운 쌍림사(雙林寺)는 중국 선림십찰(禪林十刹) 중의 하나로 여덟 번째로 꼽히는 명찰이다. 양 원제(梁元帝 : 552~555년)가 세운 장사사아육왕상비문(長沙寺阿育王像碑文)과 부대사록(傅大士錄)에 의하면 쌍수(雙樹 : 沙羅雙樹)의 인연으로 부대사가 세운 절이다.
해설(解說)
제16송
제1구:도인이 좋은 차 얻기를 바라고,
제2구:일찌기 몽정산 속으로 들어가 차나무를 손수 가꾸어서,
제3구:겨우 다섯 근의 좋은 차를 만들어 임금에게 바치었네.
제4구:그 차 이름은 길상예와 성양화라고 한다네.
원문주:부대사라는 도인이 스스로 몽정산 속으로 들어가 암자를 짓고 살면서 차를 심어서 가꾸기 3년만에 절묘한 차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성양화와 길상예라고 하는데 각각 다섯 근이다. 가지고 돌아와 바쳤다.
제16송의 전체적인 뜻은 부대사(傅大士)라는 도인이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서 옛부터 이름난 명산인 몽정산에 들어가 암자를 짓고 살면서, 차나무를 심어 가꾸기 어언 삼년, 겨우 다섯 근의 절묘한 차를 만들었다. 이름을 지어 붙이기를 하나는「성양화(聖楊花)」라고 했고 다른 하나는「길상예(吉祥예)」라고 하였다. 이 차를 가지고 돌아와서 임금님께 바쳤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이 기록의 인용문헌은 청나라 때 유원장(劉源長)이 1669년경에 찬한 다사(茶史)와 강희(康熙) 47년(1708)에 성조(聖祖)의 명을 받아서왕호(汪灝) 등이 찬한 광군방보(廣群芳譜)에 실려 있다. 어정패문제 광군방보(御定佩文齊廣群芳譜) 권18 다보(茶譜) 다1(茶一)조의 청이록(淸異錄)에 나와 있다. 이 기록은 또 사고전서(四庫全書)에 등재되어 있는데, 이 기록의 원문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쌍림대사(雙林大士) 자왕몽정결모(自往蒙頂結茅) 종다범삼년(種茶凡三年) 득절가자(得絶佳者) 호성양화(號聖楊花) 길상예(吉祥蘂) 공오근(共五觔) 지귀공헌(持歸供獻)」이라고 되어 있다.
동 다 송 17 |
第十七頌(原文)
雪花雲膄爭芳烈 雙井日注喧江①浙.
[東坡詩 雪花雨脚何足道.② 山谷詩③ 我家江南採雲유. 東坡至僧院④僧梵英 葺治堂宇嚴潔 茗飮 芳烈 問此新茶那 英曰茶性 新舊交則 香味復. 草茶成兩浙⑤ 而兩浙之茶品 日注爲第一. 自景祐⑥以來 洪州雙井白⑦牙漸盛 近世製作尤精 其品遠出 日注之上 遂爲草茶第一]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강절(江浙):강(江)자를 홍(洪)자로 바로 잡는다. 쌍정(雙井)차는 홍주(洪州)에서 나고, 일주(日注)차는 양절(兩浙)에서 난다고 한다. 쌍정과 일주차가 나는 지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② 동파시(東坡詩):소동파(蘇東坡)의 싯구 중에 설화양각하족도(雪花兩脚何足道)의 양각(兩脚)을 우각(雨脚)으로 바로 잡는다. 이 시의 원문은 소동파 시집 권2에 실려 있는 화전안도기혜건다(和錢安道寄惠建茶)의 내용이다. 칠언고시(七言古詩)로서 열한 번째 구절인 설화우각하족도(雪花雨脚何足道)의 내용만을 인용하였다.
③ 산곡시(山谷詩):황산곡(黃山谷)의 싯구 중에 아가강남채운유(我家江南採雲膄)의 채운유(採雲膄)는 적운유(摘雲膄)로 바로 잡는다. 이 시의 원문은 황정견 시집(黃庭堅詩集)에 들어 있는 쌍정다송자첨(雙井茶送子瞻)의 내용이다. 이 시는 칠언율시(七言律詩)로서 다섯 번째 구절인 아가강남적운유(我家江南摘雲膄)라는 내용만 인용하였다. 수
④ 동파지승원(東坡至僧院):이 일화는 동파집에 실려있는 것인데, 원문에는 즙치당우비구가엄결(葺治堂宇比舊加嚴潔)이라고 되어 있다. 다예관본에는 즙치당우엄결이라고 되어 있어 비구가(比舊加)라는 구절이 누락되어 있다.
⑤ 초다성양절(草茶成兩浙):이 구절은 귀전록(歸田錄)에 들어 있는 것인데 그 일부만을 간추려 인용하였다. 원문을 토대로 생략한 구절은 제외하고 복원해 본다. 초다성어양절(草茶盛於兩浙) 양절지품(兩浙之品) 일주위제일(日注爲第一) 자경우이후(自景祐已後) 홍주쌍정백아점성(洪州雙井白芽漸盛) 근세제작우정(近歲製作尤精) 기품원출일주상(其品遠出日注上) 수위초다제일(遂爲草茶第一)이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는 귀전록이라는 인용문헌의 명칭이 빠졌고, 성어(盛於)라는 구절이 성(成)자로만 되어 있고, 양절지품은 이양절지다품으로 되어 있으며, 경우 이후는 경우 이래로, 근세(近歲)는 근세(近世)로 되어 있다.
第十七頌(校訂文)
雪花雲膄爭芳烈 雙井日注喧洪浙.
[東坡詩 雪花雨脚何足道. 山谷詩 我家江南摘雲膄. 東坡至僧院 僧梵英 葺治堂宇 比舊加嚴潔 茗飮芳烈 問此新茶那 英曰茶性 新舊交則 香味復.(歸田錄) 草茶盛於兩浙 (而)兩浙之(茶)品 日注爲第一 自景祐已後 洪州雙井白芽漸盛 近歲製作尤精 其品遠出日注上 遂爲草茶第一]
제17송
설화운유쟁방열 쌍정일주훤홍절.
[동파시 설화우각하족도. 산곡시 아가강남적운유. 동파지승원 승범영 즙치당우 비구가엄결 명음방열 문차신다나 영왈다성 신구교측 향미복.(귀전록) 초다성어양절 (이)양절지(다)품 일주위제일 자경우이후 홍주쌍정백아점성 근세제작우정 기품원출일주상 수위초다제일]
제17송
설화(雪花)차와 운유(雲膄)차는 향기로움을 서로 다투고,
쌍정(雙井)차와 일주(日注)차는 홍주(洪州)①와 절강(浙江)②에서 그 품질을 겨루네.
[소동파(蘇東坡)③의 시에「설화차와 우각(雨脚)차만으로 어찌 만족타 하리오」하였고, 황산곡(黃山谷)④의 시에는「강남의 내 집에서 운유(雲膄)차를 땄네」라고 하였다.
소동파(蘇東坡)가 사원(僧院)에 이르니, 범영(梵英) 스님이 당우(堂宇)를 수리하여 그전보다 더 깨끗하게 하고 차를 마시는데 매우 향기로웠다. 그래서 동파가 묻기를「이 차가 새 차(新茶)입니까」하니, 범영스님이 대답하기를「차의 성품이란 새 것과 묵은 것을 섞으면 향기와 맛이 회복되지요」하였다.
귀전록(歸田錄)에 초다(草茶)④는 양절(兩浙)에서 성행했는데 양절에서 생산되는 차(茶)중에서는 일주(日注)차가 제일이다. 북송 경우(景祐:1034~1037년간) 이후에는 홍주(洪州)에서 쌍정(雙井)차와 백아(白芽)차가 점차로 성행터니, 근래에는 차 만드는 법이 더욱 정교하여져 그 품질이 일주(日注)차보다 좋아졌다. 마침내 초다(草茶)⑤ 중에서 제일로 치게 되었다]
주(註)
① 홍주(洪州):지금의 강서성(江西省) 남창시(南昌市)를 중심으로 한 지방이다. 수(隋)의 개황(開皇) 7년(589년)에 설치, 당(唐) 때 남창(南昌)으로 고쳤다.
② 절강(浙江):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중국의 동중부 동지나해를 낀 지역, 전당강(錢塘江)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 절동(浙東)과 절서(浙西)로 나눈다. 양절(兩浙)은 절동(浙東)과 절서(浙西)를 말한다.
③ 소동파(蘇東坡):북송(北宋)의 대문장가로서 자(字)는 자첨(子瞻)이요, 이름은 식(軾)이요, 호(號)는 동파(東坡)이다. 소순(蘇洵)의 아들로서 부자가 모두 학문에 뛰어나서, 순(洵)을 노소(老蘇), 동파를 대소(大蘇), 동생 철(轍)을 소소(小蘇)라고 하여 삼소(三蘇)라 불렀다. 또 동파는 시인이요, 문장가로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중의 한 사람이다. 동파(1036~1101년)는 진사시험 때 구양수(歐陽修)의 인정을 받아 관계에 진출 하였다.
④ 황산곡(黃山谷):북송 때 시인으로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시조(始祖)이다. 이름은 정견(庭堅:1045~1105년)이요, 자는 노직(魯直)이요, 호는 산곡(山谷) 또는 배옹(涪翁)이라고 한다. 소동파의 천거로 관계에 진출하여 지방장관(知鄂州)을 역임했었다. 글씨를 잘 쓰고 시(詩)와 문장(文章)에 능하였다. 의주(宜州)에서 죽었다. 저서로는 산곡내외집(山谷內外集)과 별집(別集)등이 전해진다.
⑤ 초다(草茶):초다는 일창일기(一槍一旗: 차싹 하나에 잎 하나 붙은 것)의 어린 차싹을 따서 만든 차이다. 남송(南宋) 때 엽몽득(葉夢得)이 찬(撰: 1135년)한 피서록화(避暑錄話) 권하(卷下)에 보면 초다(草茶)의 극상품은 오직 쌍정과 고저(顧渚)에서만 난다고 한다. 차는 일년에 대여섯 근 정도이다. 대개 차맛은 균일하나 정묘한 것은 어린 싹에 있다. 처음 돋아나 참새 혀(雀舌)같은 것을 딴다.
해설(解說)
제17송
제1구:설화차와 운유차는 그 향기로움을 서로 다투는데,
제2구:쌍정차와 일주차는 그 품질을 서로 겨루네.
원문주:소동파는 싯구로 설화차를 노래했고, 그의 제자 황산곡은 운유차를 자랑하였다. 산곡의 강남 옛집에서는 해마다 봄이면 운유차를 땄다고 한다.
또 소동파가 범영스님께 갔을 때, 차를 끓여 대접하니 매우 향기로웠다. 동파가 묻기를 이 차가 올 햇차입니까 하니 범영스님이 대답하기를 차의 성품이란 새 차와 묵은 차를 섞으면 향기와 맛이 되살아나지요 하였다. 또 구양수의 귀전록에 보면 초다는 양절(절동과 절서)에서 나는데 그 중에서 일주차가 제일이다. 북송 때에는 홍주에서 쌍정차와 백아차가 생산되는데, 근래에는 차 만드는 법이 더욱 정교하여져서 그 품질이 일주차보다 더 좋아졌다.
제17송의 전체적인 뜻은, 설화차나 운유차나 모두 뛰어난 차요 쌍정차나 일주차 역시 매우 좋은 차이지만, 이는 모두가 온갖 정성을 다해 정교하게 만드는 데서 비롯된 것이니, 좋은 차란 온갖 정성을 다해야만 하고 그런 연후에 품질의 우열을 따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들은 많이 만들 수 없는 것이며, 일 년에 몇 근 정도이니 어쩌면 사치하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을지도 모르겠다. 차 만드는 사람은 온 정성을 다 쏟아야만 하되 속임수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인용문헌
제1구절은 소동파 시집 권2에 실려있는 화전안도기혜건다(和錢安道寄惠建茶)의 내용이다. 칠언고시인데,
아관어남금기시(我官於南今幾時) 상진계다여산명(嘗盡溪茶與山茗)
흉중사기고인면(胸中似記故人面) 구불능언심자성(口不能言心自省)
위군세설아미가(爲君細說我未暇) 시평기략차가청(試評其略差可聽)
건계소산수부동(建溪所産雖不同) 일일천여군자성(一一天與君子性)
삼연가애불가만(森然可愛不可慢) 골청육니화차정(骨淸肉膩和且正)
설화우각하족도(雪花雨脚何足道) 철과시지진미영(啜過始知眞味永)
종복고경종가록(縱復苦硬終可錄) 급암소당관요맹(汲黯少戇寬饒猛)
초다무뢰공유명(草茶無賴空有名) 고자요사차완광(高者妖邪次頑懭)
체경수복강부범(體輕雖復强浮汎) 성체편공구산냉(性滯偏工嘔酸冷)
기간절품기불가(其間絶品豈不佳) 장우종현비골경(張禹縱賢非骨鯁)
규화옥과불역치(葵花玉과不易致) 도로유험격운령(道路幽嶮隔雲嶺)
수지사자래자서(誰知使者來自西) 개함뢰락수백병(開緘磊落收百餠)
후향작미본비별(嗅香爵味本非別) 투지자각광형형(透紙自覺光炯炯)
비강단봉우소용(粃糠團鳳友小龍) 노예일주신쌍정(奴隸日注臣雙井)
수장애석대가객(收藏愛惜待佳客) 불감포리찬권행(不敢包裏鑽權倖)
차시유미군물전(此詩有味君勿傳) 공사시인노생영(空使時人怒生癭) 이라고 했다. 이 중에서 설화우각하족도의 구절만을 인용하였다.
제2구절은 황정견 시집(黃庭堅詩集)에 들어 있는 칠언율시로서 쌍정다송자첨(雙井茶送子瞻)의 내용이다.
인간풍일부도처(人間風日不到處) 천상옥당삼보서(天上玉堂森寶書)
상견동파구거사(想見東坡舊居士) 휘호백곡사명주(揮毫百斛瀉明珠)
아가강남적운유(我家江南摘雲膄) 낙애비비설불여(落磑霏霏雪不如)
위군환기황주몽(爲君喚起黃州夢) 독재편주향오호(獨載扁舟向五湖)라고 되어 있다. 이중에서 아가강남적운유라는 구절만 인용하였다. 주석문은 동파집에 실려있는 것을 인용하였는데, 여거차십칠년(予去此十七年) 부여팽성장성도(復與彭城張聖途) 단양진보지동래원(丹陽陳輔之同來院) 승범영(僧梵英) 즙치당우(葺治堂宇) 비구가엄결(比舊加嚴潔) 명음방열(茗飮芳烈) 문차신다나(問此新茶那) 영왈다성(英曰茶性) 신구교측(新舊交則) 향미복(香味復)이라고 되어 있다. 이 중에서 일부만 인용하였다. 그리고 북송 때 구양수(歐陽修)가 1067년에 찬한 귀전록(歸田錄)을 인용하였는데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귀전록 권1에 보면, 납다출어검건(臘茶出於劍建) 초다성어양절(草茶盛於兩浙) 양절지품(兩浙之品) 일주위제일(日注爲第一) 자경우이후(自景祐已後) 홍주쌍정백아점성(洪州雙井白芽漸盛) 근세제작우정(近歲製作尤精) 낭이홍사(囊以紅紗) 불과일이양(不過一二兩) 이상다십수근양지(以常茶十數斤養之) 용벽서습지기(用辟暑濕之氣) 기품원출일주상(其品遠出日注上) 수위초다제일(遂爲草茶第一)이라고 되어있다. 이중에 일부만을 간추려 인용하였다.
동 다 송 18 |
第十八頌(原文)
建陽丹山碧水鄕 品題特尊雲澗月.
[遯齋閑覽 建安茶爲天下第一. 孫樵送茶焦 丹①部曰②晩甘候③ 十五人遣侍齋閣 此徒④乘雷而摘拜水而和 盖建陽丹山碧水之鄕 月澗雲龕之品 愼勿賤用⑤ 晩甘候⑥茶名 茶山先生 乞茗疏 朝華始起 浮雲皛皛於⑦晴天 午睡初醒 明月離離於⑧碧澗]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단부(丹部):단(丹)자를 형(刑)자로 바로 잡는다. 형부(刑部)를 단부라고 잘못 적은 것이다. 청이록(淸異錄)에 실려 있는 원문에는 형부로 되어 있고, 다예관본에는 단부로, 석오본에는 형부로 되어 있다.
② 형부왈(刑部曰):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가로 왈(曰)자로 되어 있으나 청이록 원문에는 글 서(書)자로 되어 있다. 글 서(書)자로 바로 잡는다.
③ 만감후(晩甘候):다예관본에는 기후 후(候)자로, 석오본에는 임금 후(侯)자의 후(侯)자로 되어 있다. 임금 후(侯)자로 바로 잡는다.
④ 차도(此徒):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는 차도 다음에 다 개(皆)자가 빠져 있지만, 청이록의 원문에는 「차도개승뢰이적배수이화(此徒皆乘雷而摘拜水而和)」라고 되어 있다.
⑤ 천용(賤用):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천용으로 되어 있으나,청이록 원문에는 천용지(賤用之)라고 되어 있다. 갈 지(之)자가 누락되어 있다. 하지만 없어도 뜻이 통한다.
⑥ 만감후(晩甘侯):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임금 후(侯)자의 본자 로 되어 있다. 정자 후(侯)자로 바로 잡는다.
⑦ 어(於):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어조사 어(於)자로 되어 있으나 여유당전서에는 어조사 호(乎)자로 되어 있다. 뜻이 서로 통하는글자이다.
⑧ 어(於):⑦번의 주석 참고.
第十八頌(校訂文)
建陽丹山碧水鄕 品題特尊雲澗月.
[遯齋閑覽 建安茶爲天下第一. 孫樵送茶焦 刑部書晩甘侯 十五人遣侍齋閣 此徒皆乘雷而摘拜水而和 盖建陽丹山碧水之鄕 月澗雲龕之品 愼勿賤用 晩甘侯茶名. 茶山先生 乞茗疏 朝華始起 浮雲皛皛於晴天 午睡初醒 明月離離於碧澗]
제18송
건양단산벽수향 품제특존운간월.
[돈재한람 건안다위천하제일. 손초송다초 형부서만감후 십오인견시재각 차도개승뢰이적배수이화 개건양단산벽수지향 월간운감지품 신물천용 만감후다명. 다산선생 걸명소 조화시기 부운정정어청천 오수초성 명월이이어벽간]
제18송
건양(建陽)①과 단산(丹山)②은 물이 맑은 고장으로,
운감(雲龕)차와 월간(月澗)차를 특별하게 품격을 높였네.
[돈재한람(遯齋閑覽)③에 건안차(建安茶)를 천하 제일이라 하더라.손초(孫樵)④가 차를 보내면서 형부(刑部)로 보낸 글에 만감후(晩甘侯)라고 하였다. 열다섯 명의 시중 들 사람을 재각(齋閣)으로 보내니,이들이 모두 번개같이 물을 길어다 차를 달여 올렸다. 무릇 건양과 단산은 물이 맑은 고장으로, 월간차와 운감차가 나오는데, 천박하게 사용할 것이 아니다. 만감후란 차의 이름이다.
다산(茶山)⑤선생의 걸명소(乞茗疏)에⑥「아침에 일어나 기분이 상쾌할 때, 흰 구름이 맑은 하늘에 둥실둥실 떠 있을 때 낮잠에서 막 깨어 났을 때, 밝은 달이 시냇가에 떠 있을 때는 차 마시기에 좋은 때이다」라고 하였다.〕
주(註)
① 건양(建陽):복건성 서북쪽에 있는 고장 이름. 물이 맑다. 건계(建溪)가 있고 차가 많이 난다. 진나라 때 건양이라고 했다.
② 단산(丹山):산 이름. 호북성 파동현(巴東縣)에 있다. 산간에 붉은 기운이 항상 덮여 있고, 숲과 고개가 붉어서 단산이라고 했다. 산에 붉은 구멍(丹穴)이 있다고 한다.
③ 돈재한람(遯齋閑覽):북송(北宋) 때 범정민(范正敏)이 지은 책이다. 일종의 초록(抄錄)으로서 소계어은총화전집(苕溪漁隱叢話前集) 권46에 수록되어 있다. 또 증수시화총구후집(增修詩話總龜後集) 권30에도 수록되어 있다.
④ 손초(孫樵):당나라 때 산문가. 자는 가지(可之) 또는 은지(隱之). 한유(韓愈)의 문하생으로 관동(關東) 사람. 벼슬은 희종 때 증서사인(中書舍人)을 제수 받음. 저서는 손가지집(孫可之集) 10권이 전한다.
⑤ 다산(茶山):조선 말기 실학자. 성은 정(丁)씨이며 이름은 약용(若鏞)이요, 다산은 그의 호이다. 또 여유당(與猶堂)이라고도 했다.
강진군 도암면 귤동의 다산초당에 가서 유배생활을 했다.
⑥ 걸명소(乞茗疏):다산 선생이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아암혜장(兒菴惠藏)선사께 차를 구걸하는 글이다. 강진에 유배를 가서 지낼 때 혜장선사의 도움으로 고성사(高聲寺)에 옮겨 살면서 차를 늘 얻어 마셨다. 다산 선생은 혜장선사에게 차를 배웠다. 이 글은 을축년 겨울에 고성사 보은산방(寶恩山房)에서 지었다.
해설(解說)
제18송
제1구:복건성에 있는 건양과 호북성에 있는 단산은 옛부터 물이 맑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제2구:이곳에서는 운감차와 월간차가 그 품격이 매우 높아 특별하게 취급되었네.
원문주:북송 때 문장가 범정민이 지은 돈재한람이란 책에 보면 복건성 건안에서 나는 건안차가 천하에서 제일 좋다고 하였다. 또 손초가 만감후라는 차를 보내면서 보낸 글귀에 건양과 단산은 물이 깊고 맑아서 좋은 차가 많이 나오는데 특히 월간차와 운감차는 품격이 매우 높다. 함부로 천하게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다.
다산선생이 혜장 선사께 차를 구걸하고자 보낸 글(걸명소)에 보면「아침에 일어나 기분이 상쾌할 때나, 흰 구름이 맑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때나, 낮잠에서 막 깨어나 정신이 흐릴 때나, 달이 시냇가에 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때는 차 마시기에 매우 좋은 때이다」라고 하였다.
제18송의 전체적인 뜻은 복건성의 건양과 호북성의 단산은 옛부터 물 맑고 좋은 차가 많이 나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운감차와 월간차는 더욱 그 품격이 높다네. 이러한 차는 함부로 사용할 차가 아니고 만감후차처럼 재각에 제사를 지내거나 다산 선생이 말하듯 흰구름이나 밝은 달과 벗하여 마시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18송에서 인용한 문헌은 모두 세 가지인데, 첫째는 범정민이 찬술한 돈재한람이다. 원문에는 여러 가지 문헌을 이용해서 기록해 놓았는데, 그중에서 육우의 다경을 인용한 부분은,「육우다경(陸羽茶經) 통언복건천소등십주소출자(統言福建泉韶等十州所出者) 기미극가이기(其味極佳而己) 금건안위천하제일(今建安爲天下第一)」이라고 했다. 이 중에서 끝부분만을 인용하였다.
둘째는 광군방보(廣群芳譜)에 실려있는 청이록(淸異錄)의 고사인데, 「손초송다초(孫樵送茶焦) 형부서만감후(刑部書晩甘侯) 십오인견시재각(十五人遣侍齋閣) 차도개승뢰이적배수이화(此徒皆乘雷而摘拜水而和) 개건양단산벽수지향(盖建陽丹山碧水之鄕) 월간운감지품(月澗雲龕之品) 신물천용지(愼勿賤用之)」라고 되어 있다.
셋째는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권1에 실려있는 이아암선자걸명소(貽兒菴禪子乞茗疏)의 글귀이다.「여인(旅人) 근작다도(近作茶饕) 겸충약이(兼充藥餌) 서중묘벽전통(書中妙辟全通) 육우지삼편(陸羽之三篇) 병리웅잠수갈(病裡雄蠶遂竭) 노동지칠완(盧同之七椀) 수침정척기불망기모경지언(雖侵精瘠氣不忘綦母㷡之言) 이소옹파반종유이찬황지벽(而消壅破瘢終有李贊皇之癖) 박호(泊乎) 조화시기(朝華始起)부운정정호청천(浮雲皛皛乎晴天) 오수초성(午睡初醒) 명월이이호벽간(明月離離乎碧澗) 세주비설(細珠飛雪) 산등표자순지향(山燈飄紫筍之香) 활화신천(活火新泉) 야석천백토지미(野席薦白免之味) 화자홍옥(花瓷紅玉) 번화수손어로공(繁華雖遜於潞公) 석정청연(石鼎靑煙) 담소서지어한자(澹素庶之於韓子) 해안어안(蟹眼魚眼) 석인지완호도심(昔人之玩好徒深) 용단봉단(龍團鳳團) 내부지진령이경(內府之珍領已罄) 자유채신지질(玆有采薪之疾) 연신걸명지정(聊伸乞茗之情) 절문(竊聞) 고해진양최중단나지시(苦海津梁最重檀那之施) 명산고액잠수초단지괴(名山膏液潛輸艸端之魁) 의념갈희(宜念渴希) 과간파혜(毌慳波惠)」라고 되어 있다. 이중에서 일부분만을 인용하였다.
동 다 송 19 |
第十九頌(原文)
東國所産元相同 色香氣味論一功.
陸安①之味蒙山藥 古人高判兼兩宗.
[東茶記云 或疑東茶之效 不及越産 以余觀之 色香氣味 少無差異. 茶書云 陸安②茶以味勝 蒙山茶以藥勝. 東茶盖兼之矣 若有李贊皇 陸子羽 其人必以余言爲然也]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육안(陸安):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육안차의 육(陸)자가 육지 육(陸)자로 되어 있으나, 명나라 때 허차서(許次紓)의 다소(茶疏)에는 여섯 육(六)자로 되어 있다. 우리 나라의 문헌인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육지 육(陸)자로 되어 있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여섯 육(六)자로 되어 있다. 육안차는 중국의 안휘성 육안군(六安郡) 곽산(藿山)에서 나는 차 이름이다. 여섯 육(六)자로 쓴다.
② 육안다(陸安茶):앞의 경우와 같음.
第十九頌(校訂文)
東國所産元相同 色香氣味論一功.
陸(六)安之味蒙山藥 古人高判兼兩宗.
[東茶記云 或疑東茶之效 不及越産 以余觀之 色香氣味 少無差異. 茶書云 陸(六)安茶以味勝 蒙山茶以藥勝. 東茶盖兼之矣 若有李贊皇 陸子羽 其人必以余言爲然也]
제19송
동국소산원상동 색향기미논일공.
육(육)안지미몽산약 고인고판겸양종.
[동다기운 혹의동다지효 불급월산 이여관지 색향기미 소무차이.다서운 육(육)안다이미승 몽산다이약승. 동다개겸지의 약유이찬황 육자우 기인필이여언위연야]
제19송
우리나라(東國)에서 생산되는 차도 원래 근본은 서로 같아서, 빛깔이나 향이나 맛이나 그 효능은 한 가지일세. 육안차(六安茶)①는 맛이 좋고 몽산차(蒙山茶)②는 약효가 있다는데, 우리나라 차는 그 두 가지를 다 겸했음을 옛 사람이 판단했네.
[동다기(東茶記)③에 이르기를 어떤 이는 우리나라 차의 효능을 의심하여 중국차(中國茶)④만 못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빛깔이나 향내나 맛이 조금도 차이가 없다. 다서(茶書)⑤에 이르기를 육안차는 맛이 좋고 몽산차는 약효가 좋다고 하였는데, 우리나라 차(東茶)는 두 가지를 다 겸비하였다. 만약에 이찬황(李贊皇)⑥이나 육자우(陸子羽)⑦가 있다면 그 사람들은 반드시 내 말이 옳다고 할 것이다]
주(註)
① 육안차(六安茶):안휘성(安徽省) 곽산현(藿山縣)에서 나는 이름난 차이다. 옛날에 곽산이 육안군(六安郡)에 소속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차밭의 주위가 4백여리인데, 선인충(仙人衝), 황계간(黃溪澗), 오매첨(烏梅尖), 불사(佛寺), 몽동만(濛潼灣) 등지에서 나는 차가 최고로 촣다. 차잎의 표면에 하얀 털이 나서 백다(白茶)라고도 하며 잎이 쇠어서 털이 없는 것은 규명차(叫明茶)라고 한다.
② 몽산차(蒙山茶):사천성(四川省)의 명산(名山), 아안(雅安), 노산(蘆山), 천회(天會) 등 4개 현의 경계에 있는 몽산(蒙山)에서 나는 차. 민산(岷山)의 지맥으로 산봉우리가 다섯이 있는데, 가운데 봉우리에서 나는 차가 제일 좋다. 일명 몽정차(蒙頂茶)라고도 한다. 유원장(劉源長)의 다사(茶史)나 허차서의 다소(茶疏)에도 나오는 차 이름이다. 당나라 때에는 이 몽정차를 최고로 삼았다.
③ 동다기(東茶記):다산 정약용 선생의 저서라고 전해졌으나, 전의이(全義李)라는 사람의 저서로서 서문 2절 본문 12장(章)으로 엮어져 있다. 차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제6장 다지효(茶之效) 구절만 인용되었다.
④ 중국차(越産茶):월산차 즉 중국차는 육안차나 몽산차를 가리키는 말로써 월국소산(越國所産)차라는 말인데 월나라는 지금의 절강성 소홍현에 도읍을 둔 12열국 중의 하나였다.
⑤ 다서(茶書):이 다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가리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인용한 문구의 내용이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과 일치하고 있다.
⑥ 이찬황(李贊皇):당나라 무종(武宗) 때 재상을 지냈다. 자는 문요(文鐃), 이름은 덕유(德裕:787~849년), 찬황(贊皇)은 출생지의 지명이자 호이다. 이길보(李吉甫)의 아들로 헌종, 목종, 경종, 문종, 무종을 모시었다. 우승유(牛僧儒)와 격렬하게 당파싸움을 해서 사가(史家)들은 우리당쟁(牛李黨爭)이라고 한다. 선종 때 우당(牛黨)의 모함을 받아 애주(崖州)에서 사약을 받았다. 저서로는 회창일품집(會昌一品集)이 전하며 혜산천(惠山泉)의 물을 길어다 차를 달여 마셨다.
⑦ 육자우(陸子羽):육우(陸羽:727~804년). 중국 다도의 개조로서 다경(茶經)의 저자. 출생지와 부모를 알 수가 없고, 용개사의 지적선사(智積禪師)가 주워다 길렀다. 성은 육씨(陸氏), 이름은 우(羽)자는 홍점(鴻漸)이라고 한다.
해설(解說)
제19송
제1구: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차도 원래 근본은 중국차와 서로 같아서,
제2구:빛깔이나 향내나 맛이나 그 효능은 중국차와 한 가지일세.
제3구:육안차는 맛이 좋고 몽산차는 약효가 있다는데,
제4구:옛 사람이 판결하기를 우리나라 차는 그 두가지를 모두 겸비했다고 하였다.
원문주:전의이(全義李)선생은 동다기(東茶記)를 통해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 차의 효능을 의심하여 중국차만 못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빛깔이나 향내나 맛이 모두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또 다서(茶書)에 이르기를 육안차는 맛이 좋고 몽산차는 약효가 좋다고 하였는데, 우리나라 차는 이 두 가지를 겸비하였다. 만약에 여기에 이찬황이나 육우같은 차의 달인이 있었다면 그들은 반드시 내 말이 옳다고 긍정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제19송의 전체적인 뜻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차는 본래 그 품종이 중국차와 똑 같아서 빛깔이나 맛이나 향내가 같을 뿐만 아니라, 육안차의 맛이나 몽산차의 약효를 다 겸비하였다고 한다. 이는 옛 사람들도 증명한 바이지만 내가 보기에도 다르지 않다. 만약에 이 자리에 이찬황이나 육우같은 차의 달인들이 있다면 나의 말에 모두 긍정할 것이라고 하였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19송에 인용된 문헌은 두 종류인데, 첫째는 전의이(全義李)선생이 저술한 동다기(東茶記)이다. 이 동다기는 지금까지 원문이 밝혀지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 이번에 그 필사본을 발굴해서 전문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이 동다기의 제6장을 인용하였는데, 원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다지효(茶之效) 혹의동다(或疑東茶) 불급월산(不及越産) 이여관지(以余觀之) 색향기미(色香氣味) 소무차이(少無差異) 다서운(茶書云) 육안다이미승(陸安茶以味勝) 몽산다이약용(蒙山茶以藥用) 동다개겸지의(東茶盖兼之矣) 약유이찬황(若有李贊皇) 육자우(陸子羽) 기인측필이여언위연(其人則必以余言爲然)」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둘째는 동다기에서 인용한 문헌인데, 여기에 나오는 다서(茶書)는 어디에서 인용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내용이 허준(許浚)이 저술한 동의보감(東醫寶鑑)의 고다(苦茶)조와 내용이 유사하다.
「몽산다(蒙山茶) 성온(性溫) 치병최호의(治病最好宜) 흥다(興茶)육안차(陸安茶) 동백산차(東白山茶) 신화산차(神華山茶) 용정차(龍井茶) 민랍차(閩臘茶) 촉고차(蜀苦茶) 보경차(寶慶茶) 노산운무차(盧山雲霧茶) 구이미가득명(俱以味佳得名) 일인호식소아불철 (一人好食燒鵝不輟) 의자(醫者) 위기필생내옹후졸(謂其必生內癰後卒) 불병(不病) 방지차인(訪知此人) 매야필철량다일완다(每夜必啜凉茶一椀茶) 차기해독(此其解毒)」이라고 되어 있다.
이 글귀 중에서「몽산차는 성질이 따뜻하여 병을 치료하는데 좋고 육안차는 맛이 매우 좋아서 이름을 얻은 차이다」라고 하는 구절만 뽑아 인용한 것 같다.
동 다 송 20 |
第二十頌(原文)
還童振枯神驗速 八耋顔如夭桃紅.
[李白云 玉泉眞公 年八十①顔色如桃李② 此茗香淸異于他③ 所以能還董振枯而令人長壽也④]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년팔십(年八十):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년팔십으로 되어있으나, 이태백 시권(李太白詩卷)의 원문에는 년팔십여세(年八十餘歲)라고 되어 있다. 초의선사는 인용문을 요약해서 사용했는데 여세(餘歲)라는 구절을 생략하였다.
② 도리(桃李):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도리라고 되어 있으나, 원문에는 도화(桃花)라고 되어 있다. 꽃 화(花)자로 바로 잡는다.
③ 차명향청이우타(此茗香淸異于他): 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같이 되어 있으나, 이태백 시권 원문에는 이차명청향골숙이어타자(而此茗淸香滑熟異於他者)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을 요약해서 사용하였는데 그 뜻을 취하고 글자는 생략하였다.
④ 소이능환동진고이영인장수야(所以能還童振枯而令人長壽也) : 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이태백 시권 원문에는 소이능환동진고부인수야(所以能還童振枯扶人壽也)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도 뜻을 알기 쉽게 인용하였는데 문구를 개작하여 간결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말미의 부인수야를 영인장수야(令人長壽也)로 바꾸었다.
第二十頌(校訂文)
還童振枯神驗速 八耋顔如夭桃紅.
[李白云 玉泉眞公 年八十(餘歲)顔色如桃花 此茗香淸異于他 所以能還童振枯而令人長壽也]
제20송
환동진고신험속 팔질안여요도홍.
[이백운 옥천진공 년팔십(여세)안색여도화 차명향청이우타 소이능환동진고이영인장수야]
제20송
늙은이를 젊게 하고 마르는 것을 막아주는 신이한 효험 빠르기도하여, 팔십 늙은이의 얼굴이 복숭아 꽃처럼 붉어지네.
[이백(李白)①이 말하기를,「옥천사(玉泉寺)②의 진공(眞公)③ 스님이 나이가 팔십여 세인데, 얼굴빛이 복숭아 꽃 같이 붉다. 이곳 차는 맑고 향기롭기가 다른 곳의 차와는 달라서 능히 늙은이를 젊게 하고 마르는 것을 막아주며 사람으로 하여금 장수하게 한다」고 하였다]
주(註)
① 이백(李白):당나라 때 시인,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라고 하며, 두보(杜甫)와 쌍벽을 이루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다. (제2송의 주 참고)
② 옥천사(玉泉寺):호북성 당양현(當陽縣)의 서쪽에 있는 옥천산(玉泉山)에 있는 절이다. (제2송의 주 참고)
③ 진공(眞公):옥천사에 거주한 스님이다. 이 분의 행적은 자세히 알 수가 없고, 평소 차를 좋아하여 옥천사 근처에서 나는 차를 상음(常飮)하였는데, 팔십여 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얼굴 빛이 복숭아 꽃처럼 붉었다고 한다.
해설(解設)
제20송
제1구:차는 신이한 효험이 있어서 늙은이를 젊게 하고 마르는 것 을 막아 준다고 하였는데,
제2구:팔십 늙은이의 얼굴빛이 복숭아 꽃처럼 붉어진다고 하였다.
원문주:이태백이 말하기를, 중국 호북성 당양현에 있는 청계산 옥천사에는 나이가 팔십여 세나 되는 진공이라는 스님이 계시는데, 얼굴빛이 복숭아 꽃같이 붉다고 하였다. 그 까닭은 이 곳 차는 향기롭고 맑아서 다른 곳의 차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능히 늙은이를 젊게 하고 마르는 것을 막아 줄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장수하게 한다고 하였다.
제20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라고 하는 것은 늙는 것을 방지해 주고또 마르는 것도 막아 주며 사람으로 하여금 오래 살도록 하는 신이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 신이한 효과가 팔십 늙은이의 얼굴빛을 복숭아 꽃 같이 붉게 하여 준다고 했다. 차는 노화방지를 위해서 좋은 약이다.
인용문헌(인용문헌)
제20송에 인용된 문헌은, 제2송에 인용된 문헌과 똑같은 것으로 분류보주이태백시권(分類補註李太白詩卷)의 오언고시(五言古詩)중 답족질승중부증옥천산인장다 병서(答族姪僧中孚贈玉泉杣人掌茶 幷序)의 싯구 중에서 서문을 인용한 것이다. 인용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유옥천진공(唯玉泉眞公) 상채이음지(常采而飮之) 년팔십여세(年八十餘歲) 안색여도화(顔色如桃花) 이차명청향골숙이어타자(而此茗淸香滑熟異於他者) 소이능환동진고부인수야(所以能還童振枯扶人壽也)」이 글귀 중에서 크게 필요없는 글자는 삭제하고 뜻이 잘 통하도록 인용문구를 고쳐서 사용했다.
동 다 송 21 |
第二十一訟(原文)
我有乳泉 挹成秀碧百壽湯
何以持歸 木覓山前獻海翁.
[唐蘇廙著 十六湯品 第三曰 百壽湯 人過百息 水逾①十沸 或以話阻 或以事廢② 如③取用之 湯已生④性矣 敢問皤빈⑤蒼顔之大老⑥ 還可執弓抹⑦矢以取中乎 還可雄 ⑧濶步以邁遠乎. 第八曰 秀碧湯 石凝⑨天地秀 氣而賦形者也 琢而⑩爲器 秀猶在焉 其湯不良 未之有也. 近酉堂大爺 南過頭輪 一宿紫芋山房 嘗其泉曰 味勝수酪.]
원문교정
① 수유십불(水逾十沸):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넘을 유(逾)자로 되어 있으나 십육탕품(十六湯品)에는 넘을 유(踰)자로 되어 있다. 뜻이 같은 글자이다.
② 혹이사폐(或以事廢):다예관본에는 고질 폐(癈)자로 되어 있고,석오본에는 폐할 폐(廢)자로 되어 있는데, 원본에는 폐할 폐(廢)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뜻은 서로 통하는 글자이다.
③ 여취용지(如取用之):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같을 여(如)자로 되어 있으나 원본에는 비로소 시(始)자로 되어 있다. 시(始)자로 바로 잡는다.
④ 탕이생성의(湯已生性矣):다예관본에는 날 생(生)자로 되어 있으나 석오본에는 잃을 실(失)자로 되어 있고, 원본에도 잃을 실(失)자로 되어 있다. 실(失)자로 바로 잡는다.
⑤ 파빈(파빈):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빈(빈)자로 되어 있으나 원본에는 구레나룻 빈(빈)자로 되어 있다. 빈(빈)자는 구레나룻 빈(빈)자의 속자이다.
⑥ 노부(老夫):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노부(老夫)로 되어 있으나 원본에는 대노(大老)로 되어 있다. 대노(大老)로 바로 잡는다.
⑦ 부시(扶矢):다예관본에는 도울 부(扶)자로 석오본에도 지울 말(抹)자로 되어 있다. 원본에는 지울 말(抹)자로 되어 있다. 지울 말(抹)자로 바로 잡는다.
⑧ 웅 활보(雄 闊步):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숫컷 웅(雄)자 다음 글자가 누락되어 있다. 원본에는 오를 등(登)자로 되어 있다. 오를 등(登)자를 채워 넣는다. 또 근고할 활(闊)자가 속자(속) 되어 있다. 정자(정)로 바로 잡는다.
⑨ 석응(石凝):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석응 다음에 맺을 결(結)자가 빠져 있다. 원본에는 석응결천지(石凝結天地)라고 되어 있다. 맺을 결(結)자를 채워 넣는다.
⑩ 탁이위기(琢而爲器):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어조사 이(而)자로되어 있고 원본에는 써 이(以)자로 되어 있다. 써 이(以)자로 바로 잡는다.
第二十一송(校訂文)
我有乳泉 挹成秀碧百壽湯
何以持歸 木覓山前獻海翁.
[唐蘇廙著 十六湯品 第三曰 百壽湯 人過百息 水逾①十沸 或以話阻 或以事廢② 始③取用之 湯已失④性矣 敢問皤빈⑤蒼顔之老夫⑥ 還可執弓抹⑦矢以取中乎 還可雄登⑧濶步以邁遠乎. 第八曰 秀碧湯 石凝⑨結天地秀氣而賦形者也 琢而⑩爲器 秀猶在焉 其湯不良 未之有也 近酉堂大爺 南過頭輪 一宿紫芋山房 嘗其泉曰 味勝酥酪.]
제21송
아유유천 읍성수벽백수탕
하이지귀 목멱산전헌해옹.
[당소이저 십육탕품 제삼왈 백수탕 인과백식 수유십불 흑이화조 흑이사폐 시취용지 탕이실성의 감문파빈창안지대노 환가집궁말시이취중호 환가웅등활보이매원호 제팔왈 수벽탕 석응결천지수기이부형자야 탁이위기 수유재언 기탕불량 미지유야 근유당대야 남과두륜 일숙자우산방 상기천왈 미승수락]
제21송
나(草衣)에게는 유천(乳泉)①이 있어서 수벽탕(秀碧湯)②과 백수탕(百壽湯)③을 만드는데, 어떻게 가지고 가서 목멱산(木覓山)④의 해거도인(海居道人)에게 드릴 수 있으랴.
[당나라 소이(蘇廙)⑤가 지은 16탕품(十六湯品)의 제3품 백수탕(百壽湯)⑥에「사람이 백 살을 넘은 것과 같고, 물이 열 번을 끓어 넘은 것과 같은데, 혹은 이야기를 하다가 막히기도 하고, 혹은 일 때문에 내버려 두기도 한다. 이때 비로소 들어서 사용하려면 끓인 물은 이미 본성을 상실하고 만다. 감히 묻노니 머리털이 희고 얼굴이 창백한 나이 많은 늙은이가 젊어져서 활을 잡고 쏘아 과녁을 맞힐 수 있으며, 씩씩하게 높은 데를 올라가거나 기운차게 걸어서 멀리 갈 수 있을 만큼 돌이켜 지겠는가」라고 하였다.
제8품 수벽탕(秀碧湯)에「돌(石)이란 천지의 빼어난 기운이 응결되어 이루어진 것이니, 쪼아서 그릇을 만들면 빼어난 기운(秀氣)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것에 탕을 끓이면 나쁠 수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근래에 유당(酉當)⑦ 노인께서 해남 대흥사(大興寺)⑧에 오셨을 때자우산방(紫芋山房)⑨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그때 샘(유천)물을 마셔보고「수락(酥酪)⑩보다도 맛이 좋다」고 하였다.
주(註)
① 유천(乳泉):우리나라 차의 성지(聖地)인 해남 대흥사 일지암(一枝庵)에 있는 샘물.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인 유당 김노경(金魯敬)이 칭송한 샘이다. 모든 생명을 기르는 젖(乳)과 같이 좋은 샘물을 말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명나라 전예형(田藝衡)이 지은 자천소품(煮泉小品)의 이천(異泉)조에「유천이란 종유석(鐘乳石)의 샘이요, 산골(山骨)의 고수(膏髓)이다. 그 샘물의 빛깔은 희고 무거우며 지극히 달고 향기로워 마치 감로(甘露)와 같다」라고 하였다.
② 수벽탕(秀碧湯):당나라 소이가 지은 탕품 가운데 제8품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돌의 빼어난 기운을 울궈내며 마시는 것이다. 돌탕관에 끓인 탕을 수벽탕이라고 한다.
③ 백수탕(百壽湯):당나라 소이가 지은 탕품 가운데 제3품의 내용인데, 사람이 백 살을 먹으면 노쇠하듯 물도 열번 끓으면 늙어버려 본성을 상실한다. 이미 본성이 허약해진 탕수를 말한다.
④ 목멱산(木覓山):서울 남산을 말하는데 서쪽 봉우리를 목멱산, 동쪽 봉우리를 종남산(終南山) 또는 인경산(引慶山)이라고도 한다.
⑤ 소이(蘇廙):당나라때 사람으로 그의 행적은 알 수가 없다. 도곡(陶穀)의 청이록(淸異錄)에 실려있는 16탕품으로 해서 알려진 사람이다.
⑥ 십육탕품(十六湯品):소이의 저서로서 원명은 탕품(湯品)인데, 16 종류로 나누어서 써놓았기 때문에 16탕품이라고 한다. 이 책의 원본은 전하지 않고 송나라 때 도곡이 지은 청이록 권4 명천부(茗荈部)에 실려 있었다. 저술 연대도 알 수가 없다.
⑦ 유당(酉當):김노경(金魯敬: 1766~1840년)의 호, 자는 가일(可一)이며 이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를 두루 역임하였으며, 청나라에 동지사(冬至使)로 다녀 왔는데, 이때 추사 김정희를 데리고 갔다. 추사의 부친이다. 한 때 완도 고금도(古今島)에서 유배생활을 했는데 4년 만에 풀려 돌아갈 때 일지암에 들려서 하룻밤을 묵어 갔다.
⑧ 대흥사(大興寺):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절, 대한불교 제22교구 본사로서 백제 구이신왕 7년(426년) 정관존자(淨觀尊者)가 창건하였다. 두륜산 안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산 중턱에 일지암이 있다.
⑨ 자우산방(紫芋山房):일지암의 다른 이름으로, 원래는 자우홍련사(紫芋紅蓮社)라고 하였는데, 추사 김정희가 자우산방이라고 줄여서 당호를 써주었다. 초의선사가 이곳에서 동다송과 다신전을 펴냈으며독처지관(獨處止觀) 40여 년을 했다.
⑩ 수락(酥酪):우유로 만든 음료이다. 제호(醍醐)를 만들기 전에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먼저 수(酥)를 만들고 다음에 수를 가지고 낙(酪)을 만들며, 낙을 가지고 제호를 만든다. 제호는 천하 음식 가운데 으뜸이다.
해설(解設)
제21송
제1구:일지암에는 유천이라는 좋은 샘물이 있어서 초의선사가 수벽탕을 끓이기도 하고 백수탕을 끓이기도 하는데,
제2구:이 탕수로 차를 달여 가지고 가서 목멱산(남산) 아래 사는 해거도인에게 드리고 싶으나 길이 멀어 어찌할 수 없구나.
원문주:당나라 때 소이라고 하는 사람이 16탕품을 지었는데, 그 제3품에 보면 백수탕이 나온다. 백수탕은 사람이 백살을 넘은 것과 같고 물이 열번을 끓어 넘쳐서 기운이 허약하게 된 것과 같다. 이렇게 되는 까닭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 지나치거나 일을 하다가 깜빡 잊어 버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탕수는 성품이 허약하고 늙어 버려서 사용할 수가 없게 된다. 이와 같이 늙어버린 물은 마치 머리털이 희고 얼굴이 창백해진 늙은이가 다시 젊어져서 활을 잡아 쏘아서 과녁을 맞힐 수 없듯이 돌이키기 어려우며, 또는 씩씩하게 젊은이처럼 높은 곳을 올라갈 수 없고, 멀리 활보할 수 없는 것처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이같은 것을 백수탕이라고 한다. 사용할 수 있는 탕이 아니다.
또 제8품에 보면 수벽탕이 나오는데, 수벽탕은 천지의 빼어난 기운이 응결되어 있는 좋은 돌로 탕관을 만들어서 그것에 물을 끓이면 돌속에 남아있는 수기(秀氣)가 울궈져 나와 좋은 탕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탕수는 천하의 으뜸이다. 초의선사는 돌 탕관에 유천물을 끓여서 수벽탕을 만들었다.
근래에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 유당 김노경 선생이 완도 고금도에 유배를 갔다가 4년 만에 풀려서 돌아갈 때, 일지암에 들려서 하룻밤을 묵어 갔는데 이때 유천의 물을 마셔보고 수락보다도 좋은 제호와 같다고 하였다. 유천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맑은 물을 쏟아 내고 있다.
제21송의 전체적인 뜻은, 초의선사가 거처하시는 일지암에는 유천이라는 좋은 샘물이 있어서 이것으로 백수탕과 수벽탕을 끓이는데, 백수탕은 너무 많이 끓여서 탕이 늙어 쓸 것이 못되고, 수벽탕은 천지의 기운을 받을 수 있어서 좋은 탕이 된다. 차를 끓이는데 있어서 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물은 차의 몸이 되고 차는 물의 정신이 된다. 그러므로 좋은 물을 잘 끓여서 사용하는 것은 차를 다루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지식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21송에 인용된 문헌은, 당나라 때 소이(蘇廙)가 저술한 16탕품(十六湯品)이다. 이 중에서 제3품과, 제8품만 전문을 인용하였는데 그 내용은 본문과 같기 떄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이 16탕품의 저술 연대는 알 수가 없고 저자의 행적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이 탕품이 송나라 때 도곡이 지은 청이록에 전해져서 세상에 알려진 글이다.
동 다 송 22 |
第二十二頌(原文)
又有九難四香玄妙用.
[茶經云 茶有九難 一曰造 二曰別 三曰器 四曰火 五曰水 六曰炙 七曰末 八曰煮 九曰飮. 陰采①夜焙非造也 嚼味嗅香非別也 羶鼎腥甌非器也 膏薪庖炭非火也 飛湍生潦非水也 外熱②內生非炙也 碧粉飄庄③非末也 操艱攪처④非煮也 夏興冬廢非飮也. 万宝⑤全書 茶有眞香 有蘭香 有淸香 有純香 表裡⑥如一曰純香 不生不熱⑦曰淸香 火候均停曰蘭香 雨前神具曰眞香 此謂四香.]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음채(陰采):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캘 채(采)자로 되어 있으나 다경(茶經: 六之飮)의 원문에는 딸 채(採)자로 되어 있다.
② 외열(外熱):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더울 열(熱)자로 되어 있으나, 다경에는 익을 숙(熟)자로 되어 있다. 숙(熟)자로 바로 잡는다.
③ 표장(飄庄):다예관본에는 표장(飄庄)으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표진(飄塵)으로 되어 있고, 다경에는 표진(縹塵)으로 되어 있다. 옥색빛 가루라는 뜻인 표진(縹塵)이 맞다.
④ 교처(攪 ):다예관본에는 교처로 되어 있으나, 석오본에는 교거(攪遽)로 되어 있고, 다경에도 교거(攪遽)로 되어 있다.
⑤ 만보(万宝):다예관본에는 만보(万宝)로 석오본에는 만보(萬寶)로 되어 있다. 약자로 쓴 것이다. 뜻은 서로 통하는 글자이다.
⑥ 표리(表裡):다예관본에는 표리의 리자가 속자인 리(裡)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이나 만보전서에는 정자인 안 리(裏)자로 되어 있다.
⑦ 불열(不熱):다예관본에 더울 열(熱)자로, 석오본에는 익을 숙(熟)자로 되어 있다. 익을 숙(熟)자가 옳다.
第二十二頌(校訂文)
又有九難四香玄妙用.
[茶經云 茶有九難 一曰造 二曰別 三曰器 四曰火 五曰水 六曰炙 七曰末 八曰煮 九曰飮. 陰採夜焙非造也 嚼味嗅香非別也 羶鼎腥甌非器也 膏薪庖炭非火也 飛湍壅潦非水也 外熟內生非炙也 碧粉縹塵非末也 操艱攪遽非煮也 夏興冬廥廢非飮也. 萬寶全書 茶有眞香 有蘭香 有淸香 有純香 表裏如一曰純香 不生不熟曰淸香 火候均停曰蘭香 雨前神具曰眞香 此謂四香.]
제22송
우유구난사향현묘용.
[다경운 다유구난 일왈조 이왈별 삼왈기 사왈화 오왈수 육왈자 칠왈말 팔왈자 구왈음. 음채야배비조야 작미후향비별야 전정성구비기야 고신포탄비화야 비단옹로비수야 외숙내생비자야 벽분표진비말야 조 간교거비자야 하흥동패비음야. 만보전서 다유진향 유난향 유청향 유 순향 표리여일왈순향 불생불숙왈청향 화후균정왈난향 우전신구왈진 향 차위사향.]
제22송
또 차에는 아홉 가지 어려움(九難)①과 네 가지 향기(四香)②가 있으니 현묘하게 해야한다.
[다경(茶經)에 이르기를, 「차에는 아홉 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첫째는 만들기(造)요, 둘째는 감별(別)이요, 셋째는 그릇(器)이요, 넷째는 불(火)이요, 다섯째는 물(水)이요, 여섯째는 불에 굽는 일(炙)이요, 일곱째는 가루 내는 일(末)이요, 여덟째는 끓이는 일(煮)이요, 아홉째는 마시는 일(飮)이다. 흐린 날에 차를 따거나 밤에 말리는 것은 만들기가 아니요, 씹어서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아서 가려내는 것은 감별이 아니요, 노린내 나는 솥이나 비린내 나는 찻잔은 그릇이 아니요, 진이 나는 나무나 덜 탄 숯은 불이 아니요, 급하게 흐르는 물이나 고인 물은 물이 아니요, 겉만 익고 속이 설익은 것은 굽기가 아니요, 푸른 가루나 옥색 티끌은 가루가 아니요, 서툰 솜씨로 다루거나 휘젓는 것은 끓이는 것이 아니요, 여름에는 마시고 겨울에는 안 마시는 것은 마시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만보전서(萬寶全書)③에 「차에는 진향(眞香), 난향(蘭香), 청향(淸香), 순향(純香)이 있는데, 겉과 속이 같은 것은 순향이요, 설 익지도 너무 익지도 않은 것은 청향이요, 불 기운이 고르고 균일한 것은 난향이요, 비 오기 전 신이함을 갖춘 것을 진향이라고 한다. 이상을 가리켜 사향(四香)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주(註)
① 구난(九難):아흡 가지 어려움(九難)은 차를 다루는 데 있어서 소흘히 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체, 아흡 가지를 말한다. 이 내용은 다경의 6지음(六之飮)에서 끌어 온 것인데, 당나라 때 유행하는 가루차 다루는 법이다.
② 사향(四香):차에는 네 가지 좋은 향이 있는데 진향(眞香), 난향 (蘭香), 청향(淸香), 순향(純香)을 말한다.
③ 만보전서(萬寶全書):백과사전의 일종으로 중국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사문유취(事文類聚)나 백미고사(白眉故事)와 같은 것이다. 지리산 칠불선원(七佛禪院)에 보관하고 있던 만보전서에는 다신전(茶神傳)의 저본이 되었던 채다론(採茶論)이 수록되어 있었다.
해설(解說)
제22송
제1구:차에는 아홉 가지 어려움과 네 가지 향기가 있으니 현묘함 을 다해야 한다고 하였다.
원문주:다경의 6지음(六之飮)에 보면, 차에는 아홉 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는데, 첫째는 차를 만드는 어려움으로, 흐린 날에 차잎을 따거나 밤중에 차를 만드는 것은 잘못된 일이요, 맑은 날 오전에 따서 오후에 만드는 것이다. 둘째는 차를 감별하는 어려움으로, 차를 씹어서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아서 가려내지 말고, 차의 생김새 빛깔 등을 살펴 보아서 좋은 차인지 구별하는 방법이다. 셋째는 그릇을 고르는 어려움인데, 노린내 나는 솥이나 비린내 나는 찻잔은 그릇이 아니다.
냄새나는 그릇이나 토기나 철기는 쓰지 않으며 도자기나 돌솥이 좋다. 넷째는 불을 다루는 어려움을 말하는데, 나무 진이 나오는 땔감이나 연기가 나는 덜탄 숯이나 급하거나 게으른 불은 양호한 불이 아니다. 연기가 나지 않고 체성이 튼튼한 불이어야만 한다. 다섯째는 좋은 물을 고르는 어려움을 말하는데, 급하게 굽이치는 물이나 고여서 상한 물은 쓰지 않는다. 돌 틈에서 솟아 나오는 샘물이 좋다. 물은 8덕(八德)을 겸비해야만 한다. 여섯째는 차를 불에 굽는 일인데, 겉만 익고 속은 익지 않으면 제대로 구었다고 할 수 없다. 떡차를 불에 굽는데 겉과 속이 균일하게 잘 익도록 구어야 하며, 향기와 맛이 상하지 않도록 구어야 한다. 일곱째는 차를 가루로 만드는 일인데, 푸른 가루나 옥색 티끌이 나오도록 하는 가루는 좋은 가루가 아니다. 미세하게 갈아야 하며 푸른색이 나는 것은 덜 익은 색깔이다. 여덟째는 차를 끓이는 일인데, 서툰 솜씨로 휘젓거나 둘러 엎는 것은 끓이는 법도가 아니다.
알맞게 끓여야 하며 모든 것이 정도에 맞아야 한다. 아홉째는 차를 마시는 일인데, 여름에는 마시고 겨울에는 안 마시는 것이나, 어떤 때는 많이 마시고 어떤 때는 적게 마시는 것은 좋은 것이 못 된다. 계절에 상관없이 여일하게 마셔야 한다. 이상이 아홉 가지 어려움이요, 다음은 네 가지 좋은 향내를 말했는데 만보전서 향(香)조에 보면, 차에는 진향, 난향, 청향, 순향이 있다고 하였다. 첫째로 진향이란, 비가 오기 전에 차잎에 갖추어진 싱그럽고 진실한 기운을 살려낸 것이 진향이요, 둘째로 난향이란, 불기운을 고르고 균등하게 하여 난초처럼 잡 것이 섞이지 않은 것을 난향이라고 하고, 셋째로 청향이란, 설 익지도 타지도 않은 알맞게 익은 차에서 나는 맑은 향기를 청향이라 하고, 넷째로 순향이란, 겉과 속이 똑 같이 잘 익은 차에 순수한 향기가 그대로 보존된 것이 순향이다. 이상과 같은 것을 사향(四香)이라고 한다. 이 외의 향은 나쁜 향기이다.
제22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에는 아홉 가지 어려움과 네 가지 좋은향기가 있는데, 차를 다루는 사람은 모두가 이것을 터득해야만 되며, 이 기준은 차를 다루는데 있어서 꼭 알아야 할 기본 지식이다. 그러나, 동다송에서 인용한 구난사향(九難四香)이 당나라 때 떡차를 다루는 어려움과 명나라 때 향기를 나누는 방법에 의해서 설명되어져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 나라에서 많이 마시고 있는 잎차와는 이론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 점은 시대적 차이와 차의 종류에 대한 차이에서 생긴 일이니 감안해서 이해해야만 될 것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22송에 인용된 문헌은 두 종류인데 첫째는 다경(茶經)의 6지음 (六之飮)이고 둘째는 경당증정만보전서(敬堂增訂萬寶全書) 권지14(券之十四)의 채다론(採茶論)이다.
다경의 6지음(六之飮)은 상당히 긴 장문(長文)의 내용인데 이중에서 구난(九難)부분만 발췌 인용하였다. 인용된 부분은 본문의 내용과 똑같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둘째로 경당증정만보전서 권14의 채다론(採茶論) 중에서 향(香)조의 일부 내용만 인용하였는데, 그 내용은 본문과 같고 나머지 취하지 않은 부분은 다음과 같다. 「갱유함향(更有含香) 루부향(漏浮香) 간향(間香) 차개부정지기(此皆不正之氣).」 그리고 이 채다론은 명(明)나라 장원(張源)이 저술(1595年 前後)한 다록(茶綠)을 옮겨 적은 글이다.
동 다 송 23 |
第二十三頌(原文)
何以敎汝 玉浮臺上坐禪衆.
[智異山 花開洞 茶樹羅生 四五十里 東國茶田之廣 料無過此者 洞有玉浮坮① 坮②下有七불③禪院 坐禪者常晩取老葉 晒④乾然柴 煮鼎如烹菜羹 濃濁色亦 味甚苦澁 政所云 天下好茶多爲俗手所壞]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옥부대(玉浮坮):옥부대의 대(坮)자가 다예관본에는 고자(古字)인 대(坮)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대(臺)로 되어 있다. 같은 글자이다.
② 대하(坮下):대하의 대자도 전주(前註)와 같이 쓰여져 있다. 동일한 글자이다. 주①을 참조.
③ 칠불선원(七불禪院):다예관본에는 칠불선원의 불(불)자가 고자(古字)로 되어 있으나 석오본에는 부처 불(佛)자로 되어 있다. 같은 뜻의 글자이다.
④ 쇄건(晒乾):댜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속자(俗字)인 쇄(晒)자로 되어 있으나 원 글자는 햇빛쬘 쇄(曬)자이다.
第二十三頌(校訂文)
何以敎汝 玉浮臺上坐禪衆.
[智異山 花開洞 茶樹羅生 四五十里 東國茶田之廣 料無過此者 洞有玉浮坮 坮下有七불禪院 坐禪者常晩取老葉 曬乾然柴 煮鼎如烹菜羹 濃濁色亦 味甚苦澁 政所云 天下好茶多爲俗手所壞]
제23송
하이교여 옥부대상좌선중.
[지리산 화개동 다수라생 사오십리 동국다전지광 요무과차자 동유옥부대 대하유칠불선원 좌선자상만취노엽 쇄건연시 자정여팽채갱 농탁색역 미심고삽 정소운 천하호다다위속수소괴.]
제23송
너희들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으랴, 옥부대(玉浮坮)① 위에 좌선(坐禪)②하는 무리들아.
[지리산(智異山) 화개동(花開洞)③에는 차나무가 사오십 리에 걸쳐번성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차밭 중에서는 이보다 넓은 곳이 없다. 골짜기에 옥부대가 있고, 대 아래에 칠불선원(七佛禪院)④이 있는데, 좌선하는 스님들이 항상 늦게 늙은 차잎을 따서 땔나무 말리듯 햇볕에 말려서 나물국을 끓이듯 솥에다 달이니, 빛깔은 붉고 탁하며 맛은 심히 쓰고 떫다. 정소(政所)⑤가 말하기를 「천하에 좋은 차를 속된 솜씨로 버려 놓았다」고 하였다.]
주(註)
① 옥부대(玉浮臺):경남 하동군 화개면 칠불암 위에 옥부대가 있다. 그 위에 칠불암의 전신인 운상원(雲上院)이 있는데, 지금은 다시 개축하여 옛 면모를 재현하였다.
② 좌선(坐禪):불교에서 스님들이 진리(道)를 깨닫기 위해서 수행하는 방법으로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하는 수행방법이다.
③ 화개동(花開洞):경남 하동군 화개면 일대를 말하는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신흥사 일대에 이르는 골짜기를 가리킨다.
④ 칠불선원(七佛禪院):화개면 쌍계사(雙磎寺) 위에 있는 선원으로, 칠불암이라고도 한다. 옛날 가락국의 7왕자가 외삼촌인 장유화상(長游和尙)을 따라 들어와 함께 수도하여 모두 성불(成佛)했다고 하는 곳이며 아자(亞字)방 선원으로 이름이 널리 나있다. 동국 제일의 선원이라고 한다.
⑤ 정소(政所):정소가 사람의 이름인지 아니면 사무를 보는 곳을 말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이곳이 칠불암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해설(解說)
제23송
제1구:옥부대 위에 운상원(雲上院)에서 좌선하는 무리들에게 어떻게 차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으랴.
원문주:지리산 화개동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차밭이 있는데, 이 야생차 밭은 무려 사오십리에 걸쳐 번성하고 있다. 이 골짜기에는 옥부대라는 명승지가 있는데 그 대 아래에 칠불선원이 있고, 이 아자방(亞字房) 선원에서 참선하는 스님들은 차 만드는 법을 몰라, 항상 늦게 차잎을 따서 햇빛에 땔나무 말리듯 말려서 나물국 끓이듯 솥에다넣고 달여서 마시고 그 빛깔은 붉고 탁하며 맛은 매우 쓰고 떫다. 정소(政所)가 말하기를 천하에 이름난 좋은 차를 속된 솜씨로 버려 놓았다고 하였다.
제23송의 전체적인 뜻은 지리산 칠불선원에서 수도하는 스님들은 차 만드는 법이나 끓여 마시는 법을 몰라서, 늙은 차잎을 늦게 따서 볶지 않고 햇볕에 땔나무 말리듯 건조시켜서, 나물국 끓이듯 푹푹 달여서 마시니, 그 빛깔은 붉고 탁하며 맛은 매우 쓰고 떫다. 이 같은 스님들에게 어떻게 차 만드는 법과 끓여 마시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하고 한탄하는 것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23송은 남의 문헌을 인용하지 않고 초의선사께서 보고 들은 바를 그대로 기록하신 것이다. 원문이나 주석문 모두 칠불선원에 가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으로, 이 글귀는 은사스님을 따라서 무자년(1828) 여름에 칠불선원에 가서 만보전서(萬寶全書)를 보고 그 중에 채다론(採茶論)을 베껴와서 다신전(茶神傳)을 펴냈는데, 이때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동 다 송 24 |
第二十四頌(原文)
九難不犯四香全 至味可獻①九重供 翠濤綠香纔入朝.
[入朝于心君 茶序曰② 甌泛翠濤 碾飛綠屑. 又云③ 茶以靑翠爲勝 濤以藍白爲佳 黃黑紅昏 俱不入品 雲濤④爲上 翠濤爲中 黃濤爲下. 陣糜公詩 綺陰攢盖⑤ 靈艸試旂⑥ 竹爐幽討 松火怒飛⑦ 水交以淡 茗戰以肥⑧ 綠香滿路 永日忘귀.⑨]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가헌(可헌):다예관본에는 속자인 헌(헌)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정자인 헌(獻)자로 되어 있다. 정자로 바로 잡는다.
② 다서왈(茶序曰):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입조우심군(入朝于心君) 다서왈(茶序曰)로 되어 있으나, 이 구절의 인용문은 군방보(群芳譜)에 실려 있는 글로서 다보소서(茶譜小序)라고 되어 있다.
③ 우운(又云):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우운(又云)이라고 되어 있으나 이 글귀는 다신전의 채다론에서 끌어온 것으로 다신전운(茶神傳云)으로 바로 잡는다.
④ 운도(雲濤):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구름 운(雲)자인 운도로 되어있으나 만보전서의 원본에는 눈 설(雪)자인 설도(雪濤)로 되어 있다.
⑤ 찬개(攢盖):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속자인 찬개(攢盖)로 되어있으나, 군방보의 원문에는 정자인 찬개(攢蓋)로 되어 있다.
⑥ 영초시기(靈艸試旂):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원본에는 풀 초(艸)자가 정자인 초(草)자로 기(旂)자가 기(奇)자로 되어 있다.
⑦ 송화서비(松火恕飛):다예관본에는 어질 서(恕)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성낼 노(怒)자로 되어 있다. 원본에는 성낼 노(怒)자로 되어 있기에 바로 잡는다.
⑧ 명전이비(茗戰以肥):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이 자가 써 이(以)자로 되어 있으나 원본에는 어조사 이(而)자로 되어 있기에 바로 잡는다.
⑨ 영일망귀(永日忘귀):다예관본에는 돌아갈 귀(귀)자가 속자로 되어 있으나 석오본과 원본에는 정자인 귀(歸)자로 되어 있다.
第二十四頌(校訂文)
九難不犯四香全 至味可獻九重供 翠濤綠香纔入朝.
[茶譜小序曰 甌泛翠濤 碾飛綠屑. 萬寶全書云 茶以靑翠爲勝 濤以藍白爲佳 黃黑紅昏 俱不入品 雪濤爲上 翠濤爲中 黃濤爲下. 陣麋公詩 綺陰攢盖 靈草試奇 竹爐幽討 松火怒飛 水交以淡 茗戰而肥 綠香滿路 永日忘歸.]
제24송
구난불범사향전 지미가헌구중공 취도녹향재입조.
[다보소서왈 구범취도 년비녹설. 만보전서운 다이청취위승 도이남백위가 황흑홍혼 구불입품 설도위상 취도위중 황도위하. 진미공시 기음찬개 영초시기 죽로유토 송화노비 수교이담 명전이비 녹향만로 영일망귀.]
제24송
구난(九難)을 어기지 않고 사향(四香)을 온전하게 하면, 지극한 맛은 궁궐에 진상할 만한데, 취도(翠濤)와 녹향(綠香)만이 겨우 진상하게 되었네.
[다보(茶譜)① 소서(小序)에 이르기를「찻잔에는 푸른 거품(翠濤)이 뜨고 맷돌에는 푸른 가루가 날린다」고 하였다. 또 다신전에서는「차는 청취(靑翠)색을 좋다고 하고 찻물은 남백(藍白)색을 좋다고 한다. 차는 노랗고(黃), 검고(黑), 붉고(紅), 어두운 색(昏)은 모두 품격에 넣을 수가 없고, 찻물은 눈빛(雪濤)을 상품으로, 푸른빛(翠濤)을 중품으로, 누런빛(黃濤)을 하품으로 한다」고 하였다.
진미공(陣麋公)②의 시(試茶詩)에「아름다운 그늘에 옹기종기 덮였는데, 신령스런 풀(차)의 기이함을 시험하네, 죽로(竹爐)에 그윽히 끓여 보니, 소나무 불은 사정없이 나르고, 물은 끓어서 맑아지네. 차 끓이기 싸움(茗戰)③을 즐겁게 하니, 푸른 향기(綠香)만 길에 가득하여, 하루 종일 돌아갈 것을 잊었네」라고 하였다.
주(註)
① 다보(茶譜):다보는 촉(蜀)나라 때 모문석(毛文錫)이 찬(935년경) 한 것이 있는데, 원본은 없어지고 송나라 때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 실려 있는 것이 있으며, 또 명(明)나라 때 주권(朱權)이 찬(1440년경)한 다보가 있는데, 이는 원본이 전해지고 있으며, 또 명(明)나라 때 전춘년(錢椿年)이 편찬(1539년)한 다보가 있다.
② 진미공(陣麋公):진계유(陳繼儒:1558~1639년)는 지금의 상해시(上海市) 송강(松江) 사람인데, 미공(麋公, 眉公)은 호이다. 명나라때 문학가요, 서화가로서 자는 중순(仲醇)이다. 자칭 은사(隱士)라고 하며 소곤산(小昆山)에 살았다. 저서로는 진미공전집(陳眉公全集)이 있고 국조명공시선(國朝名公詩選)을 편집하기도 했다.
③ 명전(茗戰):차를 잘 끓이기 싸움이다. 일종의 풍류놀이로서 차를 맛있게 끓이기인데, 같은 차와 물을 가지고 끓여서 맛을 겨룬다. 일명 투다(鬪茶)라고도 하는데, 우리 나라는 고려 때부터 명전놀이가 있었다. 영남의 사원에 놀러 갔던 이연종(李衍宗)이 스님들과 명전(茗戰) 놀이를 많이 했다고 한다.
해설(解說)
제24송
제1구:아홉 가지 어려움을 어기지 않고 잘 지키며 네 가지 향기를 온전하게 해야만 한다.
제2구:지극한 맛이 나야만 구중궁궐의 임금님께 진상할 만한데,
제3구:푸른 거품이 나는 차와 푸른 향기가 나는 차만이 겨우 궁중에 진상할 수 있었다.
원문주:다보에 이르기를「찻잔에는 푸른 거품이 뜨고 맷돌에는 푸른 가루가 날린다」고 하였는데 이는 말차를 말한 것이다. 또 만보전서에는 차는 푸른 취색이 좋은 것이고, 찻잔에 따라 놓은 차 빛은 남백색이 좋다고 한다. 차로서는 노랗거나 검거나 붉거나 어두운 색은 좋지 못하며, 찻물은 하얀 눈과 같은 거품을 상품으로 치고 푸른빛을 중간으로 치며 노란빛을 하품으로 친다고 하였다.
진미공의 시다시에 보면, 그늘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신령스런 차잎을 따다가 만들어 기이함을 시험해 보고저 죽로에 물을 끓이니, 솔불이 사정없이 날고 물은 끓어서 맑아지고 차 잘 끓이기 경쟁은 집에 돌아가는 일조차 잊게 하는데, 길에는 차 달이는 연기만 자욱하다.
제24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에는 아홉 가지 어려움과 네 가지 향기가 있는데, 온갖 정성을 다 들여 이를 어기지 않고 잘 만들어야만 구중궁궐의 임금님께 진상할 만한 좋은 차가 된다. 이러한 차는 겨우 한두 가지 뿐인데, 그 중에는 푸른 거품이 나는 것과 푸른 향기가 나는 것들 뿐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24송의 인용문헌은 모두 3종류이다. 첫째는 명나라 때 왕상진(王象晉)이 찬(1621년)한 군방보(群芳譜)에 실려 있는 글귀를 인용한 것인데,「다보소서(茶譜小序) 다희목야(茶喜木也)……기천지간우물(豈天地間尤物) 생고불수수연사(生固不數數然邪) 구범취도(甌泛翠濤) 년비녹설(碾飛綠屑) 불적운유(不籍雲腴) 숙구수마(孰驅睡魔) 작다보(作茶譜)」라고 되어 있다. 이중에서 두 구절만 뽑아서 쓴 것이다. 그러나 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에 있는「입조우심군(入朝于心君) 다서왈(茶序曰)」의 구절은 나와 있지 않다. 이 구절은 어느 곳에서 인용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음 둘째는 만보전서에 있는 채다론(採茶論) 중에서 색(色)조를 인용한 것인데, 이 구절도 전문을 다 인용하지 않고 부분만 인용하였다. 이 구절은 명나라 때 장원(張源)의 다록(茶錄)을 만보전서에 수록한 것으로 그 원문에 보면「신천활화(新泉活火) 자명현공(煮茗玄工) 옥명빙도(玉茗冰濤) 당배절기(當杯絶技)」라는 구절이 생략되어 있다.
셋째는 광군방보(廣群芳譜)에 실려 있는 권19의 사언고시(四言古詩)중에서 명나라의 진계유(陣繼儒)의 시다(試茶) 시구를 인용한 것이다.
동 다 송 25 |
第二十五頌(原文)
聰明四達無滯壅 矧爾靈根托神山
[智異山世稱方丈]
제25송
총명사달무체옹 신이영근탁신산
[지이산 세칭방장]
제25송
총명함은 사방으로 통달하여 체하거나 막히는 것이 없으니, 너의 신령스런 뿌리를 신성한 산에 의탁하였구나.
[지리산을 세상에서는 방장산(方丈山)①이라고도 한다.]
주(註)
① 방장산(方丈山):지리산을 일명 방장산이라고도 하는데, 지리산은 경상남도와 전라북도, 전라남도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 제일 웅장한 산이다. 주위에는 옛부터 사찰이 많이 있고 불교와 인연이 깊은 까닭으로 지리(智異)나 방장(方丈)이 모두 불교에서 유래 되었다.
해설(解說)
제25송
제1구:차나무의 성품이 총명하여 사방으로 통달하여 체하거나 막히는 것이 없으니 좋아할 만하고,
제2구:하물며 신령스런 뿌리를 신성한 산에 의탁하였으니 기이함이 뛰어나구나.
원문주: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리산을 방장산이라고도 한다.
제25송의 전체적인 뜻은 총명한 차나무는 스스로 알아서 신령스런산에 그 뿌리를 의탁해서 그 정기를 받고 있으니 좋지 않을 수 있으랴, 이러한 차의 기운은 막히거나 체하지 않고 두루 통하게 마련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25송은 남의 문헌을 인용하지 않고 초의선사께서 알고 있는 사항을 그대로 인용하여 기록한 것이다. 지리산에서 자라는 차나무를 보고 그 성품이 자못 총명함에 찬탄을 한 대목이다. 이 구절은 제23송과 연계성이 있는 구절이다.
동 다 송 26 |
第二十六頌(原文)
仙風玉骨自另種 綠芽紫筍穿雲根 胡靴犎臆皺水紋.
[茶經云 生爛石中者爲上 礫①壤者次之. 又曰② 谷中者爲上. 花開洞茶田 皆谷中兼爛石矣. 茶書又言③ 茶紫者爲上④ 皺者次之⑤ 綠者次之⑥ 如筍者爲上⑦ 似芽者次之⑧ 其狀如胡人靴者⑨ 蹙縮然 如犎牛臆者 廉沾⑩然 如輕표拂衣⑪者 涵澹然 此皆茶之精腴也.]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역양(礫壤):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조약돌 력(礫)자로 되어 있으나, 다경(百川學海本)에는 가죽나무 력(櫟)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약돌 력(礫)자가 옳다. 후에 나온 다경에는 조약돌 력(礫)자로 되어 있다.
② 우왈(又曰):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우왈로 되어 있으나, 이 글귀는 다경에 실려 있는 글이 아니라 다신전(茶神傳) 채다(採茶)조에 실려 있는 글귀이니, 다신전왈(茶神傳曰) 또는 만보전서왈(萬寶全書曰)로 고쳐야 된다.
③ 다서우언(茶書又言):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다서우언」이라고 되어 있으나, 이 구절은 다신전의 채다(採茶)조에서 인용한 글귀이다.
④ 다자자위상(茶紫者爲上):다예관본에는 「다자자위상」으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엽자자위상(葉紫者爲上)」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다신전에는「다비자자위상(茶非紫者爲上)」으로 되어 있고, 장원의 다록(茶錄)에는「다아자자위상(茶芽紫者爲上)」으로 되어 있다. 원문의 내용과 같이 고친다.
⑤ 추자차지(皺者次之):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있으나, 다신전에는「이추자차지(而皺者次之)」라고 되어 있고, 다록에는「면추자차지(面皺者次之)」라고 되어 있다. 글의 내용으로 보아 다록의 내용으로 바로 잡는다.
⑥ 녹자차지(綠者次之):이 글귀는 다경에서 인용한 구절이기에 앞의 구절과 구별하기 위해서 인용 문헌인 다경운(茶經云)이라는 문구를 채워 넣는다. 그리고 원문에는「녹자차(綠者次)」라고 되어 있어 갈 지(之)자가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글의 내용으로 보아 갈지(之)자가 들어가는 것이 좋다.
⑦ 여순자위상(如筍者爲上):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경의 원문에 보면「순자상(笋者上)」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뜻이 같고 글자도 같은 글자이다. 순(筍)자나 순(笋)자는 동일한 뜻의 글자이다.
⑧ 사아자차지(似芽者次之):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경의 원문에는「아자차(牙者次)」라고 되어 있다. 다예관본에는 싹 아(芽)자로, 다경에는 어금니 아(牙)자로 되어 있는데, 싹 아(芽)자가 옳다.
⑨ 기상여호인화자(其狀如胡人靴者):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경에는「여호인화자(如胡人鞾者)」라고 되어 있다. 신 화(靴)자나 수여자 화(鞾)자나 똑 같은 글자이다. 서로 뜻이 통하므로 어느 자나 써도 좋다.
⑩ 렴첨연(廉沾然):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경의 원문에는「렴첨연(廉襜然)」이라고 되어 있다. 다예관본에는 젖을 첨(沾)자로 다경에는 옷가지런할 첨(襜)자로 되어 있다.
⑪ 여경표불의자(如輕표拂衣者):다예관본에는 위와 같이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여경표불수자(如輕표拂水者)」로 되어 있다. 다경의 원문에는「경표불수자(輕飇拂水者)」로 나와 있는데 다예관본에는 미친바라 표(飇)자로 다경에는 회오리바람 표(飇)자로 되어 있다. 정자는 표(飆)자이다. 그리고 다예관본에는 옷 의(衣)자로 되어 있으나 원본에는 물 수(水)자로 되어 있다.
第二十六頌(校訂文)
仙風玉骨自另種 綠芽紫筍穿雲根 胡靴犎臆皺水紋.
[茶經云 生爛石中者爲上 礫壤者次之. 茶神傳曰 谷中者爲上. 花開洞茶田 皆谷中兼爛石矣. 茶神傳曰 茶芽紫者爲上 面皺者次之. (茶經云) 綠者次之 如筍者爲上 似芽者次之 基狀如胡人靴者 蹙縮然 如犎牛臆者 廉襜然 如輕飆拂水者 涵澹然 此皆茶之精腴也.]
제26송
선풍옥골자령종 녹아자순천운근 호화봉억추수문.
[다경운 생난석중자위상 역양자차지. 다신전왈 곡중자위상. 화개동다전 개곡중겸난석의. 다신전왈 다아자자위상 면추자차지 (다경운) 녹자차지 여순자위상 사아자차지 기상여호인화자 축축연 여봉우억자 렴첨연 여경표불수자 함담연 차개다지정유야.]
제26송
신선같은 풍모와 옥같은 기골은 스스로 종자(根本)부터 다르고, 녹아(綠芽)①와 자순(紫筍)②은 바위(雲根)③를 뚫고 자라서, 오랑캐의 신발, 들소의 가슴팍, 주름진 물결과 같네.
[다경(茶經)에 이르기를,「난석(爛石)에서 자란 것이 상품이요, 역양토(礫壤土)에서 자란 것이 다음이다」라고 하였고, 또 다신전에는 「골짜기(谷中)에서 난 것이 상품이다」라고 하였다.
화개동(花開洞)④의 차밭은 모두가 골짜기와 난석지대에 있다. 다신전에 또 말하기를「차싹은 자주빛 나는 것이 상품이요 피부가 주름진 것이 다음이다」라고 했다. 또 다경에서는「자주빛이 상품이고 푸른 것이 다음이다. 죽순 같은 것이 상품이고, 움싹같은 것이 다음이다. 그 차의 생김새가 오랑캐의 신발같이 쭈그러졌거나 들소의 가슴팍같이 가지런히 늘어졌거나, 가벼운 바람이 수면을 쓸어 맑은 물결과 같은 것은, 모두 차의 정유(精유)이다.」]
주(註)
① 녹아(綠芽):차잎의 푸른 색깔, 푸른 빛의 어린 차잎을 가리키는말이다.
② 자순(紫筍):자순은 차잎의 빛깔이 자주색으로 나는 어린 차잎을 말한다. 여기에서 유래되어 자순차라는 차 이름도 생겨 났다.
③ 운근(雲根):돌의 다른 이름, 구름은 산의 암석 사이에서 나온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구름이 일어나는 근원.
④ 화개동(花開洞):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일대로 화개 장터에서 쌍계사 절로 들어가는 골짜기를 일컫는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많은 야생차가 생산된다.
해설(解說)
제26송
제1구:차나무는 신선 같은 풍모와 옥 같은 기골을 지녔는데 다른것과는 근본 종자부터가 다르다.
제2구:푸른 싹과 자색빛 순은 바위를 뚫고 뿌리를 뻗어 자라났는데,
제3구:오랑캐의 신발 같기도 하고 또는 들소의 가슴처럼 주름진 물결같이 생겼구나.
원문주:다경에 보면, 작은 자갈밭에서 자란 차나무 잎이 상품이요, 역질양토에서 자란 것이 다음이고, 또 자주빛 나는 것이 상품이고, 푸른빛 나는 것이 다음이라고 했으며, 또 죽순 같은 것이 상품이고, 움싹같은 것이 다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차잎의 생김새가 오랑캐의 신발같이 쭈그러졌거나 들소의 가슴팍같이 가지런하게 늘어졌거나, 가벼운 바람이 물결을 일으켜 맑게 파도치듯 한 것은 모두가 차의 정품이다.
그리고 다신전에 보면 골짜기에서 나는 것이 상품이다라고 하였고, 또 차잎은 자주빛 나는 것이 상품이요, 피부가 주름진 것이 다음이다 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화개동 일대의 차밭은 모두 골짜기와 자갈밭에 있어서 매우 좋다. 품질이 뛰어난 차가 생산된다.
제26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나무는 신선같은 풍모와 옥 같은 기골을 가졌는데, 그 뿌리를 깊은 골짜기 바위 그늘에 묻고 그 바위의 수기를 흡수하여 신령스런 기운을 간직하였는데 그 차잎의 모양을 보면 오랑캐의 신발같이 쭈그러졌거나 들소의 가슴팍같이 가지런히 늘어졌거나, 가벼운 바람이 수면 위를 스쳐서 맑은 물결이 일어난 듯 한 것이 좋은 차이다. 이와 같은 것들은 골짜기나 자갈밭에서 나는 것들이다. 자주빛이 나고 피부가 쭈글쭈글한 것이 상품이다. 또는 둘둘 말리거나 연한 녹색이나 푸른 색이 나는 것이 좋다. 이처럼 좋은 차잎은 맛 좋고 향기롭고 빛깔 좋은 차를 만들 수가 있다. 차가 나는 지역 환경과 차잎의 생김새와 빛깔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한 구절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26송의 인용 문헌은 육우의 다경과 다신전과 만보전서를 활용하였는데, 다경의 일지원(一之源)에서 차의 산지와 여건에 대해서, 그리고, 차잎의 생김새와 빛깔에 대해서는 삼지조(三之造)에서 인용하였다. 그러나 원문 그대로를 인용하지 않고 동다송의 글에 맞게 글을 다시 재구성하여 인용하였다. 이같은 사례는 다신전이나 만보전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인용문구가 생략되거나 수정 보완된 곳이한두 군데가 아니고, 내용에 있어서도 뜻을 취하고 글의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서 함축성있게 문구를 만들었다. 이와 같이 인용의 단계를넘어 창작의 단계에까지 오른 문헌의 인용 구절이 되었다.
동 다 송 27 |
第二十七頌(原文)
吸盡瀼瀼淸夜露 三昧手中上奇芬.
[茶書云① 採茶之侯 貴及時② 太早則茶不全③ 遲則神散 以穀雨前五日爲上 후④五日次之 후⑤五日又次之. 然驗之東茶 穀雨前후⑥太早 當以立夏후⑦爲及時也. 其⑧徹夜無雲 浥露採者爲上 日中采⑨者次之 陰雨下不宜采⑩. 老坡送謙師詩曰⑪ 道人曉出南屛山 來試黙⑫茶三昧手.]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다서운(茶書云):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다서운으로 되어 있으나, 인용한 문헌이 다신전에서 초출해 낸 글귀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출전을 밝히면 다신전의 채다론이다.
② 귀급시(貴及時):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신전 원문에는「귀급기시(貴及其時)」로 되어 있다. 그 기(其)자가빠져 있다.
③ 태조즉다부전(太早則茶不全):다예관본에는「다부전(茶不全)」이라고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향부전(香不全)」이라고 되어 있으나,원본에는「미부전(味不全)」이라고 되어 있다. 원본에 맞추어 미부전으로 바로 잡는다.
④ 후오일차지(후五日次之):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뒤 후(後)자를 삼수변(氵)에 썼다. 정자는 두인변(彳)이다.
⑤ 후오일우차지(후五日又次之):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후오일(후五日)로 되어 있으나 만보전서나 다록에는 다시 재(再)자로 되어 있다. 재오일(再五日)로 바로 잡는다.
⑥ 곡우전후태조(穀雨前후太早):뒤 후자가 주 ④와 같이 삼수 변(氵 )으로 되어 있다. 두인 변(彳)으로 바로 잡는다.
⑦ 당이입하후위급시야(當以立夏후爲及時也):다예관본에는 입하후(立夏후)라고 되어 있으나, 석오본에는 입하전후(立夏前후)라고 되어 있다. 입하전후로 바로 잡는다.
⑧ 기철야무운(其徹夜無雲):다예관본에는 기철야무운으로 되어 있으나, 석오본에는 기채법철야무운(其採法徹夜無雲)으로 되어 있다. 채법(採法)이란 문구가 누락되어 있다.
⑨ 일중채자차지(日中采者次之):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캘 채(采)자로 되어 있고, 원본에는 딸 채(採)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뜻은 서로통하는 글자이다. 하지만 차는 캐는 것이 아니라 따는 것이므로 딸 채(採)자로 사용한다.
⑩ 음우하불의채(陰雨下不宜采):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앞의 경우와 같이 캘 채(采)자로 되어 있으나, 원본에는 딸 채(採)자로 되어 있다.
⑪ 노파송겸사시왈(老坡送謙師詩曰):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노파(老坡)라고 했는데, 노파는 소동파(蘇東坡)를 가리킨다. 늙은 동파라는 뜻에서 노파라고 했다.
⑫ 래시묵다삼매수(來試黙茶三昧手):다예관본에는 침묵할 묵(黙)자로 석오본에는 점 점(點)자로 되어 있다. 원본에는 점 점(點)자로 되어 있다. 점(點)자로 바로 잡는다.
第二十七頌(校訂文)
吸盡瀼瀼淸夜露 三昧手中上기芬.
[萬寶全書云 採茶之侯 貴及其時 太早則味不全 遲則神散 以穀雨前五日爲上 後五日次之 再五日又次之. 然驗之東茶 穀雨前後太早 當以立夏前後爲及時也. 其採法 徹夜無雲 浥露採者爲上 日中採者次之 陰雨下不宜採. 老坡送謙師詩曰 道人曉出南屛山 來試點茶三昧手.]
제27송
흡진양양청야로 삼매수중상기분.
[만보전서운 채다지후 귀급기시 태조측미부전 지측신산 이곡우전오일위상 후오일차지 재오일우차지. 연험지동다 곡우전후태조 당이입하전후위급시야. 기채법 철야무운 읍로채자위상 일중채자차지 음우하불의채. 노파송겸사시왈 도인효출남병산 내시점다삼매수.]
제27송
맑고 깨끗한 밤이슬을 흠뻑 다 마셨는지, 삼매경(三昧境)에 든 손 끝에 기이한 향기 어리네.
[만보전서에 이르기를,「차를 따는 것은 그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너무 이르면 맛이 온전하지 못하고, 늦으면 신이(神異)함이 흩어진다. 곡우(穀雨)① 전 5일이 으뜸이요, 곡우 뒤 5일이 다음이며, 그 5일 뒤가 그 다음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草衣) 경험해보니, 우리 나라 차(東茶)는 곡우 전․후면 너무 이르고 입하(立夏)② 전․후가 적기이다. 차를 따는 법은, 밤새도록 구름이 없고 맑은 이슬을 받은 것을 딴 것이 상품이요, 한낮에 딴 것이 다음이요,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는 날은 따기에 적당치 않다. 소동파(老坡)가 겸선사(謙禪師)를 보내는 시구에 이르기를,「도인이 새벽에 남병산(南屛山)③을 나서서, 내게 와서 삼매경에 든 솜씨로 차를 달이네」라고 하였다.
주(註)
① 곡우(穀雨):24절기의 하나로 여섯 번째 절후, 청명(淸明)과 입하(立夏)사이에 드는데, 양력으로 4월 20일이나 21일이 된다.
② 입하(立夏):24절기의 하나로 일곱 번째 절기, 곡우와 소만(小滿) 사이에 들며, 양력으로 5월 5일이나 6일이 된다.
③ 남병산(南屛山):절강성 항주시(抗州市) 서호(西湖)의 남쪽에 있는 산으로 산봉우리가 서로 연이어서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록에는 용정(龍井)과 정자사(淨慈寺)가 있고, 이 산줄기가 뻗어서 서호에 닿아 소제(蘇堤)로 연결되어 있다. 겸선사는 이 절에 계신 스님인데 동파와 친숙하게 지내어 서로 시를 화답하곤 하였다.
해설(解說)
제27송
제1구:차나무가 봄날의 맑고 깨끗한 밤이슬을 흠뻑 마셨는지,
제2구:삼매경에 든 손 끝에 기이한 향기가 어리는구나.
원문주:만보전서 채다론에 보면, 차를 따는 일은 그 시기가 매우 중요한데, 너무 이르면 맛이 온전하지 못하고 늦으면 싱그러움이 흩어진다고 하였다. 곡우 5일 전이 최상품이요, 곡우 뒤 5일이 다음이며 그 5일 뒤가 그 다음이다 라고 하였는데, 초의선사께서 경험해보니 중국은 곡우 전후가 적기라고 하나, 우리나라 차는 곡우 전후는 너무 이르고 입하 전후가 적기이다 라고 하였다. 요즘 기후를 보면 곡우 전에 딴 우전차가 있는데 이는 너무 일러서 맛과 향기가 온전하지 못하고, 곡우 뒤 5일 차도 좀 이른 감이 있으며, 곡우 뒤 10일에 딴 차가 상품이며 (4월 25일에서 30일까지 사이) 입하 전 5일(5월 1일에서 5월 5일 사이)이 다음이며, 그 다음은 입하 뒤 5일(5월 6일부터 5월 10일까지)이다. 지역에 따라 며칠씩 늦어지는 경우가 있어도 5월 15일을 넘으면 차는 싱그러움이 흩어진다.
차를 딸 때는 밤새도록 구름이 없고 맑은 이슬을 흠뻑 마신 차잎이 제일 좋고, 이슬이 걷힌 한낮에 딴 것이 다음이고,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이 끼었을 때는 차 따기에 적당치 않다.
소동파 선생이 남병산에 사는 겸선사와 친숙했는데, 겸선사를 보내는 시구에 이르기를,「도인이 새벽에 남병산을 떠나와서 나를 찾아와 삼매경에 든 솜씨로 차를 달이네」라고 하였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27송은 두 가지 문헌을 인용하였는데, 첫째는 만보전서(萬寶全書)의 채다론(採茶論)이고, 둘째는 소동파(蘇東坡)의 시(詩)이다. 첫째 만보전서의 채다론은 장원(張源)의 다록(茶錄)을 옮겨 적은 것으로 채다(埰茶)항 중에서 일부만을 발췌해서 인용한 것이고, 둘째로 소동파의 시구는 동파전집(東坡全集)에서 인용된 것이다.
동 다 송 28 |
第二十八頌(原文)
中有玄微妙難顯 眞精莫敎體神分.
[造茶篇云① 新採㨂去老葉 熱鍋焙之② 候鍋極熱 始下茶急妙③ 火不可緩 待熟方退④ 徹入簁中⑤ 輕團枷數遍⑥ 復下鍋中 漸漸減火 焙乾爲度 中有玄微 難以言顯. 泉品云⑦ 茶者水之神 水者茶之体⑧ 非眞水莫顯其神 非眞茶莫窺其體.⑨]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조다편운(造茶篇云):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조다편운으로 되어 있으나, 조다편은 다록(茶錄)이나, 만보전서(萬寶全書)나, 다신전(茶神傳)에 들어있는 대목 중에서 일부분만을 인용한 것으로 실제로 사용한 인용문헌은 다신전이다.
② 열과배지(熱鍋焙之):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열과배지라고 되어 있으나, 원문에는 이런 구절이 없다. 이 구절은 초의선사가 글귀를 맞춰서 만들어 넣은 것이다. 생략된 부분에 맞게 앞뒤의 문맥이 통하도록 했다.
③ 시하다급묘(始下茶急妙):다예관본에는 묘(妙)자로 석오본에는초(炒)자로 되어 있다 다록이나 만보전서나 다신전에 모두 초(炒)자로 되어 있다 초(炒)자로 바로 잡는다.
④ 대숙방퇴(待熟方退):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대숙방퇴로 되어 있으나, 만보전서에는 숙(熟)자가 열(熱)자로 되어 있으며 끝에 불 화(火)자가 들어 있다. 또 다록에는 대숙방퇴화(待熟方退火)로 되어 있어서 내용으로 볼때 불 화(火)자를 첨가하고 열(熱)자는 숙(熟)자로하는 것이 옳다. 대숙방퇴화(待熟方退火)로 바로 잡는다.
⑤ 철입사중(徹入簁中):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체 사(簁)자로 되어 있으나, 다록이나 만보전서에는 체 사(篩)로 되어 있다. 두 글자의 뜻이 서로 같으나 원문에 의해서 바로 잡는다.
⑥ 경단가수편(輕團枷數遍):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만보전서에는 칼 가(枷)자가 잡아휠 나(挪)자로 되어 있고, 다록에는 가(枷)자가 빠지고 경단수편(輕團數遍)이라고만 되어 있다.
⑦ 천품운(泉品云):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천품운으로 되어 있으나, 다록이나 만보전서에는 품천(品泉)으로 되어 있다. 원문에 준해서 품천편운(品泉篇云)으로 바로 잡는다.
⑧ 수자다지체(水者茶之体):다예관본에는 체(体)자로, 석오본에는 체(體)자로 되어 있다. 만보전서에는 체(体)자로, 다록에는 체(體)자로, 다신전에는 체(體)자로 되어 있다. 체(体)자는 체(體)자의 속자(俗字)이다.
⑨ 비진다막규기체(非眞茶莫窺其體):다예관본에는 진다(眞茶)로 석오본에는 정다(精茶)로 되어 있다. 다록이나 만보전서나 다신전에 모두 정다(精茶)로 되어 있다. 그러나 앞의 글귀와 대를 이루려면 진다(眞茶)라고 하는 것이 좋다. 또 정다(精茶)나 진다(眞茶)는 글자는 틀리지만 의미는 같은 것이다. 정다(精茶)라야만 진다(眞茶)라고 할수 있다. 또 다예관본이나 석오본에 막규(莫窺)라고 되어 있으나 다록이나 만보전서에는 갈규(曷窺)로 되어 있다.
第二十八頌(校訂文)
中有玄微妙難顯 眞精莫敎體神分.
[(茶神傳)造茶篇云 新採㨂去老葉 熟鍋焙之 候鍋極熱 始下茶急炒 火不可緩 待熟方退火 徹入篩中 輕團挪數遍 復下鍋中 漸漸減火 焙乾爲度 中有玄微 難以言顯. 品泉篇云 茶者水之神 水者茶之體 非眞水莫顯其神 非眞茶曷窺其體.]
제28송
중유현미묘난현 진정막교체신분.
[(다신전)조다편운 신채진거노엽 숙과배지 후과극열 시하다급초 화불가완 대숙방퇴화 철입사중 경단가수편 복하과중 점점감화 배건위도 중유현미 난이언현. 품천편운 다자수지신 수자다지체 비진수막현기신 비진다갈규기체.]
제28송
차에는 중정(中正)①의 현묘함이 있는데 그 묘함을 나타내기는 어려운 것, 참다운 정기는 체(體)②와 신(神)③을 분리시키지 않는데 있네.
[(다신전)의 조다(造茶)편에「새로 딴 차는 쇤잎은 가려내고, 솥을 뜨겁게 해서 덖는데, 솥이 매우 뜨거워졌을 때, 차잎을 넣고 급히 덖는다. 불기운이 약해져서는 안 되며, 차가 덖어지는 것을 기다려 불에서 꺼내, 체에 담아 가볍게 굴려 체질하고, 비벼서 다시 솥에 넣고 점점 불기운을 줄이면서 알맞게 말려 낸다. 이 가운데 현미함이 있으니 말로는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품천(品泉)편에 「차는 물의 신(神:마음, 정신)이요, 물은 차의 체(體 : 몸)이니, 진수(眞水)④가 아니면 그 신(神)이 나타나지 않고, 진다(眞茶 : 精茶)⑤가 아니면 그 체(體)를 규명할 수가 없다」고 했다.]
주(註)
① 중정(中正):중정이란 중(中)과 정(正)이 합쳐진 말로써, 중이란 알맞다, 적당하다는 뜻이니, 합쳐서 중정이라고 하면 바르고 알맞은 것을 말한다.
② 체(體):여기에서 말하는 체란 몸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것의 형상을 이루는 형체를 말한다. 유가철학의 체용(體用)과는 다른 것으로 몸과 마음을 구분할 때 몸에 해당된다.
③ 신(神):신이란 마음, 정신, 즉 뜻을 의미하며 여기에서는 차 속에 들어있는 차의 정신을 말하는 것으로 차의 기운이다. 물 속에 녹아들어 있는 차의 성분을 말한다.
④ 진수(眞水):참된 물, 오염되지 않은 물, 알맞게 잘 끓인 물을 말한다. 차의 성분이 오염되거나 변질되지 않고 잘 합쳐질 수 있는 물을 가리킨다.
⑤ 진다(眞茶):참된 차, 알맞게 정성을 다해서 만든 차, 오염되지 않은 차, 변질되지 않은 차, 법도에 맞도록 잘 만든 차를 말한다. 이 차를 정다(精茶)라고도 한다.
해설(解說)
제28송
제1구:차에는 현묘함이 있는데 이 현묘함을 나타내게 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니,
제2구:이 참다운 정기(현묘함)는 체(몸)와 신(정신)을 분리시키지 않고 중화를 이루도록 하는데 있다.
원문주:다신전의 조다편에 보면 새로 따온 차잎은 늙고 병든 차잎을 가려서 버리고, 솥을 뜨겁게 달궈서 솥이 매우 뜨거워졌을 때 차잎을 넣고 급히 덖어 내는데 불 기운이 약해져서는 안된다. 차가 익으면 솥에서 꺼내 체에 담아 가볍게 체질하고 비벼서 냉각시킨다. 다시 솥에 넣어 불기운을 점점 줄이면서 알맞게 말려 낸다. 이 가운데 현묘함이 있으니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또 품천편에 보면, 차는 물의 마음이요, 물은 차의 몸이니, 진수가아니면 마음이 나타나지 않고, 진다가 아니면 그 몸을 규명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
제28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에 들어 있는 현묘함은 체와 신을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로 만드는데 있다. 몸과 마음은 하나일 때 완전한 것이지, 몸 따로 마음 따로 있는 것은 바르지 못하다. 몸만 있는 것을 송장이라 하고 마음만 있는 것을 귀신이라고 하듯이, 차도 몸만 있으면 물이요 마음만 있으면 차일 뿐이다. 차와 물이 합쳐져서 맛있는 한 잔의 차가 되어야만 완전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완전한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온갖 정성과 현묘함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28송의 인용문헌은 두 가지인데, 모두 다신전(茶神傳)에서 인용한 것이다.
첫번째는 조다(造茶)편을 인용하였는데 전문을 다 인용하지 않고부분만을 발췌해서 인용하였다.
둘째는 품천(品泉)편을 인용하였는데 이것도 전체를 다 인용하지 않고 부분만 발췌해서 인용하였다. 이 인용문들은 다 옮겨 적을 수가 없기에 생략하기로 하겠다. 다만 이 다신전(茶神傳)은 만보전서(萬寶全書)에서 초출해 내었고, 만보전서는 장원의 다록(茶錄)을 옮겨 적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인용문의 원전은 장원의 다록인 것이다.
동 다 송 29 |
第二十九頌(原文)
體神雖全猶恐過中正 中正不過健靈倂.
[泡法云① 探湯純熟 便取起 先注壼中小許② 盪祛冷氣③ 傾出 然后投茶④ 葉多寡宜的⑤ 不可過中失正 茶重則味苦香沈 水勝則味寡色淸⑥ 兩壼후⑦ 又冷水蕩滌⑧ 使壼凉潔 否則減茶香⑨ 盖罐熱則⑩ 茶神不健 壼淸則水性當靈⑪ 稍候茶水沖和 然后⑫ 令布釃飮⑬ 釃不宜早 早則茶神不發⑭陰不宜遲⑮ 遲則妙馥先消. 評曰 采盡其妙 造盡其精 水得其眞 泡得其中 体与神相和 健与灵相倂 至此而茶道盡矣.]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포법운(泡法云):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포법운으로 되어 있으나, 이 구절은 다신전의 포법을 인용한 것이다. 그래서 다신전의 포법편운(泡法篇云)으로 고친다.
② 선주호중소허(先注壼中小許):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위와같이 되어 있으나 만보전서나 다록에는 선주소허호중(先注壼少許壼中)이라고 되어 있다. 다신전에도 선주소허호중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소(小)자도 작을 소(小)자가 아니고 적을 소(少)자로 되어 있다.
③ 탕거냉기(盪祛冷氣):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씻을 탕(盪)자와 물리칠 거(祛)자로 되어 있다. 그리고 만보전서에는 물리칠 거(祛)자와 넓고클 탕(蕩)자로 되어 있고 다신전에는 물리칠 거(祛)자와 끓일 탕(湯)자로 되어 있다. 이 글귀의 내용으로 보아 물리칠 거(祛)자와 씻을 탕(盪)자가 옳다. 거탕냉기(祛盪冷氣)로 바로 잡는다.
④ 연후투다(然后投茶):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후(后)자로 되어 있으나 다록이나 만보전서나 다신전에는 뒤 후(後)자로 되어 있다. 황후 후(后)자는 뒤 후(後)자와 뜻이 서로 통한다.
⑤ 엽다과의적(葉多寡宜的):다예관본에는 이파리 엽(葉)자와 밝을 적(的)자로 석오본에는 엽(葉)자와 잔질할 작(酌)자로, 다록과 만보전서에는 차 다(茶)자와 작(酌)자로 되어 있고, 다신전에는 엽(葉)자와 작(酌)자로 되어 있다. 다록에 있는 차 다(茶)자와 작(酌)자를 원본으로 바로 잡는다.
⑥ 수승측미과색청(水勝則味寡色淸):다예관본, 석오본에는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신전에는 색청미과(色淸味寡)로 되어 있다. 또 다록에는 포청기과(包淸氣寡)로 되어 있고 만보전서에는 색청미과(色淸味寡)로 되어 있다. 만보전서나 다신전을 따라서 색청미과(色淸味寡)로 바로 잡는다.
⑦ 양호후(兩壼후):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후(후)자로 되어 있으나 다신전이나 다록이나 만보전서에는 뒤 후(後)자로 되어 있다.
⑧ 우냉수탕척(又冷水蕩滌):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신전이나 다록이나, 만보전서에는 또 우(又)자 다음에 쓸 용(用)자가 들어 있다. 우용냉수탕척(又用冷水蕩滌)이라고 바로 잡는다.
⑨ 부측감다향(否則減茶香):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신전이나 다록이나 만보전서에는 불측감다향의(否則減茶香矣)라고 되어 있다. 원문에 맞춰서 바로 잡는다.
⑩ 개관열측(盖罐熱則):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신전과 다록에는 관숙측(礶熟則)이라고 되어 있고, 만보전서에는 관열측(礶熱則)이라고 되어 있다. 원문에 준해서 관열측(礶熱則)이라고 바로 잡는다.
⑪ 수성당령(水性當靈):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록과 만보전서에는 수성상령(水性常靈)이라고 되어 있다. 원본을 따라 상령(常靈)이라 바로 잡는다.
⑫ 연후(然后):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신전이나 다록이나 만보전서에는 뒤 후(後)자로 되어 있다. 뜻은 통하지만 정자는 뒤 후(後)자이다.
⑬ 영포시음(令布釃飮):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신전이나 만보전서에는 영시포음(令釃布飮)으로 되어 있고, 다록에는 분시포음(分釃布飮)으로 되었다. 다록의 내용대로 분시포음(分釃布飮)으로 고친다.
⑭ 조측다신불발(早則茶神不發):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록이나 만보전서나 다신전에는 불발(不發)이 아니라미발(未發)로 되어 있다. 미발(未發)로 고친다.
⑮ 음불의지(飮不宜遲):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이 구절이 지금과 같은 순서로 되어 있으나, 다록이나 만보전서나 다신전에는 음불의지(飮不宜遲)가 조측다신미발의 구절앞에 나와 있다. 이 구절의 순서를 원문대로 바꾼다.
평왈(評曰):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평왈로 되어 있다. 이 구절은 초의 선사의 평론이므로 초의선사(草衣禪師) 평왈(評曰)로 표기해 둔다.
채진기묘(采盡其妙):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이 구절의 캘 채(采)자를 딸 채(採)자로 바로 잡는다.
체여신상화(体与神相和) : 다예관본에는 몸 체(體)자와 더불 여(與)자가 속자로 되어 있다. 이것을 정자로 바로 잡는다.
건여영상병(健与灵相倂) : 다예관본에는 더불 여(與)자와 신령령(靈)자가 속자로 되어 있다. 이것을 정자로 바로 잡는다.
第二十九頌(校訂文)
體神雖全猶恐過中正 中正不過健靈倂.
[(茶神傳) 泡法篇云 探湯純熟 便取起 先注少許壼中 祛盪冷氣 傾出 然後投茶 茶多寡宜酌 不可過中失正 茶重則味苦香沈 水勝則色淸味寡 兩壼後 又用冷水蕩滌 使壼凉潔 不則減茶香矣 礶熱則 茶神不健 壼淸則水性常靈 稍俟茶水沖和 然後 分釃布飮 釃不宜早 飮不宜遲 早則茶神未發 遲則妙馥先消. (草衣禪師)評曰 採盡其妙 造盡其精 水得其眞 泡得其中 體與神相和 健與靈相倂 至此而茶道盡矣.]
제29송
체신수전유공과중정 중정불과건영병.
[(다신전) 포법편운 탐탕순숙 편취기 선주소허호중 거탕냉기 경출 연후투다 다다과의작 불가과중실정 다중측미고향침 수승측색청미과 양호후 우용냉수탕척 사호양결 불측감다향의 관열측 다신불건 호청측 수성상영 초사다수충화 연후 분시포음 시불의조 음불의지 조측다신미발 지측묘복선소. (초의선사)평왈 채진기묘 조진기정 수득기진 포득기중 체여신상화 건여영상병 지차이다도진의.]
제29송
체(體)와 신(神)이 비록 온전하더라도 오히려 중정(中正)을 잃을까두렵구나.
중정을 잃지 않으면 건(健)①과 영(靈)②을 함께 얻는다.
[(다신전) 포법편(泡法篇)에 이르기를, 탕(湯)이 순숙(純熟)③한 것을 살펴 곧 끌어내려, 먼저 다관 속에 조금 부어서 냉기를 가셔 낸 다음 쏟아 내버리고 차를 넣는데, 차의 많고 적음을 알맞게 가늠하여 중정을 잃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차가 많으면 맛이 쓰고 향기가 적으며, 물이 많으면 빛깔이 맑고 맛이 적다. 두 개의 다관을 두고 쓸 때마다 냉수로 깨끗하게 씻어서 다관을 청결하게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의 향기가 감소된다. 탕관이 뜨거우면 (탕이 너무 뜨겁다) 다신(茶神)이 건실(健)하지를 못하고, 다관이 깨끗하면 수성(水性)이 항상 신령(靈)스럽다. 차와 물이 잘 충화(沖和)되기를 기다렸다가 술 거르듯 베에 걸러서 마시는데, 빨리 걸러도 안되고 늦게 걸러 마셔도 안 된다. 빠르면 다신(茶神)이 피어나지 않고, 늦으면 묘한 향기가 먼저 사라진다.
초의선사가 평해서 말하기를,「차를 따는 것은 그 현묘(玄妙)함을다해야 하고, 만들 때는 그 정성을 다해야 하며, 물은 그 참된 것(眞水)을 얻어야 하고, 차를 끓이는 데는 그 중정(中正)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체(體)와 신(神)이 서로 중화하고, 건(健)과 영(靈)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 이 지경에 이르러야만 다도(茶道)라고 할 수있다」고 하였다.
주(註)
① 건(健):차에서 말하는 건이란 건전(健全) 건실(健實)한 것을 말한다. 차의 신(神)과 체(體)가 건전해야만 한다.
② 영(靈):영이란 신령(神靈)스러운 것을 말한다. 차의 신과 체가 신령스러워야만 한다.
③ 순숙(純熟):차를 끓일 탕수(湯水)가 알맞게 끓여진 것을 말한다. 무성(無聲)인 상태에까지 이르러 잘 익은 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해설(解說)
제29송
제1구:차의 체와 신이 비록 온전하게 잘 되었다 하더라도 오히려중정을 잃게 되면 안 된다.
제2구:중정을 잃지 않으면 건과 영을 함께 얻게 되는데 이는 신과체를 얻어야만 가능하다. 신과 체를 얻어도 중정을 잃으면 건과 영을얻지 못 한다.
원문주:다신전의 포법편에 이르기를 차를 울굴 탕이 순숙한 것을살펴서 탕관을 들어 내어 먼저 다관에 조금만 부어서 냉기를 가셔 낸 다음 다관을 기울여 쏟아 내 버리고 차를 넣게 되는데, 차의 양을 많게 해도 안 되고 적게 해도 안 된다. 꼭 알맞게 해서 중정을 잃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차가 많고 물이 적으면 맛이 쓰고 떫으며 향기가 온전하지 못 하며, 차가 적고 물이 많으면 빛깔이 맑고 맛이 싱겁다. 항상 두개의 다관을 준비해 두고 쓸 때마다 냉수로 깨끗하게 씻어서 다관을 청결하게 해서 보관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의 향기가 감소되고 맛을 상하게 된다. 탕관이 너무 뜨겁게 되면 탕수가 늙어 버려 다신이 건전하지를 못 하고, 다관이 깨끗하지 못 하면 수성이 항상 신령스럽지 못 하다. 차와 물이 잘 충화가 되어 신과 체가 어우러져야 하며 잘 중화된 차를 마포에 걸러서 마시게 되는데 너무 빨리 걸러도 안 되고 늦게 걸러도 안 된다. 빠르면 다신이 피어나지 않고 너무 늦으면 묘한 향기가 사라진다.
초의선사가 평해서 말하기를, 차잎을 딸 때는 현묘함을 다 해야만 하고, 차를 만들 때는 그 정성을 다 해야 하며, 차 끓일 물은 그 진수를 얻어야 하고, 차를 끓일 때는 그 증정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체와 신이 서로 중화하고 건과 영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가 되며 이 지경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다도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 수가 있다.
제29송의 전체적인 뜻은 체와 신을 얻어서 증정을 잘 지킬 것 같으면 건과 영을 얻게 되는데, 신과 체와 건과 영을 함께 얻는 것을 다도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초의선사는 동다송의 중심 사상을 이 29송에서 설파하였다. 초의선사의 다도관은 신체건영을 규명하여 현묘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동다송의 핵심 사상이다. 이 구절이 없다면 동다송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초의선사는 차의 정신과 최후에 도달해야 할 경지를 밝히고 있다. 그 골자는 26자로 표현되었는데, 채다는 그 현묘함을 다 해야 하고, 만드는 것은 그 정성을 다 해야 하고, 물은 그 진수를 얻어야 하고, 포법은 그 중정을 얻어야 하며 체와 신이 서로 중화하여 건과 영을 함께 얻는 것이 다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기 쉽게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도 해
採 造 水 火 四門
妙 精 根 中 四行
眞 茶 眞 水
泡法
中正
四得
(理)健 靈(妙)
4문(四門)의 채(採)란 채다(採茶)를 말하며, 조(造)란 조다(造茶)를 말하며, 수(水)란 수품(水品)을 말하며, 화(火)란 화후(火候)를 말한다. 그리고 4행의 묘(妙)는 채다의 현묘(玄妙)함을 말하며, 정(精)은 조다의 정성(精誠)스러움을 말햐며, 근(根)은 수품의 근본(根本)을 말하며, 중(中)은 화후의 중화(中和)를 말한다.
4득은 진다(眞茶)와 진수(眞水)를 얻어야만이 얻을 수 있는데, 차는 물(水)의 신(神)이요, 물은 차(茶)의 체(體)이니, 진수(眞水)가 아니면 그 神이 나타나지 않으며, 眞茶가 아니면 그 체(體)를 엿볼 수가 없다. 체와 신이 비록 온전하다 하더라도 오히려 中正을 잃으면 안 된다. 중정을 잃지 않으면 健과 靈을 함께 얻는다. 그러므로 神이 健하면 기(機)가 리(理)하고, 神이 靈하면 機가 妙하고 體가 健하면 用이 理하고 體가 靈하면 用이 妙하다. 신과 체는 機와 用과 같아서 不二해야만 건과 영을 얻는다. 건과 영이 不二하면 妙理하고, 妙理하면 妙境하고 妙境하면 妙覺한다. 妙覺한다는 말은 玄妙한 境地를 깨닫는다는 말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29송의 인용문헌은 한 가지로 다신전의 포법(泡法)을 전문 인용하였다. 그리고 말미에 평설을 붙여 놓았다. 먼저 다신전의 포법은 만조전서나 다록에 있는 문헌과 약간의 글자가 다른 곳이 있지만 대체로 거의 동일하고 오자나 순서가 바뀐 정도이다. 포법은 전체를 그대로 인용구로 활용했으며 빼거나 보태지 않았다.
다음의 평설은 초의선사가 차의 요점을 정리하여 만든 문구로서 대단히 중요한 구절이다. 다신전의 여러 대목에서 인용, 요약한 것으로 그 뜻과 정신을 명쾌하게 정리 하였다.
먼저 채진기묘(採盡其妙)는 채다론(採茶論)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고, 조진기정(造盡其精)은 다위(茶衛)의 조시정(造時精)에서 요약한 것이고, 수득기진(水得其眞)은 품천(品泉)의 비진수막현기신(非眞水莫顯其神)에서 요약한 것이고, 포득기중(泡得其中)은 포법(泡法)의 불가과중실정(不可過中失正)에서 요약한 것이고, 체여신상화(體與神相和)는 품천(品泉)의 다자수지신(茶者水之神) 수자다지체(水者茶之體)에서 요약한 것이고 건여영상병(健與靈相倂)은 포법(泡法)의 다신불건(茶神不健) 수성상령(水性常靈)에서 요약한 것이고, 지차이다도진의(至此而茶道盡矣)는 다위(茶衛)의 다도진의(茶道盡矣)에서 인용요약한 것이다. 이처럼 다신전의 각항에서 인용, 요약하여 그 정신과 뜻을 간결하고 심오하게 발전시켰다.
동 다 송 30 |
第三十頌(原文)
一傾玉花風生腋 身輕已涉上淸境.
[陳簡齋 茶詩① 嘗此玉花匂.② 盧玉川 茶歌③ 唯覺兩腋習習生淸風.④]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다시(茶詩):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전례로 보아 운(云)자를 붙인다.
② 옥화내(玉花匂):다예관본에는 향내 내(匂)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가지런할 윤(勻)자로 되어 있다. 다예관본을 따른다.
③ 다가(茶歌):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전례로 보아 운(云)자를 붙인다.
④ 습습생청풍(習習生淸風):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노동(盧同)의 다가에는 습습청풍생(習習淸風生)으로 되어 있다.
第三十頌(校訂文)
一傾玉花風生腋 身輕已涉上淸境.
[陳簡齋 茶詩云 嘗此玉花匂. 盧玉川 茶歌云 唯覺兩腋習習淸風生.]
제30송
일경옥화풍생액 신경이섭상청경.
[진간재 다시운 상차옥화내 노옥천 다가운 유각양액습습청풍생.]
제30송
옥화(玉花)차를 한 잔 기울이니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일고,
몸 가벼워 이미 맑은 곳[淸境]에 올랐네.
[진간재(陳簡齋)①의 다시(茶詩)에 이르기를,「이 옥화차의 향내를 맛 보네」라고 하였고, 노옥천(盧玉川)②의 다가(茶歌)에 이르기를,「오직 두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솔솔 이는 것을 깨닫겠네」라고 하였다.]
주(註)
① 진간재(陳簡齋):남송 때 시인으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 洛陽) 사람. 이름은 여의(與義) : 1090~1138), 자는 거비(去非), 호는 간재이다. 벼슬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으며, 시풍은 두보(杜甫)를 받들었다. 소동파와 황정견과 진사도 등과 함께 강서시파(江西詩派)에 속한다. 저서로는 간재집(簡齋集), 무주사(無住詞)가 있다.
② 노옥천(盧玉川):당나라 때 시인으로 지금의 하북 탁현(𣵠縣) 사람이다. 이름은 동(仝 : 약 795~835)이고 옥천(玉川)은 그의 호이다.옥천은 하남의 소실산(少室山)에 은거하여 살았는데 빈곤하여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책은 쌓여만 갔고 훗날, 낙양의 허물어져가는 헌 집을 구해서 이사하였다. 이러한 청절이 조정에 알려져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부름을 받았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당시의 세도가인 왕애(王涯)와 친하게 지내어 그의 서당에 출입하게 되었는데, 왕애는 차의 세법을 개정하여 백성의 원한을 사 훗날 감로의 변 때 맞아 죽고, 노동도 왕애의 집에 있다가 함께 참변을 당했다. 저서로는 옥천자시집(玉川子詩集)이 있다.
해설(解說)
제30송
제1구:옥화차 한 잔을 마시니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일어나는듯 하여,
제2구:가벼워진 몸으로 하늘 나라에 노니는 듯 상쾌하구나.
원문주:진간재의 싯구에 보니 옥화차의 향내를 맛본다고 하였고, 또 옥천자의 다가에는 일곱 잔 차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두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솔솔 일어나 하늘 나라에 오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제30송의 전체적인 뜻은 향기로운 차는 한 잔만 마시어도 양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일어나 하늘 나라에 오르는 듯 상쾌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맑고 향기로운 차는 골수를 신선으로 바꿔 하늘 나라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30송의 인용문헌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진간재의 다시이고, 하나는 노동의 다가이다.
첫째 진간재의 다시는 오언고시(五言古詩)인데 그 전문은 전하지 않고 일부분만 전해지고 있다.
둘째 노동(盧同)의 다가(茶歌)인데, 이 글의 원제목은「주필사맹간의기신다(走筆謝孟諫議寄新茶)」이다. 이 시는 유명한 다시로서 우리 나라 사람들의 다시에도 많이 인용되었다.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日高丈五睡正濃 軍將打門驚周公
口云諫議送書信 白絹斜封三道印
開緘宛見諫議面 手閱月團三百片
聞道新年入山裹 蟄蟲驚動春風起
天子未嘗陽羨茶 百草不敢先開花
仁風暗結珠琲瓃 先春抽出黃金芽
摘鮮焙芳旋封裹 至精至好且不奢
至尊之餘合王公 何事便到山人家
柴門反關無俗客 紗帽籠頭自煎喫
碧雲引風吹不斷 白花浮光凝碗面
一碗喉吻潤 兩碗破孤悶
三碗搜枯腸 惟有文字五千卷
四碗發輕汗 平生不平事 盡向毛孔散
五碗肌骨淸 六碗通仙靈
七碗喫不得 唯覺兩腋習習淸風生
蓬萊山在何處 玉仙子乘此淸風欲歸去
山下群仙司下土 地位淸高隔風雨
安得知百萬億蒼生命 墮在巓崖受辛若
便爲諫議問 蒼生到頭還得蘇息否.」
주필(走筆)로 맹간의가 보내준 햇차에 사례하다.
「해는 높아 한 길 반인데 졸음은 정녕 깊어져,
군대의 장군은 문을 두드려 주공(周公)을 놀라게 하네.
간의(諫議)가 서신을 보낸다고 입으로 전해 왔는데,
흰 비단은 비스듬히 삼도(三道)의 도장으로 봉해졌네.
봉함을 여니 완연하게 보이는 간의의 글발,
손으로 끄르니 월단(月團 : 차) 3백편(片)이네.
듣자하니 새해에 산 속으로 들어가니,
겨울잠 자던 벌레들 놀라 움직이고 봄바람 일어나,
천자(天子)도 아직 양선차(陽羨茶)를 맛보지 못했고,
백초(百草)도 감히 앞질러 꽃피지 못하네.
어진 바람은 남 몰래 구슬꾸러미 같은 봉우리를 맺어 놓고,
이른 봄에 황금같은 싹을 피어나게 하네.
신선하게 딴 싹을 불에 말려서 둥글게 봉하였는데.
지극히 정갈하고 지극히 좋고 또한 사치스럽지 않아.
지극히 존귀함은 왕공(王公)에게나 맞을진데,
어찌하여 문득 산 사람의 집에 이르렀는가.
사리문은 닫혀서 속된 나그네도 없으니
사모(紗帽)를 둘러쓰고 손수 달여 마시네.
푸른 구름은 바람을 이끌어 끊임없이 불고,
흰 꽃의 광채는 잔의 탕면에 엉겨서 떠있네.
첫째 잔은 목구멍과 입술을 윤기나게 하고,
둘째 잔은 외로운 번민을 씻어 주고,
셋째 잔은 메마른 창자를 찾나니 생각나는 문자가 5천 권이나 되네.
넷째 잔은 가벼운 땀이 나와 평생의 불평이 모두 털구멍으로 흩어지네.
다섯째 잔은 기골(肌骨)이 맑아지고,
여섯째 잔은 선령(仙靈)과 통하였네.
일곱째 잔은 마시지도 않았는데 양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솔솔 나는 것을 깨닫겠네.
봉래산이 어느 곳에 있느냐
옥선자는 이 맑은 바람을 타고 돌아가려 하네.
산 아래 군선(群仙)은 아래 땅을 맡고,
지위는 맑고 높아 비바람을 막네.
백만 억 창생의 목숨이 편안한지,
낭떠러지에 떨어져 신고(辛苦)를 겪는지 알겠는가.
오로지 간의에게 묻노니,
창생이 끝내 숨돌릴 수 있는 지 없는 지를.」
이 싯구 중에서 7잔째의 원문 한 구절만을 인용하였다.
동 다 송 31 |
第三十一頌(原文)
明月爲燭兼爲友 白雲鋪席因作屛
竹籟松濤俱蕭凉 淸寒瑩骨心肝惺
惟許白雲明月爲二客 道人座上此爲勝.
[飮茶之法① 客衆則喧 喧則雅趣索然② 패 ③ 啜曰神 二客曰勝 三四曰趣 五六曰泛 七八曰施也.④]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음다지법(飮茶之法):다예관본이나 석오본 모두 음다지법으로 되어 있으나 다신전 원문에는 음다(飮茶)라고만 되어 있다. 이 구절은초의선사가 만든 문구이다. 그리고 이 구절 뒤에 나오는 한 구절(以客少爲貴)이 생략되어 있다. 이는 초의선사가 번거로움 때문에 생략 시킨 것 같다. 그러나 내용을 알기쉽게 하기 위해서 채워 넣는다.
② 훤측아취색연(喧則雅趣索然):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위와 같이 되어 있으나 다신전에는 색연(索然)이 아니라 핍의(乏矣)라고 되어 있다. 다록이나 만보전서에도 핍의라고 되어 있다.
③ 패啜曰神(패啜曰神):다예관본에는 개성낼 패(패)자로 되어 있고 석오본에는 홀로 독(獨)자로 되어 있다. 다신전에도 독(獨)자로 되어 있다. 독(獨)자로 바로 잡는다.
④ 칠팔왈시야(七八曰施也):다예관본, 석오본 모두 이끼 야(也)자가 말미에 붙어 있으나 다신전이나 다록에는 야(也)자가 없다. 그러나 이 글자는 초의 선사가 붙인 글자로서 어조사 정도로 쓰인다. 그대로 붙여 두어도 무방하다. 동다송의 대단원이 마치는 글이라서 붙인 것같다.
第三十一頌(校訂文)
明月爲燭兼爲友 白雲鋪席因作屛
竹籟松濤俱蕭凉 淸寒瑩骨心肝惺
惟許白雲明月爲二客 道人座上此爲勝.
[飮茶之法 (以客少爲貴) 客衆則喧 喧則雅趣乏矣 獨啜曰神 二客曰勝 三四曰趣 五六曰泛 七八曰施也.]
제31송
명월위촉겸위우 백운포석인작병
죽뢰송도구숙량 청한형골심간성
유허백운명월위이객 도인좌상차위승.
[음다지법 (이객소위귀) 객중측훤 훤측아취핍의 독철왈신 이객왈승 삼사왈취 오육왈범 칠팔왈시야.]
제31송
밝은 달은 촛불이며 벗이 되었고,
흰 구름은 방석이며 병풍이 되었네.
대나무 소리와 솔바람은 시원도 하여
맑은 기운이 뼈와 가슴 속에 스미네.
오직 허락하노니 백운(白雲)과 명월(明月) 두 손님 뿐,
도인의 앉은 자리가 이보다 좋을소냐.
[차를 마시는 법도란, (객이 적은 것을 귀하게 여긴다) 객이 많으면 시끄럽고, 시끄러우면 아취가 없어진다. 혼자서 마시는 것을 신(神)①이라 하고, 두 손님을 승(勝)②이라 하며, 서넛을 취(趣)③라고 하고, 오육을 범(泛)④이라 하며, 칠팔을 시(施)⑤라고 한다.]
주(註)
① 신(神):혼자서 차를 마시는 경지를 표현한 말인데, 그 뜻은 신령스럽다, 또는 그윽하다, 또는 고요하고 적적하다, 또는 이속(離俗)한 경지, 적정의 경지를 말한다. 신선이나 누릴만한 고상하고 맑고 담아한 경계를 한마디로 신(神)이라고 한 것이다. 동원(東原 : 杜瓊)의 시다록(試茶錄)에 보면, 혼자 마시는 것을 유(幽)라고 하였다.
② 승(勝):둘이서 마시는 것을 말하는데, 그 의미는 좋다, 또는 승경(勝景)이다, 한적(閑適)하다는 말이다. 백운(白雲) 청산(靑山)은 좋은 두 손님이고, 또 백운(白雲)과 명월(明月)도 좋은 손님이다.
③ 취(趣):서너 사람이 함께 마시는 정취를 가리키는 말인데, 취미적이다, 재미있다, 즐겁다, 유쾌(愉快)하다는 뜻이다. 뜻이 맞는 벗 서너 명이 모여서 차를 달여 마시며 담소하는 광경이다. 온갖 시비를 놓아 버리고 걸림없이 노는 경지는 즐겁기만 하다.
④ 범(泛):대여섯 사람이 차를 마시는 모양이다. 평범하다, 범사(泛事)스럽다, 일상적이다라는 뜻이다. 또는 저속(低俗)하다고도 하며 속되다 라고도 한다. 동원의 시다록(試茶錄)에는 범(汎)이라고 하였다. 범(泛)자와 뜻이 서로 통하는 글자이다.
⑤ 시(施):일곱 여덟이 둘러 앉아서 차를 마시는 자리이다. 음식을나누어 먹는 것과 같다. 무언가 나누어 먹는 자리, 또는 베푸는 자리, 무시하는 투로 박애(博愛)라고도 한다. 차 마시는 분위기는 깨어지고 음식 먹는 자리가 되었다.
해설(解說)
제31송
제1구:차 마시는 자리에 밝은 달(明月)은 촛불도 되고 또한 벗도 되어 주는구나.
제2구:흰 구름(白雲)은 방석도 되어 주고 병풍도 되어 주었네.
제3구:해맑은 댓바람 소리와 솔바람 소리는 시원한 고요이고,
제4구:맑은 기운 뼛골 속에 스며들어 간장과 폐부를 맑게 해주네.
제5구:오로지 밝은 달, 흰 구름 이 두 손님만을 허락하노니,
제6구:도인의 앉은 자리가 이 보다 좋으랴.
원문주:차를 마시는 자리에는 손님이 적어야 한다. 손님이 많으면시끄럽고 수선스러우며, 시끄러우면 맑은 정취가 사라진다. 그래서 혼자 마시는 것을 신령스럽다, 이속한 경지라고 하고, 둘이서 마시는 것을 좋다, 또는 한적한 경지라고 하며, 서너 사람이 마시는 것을 취미적이다, 재미있다고 하고, 대여섯 사람이 마시는 것을 평범하다, 일상적이다 하며, 칠팔명이 마시는 것을 나누어 먹기와 같다는 것이다.
제31송의 전체적인 뜻은 차를 마시는 자리와 그 분위기 그리고 손님의 숫자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데, 혼자 마시는 것이 최상의 경지이고, 둘이서 마시면 좋지만 속된 무리보다는 흰 구름 밝은 달이 가장 멋진 손님이며, 뜻이 맞는 친구 서너 명이 함께 마시는 것은 재미있고 유쾌한 일이나, 그 이상의 많은 사람이 함께 마시는 것은 나누어 먹기와 같고 저속하여 맑고 고상한 정취를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 차 마시는 분위기도 해맑은 솔바람 댓바람 소리는 마음과 정신을 맑혀주므로 좋지만 시끄럽고 수선스럽고 잡음이 많이 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애써 고요하고 한적하고 평화스럽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편안하고 여유있는 마음을 얻어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다. 삶의 여유, 그것은 참다운 삶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차는 거들먹거리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31송의 인용문헌은 한 가지로 다신전의 음다(飮茶)항이다. 음다항목의 거의 전문을 인용하였는데 그 중에 일부분만 생략시켰다. 생략시킨 대목은 이객소위귀(以客少爲貴)라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생략해도 뜻이 통하는데 아무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 구절을 채워 넣었다.
동 다 송 題跋 |
題跋(原文)
艸衣新試綠香煙 禽舌初섬①穀雨前
莫數丹山雲澗月② 滿鍾雷笑可延年.
白坡居士 題
원문교정(原文校訂)
① 초섬(初섬):다예관본에는 갈 섬(섬)자로 되어 있으나 싯구의 내용으로 보아 가늘 섬(纖)이 옳은 것 같다. 간다(行貌)는 뜻은 맞지 않고, 가늘다(羅穀細)는 뜻이 타당하다.
② 운간월(雲澗月):다예관본에는 운간월이라고 되어 있으나, 이것은 건양(建陽 : 복건성)과 단산(丹山 : 호북성)에서 나는 차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월간차(月澗茶)와 운감차(雲龕茶)를 말하는 것이다. 동다송 제18송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여 지었다. 이 구절을 시의 운(韻)을 맞춰서 바꾼다면 운월간(雲月澗)이라고 고쳐야 한다.
題跋(校訂文)
艸衣新試綠香煙 禽舌初纖穀雨前
莫數丹山雲月澗 滿鍾雷笑可延年.
白坡居士 題
제발
초의신시녹향연 금설초섬곡우전
막수단산운월간 만종뇌소가연년.
백파거사 제
제발(題跋)
초의선사가 햇차를 시험하니 푸른 향기 피어 오르고,
날짐승의 혀(禽舌)①같은 가늘은 곡우전(穀雨前)②의 첫물차.
말하지 마라 단산(丹山)③의 운감차(雲龕茶)④나 월간차(月澗茶)⑤를,
찻잔에 가득 찬 뇌소차(雷笑茶)⑥가 목숨을 연장하네.
백파거사(白坡居士)⑦ 제(題)
주(註)
① 금설(禽舌):새의 혀를 말하는데 차잎의 모양새가 새의 혀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작설(雀舌)이나 작설(鵲舌)도 같은 뜻이다. 까치나 참새 같은 날짐승의 혀처럼 가늘게 생긴 차의 모양을 말한다.
② 곡우전(穀雨前):곡우는 일년 24절기 중의 하나로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데, 대개 양력 4월 20일이나 21일에 온다. 우리 나라는 곡우때 보다 입하 때가 적기이나, 곡우 4~5일 전에도 남쪽 지방의 따뜻한 곳에서는 차를 딴다. 이것을 우전차(雨前茶)라고 하고, 곡우 뒤에 딴차를 우후차(雨後茶)라고 한다.
③ 단산(丹山):산 이름, 호북성 파동현(巴東縣)에 있다. 산간에 붉은 기운이 항상 덮고 있고, 숲과 고개가 붉어서 단산이라고 했다. 산에 붉은 구멍(丹宂)이 많이 있다고 한다.
④ 운감차(雲龕茶):차의 일종으로 단산에서 생산되는 차이다. 청이록(淸異錄)에 나오는 기록에 보면 건양(建陽)과 단산(丹山)은 물이 맑은 고장이다. 여기서는 옛부터 이름난 차가 많이 생산되는데 그중에서 운감차와 월간차를 꼽는다고 하였다.
⑤ 월간차(月澗茶):차의 일종으로 건양에서 나는 차이다. 앞의 기록에 나오듯이 운감차와 함께 이름이 높은 차이다. 이 차 이야기는 동다송 제18송에도 나와 있다.
⑥ 뇌소차(雷笑茶):차의 일종으로 초의선사가 가끔 끓여 마시던 차 였다. 이 차는 초의선사가 만든 차인지 아니면 중국에서 가져 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문 가운데 등장하는 차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 차 이름은 동다송의 제11송에 나오는 경뇌협(驚雷莢)이란 차 이름에서 유래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⑦ 백파거사(白坡居士):조선 후기의 문인. 이름은 신헌구(申獻求 :1823~?) 자는 계문(季文)이며, 호는 백파거사이다. 고령 신씨 응모(應模)의 아들로 철종 13년(1862)에 정시(庭試)․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초의선사의 시집(一枝盦詩稿)에 발문(跋文)을 썼다.
해설(解說)
제발(題跋)
초의선사가 햇차를 시험 삼아서 달이는데 푸른 향기가 연기처럼 피어 오르고, 날짐승의 혓바닥 같은 작설차는 곡우전에 따서 만든 첫물차로구나.
함부로 말하지 마라. 중국 호북성 단산에서 나는 운감차나 월간차만 좋다고, 찻잔에 가득찬 한 잔의 뇌소차는 사람의 목숨을 연장시켜 준다네.
제발의 전체적인 뜻은, 초의선사가 곡우 전에 따서 만든 햇차를 시험삼아 달이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백파거사가 7언절구(七言絶句)의 시로써 읊은 것이다. 초의선사는 이 차를 뇌소차라고 이름 붙였던 것 같다. 그래서 백파거사도 뇌소차 한 잔이 사람의 목숨을 연장시켜 준다고 하였다. 이 뇌소차는 중국의 운감차나 월간차에 비해서 조금도 뒤지지 않으니, 중국차만 좋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용문헌(引用文獻)
제발의 시문은 백파거사 신헌구(申獻求)가 지은 것으로 초의선사의 글이 아니다. 그래서 석오본(石梧本)에는 들어 있지 않고 다예관본(茶藝館本)에만 들어 있는 것이다. 이 다예관본은 백파거사가 필사한 것이다. 백파거사는 초의선사 보다 38살이 아래로, 초의선사가 말년에 일지암(一枝庵)에 계실 때 찾아와서 뵙고 선사의 제자들과 교분을 맺어 자주 왕래했던 사람이다. 그후 초의선사가 입적하신 뒤로 제자들의 부탁을 받아 초의선사시집(一枝盦詩稿)에 발문(1875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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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란도님 덕에 오랫만에 동다송을 보내요,고맙습니다. 퍼 갈께요~~~
용운스님께서 번역한 동다송 자료는 후박나무님이 보내 주신 것을 제가 올린것입니다.저도 오랜만에 동다송을 다시보게 되었고 자세하게 서술해 놓으시어 좋았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가져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