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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만 보세요.^^
태극기의 유래
국기란 국가의 권위와 존엄을 표상하는 상징으로서 그 국가의 전통과 이상을 특정의 모양과 색깔로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국기는 국가와 민족을 상징하는 신성한 표지이며 국가·민족과 더불어 영고성쇠
를 같이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국가의 상징으로서 국기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875년 개항을 요구하며 인천
앞바다에 접근한 일본군함 - 당시 거기에는 일본 국기를 게양하고 있었음 - 에 발포한 『운요호』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그후 조정에서는 우리나라를 표상하는 국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던 중 1882년
8월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인 박영효 일행이 일본에 갈 때 태극도형과 4괘를 담은 태극기 를 우리나라의 국기로 사용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대외적으로 국기를 최초로 사용한 예라고 하겠으며, 태극도형은 우리 민족이 옛부터 일상생활에서 즐겨 사용하여 오던 전통문양인 태극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듬해인 1883년 음력 1월 27일 고종은 왕명으로 태극도형과 4괘가 그려진 국기를 공식으로 제정·반포 하였으나 구체적인 작도법 등이 정해지지 않아 개인이나 단체에 따라 다소 다른 문양의 태극과 4괘 도안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후 태극기는 애국선열들이 독립운동에 바친 고귀한 희생의 현장에서, 조국 광복을 맞는 기쁨의 현장에서 언제나 우리를 지키고 늘 우리와 함께 하여 왔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정부에서는 이때까지 조금씩 다른 도안으로 사용되어 온 태극기 문양을 통일
시키기 위하여 당시 문교부에 사학자·미술가·언론인 등 사계 권위자 42명으로 "대한민국국기시정위원회 를 구성·설치한 후 전문적인 검토를 거침과 아울러 국민 각계의 의견을 수렴 하고 수차의 회의를 거듭하여 오늘날과 같은 태극기를 국기로 채택하기로 하고, 1949년 10월 15일 이를 정식으로 공포하였다.
그후 1984년 2월 21일 국기의 제작·게양방법 등 기본적인 사항을 정한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
(대통령령 제11361호)을 제정·공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라의 상징이며 민족의 얼이 깃들어 있는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게양하고 예절을 지키는 일은 나라 사랑의 작은 실천이며 조국에 대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손쉽게 표현하는 길이라 하겠다.
♤ 태극기에 담긴 뜻
- 태극기의 흰색바탕은 백의민족의 순결성과,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의 민족성을 표상하고
- 가운데의 태극도형은 음과 양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우주 만물이 생성·발전하는 대자연의 영원한 진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창조와 발전을 의미하며,
- 4괘는 태극도형속에서 음과 양이 질적변화와 양적성장의 선회운동을 거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임.
- 따라서 태극기는 우주와 더불어 길이길이 발전하고자 하는 한민족의 이상을 집약·표상하고 있다고 하겠음.
(느낀점) 우리 태극기에대한 역사의 이야기는 많다... 백의민족의 순결성과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의 민족성을 표상하고 라는말이 인상깊었다
역시 우리나라에 극기는 멋있고 깊은 뜻이 담겨있는것같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딴나라 보다 조금 자랑스럽게 여길수도 있다고 본다...
유래에 관해 좀 더 덧붙인다면요...
'조선국기'가 '태극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하던 때부터였다.
18세기 말엽 조선왕조는 관리들의 당파 싸움과 부정부패로 말미암아 나라 꼴이 허약해기기 시작하였다. 이런 기회를 노려오던 일본은 마침내 1910년 조선왕조를 송두리채 빼앗아갔다. 이에 격분한 애국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으로 일본에 맞섰다. 1919년 3월 1일 정오에 맞춰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과 함께 전국적으로 대한독립 만세 운동를 펼치기로 하였다. 이날 참여한 모든 국민들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손에 손에 '기'를 들고 나오기로 하고, '기' 제작을 하였는데, 그때만해도 '조선국기'로 부르던 국기 이름을 일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태극기'로 부르자고 약속을 하면서부터 새롭게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일본 경찰은 탑골공원이며 종로거리이며 동대문 성벽까지 가득 메운 인파들이 그렇게도 많은 태극기를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하여 매우 당혹한 나머지 태극기를 든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팔뚝을 자르는 등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우리나라에서 국기 문제가 처음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1876년에 있었던 병자수호조약을 맺을 때 부터였다.
조약을 맺기 1년전에 일본은 우리에게 문호 개방과 통상을 요구하면서 강화도 초지진에 우리의 허락도 없이 군함 운요호를 정박시켰다.
강화도를 지키던 우리 수비병대가 즉각 대포를 쏘며 대항을 했다. 이런 과정에서 군함 운요호에 게양된 일본기가 불타 버렸다. 이 사건은 이듬해 강화도 회담에서 우리정부를 궁지에 몰아 넣었다. 즉, 군함을 허락없이 정박했다 하더라도 국가를 표시하는 일본기를 엄연히 게양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포격을 하게된 이유를 따지자, 우리 정부는 속시원하게 대답할 길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만해도 우리 정부에서는 국기라는 말 조차도 없었으며, 도대체 무엇을 국기라고 하는지 조차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때부터 국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난처한 입장을 눈치 챈 중국은 황준헌이라는 사신을 통해 삼각형 바탕에 용을 그린 중국의 용기를 본받아 국기로 그려 사용할 것을 간섭하기도 하였다. 그후 우리나라와 중국은 아예 국기 만들기 연락 사신을 임명하여 수시로 접촉토록하였는데 우리나라측 사신은 이응준이었고, 중국측은 마건충이었다. 이때만해도 우리나라는 국기에 대하여 마땅한 식견을 가지고 있지 못한 터라 이미 대륙을 상징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중국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중국이 우리나라의 국기에 대하여 집요하게 간섭을 하게 된 까닭은 조선왕조의 땅 한반도를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현재 우리가 부르는 태극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19년3월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나라 주권을 빼앗은 일본을 향해 독립운동가들이 1919년 3월 1일 정오에 맞춰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과 함께 전국적으로 '대한독립만세운동'을 펼치기로 하였다. 이 날에 참여한 모든 국민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손에 '기'를 들고 나오기로 하여, '기'를 제작하였다. 그때 만해도 [조선국기]로 부르던 국기 이름을 일본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태극기>로 바꿔 부르자고 약속을 한 뒤부터는 태극기가 새롭게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태극기의 의미는요..
태극기가 지닌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창조 : 우주의 근본인 태극이 음과 양 두 가지의 힘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듯이,우리 민족의 창조성을 나타내고 있다.
발전 : 우리 민족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주적인 발전 을 한다는 뜻이다.
자유 : 태극의 이론은 만물이 자연의 원칙을 벗 어나지 않으면서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는 자유를 사랑하는 우리의 국민성을 나타낸 것이다.
평등 : 태극과 4괘가 전체적으로 음과 양이 균등 할 뿐만 아니라, 서로 마주보는 관계에 있는 것은 우리의 평등 사상을 말해 주는 것이다.
무궁한 발전 : 태극 도형의 청, 홍의 음양 곡선은 끝없는 계속을 뜻하는 것으로,우리 민족의 역사가 무궁하게 발전한다는 것을 뜻한다.
태극문양= 우주
태극문양의 윗쪽(빨강)= 양, 낮, 존귀
태극문양의 아랫족(파랑)= 음, 밤, 그늘, 희망
을 나타낸다. 그리고 바탕의 흰색은 우리 민족이 백의 민족이라는 것을 나타 내준다고나 할까.
(느낀점)나는 파랑색과 빨강 이 왜 위,아래 인지 알것같다. 와~~ 나는 그냥 보기 좋아서 빨강색위 파랑색이 밑에 인지 검은색양쪽 대각선이있어서 멋있어서 그런줄알았는데 그렇게 조금 한것두 깊은뜻이 담겨 있어서 우리나라에 자랑 성을 멋있게 칭찬한다...
우리 나라의 국기가 맨 처음 만들어졌던 조선왕조 시대 때에는 나라의 이름인 '조선'과 함께 '조선국기'라고 불렸다.
현재 우리가 부르는 태극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19년3월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나라 주권을 빼앗은 일본을 향해 독립운동가들이 1919년 3월 1일 정오에 맞춰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과 함께 전국적으로 '대한독립만세운동'을 펼치기로 하였다. 이 날에 참여한 모든 국민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손에 기를 들고 나오기로 하여, 기를 제작하였다. 그때 만해도 '조선국기'로 부르던 국기 이름을 일본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태극기>로 바꿔 부르자고 약속을 한 뒤부터는 태극기가 새롭게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국기 제정 논의가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1876년(고종 13) 1월이다. 운요호사건 계기로 한 ·일 간에 강화도조약 체결이 논의되는 동안 일본측은 “운요호에는 엄연히 일본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왜 포격을 가하였느냐?”고 트집을 잡았다. 그러나 조정의 인사들은 국기가 무슨 의미와 내용을 지니고 있는것 조차 몰랐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국기 제정의 필요성이 활발하게 거론되기 시작하였으며,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인 박영효 등 일행이 인천에서 일본배를 타고 도일할 때, 그 동안 구상되고 논의되어 어느 정도 찬성을 본 국기의 도안 내용을 다소 수정한 태극사괘의 도안이 그려진 기를 국기로 게양할 것에 의견을 모으고 일본 선박 메이지마루에서 이것을 만들었다. 이때 메이지마루에는 후일 개화당의 주역이었던 서광범 ·김옥균 등도 함께 타고 있었다. 이들 일행은 8월 14일 고베에 도착, 니시무라야에 숙소를 정하고, 이 건물 옥상에다 태극사괘가 그려진 기를 게양하였는데, 이것이 태극기의 효시이다.
태극은 우주 자연의 궁극적인 생성원리를 상징하여, 적색은 존귀와 양을 의미하고, 청색은 희망과 음을 나타낸다. 사괘는 천지일월 ·사시사방을 의미하는 창조적인 우주관을 담고 있다. 사괘가 나타내고 있는 의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태극기 전체로는 평화 ·단일 ·창조 ·광명 ·무궁을 상징하고 있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태극기는 그 후 널리 보급되었으나 도형의 통일성이 없어서 사괘와 태극 양의의 위치를 혼동하여 사용해오다가 1948년 정부수립을 계기로 국기의 도안과 규격이 통일되었다. 국기의 제작 ·게양 ·관리 등에 관해서는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에 의거, 시행되고 있다.
① 국기의 게양일과 시간 : 국경일 ·한글날 ·국군의 날 ·현충일 ·국장기간 ·국민장일, 기타 정부가 지정하는 날,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각급학교 등은 연중 국기를 게양한다.
② 경축할 때 : 깃봉과 기폭 사이를 떼지 않고 단다. 대문에 세울 때는 문 밖에서 보아 왼쪽에 곧게 세운다. 아파트에서는 밖을 향하여 베란다 오른쪽에 세운다.
③ 조의를 표할 때 : 깃봉에서 기폭만큼 내려서 반기를 단다. 깃대가 짧을 때는 깃대의 한중간에 단다.
④ 외국기와 같이 달 때 : 태극기를 최우선의 위치에 단다. 태극기와 외국기 하나를 같이 세울 때는 좌우에 따로 세우거나 서로 엇갈리게 한다. 좌우에 따로 세울 때 태극기는 단상을 향하여 왼쪽에 세우고, 서로 엇갈리게 할 때는 태극기의 기폭은 단상을 향하여 왼쪽에 오게 하고 깃대는 밖으로 가게 한다. 세 나라 이상의 외국기와 함께 세울 때, 홀수인 경우는 태극기를 중앙에 달고, 외국기는 국명의 알파벳 순에 따라, 향해서 왼편이 둘째, 오른편이 셋째, 그 밖으로 왼편이 넷째, 오른편이 다섯째의 차례로 달며, 짝수인 경우는 태극기를 왼편 첫째로 하고, 외국기는 국명의 알파벳 순에 따라 오른쪽으로 차례차례 단다.
⑤ 기폭만 달 때 : 바로 달 때는 건()을 왼쪽 위로, 감()을 오른쪽 위로 오게 한다. 늘여서 달 때는 건()을 오른쪽 위로, 이()를 왼쪽 위로 오게 한다. 확대해서 늘여달 때는 길이와 나비를 3:2의 비율로 하고, 실내 벽면이나 건물 정면 등에 깃면을 길이로만 늘여서 달 때는 늘인 부분을 깃면과 같은 흰색으로 한다.
헉~~!! 또 태극기에대한 것에 놀랐다 왜냐하면 처음 부터 이름이 태극기라는게 아니고 조선국기라는것이다
또 날에따라 다는 높이도 달라지고 윤요호사건 강화도조약과는 절대 상관업다는것으로 생각했는데
정말 또 3번. .. 강화도 조약은 일본이 우리를 그냥봐서는 도와주는것 같지만 우리한테 불리한점만 조약 우리나라의 최초 조약이지만
불평등한 조약으로 일본을 2번죽여야되겠다 ㅋㅋ!!
또 태극기란 말이 나오기 시작한것은 33인이 독립선언을 하던때 불렸다고한다.
나는 왜 태극기라는 단어가 생겼는지도 알고싶다 ..
소위 고조선의 "8조법금"이라는 것은 '반고'
가 그 출전이며, "기자"가 제정한 입법이라고 합니다,
그 법 조항은 아래와 같은데 8개조항중에 3조항만이 전해옵니다
1 : 사람을 죽인자는 그 즉시 죽음으로 갚는다
2 :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배상한다
3 : 도둑질한 자는 남자의 경우에는 몰입하여 그 집 종이 되고 여자는 계집종
을 만든다속전코자하는 자는 50만전을 낸다
"8조 법금"의 "8조항"을 다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책은 <환단고기>뿐인데 <환단고
기>는 위작의 혐의가 걸려있는 책으로 우리나라 정통사학계에서는 아직 그
사료적가치가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래는 그 <환단고기>의 내용인데 참고삼
아 올립니다.
<환단고기/번한세가>에 의하면 "금8조"는 "기자"보다 164년전의
인물인 번조선의 시조 "기수 서우여"에 의해 반포된 것이
라하며 그 조항전문을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습니다.
(고조선에대한걸★☆★)
소위 고조선의 "8조법금"이라는 것은 '반고'의 <한서.권28. >
가 그 출전이며, "기자"가 제정한 입법이라고 합니다,
그 법 조항은 아래와 같은데 8개조항중에 3조항만이 전해옵니다
1 : 사람을 죽인자는 그 즉시 죽음으로 갚는다
2 :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배상한다: 도둑질한 자는 남자의 경우에는 몰입하여 그 집 종이 되고 여자는 계집종
을 만든다속전코자하는 자는 50만전을 낸다
"8조 법금"의 "8조항"을 다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책은 <환단고기>뿐인데 <환단고
기>는 위작의 혐의가 걸려있는 책으로 우리나라 정통사학계에서는 아직 그
사료적가치가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래는 그 <환단고기>의 내용인데 참고삼
아 올립니다.
<환단고기/번한세가하>에 의하면 "금8조"는 "기자"보다 164년전의
인물인 번조선의 시조 " 서우여"에 의해 반포된 것이
라하며 그 조항전문을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습니다.
1, 사람을 죽이면 그 즉시 죽음으로 갚는다 :
2, 사람을 상해하면 곡식으로 갚는다
3, 도둑질하는 자는 적몰하여 남자는 그 집의 종이되고 여자는 계집종을 삼는다
4, 소도(성역)를 훼손하는 자는 가두어 둔다
5, 예의를 잃은 자는 군에 복무시킨다
6, 근면히 일하지 않는 자는 공공작업에 부역시킨다
7.음란한 짓을 하는 자는 태형에 처한다
8, 사기를 치는 자는 훈방한다 스스로 속전코자하는 자는 비록
공표되는 것은 면하지만 백성들의 풍속이 오히려 그를 수치스럽게 여겨 (딸을)
시집보내려 해도 팔려갈곳 조차 없었다
이런것에 대하여 고조선은 법치국가 인것과 질서가 매우 엄격했다는것을알수있다
8개조법중에 3개조법만이 남았는지 궁금하다 ..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만들었고
만들어진때는 기원전2333년이고(2333년을 더하면 기워전이된다 그러면 고조선은 지금 해로 0년이랑 같다.)
이념은 홍익인간이다 ... 사람들을 널리이롭게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