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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랫동안 벼려 왔던 친구의 작업실에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시골 한적한 곳에 땅을 사서 대안미술학교 같은 것을 운영하는 것이 평생의 꿈인 친구가 그 전초전으로 집을 하나 시골 섬에 구입했는데 그 가격이 단돈 150만원.
정말로 헐한 가격이지만 바다를 내려다보는 경치가 너무도 일품이어서 첫 눈에 반한 곳이란다.
여수에서도 배를 타고 1시간 40분을 가야하는 아주 먼 곳이다 보니 작년 겨울부터 몇 번인가를 가기로 했다가 놓치곤 한 곳이라서 이번에는 주말에 여러 개의 행사가 있지만 다 접고 무조건 내려가기로 했다.
여행이란 것이 늘 토를 달다보면 결국 미루게 되고 미루다 보면 못 가기 일 수 인지라 이번에는 모든 것을 다 과감히 부러트리고 먼 길을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오늘도 아침부터 갑자기 일이 빽빽하여 힘들기만 한 하루였다.
우선 어제 작업실 주변에 화단도 가꾸고 나무도 조금 심고 또한 이런 저런 정리를 하느라 무거운 돌들을 들어 나르기도 하여서 허리가 휘청하였다. 그런 끝에 피곤하고 늦게 잠을 잤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내내 뒤척이다 결국 아침 전화벨 소리에 이불을 박차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마 어제 나무 구하러 가서 먹은 홍차 여러 잔하고 선배 집에서 마신 커피 한 잔과 저녁에 테니스 치고 회식자리에서 마신 콜라 한 잔이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사람은 멍청한데 위장은 왜 그리 예민한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끝에 뒤척이던 잠을 깨운 선배의 전화벨소리는 오늘 매화나무를 사러 같이 가기로 한 날이라 약간은 흥분이 되시는지 약속한 시간보다 두어 시간이나 이른 것이었다.
나는 대충 옷을 입고 선배와 차를 달려 옥천까지 가서 홍매화 묘목을 여러 그루 사고 다른 유실수도 몇 종류 더 사와서 여수 섬에 늦지 않게 갈 욕심으로 쉼 없이 선배님과 내 것을 서둘러 다 심으니 거의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마침 나무 심기가 끝 날 즈음 서울의 친구가 내려오고 나무 심으면서 나의 ‘꼬심’에 넘어간 선배와 그 제자까지 해서 넷이서 차를 달렸다.
피곤하고 바쁜 하루였지만 그 끝이 여행의 시작이니 피곤한 몸과 달리 마음은 가볍기만 했다.
우리는 중부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의 밤길을 달려 드디어 한 다섯 시간 여 만에 여수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두 시간 가까이 더 가야하는 배편이 남아 있고 그것은 내일 새벽 6시 배편인지라 우리는 할 수 없이 부두가 근처의 허름한 모텔을 잡았다.
새벽의 모닝콜요청을 주인이 까먹었지만 우리 친구의 책임감은 이미 그것과 관계없이 그 친구의 잠을 깨웠고 그런 친구의 책임감을 이미 알고 있는 나는 덕분에 짧은 대로 불안한 마음의 뒤척임 없이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이른 아침의 배는 뱃전에서 경치를 보기에는 너무 쌀쌀했다.
나는 그래도 어기지로 경치를 봤다.
한려수도의 끝없이 펼쳐지는 섬들의 합창이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나라가 좁기는 하지만 이런 아기자기함이 있는 한 그 진수를 다 느끼기에는 결코 작다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직도 미국 여행의 여독이 안 풀린 내 몸은 싸늘한 바닷바람을 막아내기에는 부실하기만 했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의 장관은 나를 계속 갑판에 서있게 했다.
결국 막판에는 졸음기가 몰려와 선실에 들어가 등을 대고 잠을 청하려하는데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에 눈을 뜨니 웬 아줌마들이 들어 누워 있는 나를 빙 둘러 싸고 앉아서 원숭이 바라 보 듯하며 떠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민망하여 일어나 몇 마디 말대답을 하다 보니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 ‘연도’란다.
배를 내리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트럭 택시’
짐칸에 흔들리면서 한 이십분 정도를 가니 드디어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 ‘덕포’란다.
바로 마을 코앞까지 더 가까이 데려다 준다는 맘씨 좋은 기사양반의 청을 뿌리치고 그 갑작한 출현에 의한 아름다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조금은 걸어야 한다는 우리 친구의 말에 우리는 짐을 챙겨 트럭에서 튕겨 나왔다.
고개를 넘으니 갑자기 탁 트인 공간이 나오면서 주로 스레트 지붕을 이고 있는 조그만 집 열 댓 채가 옹기종기한 마을이 나오고 그 앞으로 글자 그대로 손바닥만한 포구가 있고 멀리 자잘한 섬이 보일 듯 말 듯 한 끝 없는 바다가 펼쳐지는 별천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커다란 무대를 만들면 딱 좋다던 친구의 말이 실감나는 그런 아늑하면서도 커다란 원형경기장 같은 그런 공간이었다.
마을에 들어서니 길이나 집들의 들어 앉아 있는 모습은 글자 그래도 자연 그대로였다.
모두가 사람이 만든 것이니 자연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 어패가 있는 노릇이지만 거기는 그래도 자연 그대로라고 말함이 옳다.
사람이 사는 집은 집대로 이미 사는 사람이 없어서 허물어지고 허물어져가는 집들 모두가 어릴 적부터 거기서 살아 온 노인들과 함께 하나의 자연을 형성하고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마을은 사람은 살되 전혀 인기척이 없이 정적만이 감돌아 살아 있는 사람도 이미 하나의 시간이 정지된 공간 속에 함몰 되어 자연을 이루고 있고 주변의 자유 곡선을 하고 있는 농토들도, 최연소자가 65세고 그것도 외지인이다 보니 농사지을 만한 연령 때가 사라진 지금은 대부분 그 ‘어슴푸레한’ 형태만을 유지한 채로 거의 자연화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처럼 거기는 시간이나 공간이나 인간의 삶이나 자연의 움직임이나 모두가 정지되어 있는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인위적인 분위기도 곧 사라질 시한부 ‘자연’ 그 자체였다.
단지 나지막한 산꼭대기의 군부대와 먼 바다를 지키고 있는 등대만이 그런 자연을 거부할 뿐 마을은 인간이 만들어 낸 화석 그 자체였다.
담쟁이를 그물처럼 둘러치고 있는 마을의 돌담들과 꼬불꼬불한 마을길과 길 밑으로 닿아 있는 지붕들이며 다 허물어 졌지만 굴뚝만은 우뚝한 앙상한 뼈대만의 집들 그 집 안방으로 뻗어난 대나무들이며 벌집이 되어 버려서 사람 목소리는 화석이 되고 벌의 윙윙거리는 소리만이 이방인을 내 쫒는 풍경.
그 와중에 한가롭게 잡풀을 뜯고 있는 황소의 느릿한 움직임.
멀리 보리밭 사이로 놀라게 하는 이도 없는데 혼자 제 풀에 놀라서 이리저리 뛰는 고라니의 잽싼 모습.
그 틈새로 푸드득 거리는 꿩의 모습.
그런 모습과는 아랑곳없이 의구함으로 그 모든 것을 한 품에 아우르고 있는 잔잔한 바다의 숨결.
그 모든 것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한 끝, 한 구석에서 천연덕스럽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기만 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친구의 산값보다 수리비가 몇 배 더 든 그 알량한 작업실에 짐을 풀고 늦은 아침밥을 부랴부랴 해 먹고는 낚싯대를 메고 등대 밑의 바다로 나갔다,
등대는 내가 평소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집도 여러 채고 잔디밭도 넓고 이런 저런 설치물도 있는 것이 이 조그만 섬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보였다.
워낙이 끝이다 보니 뱃길로는 중요한 지점인가 보다.
마찬가지로 언뜻 올려다 보이는 산꼭대기의 군부대도 그 규모가 너무도 ‘생뚱맞게’ 크고 웅장하기만 한 것을 보면 여기가 역시 군 작전상으로도 요지인 모양이다.
오로지 사람 살기만 버거운 그런 곳인가 보다.
친구와 선배의 열심인 낚시와는 상관없이 나는 뙤약볕을 피해 이리저리 모자란 잠을 보충하며 시간을 때우다 우리는 배도 고프고 조그만 ‘망둥이’ 몇 마리의 소득에 기가 질려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을 향했다.
나는 길을 오면서 내내 야생화들을 한 두 뿌리 씩 캤다.
더러는 이름을 아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꽃인지 나무인지 잡풀인 지도 잘 모르면서 그저 눈에 좀 색다르다 싶으면 한 뿌리씩 캤다.
물론 이파리 두어 장 달린 동백도 캤지만 안성 작업실에서 과연 잘 자랄 지는 미지수였다.
아마는 내가 이 오지에 살지 못하듯이 그 들도 그 먼 곳으로 이주를 시키면 죽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듬어 앉고 이것저것과 함께 제법 한 아름이 되었다.
어제 가꾸어 놓은 화단에 그것들을 옮겨 심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흐뭇하고 먼 여행이 가볍기만 했다.
집에 와서 우리는 매운탕은 저녁에 끓여 먹기로 하고 컵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는데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친구가 동네 할아버지한테 구걸하다 시피해서 아침에 우리와 엇갈리면서 잡은 팔뚝만한 ‘숭어’인지 ‘송어’인지를 얻어 와서 소주와 마을 노인들의 무용담과 일상사와 함께 회쳐먹으니 컵라면도 회 맛도 소주 맛도 일품이었다.
나는 마을 노인의 지난 인생 스토리를 뒤로 하고 친구가 열심히 장작을 넣어서 따뜻하기만 한 구들장에 등짝을 대니 잠이 소르르 왔다.
적당히 자다 일어나서 선배하고 자리 교환을 하고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밤이 적당히 깊었고 우리는 어젯밤부터 끌고 온 피곤함도 몰려오는 통에 원래 저녁에는 몇 마리 잡은 너무 작아 먹잘 것도 없는 망둥이와 회 뜨고 남은 숭어 뼈대를 넣고 매운탕을 끓여 먹기로 했지만 다 접고 잠이 먼저다 하면서 모두 각자의 포즈로 잠자리에 들었다.
따뜻한 구들장 덕택에 우리는 아침까지 긴 잠을 잤다.
덕분에 그 동안의 피곤함은 싹 가신 듯 했다.
우리는 적당히 각자의 시간을 갖고 난 후에 풀과 벽지를 꺼내서 전에 친구가 바르다 만 벽이며 천장을 발라 나갔다. 말하자면 여기 무료로 묵었으니 그 값을 하는 셈이다.
여러 명이 달라붙어 바르니 의외로 일이 빨리 끝나고 또 빚 갚은 마음처럼 산뜻하기만 했다.
우리는 늦은 아침을 어제 먹으려다 그냥 치워 놨던 망둥이 매운탕으로 해결을 했다.
양념이 제대로 안 들어가서인지 맛이 좀 기기묘묘했지만 그래도 천연산 재료의 매운탕이라 아무 불평 없이 만나게 먹었다.
더군다나 적당히 아침운동도 한 상태인지라 약간은 애매한 맛일지라도 부드럽게 잘 넘어 갔다.
이어서 우리는 떠날 짐들을 대충 쌌다.
나는 어제 원시인들이 쓰던 돌칼 같은 것으로 파낸 야생화인지 잡초인지 잘 분간이 안 가는 것들이 돌돌 말려 있는 비닐봉지를 챙기고 거기다가 친구 집 화단에 있는 작약 한 뿌리하고 들국화 하고 수국뿌리를 캐서 같이 쌓아 짐을 챙겼다.
어제 넘어 온 고개를 짐들을 이리 저리 들고 메고 하여서 넘어 갔다.
사방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하였다.
어제 거닐던 동네를 다시 마지막으로 뒤돌아 둘러보니 그 적막함은 더 깊기만 하고 버려진 밭과 논들의 잡초더미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만 같았다.
의외로 연도 본동 포구까지는 멀기만 했다.
워낙이는 질러가는 길이 있지만 친구가 권하는 간판 없는 과부 집 식당에 가서 국수를 먹기로 한 지라 그 길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길을 택하니 더 멀기만 했다.
더군다나 나는 다리가 좀 불편한 선배의 큰 가방을 들쳐 업고 가는 중이라 힘이 더 들었다.
그 가방이 처음에 볼 때는 무슨 골동품 같이 멋이 있기만 하더니 막상 들으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들자니 조금만 걸어도 어깨가 당기고 들쳐 없자니 자꾸 어깨 밑으로 내려가기만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보기만 좋은 여자 같은 가방이었다.
낑낑거리며 한 20십 분정도 걸어서 본동포구동네 한 복판에 있는 음식점 같지 않고 일반 가정집만 같은 그 문제의 식당에 도착하니 정작 그 집 주인인 과부는 집을 비우고 여수에 갔단다.
황당하기만 했지만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라서 우리는 다른 식당을 찾아 갔다.
우체국 옆의 민박집 식당은 주인아주머니 혼자만 있었다.
우리를 안내 한 곳은 말하자면 그 집의 거실인 듯 온갖 가족사진이 즐비 했는데 그 중 주인 내외하고 아들 딸 들인 듯 한 사람들하고 찍은 사진이 얼마나 큰지 글자그대로 대문짝만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큰 가족사진은 처음이다.
아마 사진과 무슨 원한관계라도 있는 집안인 모양이다.
전혀 손님이 없어서 우리가 시킨 백반은 시간이 꽤 걸리는지 방에 들어가서 푹 쉬다 나오란다.
한 삼십분 잠시 눈을 붙인 후에 우리는 그 방에 다시 들어오니 이런 저런 기대감에 약간 설레기까지 했다.
여기는 바다 한 복판이고 또 우리가 묵었던 ‘덕포’와는 달리 배도 제법 있는 그런대로 구색을 갖춘 포구고 해서 최소한 전라도의 그 유명한 젓갈류는 기본일 것이고 또한 고등어자반도 밑반찬으로 깔려 있을 것이고 잘하면 매운탕도 나오지 않을까 하면서 기대에 차 있었지만 정작 나온 밥상은 우리의 기대를 아주 깡그리 말살하는 그런 모양새였다.
그것은 도시의 아주 일반적인 밥상 그 자체였다.
계란 프라이에 김치, 나물 등의 아주 일상적이고 평이하고 잔잔하기만 한 그런 밥상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단지 밥만이 솥 밥인지 입안에서 돌돌하게 굴러다니는 밥알의 맛이 아주 예스러워서 좋았다.
배는 밥을 먹고 부둣가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 물살을 밀어 내면서 나타났다.
배에 올라 지나치는 수많은 섬들을 보니 다도해란 말이 실감이 났다.
섬들은 그 숫자의 끝을 모를 정도로 계속 이어지기만 했다.
우리나라의 산들이 재산이라면 이 섬들도 그 아기자기함과 그 수많은 재잘거림이 분명 또 다른 재산임이 확실했다.
그 섬마다에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이 자연과 이루는 합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아닐까?
잔잔히 보여 지는 아름다움과 그 속에 점으로 박혀 살고 있는 그 삶들의 아기자기함은 하나의 합주를 이루어서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것 같았다.
섬들은 대부분 비슷하면서도 다 그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고 또 막 돋아나는 나뭇잎 색과 흑색이 제각각의 색채로 어우러져 거리에 따라 색의 깊이를 달리하니 그 연출감이 그저 감동스럽고 ‘예술스럽’기만 했다.
옆으로 늘어 설 때의 섬의 모습과 앞뒤로 교차되는 섬의 모습들이 다 각각으로 보이고 같은 섬이라도 길게 볼 때와 짤게 볼 때가 다르고 나무들은 특히 석양을 등지고 있는 실루엣 진 모습이 아름답고 한 폭의 ‘분재화’된 그림처럼 똑 떨어지는 완결미가 특이하기만 했다.
오면서 여기 저기 구석구석의 선착장에 들려 사람들과 차를 싣고 내리는데 어느 섬에선가는
등산객들이 우르르 타기에 물으니 작기만 한 섬 같은데도 5시간짜리 등산로가 있어서 아주 일품이란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새벽에 와서 등산로를 한번 돌고 오후배로 연도에 가는 계획을 세워 볼 생각이다.
멀리서 보는 섬과 직접 발로 밟아보면서 걷는 섬은 분명 차이가 많을 것이다.
드디어 여수항에 도착을 했다.
우리는 서둘러 서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잖아도 여름 배는 출발시간이 30분이 늦는데다가 일행이 부둣가에서 약간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멀기만 한 서울길이 더 멀게만 느껴졌다.
운전대에 앉은 친구는 마음이 다소 급한지 손에 힘을 주는 것 같았다.
한참을 올라오다 휴게소에 들려 저녁을 간단히 때우니 사실 이번 여행 중 먹거리는 숭어 회 몇 조각 구겨 넣은 것 말고는 이렇다 할 간사한 기쁨이 없이 끝난 셈이다.
그래도 사람이 나이가 먹어 갈수록 음식의 맛도 같이 먹어 가는 것이니 딱히 감칠 맛 나는 음식 맛만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이처럼 몇 이서 별 이견 없이 한 통속으로 어우러져 움직이고 한 호흡을 하는 그 자체가 맛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즐거운 것이니 그 것만으로도 값어치 있는 여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올라오는 밤길은 그런 즐거움을 확인하고 확인시켜주는 시간이었다.
한참을 달려 중부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친구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오창의 시골 집 벽에 다다르니 우리의 여행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한 시간을 더 달려 나는 선배와 또 갈라지니 드디어 내 몸과 마음이 원위치 되었다.
늘 운동하러 다니는 금광면 늦은 밤 시골길을 내 털털거리는 탈것과 함께 느릿하게 저어오니 이번 여행의 온갖 즐거움의 편린들이 작은 파도 되어 바퀴를 때리는 듯하다.
마둔 저수지를 돌아 작업실에 도착하니 밤 한시가 가깝다.
나는 잽싸게 이와 손과 발을 물에 헹구고 이부자리도 몸을 쏙 집어넣으니 모든 여행의 기억들도 같이 나의 기억 창고에 쏙 들어가 처박히는 것 같다.
덕포항과 마을.
덕포의 폐가.
덕포 풍경.
덕포 풍경2.
덕포 풍경 3.
바다1.
여수 앞바다.
여수 바다.
연도 앞 바다.
첫댓글 마음이 평온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