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잘리 요가 에서 얻는 노년을 위한 지혜
노년은 결실의 계절이요 존재의 꽃이 피는
계절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얻은 것들을 나누는
계절이다. 성숙한 사람의 노년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다.
어린 시절의 어리석음이나 청년기의 흥분과 격정이
사라지고 삶에 평화가 찾아오는 시기다.
꽃은 가장 마지막 순간에 피고,
인생의 절정은 맨 마지막에 찾아온다.
살아라, 온몸으로 살아라. 몸과 사랑에 빠져라.
그러면 늙어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질 않는다. 그럴 때 노년은 질병이 아니라
아름다운 성숙이 된다.
인간의 일생은 노년에 대한 준비과정이다.
노년은 삶의 절정이다. 大尾를 장식하는 최고의
노래이며 춤이다.
속박의 씨앗은 집착이요, 깨달음의 씨앗은
사랑이다. 집착은 사랑이 없음이요, 사랑은 집착이
없음이다.
집착은 미래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애 대한 집착이
사지면 존재계는 사랑과 자유, 축복으로 넘친다.
참된 것은 완벽이 아니라 전체성이다. 완벽은
정체된 현상이다. 따라서 인간은 완벽해 질 수가
없는 존재다. 삶은 역동적이다. 삶 속에는 아무것도
완벽해 질 수가 없다. 삶은 완벽을 향한 끝없는
진화요 혁명이다.
예수, 붓다, 노자의 삶은 완벽한 삶이 아니라
전체적 삶이었다. 전체성과 완벽함은 어떻게 다른가?
완벽함은 수평선에서 움직인다. 완벽함은 미래 어딘가에
존재한다.
전체성은 이 순간, 지금 여기애 이루어 진다. 전체성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존재냐, 어떤 사람이냐에 관계없이
자기자신이 되는 것이 곧 전체가 되는 길이다.
삶을 전체적으로 만들라. 전체적으로
사랑하라. 자신 안에 무엇이 있다 해도 붙들지말라.
온전히 주고 전체적으로 흘러가라.
수영할 때는 전체적으로 수영하라. 걸을 때는
전체적으로 걸으라. 먹을 때는 전체적으로 먹으라.
삶을 공연장으로 만들지 말라. 무대에서
당장 내려오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실제로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잊으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이 아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가장 위대하다는 착각 속에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인간들이다.
시간은 무엇인가?
시간은 세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논
年代의 시간이다. 두번 째는 심리적인 시간이다.
세번 째는 실재의 시간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질 수록
인간들은 연대의 시간에 매달린다.
원시인은 시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연대적 시간을 파고 들어가면 심리적 시간이 나온다.
연대적 시간은 고정되어있다. 그러나 심리적 시간은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행복할 때와 불행할 때의 시간은 달라진다.
심리적 시간은 내면의 개인적인 시간이다.
연대적 시간은 역사요, 심리적 시간은
신화다. 연대적 시간은 육체와 대응하고 심리적
시간은 마음과 대응한다.
세번 째는 실재의 시간이다. 실재의 시간은
존재와 대응한다. 흐르지 않고 현재에 영원히 존재하며
나누어 있지 않고 전체로 존재한다.
시간은 인간들의 욕망에 의해서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흐름으로 태어난다. 시간과 흐름은 욕망이
투사한 환상일 뿐이다.
깨달음이란 이런 실재의 시간에
대한 순간적 체험이다. 또, 명상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영원한 현재에 머무는 것다.
구도자의 첫 번째 자질은 참됨이다.
속지도 속이지도 않고 진리로 부터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타인을 속이면 그로말미암아 자신 스스로 속는다. 거짓말을
자주하면 거짓말이 진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참됨이 곧 길이다. 어떤 길을 가든 참된 구도자는
목적지에 도달한다.
의식이 맑아지면 나뭇잎과 꽃, 새, 구름, 하늘, 별, 달,
태양...모든 존재들에 쓰여진 메세지를 읽을 수
있다. 이 메세지들은 신에게서 오는 메세지들이다.
인간들의 불행은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구하고 있는 대서 비롯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리를 떠나 그것을 찾고있다. 인간들은 구하는 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신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은
보지 못한다. 행복은 당신의 등잔불 밑에 있다.
구하는 마음을 당장 그만 두고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며 즐겨라. 천국은 이미
당신 속에 있다.
삶은 우리가 꿈꾸고 상상하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다. 삶에는 성도 있고, 돈도 있으며
인간들이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인간들의 욕망 속에 담겨있는 것이 삶이다.
욕망과 싸울 필요는 없다. 욕망과 싸우면 또
다른 욕망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한 욕망이 다른
욕망과 싸울 뿐이다.
욕망의 본성을 깨닫는 것은 욕망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등불에 어둠이 물러나듯 깨달음의 빛이
오면 욕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삶은 전체다.
이 전체에서 부분적인 것을 끄집어내보라.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일 뿐이다.
인내하면서 깨어있으라. 삶을 전체적으로
살라. 목적은 삶 속에 숨겨져 있다.
춤을 추라. 신은 매 순간 사방에서
많은 방식으로 무한하게 내려오고 있다.
삶을 전체적으로 살라는 말은 삶을 신처럼
살라는 말이다.
삶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삶은 성과 사랑과 분노, 그 모든 것을
아우른다.
점쟁이가 되지 말라. 勇者가 되어 삶을
있는 그대로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며
용감하게 살라.
나무는 에너지가 넘쳐흐를 때 꽃을 피운다.
에너지다 없는 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지복은 꽃과같이
에너지의 충만 속에서 자동적으로 흘러나오는
일종의 호사품이다.
배가 고픈 사람은 그림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이 없는
사람들은 구하는 데 정신을 쏟지 정원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림이나 정원은 호사품이다.
에너지가 존재의 내면에서 넘쳐흐르면
찬미와 변형이 일어난다.
에너지가 넘칠 때 우리들은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 에너지는 소유가 아니라 비움에서 나온다.
지복은 무의 향기다.
깨달은 사람은 마음으로 살지 않는다.
그에게는 틀도 지도도 없다. 그는 끼어들지 않는다.
그에게는 끼어드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려고 들지도 않고
나쁘다고 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는 아무것도 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는 신의 손안에 있으며 일이 일어나는 데로
내맡길 뿐이다.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좋다, 나쁘다 하지고 않는다.
깨달은 사람은 뒤를 돌아보거나 평가하거나
미리 앞은 내다보거나 계획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순간에 맡긴다.
순간에 모든 것이 만나고 온 존재계가
그순간에 참여한다.
깨달은 자는 참 자유인이다.
파탄잘리 요가를 읽고
버지니아 숲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