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푸 왕은 폭군이었는가?

그토록 유명하면서도 수수께끼가 많은 대 피라미드를 지은 장본인인 쿠푸 역시 모호한 부분이 많은 인물이다. 그의 본래 이름은 “크눔쿠푸”, 즉 “크눔 신이 보호하시는 사람”이었는데 쿠푸로 줄여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헤로도토스는 “케오프스”라고 불렀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 역사가인 마네토는 “수피스”라고 했다.
스네프루의 맏아들인 그는 20대에 왕위를 계승했다고 할 뿐 정확한 출생연도도 알려져 있지 않은데, 재위 기간도 23년(투린 파피루스), 50년(헤로도토스), 63년(마네토)으로 제각각이다. 제19왕조의 람세스가 전국에 자신의 조상을 수없이 만들어 놓은 반면, 그만큼이나 유명하고 권력이 컸던 쿠푸의 조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같은 제4왕조의 카프레, 멘카우레의 조상도 여럿 남아 있는 점을 보면 이상할 정도다. 유일하게 남은 것이 1903년에 발견된 7.6센티미터 크기의 작은 상아 좌상이다.
그것은 쿠푸가 백성을 가혹하게 부리고 나쁜 정치를 했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이 그의 조상을 깨트리고 없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쿠푸는 대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 신전을 폐쇄하고 사제들을 건축장으로 내몰았으며 심지어 자신의 딸에게 성매매를 시켜 건축자금에 보탰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헛된 전설에 바탕을 둔 헤로도토스의 악의적인 서술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쿠푸에게 올리는 제사가 그의 사후 2천 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는 기록을 보면 쿠푸가 악명이 자자한 폭군으로 남은 나머지 사람들이 그의 조상을 없애버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 피라미드 건설도 그렇게까지 국민을 혹사시킨 사업이었을 것 같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서 2기, 부왕을 위해 1기의 피라미드를 지음으로써 전체적으로는 건축 사업을 더 많이 일으켰던 쿠푸의 선왕 스네프루는 널리 국민에게 사랑받은 왕으로 전해지고 있다.
학자 군주의 영광과 불운
 단편적으로 남은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쿠푸는 학식이 높고 명석한 군주였던 것 같다. 그는 옛 왕조의 기록을 연구해 잊혀진 호루스 숭배의 전통을 되살렸으며 신이 자신에게 내린 계시를 전하는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또 수학과 천문학에 뛰어났다고도 한다. 피라미드 기공식 장면 묘사에서 그가 보여준 관측은 단지 의례적인 제스처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조세르 피라미드를 지은 임호테프가 신으로 숭배된 반면 대 피라미드의 건축 책임자인 헤몬은 그런 영광을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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