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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는 진행이라고 했지만, 진짜 제목은 시작과 진행입니다.
「첫번째 시작, 그리고 진행」
무더운 여름. 햇살은 사람들을 쪄 죽이겠다듯, 마구 반짝이고 있었다. 그 와중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뭐..한 남자가 더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유난히 더위가 많은 나는 결국 어느 까페로 들어갔다.
‘The way’
‘길’이라... 그 길이라는 뜻을 가진 까페는 시원했다. 종업원들의 인사소리, 여름을 알려주는 방울소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빵빵한 에어컨. 나는 그냥 앉아있기가 뻘쭘해 시원한 오렌지주스를 시키고는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풍선을 들고 가는 5살가량의 어린 여자아이와 엄마, 여름의 패션을 알려주듯 파격적인 옷을 입은 젊은 여자, 회사원인지 양복을 입고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 아저씨, 줄인 교복을 입고 웃으며 돌아다니는 학생들 등... 여러 사람들이 여러 가지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문득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보니 생각났다. 우리의 첫 만남이... 나의 진정 삶의 시작이...
“오렌지주스 나왔습니다.”
라는 친절한 여종업원의 말도 듣지 못한 채, 나는 서서히 우리들의 ‘첫 만남’ 회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들로 인해 만들어진 나의 ‘시작’에.
“씨팔, 뭘 꼬나봐?”
“훗, 너는 혼자고 우리는 20명이야. 우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 알지. 잔말 말고 시작하자구!”
그 때 나는 미쳐있었다. 외로움에, 우정에, 사랑에, 고독함에, 그리움에, 분노에, 질투에, 애정에, 부러움에. 온갖 감정에 미쳐있었다. 나는 외로웠고, 진정한 우정도 사랑도 없었다. 항상 고독함과 그리움에 허덕였고, 나를 버린 부모를 분노하고, 그렇지 않은 척 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다 가지고 있는 부모, 친구, 사랑을 나만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질투가 났었다. 그리고 부러웠다. 애정에 목말랐다. 가출을 해도 관심 가져줄 사람이 없다. 다쳐도 걱정해주고 치료해 줄 사람이 없다. 밥을 같이 먹어줄 사람이 없다. 애정을 줄 사람이 없다. 사람도, 재산도, 권력도, 아무 것도 없는 나이기에 겁이 없어 마구 날뛰었다. 날 좀 봐달라고, 관심 좀 가져달라고, 그리고 화풀이로. 마구 싸움을 일삼자,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문제아.”
“가정교육을 못 받고 자란 년.”
“꼴통.”
“미친 개.”
이것보다 더 심한 말도 많이 들었다. 결국 나는 더 비뚤어지게 나갔고, 결국 심각한 폭력사건으로 강제전학을 당했다. 교장이라고 불리는 늙은이는 말했다.
“퇴학이라도 당했으면 좋겠지만, 봐준 거니 좋게 지내라! 전학 가서 사고 치면 이번에는 진짜로 퇴학이 될 테니!! 부모도 없이 자라니 이렇지, 쯧쯧-”
교장이란 것이 이런다. 다른 선생들도 이런다. 고아인 게 내 잘못인가? 퇴학을 당해도 되, 내가 무서울까? 이런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한 대라도 치고 싶었지만, 더러운 몸뚱이를 만지고 싶지 않기에 결국 치지 않았다. 그냥 나와 버렸다. 뒤에서 계속 ‘고아’ ‘부모한테 버림받은 년’ ‘꼴통’ 이런 말들이 들려오는 듯 했다.
“아악- 그만 해! 그만 하란 말이야!!!”
들려오지는 않지만 들려오는 말들에 귀를 막고 악을 질렀다. 하지만 더욱 또렷해질 뿐, 결국 마구 뛰었다. 그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얼마동안 달렸을까? 지금은 어딜까? 그런 생각이 마구 들기 시작할 때 쯤, 멈췄다. 오랫동안 달렸는지 숨은 고르지 않고 헉헉 댔고, 다리도 풀렸다. 치마임에도 불구하고 털썩- 하고 앉았다.
“하하, 하하하하하하.”
웃겼다. 뭘 안다고...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뭘 보태줬다고, 나에 대해 그런 말을 한건지.
그리고 나도 웃겼다. 뭐가 무섭다고, 그딴 말은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들었는데, 뭐가 무섭다고 도망치고 있었던건지. 미친 여자처럼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 웃었다. 계속-
그 때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쳤다. 왠지 따스해 보이는 그림자를 가진 사람. 평소의 무관심은 어디로 가고 나는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꽤나 잘생긴 남자아이,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아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아이. 나도 그 아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자, 그 아이는 내 눈높이로 앉았다. 나랑 마주앉은 채로.
“왜 울어?”
“......”
“말 하기 싫구나? 그럼 말 하지않아도 되. 근데 혼자 울고 있으면 처량하니까 같이 있어줄 께.”
울어? 내가? 울고 있단 말이야? 믿기지 않아 내 눈가를 손가락으로 훓었다. 정말이다. 울고 있다. 내 손가락에는 눈물이 촉촉이 젓어있었다. 계속 손가락에 묻은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자 그 아이가 내 얼굴을 들어 볼에 입을 맞춘다.
“cho- 그만 울어.”
그리고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어린아이를 만지 듯 보드랍게, 조심스럽게. 나는 기습뽀뽀를 당한 것도 잊은 채로, 그 아이가 닦아주자 ‘좋다’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나는 애정을 받고 있다는 기분에 그렇게 들떴었나보다. 기분이 좋았었나보다. 어느 새 눈물을 닦아주고 내 얼굴에서 손을 떼자 아쉬웠다. 처음만난 사람이 이러다니, 라는 생각 보단 아쉬웠다. 왜 아쉬운지는 몰랐지만, 계속 나를 만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나를 계속 바라보다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쁘다.”
반곱슬이여서 웨이브를 한 것 같은 내 머리가 그 아이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 아이는 이내 손을 떼고,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반달눈을 접고는 웃었다. 왼쪽 볼의 보조개가 살짝 패였고, 여자보다 예쁜 웃음에 나는 넋이 나가있었다. ‘가지고 싶다.’라는 생각이 갑자기, 절실히 들었다. 나로선 많이 드는 생각이였지만, 느낌이 달랐다. 형식적이 아닌 ‘가지고 싶다.’라는 욕구가 들었다. 더 이상 같이 있으면 위험하다고 느낄 정도로-
“나는 희망, 유희망. 아무한테도 말 하지는 않았지만 말해줄게. 친한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 인데, 나는 유희왕이 별명이야. 내가 걔보다 훨씬 잘 생겼는데 말야.”
“......”
“나이는 18살, 인기 많고, 성격 좋은 O형. 좋아하는 음식은 맛있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은 맛없는 음식. 싫어하는 사람은 기억 안 남, 좋아하는 사람은 친구들, 그 외, 너.”
화아악- 하고 얼굴이 달아오른 것 같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왠지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면서 심장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었다. 처음 느끼는 왠지 이상하지만 편안한 기분. 얼굴이 빨개진 날 보며 그 아이, 아니 희망이는 날 보고 다시 웃었다. 그리고는 이번엔 볼이 아닌 입술을 훔쳤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인지, 아니면 쿵쾅 대는 가슴 때문일까? 어쨌든 놀란 마음에 눈을 크게 떴더니, 희망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허둥대자 희망이는 입술을 떼고는 손으로 내 눈을 감겼다. 그리고는 입술을 다시 한 본 훔쳤다. 왠지 구름 위를 떠다니는 느낌, 부드러운 솜사탕을 먹는 느낌, 달콤한 맛. 짜릿한,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느낌. 얼마쯤 지났을까, 희망이는 천천히 입술을 떼더니 또 잠시 뽀뽀를 한다.
“하아...”
“미안,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첫키스니까 너무 억울해 하지 말아줘.”
그리고는 후다닥 가는 희망이. 지금이라면 “야! 남의 입술 뺏어놓고 할 말이냐!!!”라고 윽박질러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한 여름, 첫 키스는 물론이고 두 번째 키스까지 빼앗긴 나에게 첫 사랑이 찾아왔다. 갑자기 나타나 입술을 빼앗고 바람처럼 가버린 유희망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내어주었다. 그 뒤, 나는 한동안 제 정신을 찾지 못하다가 제 정신을 되찾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리고 누웠다.
“하아...”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아까 있었던 일들을 쭉 생각해보았다. 왠지 내 운명이 방금 시작 된 기분이랄까... 아아...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기분을 찾았지? 항상 기분이 좋지 않은 때와 틀렸다. 맞다, 강제전학. 강제전학은 어디로 가지? 분명... 소리고였지? 희망이... 희망이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언제부터 계속 그 얘와 연결하게 된 거지? 하여튼 만나서 좋았어. 그리고 첫...키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자꾸 입술로 가는 손을 붙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언제부터 이렇게 약했니?”
나는 독하다고 소문날 정도로 성격이 좋지 않고 매사에 부정적이고 강했다. 약한 모습을 가리려고 강한 척 하기도 했지만 꽤 심지가 굳고,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만에 이렇게 되다니... 왠지 기분이 안 좋기도 했다. 그만, 그만 생각하자. 라고 생각하며 아까 뛴 것 때문에 더워 샤워를 했다. 시원한 물과 달콤한 비누거품과 꽤 오랫동안.
“......”
“전 학교에서 폭력사건에 관련돼서 강제전학 온 솔인형양?”
“네.”
“학생은 2-1반이구요, 사고는 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자마자 이런 말부터 들으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누가 이런 말을 듣고 헤벌레- 좋아하겠는가?
“웅? 웅~ 쌤~ 봐주세요~ 다음부터 안 싸울께요~~”
“엉! 저번에도 다음부터 안 그런다고 하더니 또 그랬잖아! 똑바로 손 안들어?”
“아잉~ 쌤! 제가 싸우고 싶어서 싸운 게 아니라 먼저 시비를 걸어서.”
있구나... 어? 유희망? 귀여운 목소리에 애교가 철철 흐르는 말투의 주인공은 유희망이였다. 유희망은 싸웠는지 얼굴 군데군데에 작은 상처가 있고, 벌을 받는지 두 손을 번쩍 들며 애교를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니 희망이는 나에게 눈을 돌렸다.
“어? 어제!! 쌤!! 얘 몇 반이에요?”
“어? 어, 2-1반.”
“나랑 같은 반이네? 데려다줄께요~”
“야! 유희망!!!”
특유의 눈웃음을 짓더니 내 손을 잡고 뛰는 유희망. 계단도 뛰고, 복도도 뛰고 하다 보니 앞에는 2-1반이 있었다. 그제야 손을 놔주는데, 질문을 산더미처럼 해댔다.
“또 만나지? 이름이 뭐야? 어제 묻는 걸 깜빡했지 뭐야? 우리학교에다가 같은 반까지... 우리는 인연인가봐!!”
“...솔인형, 그리고 그 정도로 인연이면 너희 반 전체다 인연이겠다?”
그렇게 말할 생각이 없었는데, 자연적으로 그런 말이 툭툭 나왔다. 하지만 희망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까칠하게 굴지 말구, Smile~”
“건들지 마.”
“그거 알아? 너 이쁘다? 근데 상처 받은 고양이 같아. 두 번 다시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서 사람을 피하는 고양이.”
고양..이? 상처 받은 고양이라... 솔직히 나는 소설처럼 그렇게 불행하게 살지는 않았다. 나혼자서 부모가 이혼한 거에 화나 삐뚤어진 것이다. 상처받았다라... 그 정도로 상처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냥 피식- 하고 웃기만 했다.
“자그마한 상처라도 덧나면 아프잖아. 그래서 그 때 그 때 털어놓는게 좋댔어.”
“그래서?”
“나한테 털어놓으라고~”
부드러우면서 시원스럽게 웃는 아이, 자기한테 뭐든 다 털어놓으라는 아이. 하지만 나는 계속 까칠하게 말을 하지밖에 못했다.
“아아! 나는 남자니깐 그런가? 그럼 여자도 아는데, 소개시켜줄까?”
“여자? 여자친구도 있어?”
“응! 꽤나 이쁘게 생겼대.(소근)눈이 좀 삔거지?”
여자친구?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진다. 살짝 뾰루퉁해 있는 날 보며 볼을 꾹꾹- 찌르더니 말했다.
“질투? 아아..역시 나는 인기가 많아.”
퍼억-
희망이 살짝 잘난 척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꼬구라졌다.
“으씽! 아프잖아!!! 나율희!!”
“다 들었어~ 너한테 여자친구는 딱 한 명 나인데, 눈이 좀 삐어? 역시 나는 인기가 많아? 저 여자아이 표정이 굳어진 것도 안 보이냐!!! 그리고 내가 호야 욕 하지 말랬지!!”
“폭력마녀야!! 진짜 짜장면 먹고 싶게 할래?”
“넌 자꾸 줘패고싶게 할래?”
“그리고 호영이 욕 안 했거든? 이 마녀야!!”
“눈이 삐었다매!!! 야! 말이면 단 줄 알아?”
멱살을 잡고 버럭버럭 질러대는 나율희라는 아이. 민호영은 남자친구인가? 왠지 안심이 되는 느낌에 나는 놀랐다. 왜.. 내가 안심이 되는 거야?
“베에- 아! 나율희, 얘는 솔인형이야! 친하게 지내!!”
“솔인형? 이름 이쁘다!! 나는 나율희야. 이 녀석이랑은 소꿉친구. 지금은 후회막심이구~”
“...솔인형.”
“우리 인형이가 좀 무뚝뚝해~ 딱 어울리네, 날라리랑 모범생.”
“야! 누가 날라린데!!!”
“에이~ 알면서! 호영이는?”
조금은 뾰루퉁한 표정을 짓는 율희. 그리고는 조금 화난다는 듯, 인상을 찌뿌리며 말했다.
“호야, 학생부실 갔어. 나 두고, 왜 각시를 놔두고 가냐고!!”
“(소근)나라도 놔두고 가고 싶겠다.”
“...야.. 다 다들리거덩? 아~ 인형아, 너는 어떻게 이 상종 못할 인간이랑 알게 됐니?”
“아...”
말해야하나? 울고 있을 때 만난 것? ...키스한 것 까지? 아! 잊어버리고 있었다. 한심하네, 어제 그렇게 좋아.. 아니 신경 쓰고 있었으면서. 그냥 멍하니 율희를 바라보고만 있는데, 희망이 나를 안으며 말했다.
“나랑 운명적으로 만났거든~ 우리는 지금 따끈따끈 호빵 같은 커플이야!”
“호오빵? 니나 호빵이지 인형이는 영~ 공주님, 공주님이 어울리지 않냐?”
“여어, 거기서들 뭐하시나?”
갑자기 안경을 쓴 한 남학생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율희는 눈을 반짝이며 그쪽으로 달려갔고, 희망은 입술을 살짝 삐죽거리며 손짓을 했다. 그 남학생은 율희가 말했던 남자친구이자, 희망의 친구 ‘호야’ 이자 ‘호영’이 같았다. 그렇게 과격했던 율희가 얌전해진걸 보니 꽤나 좋아하나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그 남학생이 희망에게 말을 걸었다.
“얘는 누구야?”
“친구 만나서 그 것 밖에 할 말이 없어? 또 율희한테 멱살을 잡힌 거 알아?”
“니가 잘못 했겠지. 안녕? 네 이름은 뭐야?”
“솔인형.”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율희가 애원을 하며 입모양으로 ‘이름 말해! 솔.인.형’이라고 하길래 이름을 말해줬더니, 참 이쁜 이름이다. 라며 방긋 웃었다. 그 아이는 사람들에게 하는 매너가 익숙한 것처럼 칭찬을 해주었다. 웃음은 멋지고, 부드러웠지만 왠지 아련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 4총사는 만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귀엽게 투닥투닥 거렸던 것 같다. 율희는 내가 귀엽다며 머리를 계속 만지며 놀면, 희망은 머리 빠진다고, 내꺼 라고, 만지지 말라고 계속 그러면서 자기도 머리를 만졌었다. 그렇게 자주 놀다보니 두 사람과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빨리 친해졌다. 하지만, 호영(풀네임:민호영)이랑은 쉽게 친해지지가 않았다. 먼저 다가가는 것에 내가 어색해하기는 했지만, 호영이는 매너를 지켜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 친하구나 라고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희망이와 율희가 놀고 있을 때면 으레 나와 호영이가 같이 있게 되는데 그 순간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색하다. 하지만, 그 때만큼은 호영이의 진심어린 미소를 볼 수 있었다. 희망이랑 율희까지, 벌써 2명이나 친구들이 생겼는데, 또 욕심이 든다. 저 아이가 나에게도 그런 미소를 지어주었으면 좋겠어. 그런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요즘 들어 가지고 싶은 게 많아졌다, 욕심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들이 당황스럽고 짜증났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하지만 역시 사람은 가질수록 욕심이 많아진 다더니, 점점도 욕심이 늘어가는 날 보며 두렵다. 언젠가는 다 헤어질 사람들. 나는 그 때 가서 후회할 지도 모른다. 그 때 내가 왜 이렇게 있었을까? 하고, 하지만 지금은 지금 그대로 행복하고 싶다. 나의 작은 소망이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너는 저 애들이 뭘로 보여?”
“어..어?”
“나는 자유로운 새 같아. 그래서 부러워.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게 만들지, 저 애들은.”
평소에 말을 잘 안하는 사이라서 말 붙인 것만 해도 놀랐는데, 호영이는 어려운 질문까지 던져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무척이나 씁쓸한 모습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 저 아이는 뭐가 그렇게 갑갑한 거지?
“하지만, 너도 좋은 점이 많잖아.”
“꾸민거야. 진실한 모습은 거의 없지.”
“...나는 널 잘 몰라. 얼마 전에 만난 착한 아이라는 것 밖에. 하지만 너는 착하고, 미소가
예뻐. 그 거 알아? 너 희망이랑 율희를 볼 때 마다 웃어. 엄청 예쁘게.”
“......”
“나는 너를 잘 모르지만, 그 미소만큼은 진심이라고 생각해, 진심이 아니야?”
“...피식- 고마워.”
호영이는 그냥 웃으며 자기머리를 헝크려트렸다. 그리고는 하늘을 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시원하고 예뻐 보이는 하늘을.
촤악-
“으악- 뭐하는 거야?!”
“거기서 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 무지 시원해!!”
“빨리와! 호야!”
희망이 집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우리에게 호스로 물을 뿌리는 그들. 그 덕분에 나와 호영이는 교복이 젓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미 젓은 것, 복수는 해야 될 것 아닌가? 그냥 있으면 억울하기도 하고 꽤 더운 날씨이기에 내가 참가해주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호영이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씩- 웃고는 너도 똑같은 생각이지? 라고 물었다. 그들은 뭐가? 뭐가? 라고 하며 묻지만 어떻게 알겠는가. 신기하게도 우리는 생각이 통했고, 그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준 뒤(조금 심한 말이지만 멍청하게도 “와! 와! 예쁘게 웃는다!” 라며 좋아했다) 호영이의 잽싼 움직임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호스를 차지했다.
“누가 물 뿌리래?”
촤악-
“으아아악! 뭐하는 짓이야!!”
“호야! 뭐해!”
“하하하! 물에 젓은 생쥐 꼴이야!”
크게 한 번 웃어주었더니, 둘 다 얼굴이 빨개져선 이번엔 물총으로 우리에게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너희야 말로!!”
“너희도 물에 빠진 생쥐 꼴이야!!”
“팀 나눠서 붙어보자 이거지?! 오케이!”
“인형아, 잘해보자!”
그렇게 재미있게 놀았다. 지금까지 힘들게 살았던 것을 날려버릴 정도로. 그리고 그 아이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내가 정화가 되는 느낌 이였다.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좋았었다. 그 순간, 순간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웃을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이랑 있으면 나는 ‘내’가 될 수 있었다. 거짓투성이의 내가 아닌 ‘진실’ 된 나. 그래서 정말로 행복했었다. 정말 불안할 정도로, 꿈에서 깨어나 꿈만 그리워 할 것처럼.
내일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그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정말로 행복하게….
“우아악! 힘들어!! 우리가 공부기계도 아니고 무슨 숙제가 이렇게 많냐구!!”
“그러게 말이야.”
“희망이 숙제 해주고 싶은 사람~”
“니가 해!! 내 것도 하기 벅차구만!!”
“희망아, 율희말이 맞아. 누워만 있지 말고, 네 건 네가 해.”
“치- 근데 호영아, 너는 왜 안 해?”
호영이는 꽤, 아니 엄청 어두운 표정을 하고는, 공책을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냥…. 우리 심심한데, 숙제 안 하고 놀까?”
“호야, 무슨 일 있었어?”
“…일은 무슨, 아무 일도 없는데?”
“호영이 말이 맞아! 한 번쯤 숙제를 땡 까주는 센스가 필요해!”
“호야가 놀자면 놀아야지~”
“유희망! 나율희! 너희 진짜… 숙제 안 해서 맞을 때면 너희가 더 쎄게 맞으면서… 하지만
처음으로 호영이가 놀자는데, 놀아줘야지?”
“유후~ 놀자!”
수학숙제를 안 해오면 세게 맞는다는 소리를 잊어버리고 신나게 놀 궁리를 했다. 특히나 율희랑 희망이는 자주 안 해가서 세게 맞지만, 뭐… 자기들이 괜찮다는데, 뭐가 안 괜찮겠는가? 뭐하고 놀지? 라고 나름 열심히 궁리를 하고 있을 때, 호영이가
“술 먹자.”
라고 제안했다. 술 먹을까? 도 아닌 술 먹자. 꽤 모범생이였던 호영이에게는 잘 안 나올 소리를 했지만, 희망이와 율희는 어깨동무를 하고는 찬성! 찬성! 하고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 자주 이랬다 듯, 조금 이상한 호영이의 태도가 신경 쓰였지만 희망이와 율희가 자꾸 소리를 지르고, 술을 엄청 꺼내오는 걸 보고는 잊혀졌다.
“으악! 그 걸 누가 다 먹으려고 그래!”
“내가 다 먹지~”
“그래, 나랑 율희가 다 먹을게, 걱정 마~”
“피식- 나는 왜 빼냐?”
“응응, 우리 호야도 많이 드세요!”
“호영이까지! 으아- 나 몰라. 내일 죽는 소리 해도 거들떠 안 볼꺼야!”
이 아이들이랑 있다 보니 마음이 약해졌는지, 아니면 이렇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면 누구나 거절을 못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술을 한 병, 한 병 따고는 컵에 부어 마시기 시작했다. 날라리였을 때도 잘 먹지 않았고, 술이 약하니 나는 술을 받아만 놓고, 정말 잘 먹는 얘들을 보기 시작했다. 희망이는 희망이답게, 크으- 이 맛이야! 라고 하며 마시고 있고, 율희는 쓰다, 써! 하며 얼굴이 빨개져선 먹고, 호영이는 묵묵히 그러면서도 많이 마시고 있었다. 호영이가 너무 조용해서 신경 쓰여 호영이만 바라보고 있는데, 희망이가
“웅, 왜 호영이만 봐? 호영이가 좋아진 거야? 나의 첫키스를 빼앗아가 놓구선!”
하며 말을 했다. 그 덕에 율희도, 호영이도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후후- 언줴 희마이의 촛퀴스를 빼슨거양?”
“……피식-”
“으악! 그런 질문 사양이야! 그리고 민호영! 너는 왜 그렇게 웃는 거야?!”
“자자~ 너두 마셔!”
정말로 취했는지 희망이는 병째 나에 입으로 부어버렸다. 나는 살아야 됐기 때문에, 꿀꺽꿀꺽 다 마셔버렸다. 한 병을 원 샷으로 말이다(물론 많이 못 먹었지만) 그리고… 필름이 끊겼다. 그래서 기억이 전혀 안 난다! 전혀 말이다!
“재웠다.”
“응.”
“헤헤- 내 연기가 좀 되지? 정말로 술 취한 것 같지 않았어?”
“내가 더 잘 했을껄? 아참! 너 첫키스라니?! 무슨 소리야?”
“아….”
희망은 얼굴이 빨개지며 대답을 회피했지만 결국 율희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횡설수설 하며 말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인형이가 울고 있길래, 다가갔는데 반했어. 그리고 했어.”
“오호… 첫눈에 반하고, 입술까지 훔쳐버렸다. 이건가?”
“하지만! 너라도 그 때는 그랬을꺼야!!”
“하긴… 인형이는 너무 사랑스러워서.”
“응응.”
“그런데… 호영아. 무슨 일이야? 혹시 그 일, 정말로 하게 된 거야?”
“………피식- 그런 것 같아.”
“정…말로? 언제? 율희는 어쩔꺼야?”
아까의 장난스런 분위기는 어디가고,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들과 얼굴이 교차했다.
“율희는 어쩔 수 없…”
“뭐가 어쩔 수 없어!!!! 나를 두고 내가, 너가 편할 것 같아?!”
“율희야…, 그럼 너는 인형이를 두고 갈 수 있어?”
“…….”
“내 생각에는 너랑 내가 같이 있어도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저 아이, 너희를 정말 사랑
해. 정말로 행복해 해. 너희들이 그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잖아. 안 그래?”
“하‥하지만!”
슬픈 표정으로 율희를 바라보다가 반박을 하려는 율희의 입을 손가락으로 막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희망을 가르켰다. 연인들의 싸움에 한 발 떨어져 있는 듯, 팔짱을 끼고는 커플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는 희망을.
“희망이도 있잖아. 어차피 돌아올 건데, 괜찮아.”
“그래! 희망이도 있잖아, 인형이에겐!”
“너는 여자친구잖아. 그 또래 여자애들한테는 여자친구가 더 중요하다고 한 사람이 누구였 지?”
나긋나긋하고 차분한 호야 음색이 들려오자마자, 울음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부모님들은 친했었고, 태어날 때도 같은 병원에서 태어나 옆에 있었다고 한다. 자아가 형성 되지 않았을 때는 목욕을 같이 한 적도 있고, 조금은 커 기억이 날 때부터도 호야와 떨어져 있는 적이 없었다. ‘꼬마 커플’이라고 할 정도로 지독하게 붙어있었고, 대기업 때문에 바쁜 부모님들 때문이였지만 같이 잔적도, 여름방학 때나 겨울방학 때나 여행도 같이 갔었다. 어린이라고 불려 지길 싫어하는 중학교 때는 파티에서 혼자 있는 희망을 만나 단짝이 되었고, 고등학교 때는 호야 부모님 때문에 조금 성향이 틀려지긴 했지만, 항상 같이 있었다. 떨어져볼 것이라는 생각을 안 했었다. 아니 하지 못했다. 만약에 이번과 같은 일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호야를 따라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호야가 막는다.
“울지 말고, 뚝.”
“에휴- 연인들끼리 잘 해보쇼. 나는 인형이나 데리고 잘게.”
“응….”
“흐흑-”
밤새도록 울었다. 물론 나를 위해 가지 말자 라고 했겠지만, 인형이는 그냥 핑계일 뿐이겠지만, 처음으로 핑계가 된 인형이도, 친한 친구가 간다는데 말리지 않는 희망이도, 또… 내가 제일 사랑하는‥ 이렇게 다정하지만 또 매정한 나의 호야도…. 정말로 미워서, 정말로 못됐다고 생각해서, 정말로 슬퍼서…. 펑펑 울었다. 호야의 품에서 계속 울었다. 어두운 밤이 지나고, 흐리지만 선명한 새벽빛이 들어와서 문득 잠에서 깨었다. 울다가 호야의 품에서 잠이 든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아니 분명 그러지만, 호야는 없었다. 다정하게 ‘그만 울어, 뚝. 어차피 만날 꺼야. 금방 끝내고 돌아올게.’라고 속삭여주던 호야는 없었다.
“어허허엉- 가지마!”
깨어나보니, 율희가 울고 있었다. 정말로 서럽게,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정말로 슬프게, 울고 있었다. 다가가고 싶었지만, 희망이는 고개를 저으며 가지말라고 했다. 뭐가 슬픈 거지? 라고 생각하고, 호영이는 어디있지? 라고 생각하고, 호영이가 달래줘야 할텐데, 라고 생각하고 결론에 도달했다. 호영이는… 지금 어디있는거지? 정말로… 어디있는거지? 쉽사리 말이 안 떨어지고, 왠지 마음이 울적했다. 몇 시간 동안 울어, 지친 율희가 잠들었을 때 즈음, 희망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갔어.”
“…….”
짧은 한 마디.
“호영이 갔어, 조금 멀리 있는 곳으로. 금방 만날거야.”
살짝은 달래듯, 살짝은 매정하게, 살짝은 금방 울듯이, 살짝은 원망스럽다 듯이… 그렇게 희망이는 말을 했다. 어디로 간지는, 왜 간지는, 언제 돌아오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아니 물어 볼 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오열을 하는 그 녀석이기에. 짧은 시간을 보았지만, 우정을 중시하는 그 녀석이기에. 짧은 만남에도 슬퍼하는 그 녀석이기에.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인형아!”
“푸웃- 앞머리가 뭐야~”
“왜~? 귀엽지? 너도 세트로 해야 되!”
“으악~ 뭐야!”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더 이상 율희는 울지 않았다. 평소처럼, 아니 훨씬,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만큼, 밝았다. 희망이도 자주 툴툴대긴 했지만, 괜찮았다.
“유희왕도 했다구! 우리 4인방…”
다만, ‘우리’ ‘호영이’ 와 관련 된 말을 문득 할 때면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 때마다 희망이는 머리를 율희의 머리를 헝크러트리고, 웃는다.
“야! 지각하면 책임지고, 점심까지 쏴라!”
“…야! 오늘 점심은 니가 쏜다며!!!”
“베에- 약오르지롱~”
“큭큭- 어쨋거나 나는 꽁짜밥 얻어먹겠네?”
“으악- 솔인형!”
이렇게 재미있지만, 호영이가 빠져 조금은 심심한, 허전한 고교생활을 끝마치고,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틈틈이 해 돈을 모은 거와 졸업하고 1년여 동안 아르바이트를 더해 희망이와 율희가 있는 대학교를 진학했다. 율희는 선배였지만, 희망이는 나와 CC를 하겠다며 나랑 같이 진학을 해 율희 보고 선배라고 부를 위기에 처한 것만 빼고 순조로웠다. 율희는 정말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2년 정도 대학교에 있고, 특별히 빨리 졸업을 했다. 우리는 3년을 다 채우고, 율희는 의사 인턴 생활을 거의 끝마치고 의사로, 희망이는 자기 아버지의 회사 사장으로(희망이, 율희, 호영이는 대기업의 자제였다. 게다가 희망이는 사장 역할을 썩 잘 해냈다.), 나는 희망이의 개인비서로, 이렇게 살았다. 어른이 되어서 자주 못 봐서 서운 하기는 했다. 하지만, 작은 소망은 거의 이루어져있었고, 마지막 퍼즐만 끼워 맞추면 완성이여서, 계속 기도를 하는 중이다.
“푸웃-”
사람들이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계속 피식피식- 혼자 웃고 있지만, 이 웃음을 멈출 수도, 멈추고 싶은 마음도 없다 생각하며 계속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한참을 안 마셔 미적지근한 주스를 빨대로 휘휘 저어가며 웃음을 계속 흘리고 있었다. 지루하게 혼자 있는 다고 할지 몰라도, 혼자서도 이 추억만 있으면 영원히 재밌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턱을 괴곤 다시 창 밖을 보려고 하는데 ‘문자 왔당♡ 희망이의 문자면 아이, 사랑스러워! 하고 보고!! 율희의 문자면 베에- 한 번 해주고 보고!! 다른 사람이면 무시해버려라!!!’ 라는 문자메세지 알림이 왔다. 으윽- 부끄러, 전에 핸드폰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더니 이 걸 했구나. 어쨌든 문자메세지를 보니
“우웅- 희망님은 약속장소에 도착! 마이 달링은 어디있는 감> <”
이라는 유쾌하고 발랄한 문자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메시지 소리가 들렸고,
“아참♡ 율희는 나와 함께 있다네!!”
라는 문자를 받고 돈을 내고 까페에 나와 약속장소로 향했다. 시계탑에는 멋진 남녀가 손을 붕붕 흔들고 있었고, 그 뒤에는…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나를 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호영아!”
율희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그 얼굴에 그를 안아버리고 말았다. 물론 율희와 희망이 때문에 금방 떨어졌지만 말이다.
“완전… 온 거야?”
“응, 나 돌아왔어!”
“우리 쟈기, 엄청 보고 싶었던 모양이네?”
“아무리 친구라도 질투나는 건 나는거야~”
조금은 뾰루퉁하지만 활짝 펴진 율희와 희망이의 얼굴에 웃음을 날려주었다.
“그 동안 어디에서 지낸거야? 뭐했어?”
“어? 안 알려줬어?”
“니 이름만 나오면 분위기가 꿀꿀해져서 물어볼 수가 없드라!”
“어? 내가 그렇게 싫었나?”
“그런가 보다!”
우리는 다시 4총사가 되었고, 아니 4총사가 뭉쳤고, 그 동안의 일을 들으러, 신나게 놀러 오랜만에 활짝 펴진 웃는 얼굴을 들고는 신나게 뛰어갔다.
나의 시작은 그들을 만나면서 시작되었고, 나의 사랑은 그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과 같이 있어 내 심장은 뛰고, 인생은 진행되고 있고, 그들을 만나 내 인생은 항상 진행되고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 그들을 만나서 내 존재를 알 수 있었고, 또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항상 웃을 수 있었고, 사랑 할 수 있었고, 우정을 나눌 수 있었고, 감정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나의 시작이자 진행이자, 내 존재이다. 영원한 끝은 없다. 그들을 만남으로 인해 항상 시작이 될 것 이고 진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