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1일 (수)
문산역 건너편입니다. 이곳 정류장에서 11번 버스를 타면 율곡선생 유적지로 갈수 있습니다
율곡선생 유적지 까지는 11- 3번 버스가 다니지만 배차시간이 2시간이나 되여 만나기 어려우니 11번 버스(15분 간격)를 타는 것이 좋습니다. 유적지 입구에서 내려 20분 정도 걸으면 되니까요
버스에서 내려 율곡선생 유적지로 가는 길입니다. 법원여자 중학교도 지나 갑니다.
그늘도 없는 찻길이라 좀 덥긴 합니다. 약간의 오르막 길입니다.(뒤 돌아본 풍경)
언덕을 넘으면 다 온거나 같습니다. 내리막 길로 500미터만 더 가면 되니까요.
율곡선생 유적지인가 했더니 율곡교육연수원 이네요. 유적지는 연수원과 붙어 있습니다
유적지 입구입니다. 들어가서 왼쪽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합니다. (어른 1,000원)
입구 왼편에 보이는 비각은 율곡 이이 선생의 신도비가 모셔져 있는 곳 입니다.
선생의 신도비는 파주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여 있습니다.(높이 223 폭 109 두께 49센치)
1631년(인조 9)에 건립 했는데 이항복이 비문을 짓고 신익성이 전액을 김상용이 썼습니다
1986년에 건립한 기념관입니다.
기념관 앞에는 멋진 소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는 제사를 지내는데 오늘(보름) 제사를 마친 제관들을 만났습니다.
기념관 내부 입니다. 2층으로 된 전시실에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여 있습니다.
율곡선생은 1536년에 태여나 1584년 49세의 나이로 돌아 가셨습니다.
기념관을 나와 묘소로 가며 돌아본 풍경입니다. 끝에 정문과 매표소가 보이네요.
제실입니다. 조금 전 제관들이 이곳에서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묘소 입구에 있는 연못입니다.
연못 위에 있는 여현문을 들어서면 묘소가 있습니다.
계단길이 보이죠.
가운데엔 이이선생과 신사임당 그리고 이이의 맏형과 맏아들의 묘가 있고 좌우 언덕에는 그외의 가족들의 묘가 있습니다.
계단길을 올라가며 찻번째 보이는 묘가 이이 선생의 맏아들 경림의 묘입니다. 이이 선생에겐 세분의 자식(아들2 딸1)이 있었는데 부인인 곡산 노씨는 자식을 두지 못했고 첩실인 용인이씨는 경림을 또다른 첩실인 전주김씨는 경정과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딸은 김집에게 출가 했습니다. 김집의 첫부인은 일찍 죽어 두분이 금슬좋게 살았다고 하네요.
경림의 묘 위에 경림의 할머니인 신사임당의 묘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이원수와 합장된 묘입니다.
이경림의 묘표입니다. 통정대부(정3품,당상관) 평창군수 덕수이공 휘 경림묘 숙부인곡산노씨부라고 써 있습니다
신사임당 묘 앞의 문인석입니다. 뒤에 있는 새로 세운 묘비에는 증 숭정대부(종1품 하) 의정부 좌찬성 행 사헌부감찰 덕수이공 휘 원수지묘 증 정경부인 사임당 평산신씨 부" 라고 써 있습니다. 비를 보면 돌아 가신후에 숭정대부로 추증된걸 알수 있습니다.
신사임당 묘소의 원래 묘표입니다. 사임당은 병을 얻어 남편보다 10년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사임당(1504~1551)은 슬하에 4남 (선,번,이,우) 3녀를 두셨습니다.
신사임당 묘 위에는 신사임당의 큰 아들이며 율곡선생의 맏형인 선의 묘가 있습니다. 장사랑(종9품) 남부참봉 행곡 덕수이공 휘 선 지묘 배 공인 선산곽씨 부좌 라고 써 있습니다.
신사임당 묘 앞의 문인석입니다.
산소와 주변에는 무릇꽃 밭처럼 무릇꽃들이 만발 했습니다.
율곡 이이 선생의 묘소입니다.
형의 묘와 어머니의 묘 그리고 큰아들의 묘가 아래에 있습니다.
선생의 묘소 앞에는 망주석과 문인석 한쌍이 있습니다.
율곡선생의 묘 앞 문인석입니다.
율곡선생의 묘비입니다. 문성공 율곡 이선생지묘 정경부인 곡산노씨묘ㅇ 라고 써 있습니다.
부인의 묘는 합장하지 않고 율곡 선생의 뒤에 묻었습니다.
율곡선생 묘 뒤에서 본 풍경입니다.
묘 뒤에 산신석도 있군요
주변엔 멋진 노송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로 9번이나 과거에 장원급제한 선생은 퇴계 이황 선생과 함께 조선의 성리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꼿꼿한 선비였으나 선생도 사랑했던 기생이 있었습니다
선생이 39세때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여 황주고을을 찾았을때 12살된 유지라는 기생을 처음 만났습니다. 선생은 너무 어린 기생을 보고 웃으며 시침을 들어 온것이냐" 라고 물었고 유지는 명을 받았습니다 라고 답하며 원한다면 동침할 태세 였습니다. 선생은 어린 기생과 합방하는건 짐승이나 할 짓이라며 유지를 곁에 두고 시중만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9년후 선생과 유지의 두번째 만남이 있었습니다. 선생이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려 평양으로 가던 길에 황주에서 유지를 만난 것이죠. 유지는 스무살이 넘은 매력적인 여자로 변해 있었 습니다.그러나 이때도 선생은 유지를 범하지 않았답니다.
다시 1년이 지난 다음해에 누님의 병 문안차 황주에 들른 선생은 세번째로 유지를 만나 함께 몇일을 보냈으나 이때도 아무일 없이 그냥 돌아오는 길에 절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였습니다 날이 저물어 주위가 어두워진 시간에 누가 선생의 방문을 두두립니다.문을 열어보니 황주에서 이별한 유지가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난감 했겠죠, 문을 닫으면 仁을 상할것이요, 동침을 하면 義를 해칠것이다. 선생은 이렇게 말했죠.문을 닫으면 인정이 없는 일이요 그렇다고 동침을 한다는건 옳지 않은 일이란거죠
선생은 동침을 택 했습니다. 방으로 유지를 들인 선생은 방 가운데에 병풍을 치고 불을 끈후 자려 했으나 잠을 이루지 못하자 밤을 새기로 합니다. 병풍을 걷어 내고 불을 켠후 양편에 누워 정담을 나누다 유지를 향한 연시를 씁니다. 전문 3장 573자의 장문의 연서는 이렇게 탄생 되었습니다. 이 연서는 현재 이대 박물관에 보존되여 있습니다.
슬픔을 머금고 정인을 떠나보내지만 서로 마음으로 깊은 사랑 나누었네 다시 태여나면 네 말대로 따르겠지만 병든 사내라 마음조차 재로 변했네
다음생이 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면 연꽃피는 나라에서 너를 다시 만나리 (연서의 일부입니다)
율곡선생은 유지와 함께 밤을 보낸 3개월 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지가 달려와 삼년상을 치른후 절로 들어 갔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그 후 일은 모릅니다.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서 지금도 율곡을 그리고 있을까요. 율곡 선생도 유지와 마지막 밤을 보내던 날,동창이 밝도록 한 잠 못자고 이별 한것이 가슴에 한이 된다고 했습니다
당신과 나는 서로가 모르는 사이였지 그렇건만 천리 밖에서 우리가 이렇게 맺어지다니 어찌 숙연(宿緣)이라고 아니하겠오 당신과 헤어진 뒤 어두워서야 깊은 산 속에 이르러 객사는 적적한데 처마에는 빗물만이 영롱히 달렸습니다 심지를 돋우어 등잔불을 밝히고 혼자 있자니 외로운 그림자만이 나를 따를 뿐이오 외로운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오 날이 밝아 고개를 넘자니 산골 물은 졸졸 흐르고 산새도 함께 울고 있구려 처량한 신세는 당신만이 그리울 뿐 당신이 들려주던 피리소리라도 들어보고 싶으나 이이 하겠소
(목계 강흔이 성주기생 은대선에게 준 연시. * 원문 출처 : 조선기생이야기 심영구저)
묘소 아래에 있는 자운서원입니다. 선생이 돌아간 후 31년이 지난 1615년(광해군7)에 지방의 유림들에 의해 창건된후 1650년(효종1)에 사액 받았습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때 훼철 되였다가 1970년 복원 되였습니다.율곡선생과 함께 김장생,박세채 두분의 위패도 모셨습니다
자운문을 들어 서면
강당인 강인당이 있고
좌우에 동재(입지재)와 서재(수양재)가 있습니다.
강인당 건물 양 옆에는 500년 가량된 느티나무가 있는데 사진은 동재 위의 나무입니다.
서재위의 느티나무입니다.
강인당 뒤에 있는 재향공간인 문성사로 들어 가는 문입니다.
문 앞 좌측에 있는 자운서원묘정비입니다. 율곡선생의 덕행과 자운서원의 내력을 기록한 비입니다. 1683년(숙종9)에 건립 했습니다.우암 송시열이 짓고 곡은 김수증이 썼습니다.
문성사입니다.
가운데 율곡 선생이 모셔져 있고
좌우에 김장생(1548~1631)선생과 박세채(1632~1695)선생이 배향되여 있습니다.
문성사
문성사에서 내려다 본 풍경
자운서원을 방문하면 꼭 들러야 할 곳. 약수터입니다. 문성사 쪽문을 나와
등산로로 조금 오르면
산 입구에 있습니다.
다른 약수터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치만
이 물이 얼마나 찬지 손을 대면 3초만에 뼈까지 시립니다. 우리나라 최고라고 말할수는 없겠지만 제가 본 약수 중에는 최곱니다. 꼭 한번 드셔 보세요.
약수터에서 본 문성사와
강인당입니다.
끝. |
출처: 바위솔 원문보기 글쓴이: 바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