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96부록1 과거시험 3과에 장원급제한 인물(저헌공...)
과거시험 3과에 장원급제한 인물들
초시에만 16회 합격한 권기
3과 장원급제한 인물들
조선시대 관료를 채용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과거시험을 거쳐 채용하는 방법이고, 둘째로는 음보로 고관, 충신, 공신, 유현의 후손 중에서 뽑아서 임명한 것이었다. 세째로는 유일로서 학덕이 높은 사람으로 관직에 뜻이 없어 초야에 묻혀있는 덕망높은 인물을 사림에서 천거하여 관직에 등용시키는 방법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정치의 중심인물은 역시 과거를 통해서 양산되었고, 과거를 통하는 길이 자신이나 가문에 떳떳하고 정상적인 길로 생각하였다.
과거는 조선시대에 있어서 선비들의 유일한 입신양명의 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관련된 수많은 일화가 있었으며 이에 급제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것이다. 그래서 권기라는 인물은 초시에만 16회나 합격했으나 본시험은 실패하였고, 박문규(순창)이라는 노인은 83세에 문과에 급제했고 조수삼이 83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던 사실은 과거시험의 비중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들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듯이 조선왕조의 모든 길은 과거(급제)로 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3과 장원급제자는 열 명 안팎이 되는 데 아래와 같다.
3과 장원 급제자
이름 연령 본관 시험명
최고관직
이석형 63 연안 진사시 생원시 문과 문과
신종호 42 고령 성균시 문과 문과중시 이조참판
채수 67 인천 문과 초시 복시 전시 호조참판
노수신 76 광주 문과 초시 복시 전시 영의정
권상신 67 안동 진사시 문과초시 전시 호조.병조판서
권람 50 안동 향시 복시 전시 좌의정
김구 47 광산 한성시 생원 진사 부제학
김수항 61 안동 성균시 진사시 알성문과 영의정
이존중 59 전주 사마시 문과 전시 예조참의
이상이 인물들을 보면 연안이씨 중흥의 조로 일컬어지는 이석형은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보필하며 연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신종호는 영의정 신숙주의 손자로 문장. 시 . 글씨에 뛰어났으며, 채수는 삼장에 연이어 장원하는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5조참판을 지내고 호조와 병조판서를 지낸 권상신, 한명회와 함께 수양대군을 부추겨 계유정란을 일으킨 권람, 조선초기 4대 서예가이자 인수체의 창시자 김구, 김상헌의 손자이자 송시열과 함께 서인으로 당쟁을 이끈 김수항, 전주 이씨가 낳은 유일한 삼장장원의 이존중(광평대군 후손) 등은 모두 뛰어난 역사적 인물들이었다.
부록12고대 한문수필의 문체
사(辭)
▶한문 문체의 하나로서 본래는 초나라에서 처음 발생한 초사(楚辭)의 일종이다. 초나라 굴원이란 사람이 쓴 어부사(漁父辭)와 한무제의 추풍사(秋風辭), 진나라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가 유명하다. 情을 붙임이 깊고 말은 느리다라고 평가되는 문체다.
어부사(漁父辭) / 굴원(屈原)
▶굴원기방(屈原旣放) 졓?載??遊於江潭) 행음택반(行吟澤畔) 안색초췌(顔色憔悴) 형용고고(形容枯槁) 어부견이문지왈(漁夫見而問之曰) 자비삼려대부여(子非三閭大夫與) 하고지어사(何故至於斯) 굴원왈(屈原曰) 거세개탁(擧世皆濁) 아독성(我獨淸) 중인개취(衆人皆醉) 아독성(我獨醒) 시이견방(是以見放)...
▶굴원이 이미 추방되어 강과 연못가에서 할 일없이 노닐매, 강가를 거닐며 시를 읊는데, 안색이 형편없이 되었고 모양새가 여위었다. 어부 한 사람이 보고 물어 가로되, 그대는 그 떵떵거리고 살던 삼려대부가 아닌가?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굴원이 가로되 온 세상이 다 흐렸는데 나 홀로 맑으며, 뭇 사람들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있으니 이 때문에 추방을 당했다네..
부(賦)
▶한나라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부(賦)는 운문의 일종으로서 초사(楚辭)에 근원을 두고 발전하였다. 부(賦)의 특징은 서술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것, 즉 어떤 뜻을 펴서 진술하는 문체다. 사물을 잘 형용하는 것을 위주로 하며 시어는 화려하고, 서정성이 매우 뛰어난 문체로 설화나 신화적 공상을 서술하여 낭만적 감정이 풍부한 작품이 많다.
적벽가 (赤壁歌) / 소동파(蘇東坡)
▶임술지추(壬戌之秋) 칠월기망(七月旣望) 소자여객범주(蘇子與客泛舟) 유어적벽지하(遊於赤壁之下) 청풍서래(淸風徐來) 수파불흥(水波不興) 거주속객(擧酒屬客) 송명월지시(誦明月之詩) 가요조지장(歌窈 之章) 소언월출어동산지상(少焉月出於東山之上) 배회어두우지간(徘徊於斗牛之間) 백로횡강(白露橫江) 수광접천(水光接天) 종일위지소여(縱一葦之所如) 능만경지망연(凌萬頃之茫然) 호호호여빙허어풍(浩浩乎如馮虛於風) 이부지기소지(而不知其所止) 표표호여유세독립(飄飄乎如遺世獨立)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 어시음주낙심(於是飮酒樂甚) 고현이가지( 舷而歌之) 가왈(歌曰) 계도혜난장(桂櫂兮蘭 ) 격공명혜소류광(擊空明兮芟流光) 묘묘혜여회(渺渺兮予懷) 망미인혜천일방(望美人兮天一方)
▶임술년 가을 칠월 16일에 소동파가 여러 손님들과 더불어 배를 띄우고 적벽강 아래에서 노닐다. 맑은 바람은 산들 불고 물결은 잔잔하니, 술잔 들어 손님에게 권하며 시경 명월의 시를 암송하고 요조의 장을 노래하다. 조금 있으니, 달이 동산 위에 떠 남두성과 견우성 사이를 배회하더라. 적벽강에 흰 이슬 비끼어 있고 물빛은 하늘에 닿은 듯 아득히 멀다. 쪽배 가는 대로 맡겨놓고 만경창파 넓은 곳을 견디어 가노라니, 넓고 넓어 마치 허공을 타고 바람을 탄 것만 같아 그치는 데를 알지 못하겠으며, 바람에 휘날려 속세를 잊고, 자유롭게 홀로 서 날개 돋쳐 졐탉굼?되어 오르는 듯 하더라. 이렇게 즐거우니 술을 마시고 즐기기를 심히 하였다. 뱃바닥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니, 노래에 가로되, 계수나무 삿대와 목란 돛대는 달빛 스민 투명한 물을 박차고 달빛을 거슬러 오른다. 아득한 나의 심회여, 하늘 저쪽 미인을 바라노라.
▶설(說)은 풀어 해석하는 것이요, 진술하는 것이다. 그 뜻을 해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술회하는 것이니, 논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본격적인 논설문인 논의(論議)보다는 약간 가볍고 평이한 것이며, 상세하게 남김없이 설파하는 것을 주지로 하는 문체다. 주역(周易)의 설괘(說卦)에서 비롯된 문체로서 다분히 비유의 방법을 동원하여 설득하므로 설화를 읽는 흥미가 있다.
졓茱?雜說) - 한퇴지(韓退之)
▶세유백락(世有伯樂) 연후유천리마(然後有千里馬) 천리마상유(千里馬常有) 이백락불상유(而伯樂不常有) 고수유명마(故雖有名馬) 지욕어노예인지수( 辱於奴隸人之手) 병사어구력지간(騈死於槽 之間) 불이천리칭야(不以千里稱也) 마지천리자(馬之千里者) 일식혹진속일석(一食或盡粟一石) 식마자(食馬者) 부지기능천리이식야(不知其能千里而食也) 시마수유천리지능(是馬雖有千里之能) 식불포역부족(食不飽力不足) 재미불외견(才美不外見) 차욕여상마등(且欲與常馬等) 불가능 (不可得) 안구기능천리야(安求其能千里也)
▶세상에는 말을 잘 알아보는 백락과 같은 사람이 있고,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천리마가 존재하는 법이다.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과 같은 사람은 항상 있지 않다. 그러므로 비록 명마가 있다하나, 다만 노예의 손에 길러져 욕되게 하며, 마구간에서 다른 말과 마찬가지로 죽고 마니, 천리마라 일컫지 못한다. 말 중에서 천리마라 하는 것은, 한끼에 곡식 한 섬을
다 먹어치운다. 말을 먹이는 자는 그 말이 능히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인 줄을 알지 못하고 투덜거리며 먹일 뿐이다. 이 말이 비록 천리를 달릴 능력이 있을지라도 먹이가 배부르지 않으면 힘이 모자라니, 그 능력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또 다른 말들과 같고자 하나, 같을 수도 없으니, 어찌 그것이 능히 천리마이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해(解)
▶해(解)는 풀어 해석하는 것이니, 사람에게 의문이 생기면 그것을 곰곰히 따지고 분석하여 그 숨은 의미를 찾아내게 마련이다. 한나라 때의 양웅이란 사람이 해조(解嘲)라는 작품을 지은 것이 시초
진학해(進學 解) / 한퇴지(韓退之)
▶석자(昔者) 맹가호변(孟軻好辯) 공도이명(孔道以明) 철환천하(轍環天下) 졸노우행(卒老于行) 순경수정(筍卿守正) 대론이흥(大論以興) 도참어초(逃讒於楚) 폐사어난릉(廢死於蘭陵) 시이유자(是二儒者) 토사위경(吐辭爲經) 거족위법(擧足爲法) 절유이륜(絶類離倫) 우입성역(優入聖域) 기우어세하여야(其遇於世何如也)
▶옛날의 맹가(맹자)는 분별하고 따져 말하는 것을 잘하여 공자의 가르침인 유가(儒家)의 학설을 명백하게 밝혀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수레를 타고 천하를 유세하다가 마침내 길에서 꼬부랑하게 늙었다. 순경(순자)은 바른 도를 지켜 유가의 훌륭한 의논(議論)이 크게 일어나게 하였다. 그러나 모략에 걸려 초나라로 도망갔으며 결국 난릉에서 몰락하여 죽었다. 이 두 사람의 유학자는 말을 뱉을 것 같으면 곧 경서가 되었고 발을 한번 들면 천하의 법도가 되었다. 견줄만한 동류(同類)가 없이 넉넉히 성인의 경지에 들고도 남았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에서 받은 처우(處遇)는 어떠하였던가?
서(序)
▶서(序)는 사물의 차례를 정하여 서술하는 글이다. 서서(書序) 송서(送序) 후서(後序) 증서(贈序) 등등이 있다. 서서(書序)는 글의 맨 앞에 쓰는 서문, 후서(後序)는 책의 뒤에 붙이는 글, 송서(送序)는 지인(知人)과 이별할 때 석별의 뜻을 펴는 것이다. 증서(贈序)는 당나라 때 발생한 것으로써 자기의 의사를 글로 적어 보내는 것이고, 수서(壽序)는 사람의 수명을 축하하는 글이다.
춘야원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 이태백(李太白)
▶부천지자만물지역려(夫天地者萬物之逆旅) 광음자백대지과객(光陰者百代之過客) 이부생약몽(而浮生若夢) 위환기하(爲歡幾何) 고인병촉야유(古人秉燭夜遊) 양유이야(良有以也) 황양춘소아이연경(況陽春召我以煙景) 대괴가아이문장(大塊假我以文章) 회도리지방원(會桃李之芳園) 서천륜지낙사(序天倫之樂事) 군계준수(群季俊秀) 개위혜련(皆爲惠連) 오인영가(吾人詠歌) 독참강락(獨 康樂) 유상미이(幽賞未已) 고담전청(高談轉淸) 개경연이좌화(開瓊筵以坐花) 비우상이취월(飛羽觴而醉月) 불유가작(不有佳作) 하신아회(何伸雅懷) 여시불성(如詩不成) 벌의금곡주수(罰依金谷酒數)
▶무릇 천지는 만물이 쉬어 가는 여관과 같고 시간은 백대를 걸쳐 흘러가는 나그네이다. 그리하여 뜬구름 같은 우리 인생은 꿈과 같으니, 기쁨이란 그 얼마나 될 것인가. 옛 사람들이 촛불을 잡고 밤까지 놀이를 한 것은 참으로 까닭이 있는 일이었다. 하물며 화창한 봄의 아지랑이 낀 경치가 나를 부르고, 천지는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재주를 빌려주었음에랴 놀지 않고 어쩔 것인가. 도리화 만발한 정원에 모여서 형제들이 즐거운 놀이를 펼친다. 많은 동생들은 모두가 혜련처럼 시재(詩才)가 뛰어난 인물들인데, 오직 나만의 시는 강락에게 부끄럽다. 그윽한 봄경치 감상은 아직 그치지 않고 고상한 담론은 갈수록 맑아지는데, 꽃을 앞두고 돗자리 펴고 새깃 같은 술잔을 날리며 달에 취한다. 뛰어난 작품이 나오지 않으면 어찌 그윽한 회포를 펼 수 있으랴. 만약에 시를 못 질 것 같으면, 그 벌은 벌주 삼배(석잔)를 주던 규칙에 따를 것이다.
기(記)
▶기(記)는 어떤 일의 자초지종을 글로 분별하여 기록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기(記)는 일의 유래를 그 사실에 충실하게 기술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희우정기(喜雨亭記) / 소동파(蘇東坡)
▶정이우명(亭以雨名) 지희야(志喜也) 고자유희(古者有喜) 즉이명물(則以名物) 시불망야(示不忘也) 주공득화(周公得禾) 이명기서(以名其書) 한무득정(漢武得鼎) 이명기년(以名其年) 숙손승적(叔孫勝敵) 이명기자(以名其子) 기희지대소부제(其喜之大小不齊) 기시불망야(其示不忘也) 여지부풍지명년(予至扶風之明年) 시치관사(始治官舍) 위정어당지북(爲亭於堂之北) 이착지기남(而鑿池其南) 인류종수(引流種樹) 이위휴식지소(以爲休息之所) 시세지춘(是歲之春) 우맥어기산지양(雨麥於岐山之陽) 기점위유년(其占爲有年) 기이
미월불우(旣而彌月不雨) 민방이위우(民方以爲憂) 월삼월을묘내우(越三月乙卯乃雨) 갑자우우(甲子又雨) 민이위미족(民以爲未足) 정묘대우(丁卯大雨) 삼일내지(三日乃止) 관리상여경어정(官吏相與慶於庭) 상고상여가어시(商賈相與歌於市) 농부상여변어야(農夫相與 於野) 우자이희(憂者以喜) 병자이유(病者以愈) 이오정적성(而吾亭適成)
▶정자에 비로써 이름을 붙이는 것은 기쁨을 기록함이다. 옛날에는 기쁨이 있으면 곧 물건에 이름을 붙인 것은 잊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가령 옛날 주공은 진기한 곡식을 얻자 가화편(嘉禾篇)을 지었고, 한무제는 보물인 정(鼎)을 얻음으로써 그 해에 연호를 원정(元鼎)이라 이름하고, 손숙은 적을 이기고 적장 교여(僑如)를 잡음으로써 그 아들의 이름을 교여(僑如)라 지으니, 그 기쁨의 크고 작음은 같지 아니하나, 그 잊지 않음을 보인 것은 한가지이다. 내가 부풍(扶風)에 부임하여, 이듬해 비로소 관사를 다스리고, 정자를 당의 북쪽에 짓고, 못을 그 남쪽에 파고, 물길을 끌어들여 나무를 심음으로써 휴식의 장소를 삼았다. 이해 봄에 보리를 기산의 남쪽에 뿌리니, 그때 쳐본 점괘에는 풍년이 들겠다 하였다. 그러나 얼마 아니해서 한 달이 지나도록 비가 아니 오고, 백성이 당장에 근심을 하였다. 이윽고 삼월 을묘일에 비가 내렸다. 갑자일에 또 비가 왔다. 백성이 아직 모자란다고 하였다. 정묘일에 큰비가 내려, 삼일에 그쳤다. 관리는 서로 더불어 뜰에서 축하하고, 장사치들은 서로 더불어 시장에서 노래하고, 농부는 서로 더불어 들에서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근심하던 자는 기뻐하고, 병든 자는 나았다. 그리하여 나의 정자도 마침 이루어졌다.
문(文)
▶문(文)의 특색은 산문이 있는가 하면 운문(韻文)이 있고, 혹은 초사(楚辭)를 본뜨기도 하며, 또는 사륙(四六) 변려문처럼 짓기도 한다. 또한 신에 맹세하는 내용이나, 혹은 풍유를 써서 은근히 어떤 대상을 비유하는 것 등 다양하다. 제문(祭文)이나 조문(弔文)도 그중 한가지다
조고전장문(弔古戰場文) / 이화(李華)
▶고쇠혜역진(鼓衰兮力盡) 시갈혜현절(矢竭兮弦絶) 백인교혜보도절(白刃交兮寶刀折) 양군축혜생사결(兩軍蹙兮生死決) 항의재(降矣哉) 종신이적(終身夷狄) 전의재(戰矣哉) 골폭사력 (骨暴沙) 조무성혜산적적(鳥無聲兮山寂寂) 야정장혜풍서서(夜正長兮風淅淅) 혼백결혜천혈혈(魂魄結兮天 ? 귀신취혜운막막(鬼神聚兮雲 ? 일광한혜초단(日光寒兮草短) 월색고혜상백(月色苦兮霜白) 상심참목(傷心慘目) 유여시야(有如是耶)
▶북소리 약해져 힘은 다하고, 화살은 모자라 시위줄 끊어지고, 흰 칼날이 부딛히매 보도(寶刀)는 꺾어지고, 양군이 바싹 달려들어 생사를 걸고 대결할 때, 항복하여 오랑캐에게 부림당하며 늙어 죽을 것인가. 싸워서 뼈를 모래나 자갈밭에 내던질 것인가. 새소리도 없이 산은 적적하고 밤은 참으로 길기도 하여 바람만 울어대고, 혼백은 맺히어 하늘도 슬퍼 보이고, 귀신이 몰린 듯 구름은 뒤덮이고, 햇빛은 차가워 풀도 자라지 않고, 달빛은 쌀쌀도 하여 서리가 하얗게 내리니, 마음 아프고 눈이 아리기를 이 같은 것이 또 있겠는가?
전(傳)
▶전(傳)은 어떤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는 글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열전이 붙어 있는 것이 전(傳)의 시초다. 그 뒤 사람들은 전(傳)을 지을 때 거의 대부분 이것을 본떠 지었다.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 도연명(陶淵明)
▶선생부지하허인(先生不知何許人) 역불상기성자(亦不祥其姓字) 택변유오류수(宅邊有五柳樹) 인이위호언(因以爲號焉) 한정소언(閑靖少言) 불모영리(不慕榮利) 호독서(好讀書) 불구심해(不求甚解) 매유의회(每有意會) 편흔망식(便欣忘食) 성기주(性嗜酒) 가빈불능상득(家貧不能常得) 친구지기여차(親舊知其如此) 혹치주이초지(或置酒而招之) 조음첩진(造飮輒盡) 기재필취(期在必醉) 기취이퇴(旣醉而退) 증불인정거류(曾不吝情去留)
▶선생이 어느 곳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또한 그 성이나 이름도 자세하지 않다. 집 가에 다섯 그루 버드나무가 있어서 그것을 따라 오류(五柳)라고 호를 하였다. 조용하고 차분하여 말수가 적고, 부귀영화를 탐내지 않았다. 즐겨 글을 읽지만 꼬치꼬치 파고들려고 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마음에 맞는 글을 발견할 때마다 문득 흔연히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곤 하였다. 성품이 술을 즐기나, 집이 가난하여 항상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 친구들이 젿戮?사정을 알고 간혹 술을 준비하여 그를 부르면, 와서 마시되 금방 다 마셔버린다. 한번 마실 것 같으면 반드시 취할 때까지 마시는데, 이제 취하여 물러갈 때는, 일찍이 가고 옴에 있어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였다.
비(碑)
▶비(碑)는 돌에 새기는 글이라 하여 석문(石文)이라 하며, 사람의 공적을 칭송하여 돌에 새기는 글이다. 묘소에 세우는 것은 후세에 생겨난 풍습(風
習)이며, 옛적에는 살아있는 사람의 덕을 기려 돌에 새긴 것이 많았다. 또 비문은 죽은이 뿐 아니고, 산천, 성지(城池), 궁실, 다리. 길 등에 기념을 위한 목적으로도 세웠다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廟碑) / 소동파(蘇東坡)
▶필부이위백세사(匹夫而爲百世師) 일언이위천하법(一言而爲天下法) 시개유이참천지지화(是皆有以參天地之化) 관성쇠운(關盛衰運) 기생야(其生也) 유자래(有自來) 기서야(其逝也) 유소위(有所爲) 고신려자옥강(故申呂自嶽降) 전설위열성(傳說爲列星) 고금소전(古今所傳) 불가무야(不可誣也)
▶아무 벼슬도 없는 일개 필부로서 百代의 스승이 되고, 한마디 말로써 천하가 좇아야 할 규범이 되게 하였다. 이런 사람은 다 천지가 만물을 육성하는 큰 활동에 참가하여 국운의 성쇠에 관여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출생하는데는 그 어디서부터인가 오는 데가 있으며, 가는데도 무엇인가 하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申侯이와 呂侯는 숭산으로부터 하강하였고, 부설(傅說) 죽어서 기미성(箕尾星)이 되어 성좌에 참열(參列)하였던 것이다. 옛적부터 지금에 전해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다.
변(辯)
▶원래 변(辯)이란 문체는 서로의 잘잘못을 따져 소송하는 것이라 한다. 각자의 주관적인 의견을 내세워 사물을 구별하여 명백히 하는 글이다. 변은 판별의 뜻을 가지고 있으니 언행의 시비 진위를 바로잡아 대의(大義)로써 이를 논단(論斷)하는 것이다
오엽봉제변(桐葉封弟辯) / 유자후(柳子厚)
▶고지전자유언(古之傳者有言) 성왕이동엽여소약제(成王以桐葉與小弱弟) 희왈(戱曰) 이봉여(以封汝) 주공입하(周公入賀) 왕왈희야(王曰戱也) 주공왈(周公曰) 천자불가희(天子不可戱) 내봉소약제어당(乃封小弱弟於唐) 오의불연(吾意不然) 왕지제당봉야(王之弟唐封耶) 주공의이시언어왕(周公宜以時言於王) 졋灌諭銹?不待其戱) 졓鎌舅抉봐淄?以賀以成之也) 졋灌瀛읍?不當封耶) 주공내성기부중지희(周公乃成其不中之戱) 이지이인(以地以人) 여소약자위지주(與小弱者爲之主) 기득위성호(其得爲聖乎) 차주공이왕지언(且周公以王之言) 불가구언이이(不可苟焉而已) 필종이성지야(必從而成之耶) 설유불행왕이 동엽희부사(設有不幸王以桐葉戱婦寺) 역장거이종지호?(亦將擧而從之乎)
▶옛일을 전하는 자의 말이 있다. 주나라의 성왕이 오동잎으로 홀을 만들어서 어린 아우 숙우에게 주면서 이것으로써 너를 후에 봉한다 하였다.
주공단이 그 말을 듣고 왕궁에 들어가 축하의 말씀을 아뢰었다. 성왕은 말하기를 그것은 장난으로 한 짓이라 하였다. 주공단이 아뢰기를 천자는 장난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성왕은 어린 아우를 당(唐)의 후(侯)로 봉하였다. 나의 뜻은 그렇지를 않다. 왕의 아우를 마땅히 제후로 봉해야 한다면 주공은 마땅히 때를 가려서 왕에게 진언했을 것이지, 왕의 장난을 기다려서 축하의 말을 아뢰고, 장난으로 한 말씀을 가지고 일을 성사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또 후로 봉하는 것이 부당한데도 주공은 그 도리에 맞지 않 은 장난을 기회 삼아 토지와 인민을 어린 사람에게 주어서 주인을 삼게 하였다면, 주공은 최고의 지혜가 있는 성인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주공은 왕의 말은 함부로 할 것이 아니라고 고집했는데, 가령 불행히도 왕이 오동나무 잎으로써 부녀자나 시종들을 상대로 장난하였더라도 또한 일일이 이것을 다 이루어줄 것인가?
표(表)
▶윗사람에게 올리는 글을 표(表)라 한다. 즉 일의 순서를 밝혀 임금을 깨우쳐서 충성을 다하는 글을 표라 한다. 임금에게 상주(上奏)하는 글의 종류에는 장(章)렷?表)려?奏)레?駁)의 4종이 있는데 육국(六國), 진한(秦漢)시대에는 모두 상서(上書)라 하였는데 그 이후에는 모두 표(表)라 하였다. 주로 천자에게 올리는 것을 표(表), 제후에게 바치는 것을 상소(上疏)라 하였다.
출사표(出師表) / 제갈공명(諸葛孔明)
▶신본포의(臣本布衣) 궁경남양(躬耕南陽) 구전성명어난세(苟全性命於亂世) 불구문달어제후(不求聞達於諸候) 선제불이신비비(先帝不以臣卑鄙) 외자왕굴(猥自枉屈) 삼고신어초려지중(三顧臣於草廬之中) 자신이당세지사(諮臣以當世之事) 유시감격(由是感激) 허선제이구치(許先帝以驅馳) 후치경복(後値傾覆) 수임어패군지제(受任於敗軍之際) 봉명어위난지간(奉命於危難之間) 이래이십유일년의(爾來二十有一年矣) 선제지신근신(先帝知臣謹愼) 고임붕기신이대사야(故臨崩寄臣以大事也)
▶신은 본시 벼슬도 없는 촌놈으로서 몸소 남양에서 밭이나 갈며, 이 난세에 간신히 생명이나 보전할 뿐, 나의 이름이 제후의 귀에 들리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선제(先帝)께서 저를 비천하다 하지 않으시고, 외람하게도 스스로 굽히시어, 세 번이나 저의 초라한 집을 찾으시며, 신에게 당시의 세상사를 물으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선제(先帝)께 견마의 충성을 바칠 것을 허락하였지요. 뒤에 장판교 싸움에 패하여 나라가 기울어
질 즈음 나라를 구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 이래 이십일년이 지났습니다. 선제(先帝)께서 저의 신중함을 아는 까닭에 임종하실 적에 저에게 적군 토벌과 한실(漢室)중흥의 큰 일을 당부하셨습니다.
서(書)
▶서(書)서는 친지 사이에 주고받던 편지글이다.
졒㈖饑滑玲?與韓荊州書) / 이태백(李太白
▶백문(白聞) 천하담사상취이언왈(天下談士相聚而言曰) 생불용봉만호후(生不用封萬戶侯) 단원일식한형주(但願一識韓荊州) 하령인지경모(何令人之景慕) 일지어어차(一至於此) 기불이주공풍(豈不以周公風) 궁토악지사(躬吐握之事) 사해내호준(使海內豪俊) 분주이귀지(奔走而歸之) 졓溝楮鍮?一登龍門) 졕竊별】賈?則聲價十倍) 졏弩結鍮編응舊恥?所以龍蟠鳳逸之士) 개욕수명정가어군후(皆欲收名定價於君侯) 군후불이부귀이교지(君侯不以富貴而驕之) 한천이홀지(寒賤而忽之) 즉삼천지중(則三千之中) 유모수(有毛遂) 사백득영탈이출(使白得潁脫而出) 즉기인언(卽其人焉)
▶나 이태백이 듣건대, 천하의 논객들이 서로 모여서 말해 가로되, 태어나 만호후에 봉함을 받는 것도 쓸데없고, 다만 원컨대 한번 형주자사인 한조종(韓朝宗)에게 알려지고 싶다 한다. 어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공을 우러러 사모하기를 하나같이 이에 이르도록 하였는가. 그것은 공이 주공과 같은 인물로서 토포악발의 풍도를 가지고 손님들을 접견하여 온 나라의 호걸 才士들로 하여금 분주히 공의 문하로 들어오게 함이 아니겠는가? 공을 한번 만나고 나면 그 인물의 성가가 십배나 더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 까닭으로 재능이 있는 선비들이 공에게 인정받고자 한다. 공이 부귀한 인물로서 교만하지 않고, 나 같은 몸도 가난하고 천하다하여 홀대하지 않는다면, 옛날 평원군의 삼천 식객 중에 모수가 있었듯이 뛰어난 인재가 나올 것이다. 나 이태백으로 하여금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듯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준다면내가 곧 그 모수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