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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주일 예배
본문<롬>13;11~14
제목; 끝까지 기도한 모나카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진 책입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론이라고 말하는 이 책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탈선과 타락과 방종과 방탕
남을 속이는 일에
도둑질도 하고 건달의 세계에 있어도 보고
혼외 임신에
불신 결혼으로 가출을 밥 먹듯이 하고
이단에 빠져도 보고 그 이단의 지도자로도 활동한 이력을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진솔하게 하나도 숨김없이 고백한 어거스틴의 일대기로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존 번연의 천로 역정과 함께
꼭 읽어보기를 권면합니다
내가 이렇게 권해도 여러분은 안 읽을 것이지만
종교인이 아닌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면
게다가 남편과 아내 혹은 자녀들과 골육지친들이
꼭 주께로 돌아와
예수 믿고 주께로 돌아오길 소망하며 기도하는 모든 중보자들은
이 책을 꼭 읽어 보게 되기를 권면합니다
특히 오늘의 주인공
기도하는 어머니 모나카는 빛의 갑옷을 입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따라해 봅시다...빛의 갑옷을 입자!!
그리고 가정의 달에
저와 여러분이 받고자 하는 주님의 음성은 빛의 갑옷을 입자입니다.
여러분..빛의 갑옷을 입고 아내가 기도하면
남편이 영적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엄마가 기도하면 자녀가 일어나 변화된다는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늘 주장하는 것은
엄마가 변하면
자녀가 변화되고 아빠가 변하면 가정이 변하는데
그 가정이 말씀과 기도로 전인격적인 변화를 얻으려면
빛의 갑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빛은 예수님이요
갑옷은 말씀과
기도라는 사실도 깨달아 알고 오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으로한 설교는 다음 주로도 이어지니
잘 기억하며
잘 듣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에베소서 기자는 이 갑옷을
엡 6;13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적인 완전 무장을 갖추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 한 번 해 볼까요**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 허리에는 진리의 띠를
가슴에는 의의 흉배를 발에는 복음의 신을
한 손에는 믿음의 방패를
또 한 손에는 성령의 검을 들라는 것입니다,
저는 당대 신앙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어머니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오늘은 엄마이자 아내 되시는 분들에게 권면 합니다.
남편을 현재보다 더 큰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오늘부터 기도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자녀에게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리는
형통을 원한다면
새벽을 붙잡고 기도하시기를 권면합니다.
늘 말씀을 붙잡는 아빠
그리고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이 빛의 갑옷을 입은 가정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삼서1;2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아멘..이렇게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그가 누구이든
그의 범사에 즉 세상의 모든 일을 포함한 범사에
잘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간구하라 했으니 그 간구하는 소명을 받은 자가
아내요
어머니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은 특히 롬13;13절은 성 어거스틴을 회심케 한 말씀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거스틴과 함께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성 어거스틴의 아명은 아우구스티누스인데
그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교부철학의 대성자로 불리어졌으며
사도 바울 이후
기독교 신학의 교리를 확립하는 데 공헌했는데
깊이 있는 신학의 연구로 삼위일체설·원죄설·구원설을 주장하여
기독교 교리의 신학적 바탕을 확립한 인물로 알려져
특별히 어거스틴의 참회록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참회록에 기록된 내용의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세상의 어떤 자녀들보다도 더 많은
탈선과 타락, 말썽과 가출을 밥 먹듯이 행한
한 자녀
그 한 자녀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이 땅의 많은 부모와 어미들에게 위로를 주게 될 것이며
우리의 할 일은
기도뿐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드리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는 마니교를 믿는 아버지와
기독교에서
삼현모로 꼽힐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웅변 등에 소질을 보이자,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정치가로
만들기 위해
철학자 아플레아우스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하기도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훗날 서양의 가장 위대한 교부이자,
성인의 반열에 올라
존경과 추앙받지만 젊은 시절에는 방탕함을 일삼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니교라는 종교 자체가 영은 소중하나 육은 더러운 것이라 하며
방탕과 쾌락을 선도하기도 했기에
여기에 영향을 받은 그는 공부보다는 장난과
유희에 몰두하였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정치적으로 출세시키기 위해 공부를 시킵니다.
그러나 그는 16세 때
가정 형편이 기울어 학업을 중단한 채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는 불량한 친구들과 사귀며
도둑질과 거짓 연애 등
나쁜 일을 저지르며 방탕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제멋대로인 아들을 구제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빨리 결혼시키려고 했으나 어머니는 반대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죄악에서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훌륭한 법률가로 만들기 위해
돈 많은 친구의 도움을 얻어 그를 카르타고에 있는
평민학교에 입학시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도 난폭한 학생 집단과 어울렸고.
혁명가로 자처하는 그들과
한밤중에 죄 없는 행인을 덮치기도 했습니다.
한 때는 철학에 심취하기도 하면서
당시 젊은이들은
여자들과 연애하는 일에 열심이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도 마찬가지로
밤이나 낮이나
연애하는 데 시간을 다 보냅니다.
그가 어느 정도로 방탕하며 방황했는가 하면
'세상을 즐겁게 살자!'는 것이
그의 유일한 신념이자 좌우명일 정도였습니다.
이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버지 임종 시에야 기독교에 돌아옵니다.
그러나 곧바로 가출하여 19세 때에는
어머니의 허락 없이
노예 출신의 여자와 동거하였고, 아들까지 낳았으며.
그는 항상 육체적인 유혹과 이상의 괴리 사이에서 고민했는데,
마니교에 귀의함으로써
악의 문제에 관한 자기의 고민을 해결하려고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9년 동안
마니교에 충실하여 지도자로서 존경받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향을 떠난 지 4년 만에 그는 아내와 3세 된 아들을 데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버리고 마니교 신자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보자,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를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는 29세 때에는 로마의 수사학의 교사로
초빙을 받았으며.
카르타고에 와 있던 어머니가 이에 반대했으나
어머니를 속이고 로마로 몰래 도망쳤으며.
1년 후에는
수사학 교사로 초빙 제의가 들어와서 그곳으로 건너갑니다.
이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곳에서 당시 가장 뛰어난 인물로 알려진
밀라노 주교의 강론에
큰 감화를 받고 나서, 성경 속에 깊은 계시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32세 되던 해의 늦은 여름,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펴서 읽어라!"는
어린이들의 노랫소리를 듣게 되었고,
이 말은 라틴어로 톨로로게..인데 이 말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반복해서 들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느끼는 바가 있어 성경을 집어 펼쳤는데
펼친 그 성경 본문이
바로 오늘 본문 (로마서 13:13)입니다..
이 말씀으로 깊은 감동을 받은 그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그는 곧바로 통회 자복하며 회개한 후에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세례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이 말씀으로 인한 회심의 사건이 바로
그의 심령 속에 불붙게 된
영적 각성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돌이키는 일이 거룩한 부흥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이 회심의 사건을
결코 우연한 일로
혹은 어쩌다가 생긴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배후에서 섭리하시는
간섭하심의 손길이었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일어나게 된 필연의 결과물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기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인치심의 역사가
기도의 영으로 회개의 영으로 임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회심의 사건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지만
그 회심의 마중물은 바로
빛의 갑옷을 입고 말씀과 기도로 끝까지 아들을 케어 한
모니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잣대로 보았을 때 어거스틴은 분명
그야말로 싹수가 노란 자였습니다.
미래의 희망이 안 보이는 그래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어둠의 자식이었고
머리는 좋고 똑똑은 한데
막무가내로 아무렇게나 살아온 그의 인생행로 때문에
역량이 전혀 안돼 보이는
그래서 세상은 진작 그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를
끝까지 붙잡고 사랑으로 품어
말씀과 기도로 케어 한 인물이 바로 그의 어머니 모니카입니다.
모니카는 로마의 관원이며
부유한 지주였던
파트리키우스(Patricius)라는 비 기독교인과 결혼하여
누미비아에서 거주하였는데...시작은 불신 결혼이었지만
결혼 후 모니카는 줄곧
남편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모니카는
아내의 기도로 남편의 영적인 잠을 깨운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의 말씀에 따라 모니카는
말보다는 자신의 절제되고
단정한 품행을 남편의 회심을 위한 도구를 삼았습니다.
그녀의 온유와 겸손은 그리스도의 양어머니라고 불려 질 정도로
그의 신앙심은 깊었습니다
그 결과 남편 파트리키우스는 거의 인생의 종착점에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의 기도로 남편을 회심케 하고 구원받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런 역사가 바로 기도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류가, 이런 기적이, 이런 성령의 역사가 나올 수 없다는 것으로
회심은 기도의 힘과 능력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믿고 또 믿어
의심하지 않고 기도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니카는 종종 다투는 사람들 사이에서
피스메이커로 통하였고,
교회의 선생과 각처를 돌아다니며 성경을 강의하며
어린 심령들을 깨웠고
목회자를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교회의 여인이기도 했습니다.
모니카는 그녀의 가족이
실제로 모두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구원을 위하여 16년을 기도했습니다.
한 두 번하다가 만 것이 아니라
돌아올 때까지 온전한 인내로 기도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그녀는
자녀를 주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교훈하고 훈계하였습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 아우구스티누스를 위해
성경을
최고의 학문으로 알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음의 욕정과
자만을 경계하는 어머니의 교훈을 무시하였고
한 여인과 동거에 들어갔으며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모니카는
이런 아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아우구스티누스를 위한
모니카의 간절한 기도는 장장 30년 동안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한두 번하고 끝낼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까지 기도하시겠습니까?
응답이 올 때까지
천국에 가서도 기도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교수로 로마에 갔을 때 모니카도
함께 동행 합니다.
모니카는 밀란에서 아들의 회심을 소망하며
암브로시우스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암브로시우스와 교류하기를 원했는데,
실제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당시 밀란의
유명한 수사학의 대가요
설교자 암브로시우스 감독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수사학이라는 것은 말하는 기법, 남을 설득하는 기술로
이것이 발전하여
평론과 논술과 스피치와 연설 기법 등의 학문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와 이러한 만남이 훗날
아우구스티누스로 하여금
기독교인이 되는 한 계기로 작용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해 늘 축복해 주어야 하는 데
특별히 환경과
만남의 축복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특히 요즘에는 그야말로 이웃을 잘 만나야 하고
친구도 잘 사귀어야 합니다.
참으로 맹모삼천지교가 절실히 필요한 때요
저는 우리 손주들을 일반학교가 아닌 기독 대안 학교를 보내
말씀으로 성경적 가치관으로 공부하게 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이 지속되던 어느 날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돌아와 정원에서 묵상을 하던 중
회심의 사건이 일어나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은 단순히 개인적인 결단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의 모친 모니카는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가지고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던 위대한 어머니였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나긴 기다림의 시기동안 그녀의 단 한 가지 관심은
아들의 영화로운 삶이 아니라
그 영혼이 영성과 인성을 겸비한 하나님의 형상 회복
참 그리스도인으로의 회복이었다는 것입니다
후일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고백록]에 "나의 어머니는 젖과 함께
구주 그리스도의 이름을 마시며 살게 하셨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젊은 시절
진리를 찾아 마니교에 심취하였다가
33세에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와
정원에서의 체험을 통해 회심하고
후일 힙포의 주교가 되어 활동했던
위대한 서방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종교개혁의 선봉에서 활동하다가
어머니의 기도가 맺은 개신 기독교의 역사상 가장 값진
열매였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소망하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출세한 자녀의 열매입니까? 갑부가 된 열매입니까?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소천한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고백록에서
그 때의 심정을 회상하며
"그동안 눈물로 나를 지켜내신 어머니는 지금
내 시야에서 떠나가셨지만,
나는 하나님의 시야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에게 어떤 이미지
어떤 부모의 상을
저들 자녀의 추억거리가 되게 하고 있습니까?
나의 부모는 언제나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이야
이런 이미지
이런 추억이 가장 바람직한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니카는 빛의 갑옷을 입은
기도의 여인이었습니다.
모니카의 헌신과 기도는 이교도 남편을 신앙으로 인도한 것은 물론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부, 성 어거스틴을 길러내었던 것입니다.
한 평범한 여인의 포기하지 않았던 끈질긴 인내의 기도가
성어거스틴이라는
성령의 열매를 얻게 된 것을 기억하시고
이제부터는 내 자녀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할 것인가를
적용하고
결단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본문 묵상과 함께
돌아온 자녀
돌아온 탕자 어거스틴의 이야기는 다음 주에 합니다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