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실 숲”을 아시나요? 이균호의 행랑코너
대양면 무곡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어도 “무실 숲”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1950~1960년대 “무실 숲”의 봄은 연일 소풍 나온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인솔교사의 호각소리에 놀란 장끼는 공중을 선회하다말고 보리밭으로 숨어든다.
다람쥐는 날 잡아 보란 듯이 고목나무 가지를 오가며 상춘객들과 숨바꼭질을 한다.
길가에는 엿장수들의 가위장단과 아이스깨끼, 음료수, 건빵, 사탕 등 과자 파는 사람들로 붐빈다.
정자나무 아래 반석자리는 6.25 이후 대양초등학교 교사(校舍)를 잃은 학생들의 수업 장소로 이용된 적이 있었고 사시사철 인근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각광을 받았던 곳이다.
무성한 숲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무실”이라 불리었다는 설이 있고 마을 앞 용수배기 들녘과 대목리 색실에서 바라보이는 댕기들 사이에 대양면 소재지 덕정 뒷산인 부엉더미와 연접하여 온갖 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자연의 보고였다.
그러나 1959년 사라호 태풍을 겪은 이후 개발에 밀려 농지로 바뀌어 그 옛날의 생태계가 사라져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밤이면 부엉이 소리 들리고 초여름을 달구는 아카시아 꽃향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70년대 중반 농지정리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노송과 아카시아 숲 사이로 마을길이 나 있었고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평원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수 만평의 울창한 숲이 장관을 이루었다.
군데군데 수백 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두꺼운 그늘을 만들어 한 여름의 피서지로 손색이 없었고 아름드리 노송과 굴참나무 왕버들 미루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속은 종달새 지저귀는 새들의 낙원이었다.
수양버들이 드리워진 실개천에는 붕어 버들치가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숲속 연못(동네새미)은 뱀장어 메기 자라 등이 서식하고 칠팔월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
일찍이 이처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자연의 보고는 없었을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동쪽에는 산세가 수려한 대암산과 무월봉이 우뚝하니 솟아있고 동네 뒤에는 매봉산이 있으며 멀리 남동쪽 구곡재(아홉사리)너머 국사봉을 바라보며 남향으로 자리잡은 평화로운 마을이다.
상주주씨 안악이씨 추계추씨 보성오씨 등 150여 호가 살았으며 마을 입구를 가로질러 울창한 숲이 바람벽을 치고 고목들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버티고 있었다.
또한 이 곳은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이다. 지선 1011호 지방도로를 따라 구곡재를 거처 신반 창녕으로, 무룡재 너머 초계로, 하니골을 지나 본천 영전으로, 재렵재 너머 정양 합천읍내로, 이계리를 거쳐 용주 팔산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1011번 지방도로가 마을 앞을 지날 만도 한데 무산정(동네서당) 유생들이 마을 앞으로 신작로가 나면 역촌이 된다는 주장에 멀리 구곡재를 지나는 버스 뒷모습만 보일 뿐 신작로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무실 숲!
아카시아 꽃향기가 달콤한 단오 날에는 팽나무 높은 가지에 동아줄로 그네를 달았고
청포도 산머루가 익어가는 7월 백중날에는 동네 청년들의 씨름판이 벌어지곤 했다.
추석 명절 때 열리는 콩쿨대회는 인근에 사는 수백 명의 주민들이 운집하여 노래실력을 견주었으니 사시사철 행락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중의 명소였다.
보리가 익어가고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이 되면 찔레꽃이 만발하고 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하던 무실 숲!
70년대 당시만 해도 새마을 기와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도릇도 뽕짝 노래 가락이 구성지고 막걸리 주막집이 길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던 곳이다.
합천대야신문 (2012년 5월 22일)
첫댓글 무실숲은 동네에 있는 일부 대나무 숲과 함께 마을 공동 소유이며
숲이 마을을 가려야 잘된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몇년전에는 무곡저수지를 준설할때 나온 흙을 숲에다가 쌓아서 지금은 좀 높아진 상태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것들이 나라에서 기릴만한 재물은 아니지만 지방의 역사에는 기리남을 만한 보고들이지요.
가까이 사시는 분들이 그 전통이나 역사를 잘 보존할 수 있도록 남겼으면 합니다.
하다못해 이런 향우들의 카페에라도,...
참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