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야기-그들의 믿음,희망,사랑,노래
민영진 지음
제1부 그땅의 사람들
70년대초에 작가는 이스라엘로 공부하러 가면서 여행안내를 또하나의 목적으로 삼았다.방문객을 안내하려는 준비를 했고 실천했다.
순례를 보통 하루는 북쪽 (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수가성,세겜,사마리아,므깃도,나사렛,가나,갈릴리해변 여러곳,요단계곡,여리고를 거쳐 돌아옴), 다음날은 남쪽(베다니,쿰란동굴,사해,엔케디,소돔,브엘세바,헤브론,베들레헴) 그리고 또 하루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신-구 시가지,기브온,기럇여아림,엠마오 등) 여행한다. 하루 400 km 여정이다.
유럽에서 오는 순례자중에서 기간을 우리잡고 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호텔로 가지 않고 값싼 호스텔이나 교회가 경영 하는 호스피스에서 머문다. 시설은 초라하지만 구도자의 고행에 참여한 듯한 경건함까지 느낄 수 있다. 성지 순례는 손에 여행안내서 한권을 들고 걸어다니는 것이 좋다.
에큐메니칼 신학연구원의 여름학교도 좋은 프로그램이다.
이스라엘 땅은 다윗왕때 요합이 인구조사를 한적이 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삼하24:2)가 경계이고 직선거리가 240km이다. 지금은 브엘세바를 지나 홍해 아카바만의 에일랏까지로 남북으로 400km,동서로 50-100km 좁고 긴 지형이다.
건조한 공기,숨막힐듯한 더위,풀을 말라 죽여 버리는 뜨거운 바람, 바로 여기가 광야이다. 옛날부터 이곳 사람들은 이 불모의 땅과 기후와 더불어 생사를 건 투쟁을 한다. 어떻게 구약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나? 헤브론 부근은 여러세기 동안 비옥한 곳이었다. 이 표현은 비옥한 일부 땅을 말했으나 이스라엘 전체로 적용된것 일 것이다.
계절은 건조기인 여름과 10월부터 우기인 겨울로 나뉜다.
이스라엘 땅은 관개시설이 불가능한 땅이다. 언제나 가뭄과 기근으로 흉년이 예상되기에 살고 싶은 마음이 안생기는 땅이다.
돌아온 사람들
갈대아 우르를 떠난 시점이 BC 17세대에도,애굽탈출후 팔레스틴정착이 기원전 13-12세기, 그리고 솔로몬왕이 1000년경 집권 전성기를 지내다 두나라로 나뉘고 북이스라엘은 주전722년에 앗시리아에 멸망 융화되고,남유다는 주전 586까지 와서 바빌론에 망하나 혈통은 유지한다.
외세의 지배는 계속된다. 주전538에서 142년까지는 페르시아와 그리스에게,주전142년부터 주후 63년까지는 하스모니아 왕조시대,주후 63년부터 313년까지는 로마 통치 시대, 주후 313 년부터 636 년까지는 비잔틴 통치시대,주후 636년부터 1099까지는 아랍 통치시대,주후 1099 년부터 1291년까지는 십자군 시대, 주후 1291부터 1516까지는 이집트의 맘룩 통치시대,1517 년부터 1917년까지는 터키의 오스만 통치시대, 1918 년부터 1948년까지는 영국 통치시대이다.
이스라엘의 국어,히브리어
이디쉬(Yiddish)는 독일어에 슬라브어와 히브리어를 섞어서 만들고,히브리문자를 이용해서 쓰는 말로 유럽과 미국의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어디나 울판(Ulpan)이라는 히브리어 강습소가 많다.이스라엘의 공식 통용어는 히브리어,아랍어,영어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성서를 그저 "읽는 것(마크가)"이나 "책(핫쎄페르)"고 하며 읽을 것은 성서 뿐이라는 생각이다.
이스라엘의 전쟁과 평화
승리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민족이다. 67년 6일전쟁에서 250만의 이스라엘이 1억의 아랍국가를 상대로 싸워 이긴 승리의 이유는 "우리가 어찌 250만입니까? 우리에게 나찌에게 살해된 600만명이 있습니다.살아있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기념관 "야드바솀(손과이름)"에는 "욥"이라 이름붙인 동상이 있고 받침대에 문구는 이렇다.
"망각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포로가 되게 하고 기억은 우리로 자유민이 되게 할 것이다."
이스라엘과 아랍 분쟁의 뿌리
이삭의 아내,리브가가 쌍둥이를 임신했는데,뱃속에서 싸우므로 괴로웠다. 주께서 창세기 25장23절에 말씀하신다. " 두 민족이 너의 태안에 들어 있다. 너의 태 안에서 두 백성이 나뉠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뒤에 나온이가 발꿈치(야곱)를 잡고 나왔다.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자손이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고, 에서의 자손들은 애덤 민족의 조상이 된다. 두 나라의 첫 마찰은 철이든 후 가데스까지 온 이스라엘에게 에돔 땅을 지나 가나안에 가자는 요구를 거절한다. 에서의 나라, 그와 관련된 나라들이 오늘의 아랍 민족이다.
이사야는 이사야19장24-25절에서 놀라운 꿈, 즉 이스라엘과 아랍 민족이 곧 화해하고, 한 하나님을 섬기면서, 세계 모든 나라에 함께 복을 전달할 미래를 내다 본다.
사마리아 사람들
70연대 이스라엘에는 400여명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살고있다. 그들은 사마리아인으로 불려지는 것을 싫어하며,'샤메림'(Samerim,율법을 지키는 자들)으로 불러주기를 바란다.
기혼샘에서 실로암 못까지
기르론 계곡의 기혼셈에서 타이로포에온 계곡의 실로암 못으로 이어지는 터널은 예루살렘의 명물 중 하나이다. 기혼샘에서 솟아나는 물이 터널을 통하여 실로암 못으로 흐른다. 이것이 바로 유다 왕 히스기야(주전715-687)가 만들었다는 물길로 히스기야 터널이다.
성지의 식물
신명기 8장8절에 "밀과 보리가 자라고,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며,올리브 기름과 꿀이 생산되는 땅이며"
요단계곡과 아라바 광야에 종려나무가 있고,산간 지방에는 올리브 나무,중세부터 용바 지역 바나나로 유명하다. 이스라엘 농업의 제일은 오렌지이다. 외화획득 1위는 다이아몬드 가공,2위는 관광수입,3위는 오렌지의 수출이다. 기타 계절 관계없이 토바고, 오이,고추,당근,완두류,꽃양배추,호배추,가지,감자,마늘,양파가 풍성하다.
제2부 믿음과 삶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 안식일에 유대인 가정방문을 유학생은 신청하라고 한다. 방문하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메주자(mezzuzah:문설주라는 뜻)가 출입구 오른쪽 문설주에 금속이나 나무로 만든 작은 상자를 두고,드나들 때마다 입마춘다.(신명기6장4-9)
안식일은 금요일 해지는 시각에서 토요일 해질 때 까지이다. 코셰르(kosher)라는 정결음식규정이 있다. 돼지고기,조개류,게,장어,오징어,낙지 그리고 피는 금물이다. 육류와 우유제품을 같이 먹지 않는다. 짐승을 잡을 때는 칼이 예리해서 단숨에 고통주지 말고 죽이고,기절시켜도 안된다. 피조물의 생명 파괴는 필요악에 속하는 것이지, 당연지사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면 식인종의 카니발과 다를 게 없다.
유대 달력의 '테사 베아브'(아빕월 제 구일)는 양력 7월 하순께쯤 된다.그 날은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으로 처들어와 성전을 무너트린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잊지 않고 상기하는 날이다. 많은 사람이 금식하고,저녁에 순례자들이 떼를 지어 성전의 서쪽 벽, '코텔 마아라브' 로 몰려든다.
유월절
'니산'월의 14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유월절은 우리 달력으로는 보통 3월과 4월 사이에 온다. 1978년 유월절은 4월 22일 저녁부터 시작되어 한 주간 동안 계속되었다. 기독교 고난주간과 겹친다. '쎄데르'라 불리는 유월절 만찬은 인상적이다. 보통 일곱시에 시작하는데, 첫째 하가다라는 유월절 예식문을 함께 읽고 노래하는 것에 두시간이상 걸린다. 식전 동북아가 누룩없는 빵부스러기를 안주삼아 포도주를 자그만치 다섯 잔씩이나 마신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 때,노예신분은 타고난 운명으로 변형시킬 수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우리 겨레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무렵에도 우리의 민족적 과제는 해방과 독립이었다. 그러나 식민지 속에서 파뭍혀 살던 사람들은 그 식민 상태를 극복해야 할 것으로 여기자 않았다. 해방후 사태가 어려워 질 때마다 그 날을 그리워했고 벗어난 것을 몹시 아쉬워 했다. 유월절은 맞이할 때마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가정에서 어린이들에게 그들이 노예였다는 역사부터 가르친다. 이는 동물처럼 순응하며 현실 적응하지 않고,현실을 변혁시킴으로 현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도구,곧 사고언어를 제공한다.
유월절은 기독교의 성만찬이 예수가 잡히시기 전날밤 곧 유월절 만찬에서 시작된다. 유월절은 성소를 중심으로 제사장이 주도하는 명절이 아니라 가정을 중심으로 부모가 주도하는 명절이라는 점이다.
할례
유대인 가정에서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여드레만에 할례를 베푼다. 할례는 오늘날도 안식일 준수,정결 음식법과 함께 유대교의 세가지 큰 특징 중 하나이다. 히브리어로 이 할례의식을 '브리트'('계약'이란 뜻) 라고 부른다. 벌써 명칭 자체가 유대인에게 깊은 의미를 가지며,전통에 따르면 이미 아브라함 때부터 모든 유대인은 하나님의 계약 백성이 되는 표로서 이 할례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할례는 '모헬'이라는 시술 자격을 가진 랍비나 의사가 행하고 이때 이름을 지어주는데,고인이 된 친척 이름중에서 따온다.
성서교육
이스라엘 백성을 '책의 백성'이라고 불렀고,그렇게 불려지기를 바란다. 어디서나 쉽게 주어진 토라와 탈무드를 읽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늘 검정 양복에 검정 외투 그리고 검정 중절모를 쓰고 다니는 정통파 유대교인은 의례 토라나 탈무드가 손에 있다.
'토라'는 쓰여진 율법이라면, '탈무드'는 '구전된 율법'이다. 구약도 처음 모습은 기록이 아니고 구전이었다. 기록 문화가 발달되면서 인간의 기억력은 급속도로 감퇴된다.
그들은 구전과 암기의 전통은 성서 교수법에서 중요하다. 그래서 국민학교 1학년 히브리어 기초를 배우고 2학년 되자마자 성서 읽기를 한다.
성서교육의 목적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떤 은혜를 베프셨고(하나님의 구원행위),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요구하기는지를(계약내용) 가르치는 데 있다. 계약 백성으로 계약 내용을 알기 위해 하나님의 요구가 제시되어 있는 계약서인 성서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메아 셰아림(Mea Shearim) 사람들
예루살렘 성곽밖의 유폐된 마을이 있다. 이는 일종의 게토와 같다. 게토란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격리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메아 셰아림은 유대인 스스로가 이방인의 접근을 막고 유대교의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만든 게토이다. 유대교중 정통파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서 안식일에는 마을로 통하는 길목은 바리케이드가 쳐있고 경찰이 지킨다. 마을 안은 음산하고 좁은 길에 낡은 건물 그리고 양복점과 좀교서적파는 서점이 많다. 남자들은 사계절을 흰셔츠에 검은 넥타이,검은 양복에 검정 두루마기를 입는다.
재건되지 않는 성전
성전(the temple)은 세상에서 오직 한 곳,주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정하신 곳에만 세울 수 있다는 것이 유대인의 신념이다. 회당(Synagogue)은 유대인이 모인 곳이면 아무데나 세울 수 있다. 그 성전터는 바로 솔로몬의 성전터이다. 예루살렘 구도시 동남쪽에 1,500 입방미터의 모리아산에 BC960 년에 솔로몬 왕이 세웠다. 그 성전이 바빌론침공때 무너졌고,BC520년에 귀환포로들이 둘째 성전을 재건했다. 그후 헤롯대왕이 웅장하게 장식한다. 주후 70년에 로마의 침략으로 파괴되고,로마는 주피터 신전을 세운다. 638년에 아랍 사람들이 팔레스틴을 정복하고 아스람 신전 모스크를 세운다. 1,100년경 십자군 원정으로 이 모스크는 '주의 성전'(Templum Domini) 이 된다.12세기말 이슬람이 다시 예루살렘 정복 후 다시 모스크로 유지된다. 이스람교도들도 아브라함을 존경하기에 이삭을 제물포 바치려 했던 이곳을 신성시 한다. 1967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은 2000년만에 예루살렘을 회복한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지 않고 있다. 다만 무너지나 남은 서쪽벽(통곡의 벽) 바깥 한 모퉁이에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할 뿐 옛 성전터 안에 들어가는 것조차 꺼린다.
베들레헴의 크리스마스
베들레헴의 탄생교회 (the Church of the Nativity)에서는 매년 다른 날에 세차례의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린다. 그레고리력으로 쓰는 로마 캐토릭으로 대표되는 서방교회는 12월25일, 그리스 정교회,시리아 정교회,곱틱교회 등으로 대표되는 동방교회는 1월7일(쥴리어스력 12월25일)에, 그리고 아르메니아 교회는 1월 19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킨다.
이스라엘에서 크리스마스는 오직 기독교인들만의 행사이다. 국경일도 공휴일도 아니고,반면 모든 유대교절기는 국가가 정하는 공휴일이다. 이스라엘이 철저히 유대교 국가임을 실감한다.
고난주간의 예루살렘
부활절 한 주일 전에 오는 종려주일(Palm Sunday)은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과 성전을 성결케하신 사건의 기념주일이다. 벳바게에서 출발,올리브산을 넘고,기드론 계곡을 건너 스테반문을 지나,예루살렘 성안으로 가는 2km의 길이다.
유월절 전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에서 유래된 "세족 목요일(Maundy Thursday)"이라고 불리는 고난주간의 목요일에 세족식,다락방 방문,겟세마네 동산 순례등이 있다. '겟세마네(Gethsemane)'라는 말은 '기름 짜는 곳(oil-press)를 뜻하는 히브리어 갓스-샤므나 가 와전된 것으로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올리브 나무가 많았다. "예수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 하시니,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다.(눅22:44)는 곳이라 전해오는 '번민의 바위(the Rock of Agony) 가 있다.
성금요일(Good Friday) 행사중에서 순례자들이 실물크기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까지 십자가의 길을 행진한다. 이 길이 바로 비아 돌로로자(Via Dolorosa)로 알려진 고난의 길이다.
이스라엘의 부활절
부활절 아침이면 순례자들은 아리마대 요셉의 정원으로 몰려든다.주님의 무덤앞에 운집한다. 예배가 끝나면 부활하신 주님이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을 기억하면서 예루살렘 서쪽 엠마오까지의 약 삼십리길을 걸어간다.
제3부 사해가 내려다 보이는 곳
여리고로 가는 길
여리고는 예루살렘 동북방 38km 지점에 있고 동북방으로 지중해 반대편 사해쪽이고 급한 내리막길 경사로 되어있다. 베두인 천막과 이스라엘군 병영만 군데둔데 있고, 중간 지점에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여관"이 있다.
여호수아는 이 성을 무너뜨린 후 아래와 같이 저주했다. " 이 여리고 성을 일으켜 다시 세우겠다고 하는 자는, 주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성벽 기초를 놓는 자는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성문을 다는 자는 막내 아들을 잃을 것이다.(수6:26)
쿰란 마을 사람들
주전1세기 경 팔레스틴을 전역에 "의의 교사"(the teacher of righteousness)라는 인물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곳곳에 모여 살았다. 그 중 사해 서북부의 쿰란 동네가 소문난 곳이다. 거기서 고고학 학자들은 사본 복사할,토기굽는 가마,부엌,식기와 식료품 저장실,저수통,강당(식당겸용),회의실 그리고 주변에 농장과 공동묘지도 발견되었다. 이 자료를 근거로 그 동네가 잘 조직된 자급자족 사회였음을 추정한다.
쿰란의 동굴들에서 발견된 두루마리들 중 성서외에 [공동체 규칙],[다마스커스 규칙],[메시아 규칙],[전쟁 규칙],[찬양시] 등은 그 공동체의 조직,신앙,성격에 관한 놀라운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쿰란 공동체와 원시 기독교는 유사점이 많다. 예로 쿰란 마을 사람들은 재산을 공유했다. 그래서 공동체에 입당할 때 사유재산을 공동체의 재산으로 헌납했다. 예루살렘 원시 기독교도 그랬다. 예루살렘 교회 신도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것을 공동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행2:44-45)
사해사본의 발견
1947년 사해 서북부 유대 광야에서 엄청난 발견이 우연히 이루어진다. 그 땅은 근 이천년동안 아무도 정착해 본적이 없는 불모지였고,다만ㅍ베두인이라는 아랍 유목민이 계절을 따라 옮겨다니는 황량한 들판이다. 한 목동 Muhammed Adh-Dhib.는 자신의 잃어버린 양 한마리를 찿아 계곡을 뒤지다가 한 벼랑위로 조그만 동굴을 발견한다. 소년은 혹 그 속에 들짐승이 있으면 어쩌나 해서 돌을 던져 보았는데 그 안에서 단지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후 1969년까지 20년간 '유대 광야 두루마리'나 '사해 두루마리(The Dead Sea Scrolls)로 불리는 구약성서 사본들이 발견되었다. 오늘날 현존하는 마소라 본문보다 천년이나 더 오래된 것이고 구약 성서 본문이 확정되기 이전의 본문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의 일부가 히브리 대학교 고고학과 앨리에제르 립파 수케닉(Eliezer Lipa Sukenik) 교수의 손에 들어가며 우여곡절끝에 그 사본들을 입수한다.
사해사본 박물관
옛날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쓰려면 칼을 가지고 나무판에 새기던지,바위에다 징으로 쪼던지, 아니면 흙을 짓이겨서 토판을 만든 다음 그 위에 글을 써서 옹기굽듯 구어 내야만 했다. 기원전 3천년 파피루스가 이집트에서 사용되었다. 기원전 2백년부터 부러지기 쉬운 파피루스를 대신에 세련된 가죽인 양피지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국립박물관에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으로 책의 전당(The Shrine of the Book) 이라고 하는 사해사본 박물관이 있다.독특한 건축양식으로 방문객의 호기심을 일으킨다. 직육면체의 검은 대리석(어둠의 자녀 의미) 벽과 흰돔(빛의 자녀) 을 서로 마주보고 지은 것은 쿰란공동체의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 사이의 싸움'이라는 그들의 중요 신학사상을 건축양식을 통해 나타내 보인 것이다.
맛사다: 그 최후의 날
예루살렘에서 맛사다까지는 사해 해변길로 100km 이다. 쿰란을 지나 엔게디를 거친다. 거대한 병풍같이 우뚝 솟아 있는 높이434m의 자연적 요새가 바로 맛사다이다. 헤롯대왕의 피신처로 만들어졌고 진입로가 셋뿐이다. 주후 70년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하자 로마에 상거래는 유대인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3년동안 버티다가 그곳에 있던 967명이 모두 목숨을 끊는다.
1963-65년에 히브리대학교 이가라시 야딘 교수가 이끈 발굴팀이 포대,창고,궁전터,헤롯의 초호화3층빌라,회당 등을 발굴하였다.
당시 로마 장군은 플라비우스 실바(Flavius Silva) 였고, 유대인 지도자는 엘리에제르 벤 이야르(Eleazar Ben Ya'ir) 이었으며 그의 연설을 마치고 남편들이 제각기 제 아내와 자식을 칼로 죽이고,가족들을 죽인 남편들은 제비뽑아 열 사람을 선정하여 나머지를 죽이고 나머지 한명이 자결하였다.
제4부 민족,세계,선교
개종에 관한 법규
옛날이나 지금이나 유대교는 선교의 종교가 아니다. 예언자들은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만을 위한 부름받은 자들로 이방인을 선교하라는 필요가 없다. 이방인은 계약백성이 아니므로 야훼 하나님을 섬길 의무도 없고 우상을 섬겨도 그것 때문에 형벌받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1977년 11월11일 크네세트(이스라엘 국회)는 그동안 논란이 많던 '개종에 관한 법(the Change of Religion)을 시행하기로 결정한다. 이스라엘 국내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기독교 선교활동에 제동을 건 법률이다. 개종을 유혹하는 상여금 지급이나 수취 행위를 제한함으로써 각종 다양한 수법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그들의 올무에 걸려는 사람들이 스스로 개정하지 않고는 못견디게 유인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사람의 약점을 이용해 가면서 개종을 강요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와 기독교
유대 사람으로서 유대교 밖의 다른 종교를 가지려면 동족의 차가운 눈길을 각오해야 한다. 사는 동안 겉보기는 유대인이지만,교회 대신 회당에 다니지만, 기도할 때 으레 '예수 메시아' 로 기도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으며 숨은 교인들이 적지 않다. 이스라엘에서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대다수가 아랍사람이다. 유대교 사람으로서 기독교 신자가 된 사람들이 '이스라엘 메시아 교회(Messianic Assembly of Israel). 라는 단체를 만들어 기독교인 공동체를 만들어 신앙경험을 보급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로부터 자기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이해한다. 신앙역사 초기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문만 강조하다가 주전8세기 예언자들이 나타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자각한다.
구체적으로 창세기 12장 1-3절로 솔로몬 통일왕국시대에 나온 성숙한 이해로서 이스라엘은 세계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야 53장에 나타난 고난받은 종의 이미지는 바빌론에서 어느 강변 포로수용소에서 이스라엘의 한 예언자는 자기들이 당하는 민족적 비극을 숙명으로 생각하지 않고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고난 으로, 이 세계의 잘못을 용서받게 하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는 고난 으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역사적 이스라엘이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본 사람들이 바로 예언자들이었다. 참 하나님의 백성은 전체 이스라엘 백성과는 구별되며,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이스라엘과 구별된다는 "남은 백성" 사상이 나왔으며,에레미야의 "새 계약"백성 사상이다. 정치적 이스라엘이 유대교라는 종교속으로 유폐되어 들어가면서 사명을 망각해 버리는 동안, 새 이스라엘 새 하나님백성 사상이 서서히 잉태되기 시작한다.
나사렛 예수가 오셨을 때 하나님의 그 크신 뜻이 분명히 발혀졌다. 마태복음 21장43절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새 이스라엘' 이 바로 '교회'다. 신약 성서의 교회는 처음부터 자신을 "새 이스라엘","참 이스라엘"로 파악하였다(롬9-11장).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는 그 혈통과 족보가 아니라 사명과 기능이다. 사몀감당을 못하는 신앙은 한낱 종교로 퇴화되어 역사의 주역이신 하나님께 쓸모없는 것이 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이방인의 자연숭배에 대한 관용과 거부
신명기4장19절에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천체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다른 민족들에나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민족,세계,선교
구약에서 '선교'에 관해 이사야서 19장 18-25을 보라. 그날이 오면 이집트 땅의 다섯 성읍에서는 사람들이 가나안 말을 하며,만군의 주만을 섬기기로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그 다섯 성읍 가운데서 한 성읍은 '멸망의 성읍'이라고 불릴 것이다.
오늘의 이집트와 이스라엘과 시리아-이라크가 세계 평화를 이룩하고,하나님의 복을 모든 민족에게 전달하는 삼인조가 될 수 있을까? 서로 국경을 열어 비자가 없이도 드나들고, 관세없이 자유무역이 이루어지고,서로 같은 신앙을 가지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이슬람교와 기독교와 유대교가 예루살렘 안에서 만이라도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이것이 실현되기에는 너무나도 난관이 많은 꿈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꿈이기에 우리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제5부 아우슈비츠 이후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
엘리 비젤(Elie Wiesel)의 밤
엘리 비젤은 1944년 열다섯살 때까지 시게트라는 마을에서 살았다. 독일군이 점령후 게토에서 잠시 머물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게 된다. 줄거리는 나치의 만행과 거기에 따른 무참한 희생,아직 살아있는 자가 겪는 공포와 전율,하나님을 더이상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신앙의 포기, 이러한 만행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국제사회와 믿었던 인간성에 대한 배신감, 그러나, 그러한 죽음과 공포의 좌절 속에서도, 죽음의 세력과 끊질기게 대적 하는 생명력으로서의 하나님과 인간의 동고를 체험하는 신비주의, 죽임의 세력이 살림의 힘에게 굴복당하고 마는 생명의 승리를 기록한 자서전적 소설이다.
소각로에서 자신들의 가족들이 무참하게 타 죽는 것을 목격할 때까지는 설마 자신들이 대학살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학살 계획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우리의 속담이 그대로 증명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글라이비츠 수용소에서 북헨발트까지 화물칸에 유대인인 100명 실려갔으나, 북헨발트에 도착했을 때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열명이 살아남는다. 그때까지 아버지 클로모 비젤이 생존해 있었으나,극도로 쇠약해진 아버지를 산채로 독일 친위대가 화장장에 처넣었다. 1945년 4월 그의 나이 열여섯에 거기서 해방을 맞아 자유의 몸이 된다.
그는 1947년부터 1950년까지 파리로 거처를 옮겨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 작가가 된다. 그의 체험을 쓴 작품을 발표하고, 1956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의 유대교신학교에서 유대교신학을 공부한다.
엘리 비젤의 새벽
영국이 팔레스틴을 위임통치하던 시절, 유대민족운동 단체에서 다윗 벤 모세를 위시한 단원이 영국군 무기고를 탈취하다 임무는 성공했으나 대장이 잡혀 사형선고를 받는다. 처형을 막아보려고 영국군 장교 존 도오슨 대위를 인질로 납치하여 모세를 처형하는 도오슨을 처형하갰다는 대치국면을 그린 것이다.
유대민족운동의 아지트에서 엘리자 는 내일 새벽에 한 영국인 인질을 자기 손으로 처형하다 하는 일 때문에 번거로운 상념에 사로잡혀 있다.
엘리 비젤의 예루살렘의 거지들
살아남은 유대인을 환영하는 곳은 없다. 그들은 거지 신세가 된다. 조국을 잃은 자들,국적이 없는 자들이다. 어디를 가나 계속되는 굴욕과 심문,살아남은 것이 오히려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려해도 위임통치하고 있는 영국이 입국을 허락하지 않을 뿐더러,영국군과 지하조직인 유대민족운동원의 전쟁터가 되어 있다. 거지의 특성 중에서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구걸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거지들이다. 사람에게만 구성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마저도 구걸하 지 않는다.
이 소설은 1967년6월의 6일전쟁을 배경으로 써졌다. 주인공 다비드가 본 이스라엘군은 외모는 나약하고 호전가도 아니다. 전쟁이 휘문고 오는 죽음앞에서 그 죽음의 쓴 잔을 피하고 싶어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서 승리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철저하게 승리에 집착할 뿐이다.
유럽전역에 반셈족주의(Anti-Semitism)가 팽배하고,공공연히 유대인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과 비난이 일 때도,개강은 놈들은 어디에다 있는 것이라고,짖어대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몇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던 아버지의 모습도 떠올랐었다.
에릭 시걸(Erich Seagal)의 사랑의 행적(Acts of Faith)
Love story의 저자인 게릴라들을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유대계 미국인이다. 하버드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한 그는 그리스와 라틴문학을 강의한다. 그의 소설 "사랑의 행적(Acts of Faith)" 에서 유대인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 대한 증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순례안내가 되기도 하고, 정통파 유대인의 신앙과 생활,개혁파 유대교인들의 생활과 풍속, 자유주의 유대교인들의 사상과 생활, 비종교적 유대인들의 생활과 풍속,키부츠에서 사는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안식일,성년식결혼식,장례식 풍속 등에 관한 생생한 묘사를 볼 수 있다. Shabat goy,an altar boy 등도 나온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1서4:8)"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because God is love. 한주인공 디모데가 이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Thomas Keneally의 쉰들러 리스트
실제 이야기를 기술하기 위해 소설적인 구조와 방법을 사용한 작품으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로 만들어 유명해졌다. 작가가 여행가방을 사려고 다방면에 들렀다가 주인으로부터 오스카 쉰들러라는 독일인 이야기를 듣는다. 2차대전 당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유대인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준 독일인이다. 사실 확인을 위해 7개국 흩어져 사는 50명의 유대인 생존자를 만나 증언을 토대로 썻다.
제6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가락
세상은 외나무 다리
세상은 모두 외나무 다리이므로 다만 겁내지 않는 것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온 세상은 모두
외나무 다리 .....
그렇지만 용감하게 걸어간다. 겁내지 말고
걸어간다 겁내지 말고
이 책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생각이 새롭게 고침을 받았다. 그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또한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된 것에 크게 만족합니다. 모르는 부분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무지함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됩니다, 아우슈비츠를 통하여 깊은 충격을 되돌아 봅니다. 민족과 영토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일본의 한일합방의 역사를 가슴깊이 새겨야 하고 후손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 대등한 관계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