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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농구 선수권 사상 최고의 역전 드라마가 낳은 비운의 사나이
By Doctor J
1986년 세계 농구 선수권은 냉전시대의 산물인 올림픽 보이코트로 인해 연이어 무산됐던 구소련과 미국의 농구 맞대결을 볼 수 있었던 장이어서 당시에 매우 큰 관심을 끌었던 대회였습니다.
미국에서도 그 당시에 막 떠오르던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인 TNT가 테드 터너 사장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대회 주요 경기들을 미국에 생중계 해줄 정도로 관심도가 매우 컸습니다. 이것이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었는데, 왜냐하면 그 당시만 해도 세계 농구 선수권은 유럽 국가들이나 열을 올린 대회였지, 올림픽에만 신경을 쓰던 농구 본고장인 미국에선 정작 별 관심을 두지 않던 대회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큰 관심때문이었을까요? 미국은 남녀 농구 모두 결승전에서 숙적인 구소련을 꺾으며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여자농구에선 '여자 마이클 조던'이란 별명을 달고 다녔던 셰릴 밀러 (레지 밀러의 누나이기도 하죠)의 대활약상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여자농구 얘기까지 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일단 여기서 정리하겠습니다.
데이빗 로빈슨의 미국과 아비다스 사보니스의 구소련이 결승에서 맞붙으며 막을 내린 대회이긴 했으나, 사실 많은 농구 전문가들은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유고슬라비아를 최강의 전력으로 뽑았었습니다. 당시의 유고팀엔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금메달의 주역들은 물론, 유럽 최고 수퍼스타였던 드라전 페트로비치, 청소년 대표팀에서 발탁된 약관 18세의 블라데 디바치 등이 신구의 조화를 이루며 막강한 라인업으로 포진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구소련이나 미국팀보다도 더 화려한 팀구성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준결승에서 격돌한 구소련 대 유고슬라비아 간의 혈투는 당시로선 단일 농구경기로서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고, 경기 수준 또한 매우 높았습니다. 또한, 이 경기는 국제농구 경기 사상 최고의 역전 드라마를 연출해내기도 했지요. 모든 역전 드라마가 그렇듯이, 이 경기에서도 비운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습니다.
오늘, 이 경기의 백미였던 대역전의 순간을 잠시 회고해볼까 합니다.
이 경기는 당시의 유럽을 양분하고 있던 22세 동갑내기 수퍼스타, 페트로비치와 사보니스의 대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양 국가를 대표하는 대들보들 답게, "전천후 폭격기" 페트로비치는 집중적인 수비를 받으면서도 29득점을 해 유고슬라비아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故 레드 아워백 옹에 의해 "7-4 빌 월튼"이라 불리우던 사보니스는 삼점 슛 4개를 포함, 25득점, 10리바운드, 5어시스트, 6블락샷으로 구소련을 이끌었습니다.
옆의 영상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사보니스는 유고의 수비가 지역방어를 펼치면 외곽으로 나와 삼점(4개 시도해 모두 성공)을 던졌고, 유고가 수비진영을 넓히면 안으로 들어와 훅 슛과 파워무브로 공격하는 다양성과 영리함을 보여줬습니다. 또한, 6개의 블락샷을 함과 동시에 수많은 유고 선수들의 슛 궤도를 바꾸는 에너지 넘치는 수비력까지 선보였습니다.
사보니스의 이러한 공수에 걸친 맹활약에 힘입어 유고의 내노라 하는 센터들은 모두 5반칙 퇴장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후반전의 중반부터는 "루키" 디바치가 사보니스를 막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고의 전력은 탄탄했습니다.
후반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러니까 40여 초를 남겨둔 상황에서 유고슬라비아의 백전노장 큐추라가 삼점 슛을 성공시켰을 때 유고는 9점 차까지 점수를 벌여놓을 수 있었습니다.
85 대 76. 남은 시간은 45초. 승부는 거의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은 바로 이 때였습니다.
다음 포제션에서 구소련의 국보급 센터 사보니스가 백보드를 맞추며 장거리 삼점 슛을 성공시킨 것입니다.
85 대 79.
유고슬라비아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라전 페트로비치의 형, 알렉산더가 공을 드리블하며 나갔습니다. 이 때, 사보니스와 같은 리투아니아 출신인 코미츄스가 공을 스틸하며 재빨리 티코넨코에게 패스를 해주었고, 티코넨코는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곧바로 삼점을 던졌습니다. 이것도 깨끗하게 들어갑니다.
85 대 82. 점수차는 3점으로 좁혀졌습니다.
위태위태한 순간이었으나, 공격권은 아직도 유고슬라비아의 손에 있었습니다.
구소련은 계속해서 파울로 유고의 리듬을 끊으며 실책을 유도했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5초.... 공만 빼앗기지 않는다면 유고의 승리는 이대로 굳어질 전망이었습니다.
타이트한 압박수비를 펼치는 구소련의 수비 앞에 유고 선수들이 조금씩 당황을 하는 가운데, 아무도 막고 있지 않던 어린 센터, 블라데 디바치에게 공이 건네졌습니다.
블라데 디바치... 18세의 청소년 대표 출신... 몸이 유연하고 볼핸들링과 패싱력이 좋아서, 유고슬라비아 농구협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고의 레전드 센터 출신 감독인 코시치 씨가 대표팀에 합류시킨 인물입니다.
국가대표 경험이 없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볼핸들링에 너무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일까요? 디바치는 이 숨막히는 판국에 이리저리 드리블을 쳤습니다. 이를 놓칠 구소련 수비가 아니죠. 소련 가드진 둘이 디바치에게 바싹 붙자마자, 디바치는 너무나도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잡았던 공을 다시 드리블하려 한 것입니다.
이 수준높은 경기에서, 이 숨막히는 클러치 상황에서, 디바치는 더블 드리블 바이얼레이션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구소련에게 기사회생의 기회가 왔습니다.
별명이 "시베리아 백여우"인 포인트가드 볼터스가 공을 몰고 들어갑니다. 그를 쫓아가던 드라전 페트로비치를 거대한 사보니스가 픽을 걸어주며 스크린을 섰고, 볼터스는 사보니스를 방패삼아 회심의 삼점을 던집니다.
동점이었습니다.
불과 40초 동안에... 상대팀의 두 개의 턴오버를 묶어 세 개의 삼점 슛으로 연결시키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구소련 팀이었습니다.
그렇게 전개가 된 세계 농구 선수권 사상 최대의 역전 드라마는 이제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갑니다.
이 마지막 40여 초의 숨막히는 순간을 동영상으로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보니스의 3점포부터 시작합니다.
연장전이 시작되긴 했으나, 이미 전의를 상실한 유고슬라비아는 기가 있는대로 살아난 구소련의 적수가 될 수 없었습니다. 미국과의 결승전 티켓은 결국 구소련이 거머 쥐었습니다.
이 위대한 역전 드라마의 비운의 주인공, 블라데 디바치가 이 경기를 회고하며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는데... 인터뷰에서 디바치는 자신의 결정적인 실책 이후엔 정말로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후반전이 동점으로 종료되는 순간, 한 선배선수가 자신에게 다가와 "너같은 XX는 죽어버려!" 하는 외침을 들은 후엔 그 자리에서 자살하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고 합니다.
연장전 내내 울면서 뛰었다고 하죠.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 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후 경기 내내 울면서 뛰었다고 한 안정환 선수가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정환 선수와는 달리, 디바치에겐 설욕의 기회조차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40초 간에 걸쳐 벌어진 농구 선수권 사상 최고의 각본없는 역전 드라마는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비 온 뒤의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요? 이 일을 계기로 디바치는 더 한층 성숙한 선수로 발전할 수 있었고, 결국 꿈에도 그리던 NBA 리그에 입성할 수 있게도 되지요. 88년 올림픽에선 또 다시 사보니스의 벽을 넘지 못하며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90년 세계 선수권에선 토니 쿠코치, 페트로비치와 함께 그렇게도 바라던 정상의 자리에 조국을 올려놓는 주역이 됩니다. 많은 농구인들은 입을 모아 1990년 당시의 이 유고슬라비아 팀을 드림팀이 출현하기 전까지의 역대 최고 FIBA 국가대표팀이었다고 평합니다.
그러나 1986년의 한 여름날, 운명의 여신이 그에게 내린 너무도 가혹한 결정은 평생을 두고 그의 가슴 속에 천추의 한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글의 내용이 너무 우울한 듯 해서 재미있는 영상으로 게시물을 끝맺겠습니다. 위에 언급한 숨막히는 40여 초 바로 직전에 나온 장면입니다. 심판의 판정에 항의하는 아비다스 사보니스의 모습이지요. 인상을 쓰며 주심에게 소리를 질러보지만, 주심이 노려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손사레를 치며 방향을 바꿔 자기 갈 길(?)을 가는 능청스럽고 유머스러운 모습입니다. 당시에 TNT 중계를 맡았던 릭 베리와 빌 러셀로 하여금 박장대소를 터뜨리게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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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ㅋ 마지막 움짤 참 재밌네요^^
ㅎㅎㅎ젊은시절의 사보니스는 훈남이네요..ㅋ 포틀시절엔 그냥 아저씨같더니만..^^
정말 잘 보았습니다 제이님 ^_^;비운의 사나이라....맞는말이네요;;그런데 왜 유고슬라비아 협회에선 첨에 디바치의 참여를 반대했나요? 나이가 어려서인가요?
7~80년대 당시는 미국이 올림픽에만 최정예 팀을 구성해 내보낼 때였어서, 유럽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미국이 등한시 하던 세계 선수권을 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매 대회마다 우승후보였던 구소련과 유고는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지라, 이런 중요하고 큰 대회에 대표팀 경험이 전무했던 선수를 넣는다는 것이 좀 꺼려졌던 것이죠. 하지만 선수 선정에 전권을 쥐고 있던 코시치 감독이 전격적으로 디바치를 합류시켰습니다. 둘 모두 이 값을 톡톡히 치룬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 젊은 유망주들이 제대로 배우고 자랄 수 있죠.
아하 그렇군요 ^^;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만일 사보니스가 전성기때 NBA에 왔다면..무시무시하지 않았을까요? 3점도 쏘고 패스도 하고 블락도 하고 리바운드잡는 7픗 4인치의 센터라..;;;;
얼마전에 왔던 디박옹이 웨버랑 비슷한 실수를 했었다니..ㅎㅎ 그떈 정말 끔찍했었겠어요..;;;;공산국가 분위기도 있어서..유고가 소련하고 사이도 안좋았을텐데..;;
NBA 전문 잡지 보는듯하네요. 잘봤습니다. ㅎ
왜 책으로 안내세요??..-.-;;;; 'Doctor J'의 NBA이야기
유명인이 되시면 외출도 힘드시잖아요 ㅎㅎ;
호주에 사신다니 그렇지도 않을텐데...^^
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 저도 동감입니다.ㅋㅋ
Dr.J님이 지금까지 쓰신거 조합해도 이미 아주 좋은 책자죠
아, 그럼 어디 출판사라도 연결시켜들 주시던가요....^^;;)
책에는 짤방이 안들어가잖아요 ㅠ
책 내시면 꼭 사서 봅니다 !!
타임아웃의 애송이 웨버, 더블 드리블의 애송이 디바치, 에어볼의 애송이 코비...다들 그렇게 애송이에서 레전드가 되어 가나 봅니다...글 잘 읽었습니다 ^^
워 몸상태 굿이네요..저 유연한 백인센터라니
포틀시절 사보니스만 봤는데..몸이 엄청 가볍네요 ㄷㄷㄷ 잘봤습니다^^
사보니스 정말 멋지네요. 저 정도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였는데... nba 시절에는 거의 센스와 사이즈로만 농구하는 것 같아 볼 때마다 안타까웠습니다. ㅠ.ㅠ
사보니스와 디바치 다시 보고싶은 빅맨들입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사보니스 표정 정말 익살스럽네요.
사보니스 정말 미남이네요
정말 잼있게 잘 읽었습니다~!
정말 크게 웃었습니다. 마지막 움짤에 사보니스 진짜 귀엽군요. 국가대항전이라 긴장이 가득한 분위기였을텐데 그 와중에도 위기를 벗어나려고 개그를 하다니~
오..발레리 티코넨코...사보니스보다 제겐 더 기억에 남는 선수였습니다. 어린시절 "처음보는" 장신 3점 전문슈터였거드요. 더구나 특유의 슛폼이라니...
티코넨코도 별명이 "여우"였습니다. 실제로 얼굴이 여우상이었고, 뛰어 다니는 폼도 겅중겅중, 꼭 여우가 뛰는 것 같았습니다. 코가 심각하리만치 크고 메부리 형상이어서 놀림도 많이 받았던 장신 3번입니다. 이 86년 대회의 베스트 5로 뽑히기도 했죠. 나머지 네 선수는 데이빗 로빈슨, 아비다스 사보니스, 드라전 페트로비치, 오스카 슈미트였고, 토너먼트 MVP는 이례적으로 준우승 팀의 사보니스에게 돌아갔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988년 이후에나 서서히 냉전이 완화될 기미가 보였으니, 1986년의 미쿡과 쏘련의 대결은 볼만했겠네요. ^^
ㅠㅠ / 볼핸들링에 너무 자신감이 있어서에 한표. 91년 파이널에서도 리바운드 잡은 공을 매직한테 바로 패스하지 않고 조던을 상대로 포스트업을 치다 텐세컨바이얼레이션에 걸렸던게 생각나네요.(클러치상황은 아니였지만) 이 경기에서 디박이 꽤 인상적인 활약을 했었죠..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시드니에 계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책 한권 내시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
좋은 글입니다.
흐음.. 진짜 저번에도 그런 생각한 적 있는데 사보니스가 전성기때 nba에 왔었다면 어느 정도의 활약을 했을까요? 20득점 10리바에 4어시 2블락 정도는 충분히 찍었을 것 같은데..
저는 '빌 월튼' 스타일의 스탯을 찍었을 것으로 봅니다. 17~8점, 13~4리바운드, 4~5어시스트, 3~4블락샷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이 되네요. 전성기 시절에도 원래 득점에 큰 욕심을 내는 선수가 아니었고, 리바운드, 패싱, 수비에 더 주안점을 두던 선수였거든요. 하지만 인사이드 득점을 필요로 하는 팀에 있었다면 상당한 고득점도 가능했을 선수였습니다. 97-98 시즌엔 34세의 망가진 몸으로도 32분을 소화하며 73경기에 출전, 평균 16.0점, 10.0리바운드, 3.0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었죠. 유럽세에 대한 완전한 텃세로 올스타전 센터를 두 명(로빈슨, 샤크)만 뽑는 코메디(?) 연출로 인해 올스타에 선정되진 못했지만요...
허재가 아마 그때당시 토니 쿠코치 디박 있었던 팀이 역대 상대해본 팀중 가장 강했다고 말했었던 것 같네요.
오.....정말 기막힌 자료와 설명이네요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사보니스가 이런 괴물이었다는 사실.....첨 알았네요. 주 포지션이 다르긴 하지만 매직 존슨 생각날 만큼의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는 건 놀랍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저도 시합 34초를 남겨두고 우리편 공격권에 7점 앞선상황에서 동점... 연장가서 진 경기를 했었습니다..ㅜㅜ 제가 주장이었는데.. 그 34초가 지금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끝나고 동료들에게 상황 설명을 들어야 할 정도로... 마지막에 저희편 새내기가 레이업을 놓치고 자학하며 머리를 바닥에 찧었는데 전 연장전 들어가면서 그 새내기 이마가 왜 그렇냐며 막 묻기도 했었다는군요...ㅜㅜ 아~~ 잊고 싶은 기억이겠습니다... 지못미 유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마지막 사보니스 진짜 웃기네요.ㅎㅎ
드라전.~ ㅠ.ㅠ ....
디바치가 빅맨치곤 볼핸들링이 좋은 편이죠 그러다보니 LAL시절에도 쓸데없이 자기가 치고 나가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죠 91년 정규시즌 경기 불스@레이커스 또 91년 서부파이널 6차전 등의 경기들을 보면 아나운서 칙헌도 한마디 할정도로 불필요하게 드리블을 길게 치더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사보니스 저때는 몸이 정말 좋았네요...호~
좋은 글 잘봤습니다. 며칠 전 삼산체육관에서 봤던 디바치에게 시련의 때가 있었다니 후덕한 얼굴을 움켜지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잘 상상이 안가네요. 그나저나 마지막 사보니스 짤 ㄲㄲㄲㄲ
사보니스가 3점도좋왔네요
정말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던데 책으로 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예전에 NBA 길라잡이라고 전 한창도 해설위원이 쓰신 책있는데 어렸을때 재밌게 읽었었죠. 책 쓰는거 한번 정말 생각해보세요!:)
디바치..아틀란타 올림픽 때 우리나라와의 경기..원맨 속공에서 강동희와 1:1 상황이었는데..아주 간단하게 제치고 레이업을 올리는 모습이 전 눈에 선하네요..확실히 쓸데없는 드리블이 많기는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