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71. 들리다와 들르다
"야, 우리 병철이 집에 들려서 가자"
"그래, 동물원은 병철이 집에 들린 다음에 가자"
`어디에 방문한다"는 뜻의 말을 할 때 사람들은 흔히
`들리다" `들려서" `들린"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모두 맞지 않다.
그렇다면 이 경우, 어떤 낱말을 써야 할까. 바로 `들르다"를 써야 한다.
사전을 보면 들르다와 들리다는 그 뜻이 분명 다르다.
우선 들르다는 `지나는 길에 잠깐 들어가 머무르다"는 뜻을 갖고 있다.
바른 용례는 `친구 집에 들르다/포장마차에 들렀다가 퇴근했다
/길동이는 시장에 들러 잠바를 샀다/나는 그 가게에 들른 적이 있다" 등이다.
이와 달리 들리다는 꽤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병에 걸리거나 귀신이나 넋 따위가 덮치다"라는 뜻을 가진다.
`감기가 들리다/그녀는 신이 들렸다/신 들린 사람"이 그 예다.
들리다는 `물건의 뒤가 끊어져 다 없어지다"는 의미로 쓰여
`밑천이 들리다/좋은 것은 다 들리고 찌꺼기가 남았다"는 문장을 구성할 수도 있다.
이 때, 들리다는 바닥나다와 같은 말이다.
또 들리다는 `듣다"의 피동사 또는 사동사로 쓰인다.
`음악소리가 들리(린)다"는 피동사로 쓰인 예이고
`아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렸더니 너무 좋아한다"는 사동사로 쓰인 예이다.
이 외에 `들다"의 피동사, 사동사로도 쓰이는데
`양손에 보따리가 들리다/무릎을 치니 다리가 번쩍 들리(린)다"는 피동사로,
`친구에게 꽃을 들려 보냈다"는 사동사로 쓰인 경우다.
이 정도면 충분히 구분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희에게 들려서/들러서 가자"라는 문장을 예로 복습해보자.
위 문장 중에 `들려서"는 들리다의 어간 `들리-"에 `-어서"가 결합한 것이고
`들러서"는 들르다의 어간 `들르-"에 `-어서"가 결합한 것이다.
따라서 `잠깐 방문해 머무르다"는 뜻을 가진 들르다의 활용형인 `들러서"를 써야 한다.
▲강남콩?
"난 콩밥은 싫어하는데 강남콩이 들어 간 건 먹을 만하더라"
콩의 일종인 강낭콩을 평소 입어 익어서인지 강남콩이라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강남콩은 강남에서 나는 콩도 아니고 있지도 않은 풀이다.
콩과의 한해살이풀인 강낭콩은 여름에 흰빛 또는 연한 황백색 꽃이 피며
열매는 꼬투리로 맺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밥에 두어 먹으면 더욱 좋은 강낭콩에게 제 이름을 찾아 주자.
조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