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역 노상에서 본 것을 기록하다. / 凡於驛路上記所見
구월인데도 푸르고 푸르러 벼곡식 못 거두니 / 九月靑靑禾未收,
팔공산 아래는 아직 가을걷이 하기 적당치 않네. / 八公山下不宜秋。
늙은이는 밭에서 순무[蕪菁]를 줍더니 / 老翁拾得蕪菁了,
서풍을 등지고 서서 눈에 가득 시름이로세. / 背立西風滿眼愁。
佔畢齋集卷之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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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주(附註)
위의 시는 점필재 김종직(金宗直) 선생이 쓴 시이다. 김종직(金宗直, 1431년~1492년) 선생은 조선 초기의 문신(文臣)으로 자는 효관(孝盥) 또는 계온(季溫)이며, 호는 점필재(佔畢齋)이고,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본관(本貫)은 일선(一善: 善山)이며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 선생의 아들로 조선 경상도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부북면 제대리에서 태어나셨다.
위의 시에 나오는 팔공산(八公山)이라는 산명(山名)은 팔공산이라고 기록된 최초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팔공산의 옛 이름은 공산(公山)、부악(父岳)이었고,《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중악(中岳)에 비겨 중사(中祠)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후삼국시대 견훤(甄萱)이 서라벌을 공략할 때에 고려 태조가 5,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후백제군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공산(公山) 동수(桐藪)에서 견훤을 만나 포위를 당하였다. 그때 신숭겸(申崇謙)이 태조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함으로써 태조가 겨우 목숨을 구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신숭겸과 김락(金樂) 등 8명의 장수가 모두 전사하여 팔공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팔공산 유래에 대해서는 중국 안휘성(安徽省)의 팔공산 지명 차용설 등 몇 가지 설이 있다. 한편 전북특별자치도(全北特別自治道) 장수군(長水郡) 장수읍(長水邑)과 진안군(鎭安郡) 백운면(白雲面) 사이에도 팔공산이라는 산이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범어역(凡於驛)은 대구도호부 동쪽 9리(약 3.5㎞)에 위치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수성군(壽城郡)에 위치하였으며, 경주도(慶州道) 소속의 역(驛)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성현도(省峴道) 소속의 역으로 편성되었다.
범어역은 서쪽의 성주·대구 방면과 동쪽과 남쪽의 경산·경주·청도 방면을 연결하는 교통로상에 위치하였습니다. 범어역에서 서쪽으로는 대구 금천역(琴川驛), 북쪽으로는 칠곡 고평역(高平驛), 동쪽으로는 경산 압량역(押梁驛), 남쪽으로는 청도 성현역 등과 연결되었습니다.
범어역의 위치는 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泛漁洞)에 해당합니다. 이 범어동에 조선시대 때부터 말을 갈아타는 역참으로서의 범어역(凡於驛)이 존재했었습니다.
글 > 이상훈(李相勳)